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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렘들의 믿음과 실행, “이슬람 원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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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1월호>
흔히 모슬렘들, 즉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6신 5행”으로 설명한다. “6신”이란 알라, 천사, 코란, 예언자, 심판의 날, 예정론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5행”이란 신앙 고백, 기도, 금식, 구제, 성지 순례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모슬렘이 되려거든 이 가운데 사실상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알라”와 “예언자”에 대한 믿음을 “신앙고백”으로 행하면 된다. 누구라도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마호메트는 그분의 사자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모슬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이슬람교는 조용하게 개인적인 경건을 추구하는 “평화와 공존의 종교”인 듯도 싶다.그렇지만 일각에서는 모슬렘들이 벌이는 전쟁, 테러, 폭동, 친족살인 등을 지적하면서, 이슬람교란 다른 종교와는 공존이 불가능한 폭력과 차별의 종교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와 같은 일들을 개인의 일탈 또는 종교적 순수성을 잃은 이념의 결과라고 평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슬람교의 실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자, 어떤 일에 대한 의문이 일어날 때는 구구절절한 설명에 귀를 내어주기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판단하는 게 옳다(마 11:3-6, 요 14:11). 참된 기독 신앙을 이해하려거든 누군가로부터 기독교에 관한 설명을 들을 게 아니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게 훨씬 낫듯이, 이슬람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코란대로 믿는 사람들,” 곧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쳐다보는 게 현명할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범주는 상당히 넓다. 그들 가운데는 코란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데만 몰두하는 이들도 있고,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는 이들도 있으며, 극단적으로 무력 투쟁에 임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하든 “이슬람 원리주의자”로서의 목표는 모두 같다. 바로 그들의 경전인 “코란”, 그리고 마호메트와 그 측근들의 일화를 담고 있는 “하디스”(편수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음)로부터 나온 종교법 체계인 “샤리아”를 바탕으로 한 정교일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슬람교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북한의 주체사상과도 같은 사이비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마호메트가 죽은 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중동, 북아프리카를 넘어 이베리아 반도에까지 그 세력을 뻗쳤던 7-13세기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마호메트가 창시한 이슬람교적 통치 이념은 이후 등장한 오스만 제국까지는 그런 대로 이어졌으나, 서구 열강이 이슬람 세계를 식민 지배하고 오스만 제국이 붕괴함에 따라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때 모슬렘들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잃게 된 원인을 “세속화,” 곧 서구의 사법 체계(민주주의)와 문화를 받아들인 데서 찾고, 마호메트가 만들었던 본래의 이슬람 공동체로 회귀하자고 주장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코란의 법을 그대로 실행하는 사회를 만들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일종의 “종교 개혁 운동”을 이끌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이슬람 원리주의”다.
“이슬람”이라는 단어 자체가 “복종하다”는 뜻을 가진 아랍어 “아슬라마”에서 온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슬람 원리주의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맹목적인 복종”이다. 설령 이성이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코란에 기록되어 있다면 문자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게 이슬람 원리주의의 근간이다. 이러한 “복종”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일 뿐 아니라, 모슬렘 공동체 안에 있는 타인에게 강요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이드 쿠틉(Sayyid Qutb)과 같은 원리주의자들은 “알라께서 계시하신 바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자들은 바로 불신자들이다.”(수라 5:44)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형제가 코란의 법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이를 강제하지 않는 것이 불신의 죄라고 주장했다. <모슬렘 하디스>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너희 중 누가 악행을 보거든 그것을 손으로 바로잡아 주도록 하라.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혀로 하도록 하라.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마음으로 하도록 하라. 그것은 최소한의 믿음이다”(49).
그래서 원리주의적 색채를 띤 이슬람 사회에서는 음주, 음악, 춤, 점술, (“우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나 동물 등을 묘사하는) 미술, 도박, 게임, 시체 해부, 혼전 성관계, 동성애 등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이런 일을 자행하다 발각될 경우 사법적인 제제를 받을 수 있다. 주민의 98%가 모슬렘인 인도네시아의 아체주(州)에서 동성애, 도박, 혼전 성관계, 음주 등으로 인해 태형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는데, 2021년 7월에는 혼전 성관계를 가진 모슬렘 여성이 회초리 100대를 맞은 뒤 실신해서 실려 나갔다는 뉴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적도 있었다.
특별히 여성들에 관한 제제는 엄격하기 그지없다. <부카리 하디스>와 <모슬렘 하디스>는 모두 여인들이 보호자 없이 하루 밤낮으로 여행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게다가 코란은 “믿는 여인들에게 시선을 내리깔고 그들의 은밀한 부분들을 가리며 필수적으로 드러나는 것[얼굴과 손] 외에는 그들의 유혹하는 부위를 드러내지 말고 그들의 머리를 덮는 것을 가슴까지 싸라고... 말하라.”(수라 24:31)라고 모슬렘들에게 명령하고 있기에, “코란대로 믿는 여인들”은 허용되는 거리만큼 외출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히잡을 착용해야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2022년 9월에 이란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은 것도 아니고 고작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한 20대 여성이 종교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신문을 받은 후 시신으로 발견되는, 이른바 “히잡 의문사” 사건이 발생하여 국내외적인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이처럼 율법적 실행을 강제하는 가운데 “양심의 자유”를 말살한다는 것이다. 모슬렘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한 번 모슬렘이 된 이들은 설령 샤리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런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극심한 사회적 압박에 시달려야 할뿐더러, 심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카리 하디스>는 “누구든지 자기 종교를 바꾸면 그를 죽이라.”(6922)라고 말한다. 모슬렘들에게 이슬람교를 버리는 것은 “죽을죄”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수단에서는 “기독교인”이 된 여인이 교수형을 선고받는 일이 있었다. 필자도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해 본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이는 “내가 개종한다면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거야.”라고 대꾸하면서(결코 농담조가 아니었다) 복음을 거절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사회의 모습은 초림 당시의 유대 사회와 매우 흡사하다. 어떤 부부는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아들이 예수님을 만난 뒤 치유받았는데도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 모른다.”라고 말해야 했다. 예수님을 시인했다가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요 9:21,22). 다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타당하냐, 아니면 악을 행하는 것이 타당하냐?”라고 회중에게 묻기도 하셨는데, 이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무도 예수님의 말씀에 “선을 행해야 합니다.”라는 상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잠했던 것이다(막 3:4).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동요가 있었음에도 그들의 메시아였던 주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고, 결국 지옥으로 갔으리라.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와 같은 초율법주의적 사회는 시장에서 파는 “게”를 연상케 한다. 상인들은 바구니에 살아 있는 게를 담아 놓고 팔 때 덮개를 덮지 않는다. 어차피 게들은 거기에서 나갈 수가 없다. 맨 위의 게들이 탈출하려는 순간, 그 아래 깔려 있는 게들이 자기들도 탈출해 보겠다고 위에 있는 게들을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그 바구니 안에서는 모두가 피해자요, 모두가 가해자다. 그리고 그 누구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오직 그 게들을 내다 파는 상인들만 이익을 본다. 그 혼들을 지옥으로 보내면서 “위로를 받는” 사탄만이 이익을 보는 것이다(겔 32:31 참조).
혹자는 하나님께서도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모슬렘들이 그러한 것처럼 율법을 강제하는 제정일치 사회를 건설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느냐고 따져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 말은 옳다. 그러나 율법의 속박은 “약속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이었고(갈 3:19),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에로 그들을 부르는 것이었다(갈 5:1). 현재 그러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성경대로 믿는 우리들은 사회적 압력이 없어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발적으로 주님을 위해 산다.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고후 5:15). 그러나 코란대로 믿는 모슬렘들은 맹목적으로 영원한 종의 멍에를 매야 한다. 필자는 모슬렘들을 포함하여 누구라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라! 그러면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 8:32)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