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특집 목회자 칼럼 분류

“편의주의” 시류에 편승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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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1월호>

각종 기술 혁신과 발전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우선시하는 풍조를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요즘 세대는 부지런히 움직여서 무언가를 하거나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SNS, 챗 GPT 등에 의존하여 모든 일들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풍조는 오히려 인간에게 나태를 조장하거나, 원칙을 배제하고 편의와 이익을 우선하는 방식을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편의주의” 사상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유행하는 “편의주의”가 교회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하는 교회가 “대면” 모임을 기피하는 세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각종 예배와 모임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비대면” 신앙을 장려하는 추세이다. 굳이 목자와 직접 “대면”하여 설교를 듣고, 교인들과 “대면”하여 교제하기보다는 유튜브나 스마트폰으로 예배를 시청하면서 헌금을 계좌로 간편하게 입금하는 풍조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편의주의의 폐단이며,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아서도록(딤후 4:4) 악영향을 끼친다.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편의주의”에 편승한 신앙생활을 거부해야 한다. 아무리 효율성과 편의가 중시된다 해도 “성경적 원칙”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를 “바른 성경”에 두며,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에 따라 정확하게 실행해야 한다(롬 4:3). 성경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원칙을 무시하고 인간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결국 배교로 치닫게 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북왕국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사건이 그것이다. 북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여로보암의 죄”가 떠나지 않았고, 그 뒤로 왕국 전체가 총체적인 배교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 시발점은 다름 아닌 백성의 “편의”와 왕의 “이익”이었으니, 신앙에 있어 “편의주의”를 추구하면 이처럼 영적인 파멸을 낳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로보암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든 북왕국에 붙잡아 놓기 위해 내세웠던 구실은 “번거로움”이었다. 당시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희생제를 드리러 갔을 때 혹여나 남유다의 르호보암왕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곳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왕상 12:27).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백성의 발을 묶어 둘 심산으로 계략을 꾸몄고, 백성을 설득할 명분으로 “수고스러움”을 내세웠다. 『이에 왕이 계략을 꾸미고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백성에게 말하기를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너희에게 너무 수고스럽도다. 오 이스라엘아,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내신 네 신들을 보라.”』(왕상 12:28). 오늘날로 보자면 “굳이 예배를 드리러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라는 식의 발상과 흡사하다.

현대인들은 주로 “신속성”과 “편리함”을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자신이 직접 수고스럽고 번거로운 일들을 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이는 그 사람의 게으름으로 이어지는 법인데, 이것이 “편의주의”의 이면이다. 이런 풍조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세상 지향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 있어서 수고와 노력을 들이지 않고 어떻게든 편리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만 모색하려 한다. 그러한 세상 풍조를 따르는 일이 마치 옳은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4:12)라는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유익과 편의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최우선으로 삼고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편의주의에 편승하게 되면, 성경책을 직접 들고 읽기보다는 그저 편안하게 유튜브나 스마트폰 앱으로 듣고 보는 것에 안주하게 된다. 또한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음에도 교회로 이동하는 일이 “번거로우니” 간편하게 유튜브로 예배를 시청하고서 마치 자신이 성도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라! 신앙생활의 중심은 성도 자신의 편의나 만족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바에 충실히 따라야 한다. 지역 교회를 통한 예배와 모임의 참석, “성경책”을 펼쳐서 읽고 묵상하는 일, 성도 간의 교제와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 번거롭게 여겨져도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성도의 자세이다.

여로보암의 “편의주의적” 발상은 백성들로 하여금 성경의 주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죄로 귀결되었다(왕상 12:30). 편의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적인 신앙과 진리에서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저버리고, 믿음에서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여로보암은 율법에서 제시한 “원칙”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제사 드리는 날짜와 제사장을 정했다. 그는 제사를 드리도록 정해진 “성소”가 아닌 “산당”을 지어 제사하도록 했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라는 우상을 숭배하게 했고, 레위 지파 출신이 아닌 가장 낮은 자들을 제사장들로 삼았다. 게다가 장막절을 모방하여 성경적 근거도 없는 “여덟째 달, 즉 그 달의 십오일”을 명절로 제정했다(왕상 12:30-32). 말하자면 “성경적 원칙”이 아닌 자기 임의로 정하고도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자기 합리화”를 한 것이다.

이처럼 “편의주의”는 근본적인 원칙을 배제한 채 대충대충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로보암의 시도는 인간적 관점으로는 굉장히 융통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말씀”(삼상 3:21)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하나님”을 고안하여 쓸모없는 종교 생활을 장려했을 뿐이다. 오늘날 배교한 교회들 역시 성경적인 원칙을 제쳐 놓고, 자기들만의 “하나님,” “성경,” “예배,” “사역”을 내세우고 있다. 현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교회 안의 무지한 자들은 그들과 동일한 노선을 취하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합리화”한다. 그런 자들은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설교자들(딤후 4:3)과, 겉으로는 부유하고 화려하나 실은 비참한 교회들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계 3:17).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성도는 인간적인 자기 합리화에 빠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바른 성경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며 “최종권위”로서 충실히 따를 뿐이다. 비록 성경이 현 시대의 풍조와 맞지 않아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해도,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행한다! 이러한 성경적인 신앙은 항상 소수의 무리만이 지녀왔다. 왜 그런가? 이유는 간단하다. 다음의 말씀에 따라 협소한 진리의 길에서 오직 “성경”만을 인정하고 실행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 7:13,14).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만족이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전 10:31).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의 기준을 자신의 생각과 취향이나 세상의 풍조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기준은 오직 “성경”이다. 성경은 시대의 조류가 어떻든지 변하지 않으며, 우리 역시 세상 풍조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절대적으로 지키며 그 말씀에서 명령하는 대로 신앙을 지켜야 한다(시 119:44).

여로보암이 고안한 종교가 율법에 따른 신앙을 흉내 낸 것밖에 되지 않듯이, 배교한 교회들에 만연한 “편의주의”는 『경건의 모양』(딤후 3:5)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을 본떠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자신들도 “선교”를 한다고 하며, 지역 교회를 목사와 집사, 교인들이 구성하고, 그들에게 “성경”도 있고, “찬송가”도 있으며, “기도”와 “금식”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경건의 모양”인 것이다. 무지한 사람들은 그 교회들도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오해하지만, 그런 교회들은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신약 교회들과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딤전 6:3) 않는 신앙을 양산할 뿐이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자들로부터 돌아서야 한다고 단호하게 명령한다(딤전 6:5).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즉시 “편의주의” 신앙에서 돌아서라. 스마트폰이나 PC에 의존하는 “비대면” 신앙을 합리화하지 말라! 바른 말씀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직접 손에 들고 읽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를 직접 찾아가 경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목자로부터 성경적 진리를 배우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며 도전과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거리로 직접 나가 사람들과 “대면”하여 복음을 전파하면서(딤후 2: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한다면 당신도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 주며 복음을 설교하고 구령하는 일은 구식이고 비효율적이라는 발상을 버리고 복음을 “우직하게” 죄인들에게 전파하라. 이 일은 비록 “수고스러워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편의주의의 “새 길”을 거부하고, 성경적인 “옛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렘 6:16).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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