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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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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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1월호>

당신은 “퀴어 신학”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쉽게 말해 동성애자들의 신학인데, 그런 죄인들이 “신학”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가증스럽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제110회 정기 총회에서 그들의 목포노회가 “퀴어 신학 이단성 검증 및 공식 입장 표명”과 관련된 헌의안을 제출하면서 동성애와 관련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그만큼 “퀴어 신학”은 배교한 기독교계에서도 논란이 큰 신학이다.

그런데 그 “퀴어 신학”에 대해 총회 차원의 공식 입장 표명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되었음에도 공식 입장 표명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기장은 과거 동성애 논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문구가 삽입된 1972년도 “신앙고백서”로 대응할 뿐, 가타부타 공식적인 언급을 회피해 왔다. 이 소극적 대응은 매년 논란을 키우는 원인이 되었고, 이 점은 지난 총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목포노회에서 제출한 헌의안에 대해 총회는 “성소수자목회연구특별위원회” 신설을 역제안했다. 이는 “전통 신앙과 인권 존중 사이의 갈등을 학문적으로 검토하자”는 취지하에 이미 과거 2021년도에 비슷한 사례에서 유사한 특위를 신설한 바 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3년 만에 해체되어 버린 전례가 있기에 공식적인 입장 표명의 유보를 위한 시간 끌기 전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샀다. 결국 이 헌의안은 교단 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기장 총회에서는 산하 기관인 한신대학교의 신학대학원장 인준과 관련해서도 잡음을 냈다. 제8대 원장으로 추대된 “김희헌” 목사는 “향린교회”의 담임목사로(2017-24년),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 왔다. 이와 관련해 “기장 소속 동성애·동성혼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창환 목사는 김희헌 목사가 과거 여러 글과 설교에서 퀴어 신학에 우호적인 글을 쓰고 발언했던 것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사람을 신학대학원 원장으로 앉혔으니 신학교가 신학교로서의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겠냐며, 다른 사람으로 재인준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본래 영어 단어 “퀴어” (queer)는 “괴상한,” “기이한”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동성애자들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1980년대에 동성애자들이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함으로써 현재는 동성애자들을 포함한 소위 성 소수자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단어로 사용된다. 이들은 여기에 “신학”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퀴어 신학”이라는 “괴기한 용어”를 만들어 교계와 신학교에 침투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기장 총회는 소위 “진보적 가치”라는 미명하에 동성애자들에 대한 성경적 판단을 계속 유보해 왔다. 사실 “퀴어 신학”이라는 것은 논의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1950년대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성경해석 연구에 영향을 받으면서 시작되어, 1980년대에 사회적 성(gender)과 성적 지향(sexuality)의 해체를 강조한 포스트모더니즘, 해방 신학, 여성 신학의 흐름 속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이 바로 “퀴어 신학”이다. 그러나 그 신학의 모티브가 된 동성애를 성경은 분명히 “죄”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작금의 이 시대는 그 “죄”를 인간들끼리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소돔인들은 사악하였고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이었더라』(창 13:13). 성경은 이 창세기 13:13에서 처음으로 『죄인』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여기서 “죄인”은 바로 동성애자들을 지칭한다. 소돔인들, 즉 동성애자들은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주 앞에 “극심한” 죄인이었다. 이 소돔인들로 인해 구약성경에 “소도마이트”(sodomite), 즉 “남색자”라는 단어가 쓰였을 정도이다(신 23:17, 왕상 14:24; 15:12; 22:46, 왕하 23:7), “소돔인들”은 “동성애”라는 극심한 죄를 저지르는 극악한 죄인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퀴어 신학”은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지 않는다. 성경의 “말씀”을 성경의 “텍스트”라고 표현하면서, 성경의 “텍스트”는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재해석될 수 있는 상대적 “텍스트”이기 때문에 동성애를 죄라고 말씀하신 성경 말씀은 기록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상황에서 발생한 오해일 뿐 “죄”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오히려 현대 인간의 다양한 성적 욕망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삼위일체를 성적 상징으로 재해석하면서, 거룩한 하나님을 과거의 답답한 전통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하나님”(Come-Out God)으로 주장하는 불경을 저지른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실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셨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주님의 부활을 “퀴어 해방”의 상징으로 재해석한다. 교회 또한 동성애를 포함한 다양한 성 정체성을 성례전적으로 인정하여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들도 포용하는 “참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보자면 참으로 “퀴어”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성경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논의거리도 되지 못할 “퀴어 신학”에 대해 지속적으로 판단을 유보하는 기존 교단의 모습은 이 마지막 시대가 왜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준다. 이 시대는 “시민의 권리”로 특징지어진다. 그래서 “정통 신앙과 소수 변태 성욕자들이 누려야 할 인권 사이의 갈등을 학문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는 인권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는 시대이기 때문에 신학의 토대가 되는 성경 말씀에서 “죄”라고 하시는 “동성애”조차 학문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하면 죄가 아닐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소위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다는 곳에서 벌어지는 그러한 가증스러운 작태 때문에 그런 집단 안에 계시지 못하고 문 밖에 서 계셔야만 한다(계 3:20).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퀴어 신학, 동성애자들의 인권, 탄압받는 소수자, 진보적 가치, 다양성 포용 등 허울 좋은 말로 꾸미는 자들, 곧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되 사랑하는 대상의 성별이 나와 동일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결코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동성애자들은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결합하리니, 그들이 한 몸이 될 것임이니라.』(창 2:24)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극악한 죄인들이다. 이 죄인들은 서로에 대한 음욕이 불일 듯 하여 여자들을 본래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자들인 것이다(롬 1:27). 성경은 그러한 죄를 범한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사형”으로 규정한다(레 18:22,29; 20:13, 롬 1:26-32). “사형”은 동성애를 저지르는 죄인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선고이며, 그 점에 있어서 어떤 동정이나 연민도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 불결한 것과 깨끗한 것의 차이를 구별하라고 말씀하셨다(레 10:10). 하나님께는 그 차이가 분명하기에 그 중간이라는 것은 없다. 더욱이 이 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으로(잠 30:3),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차이점을 가르치며, 불결과 정결의 차이를 분별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겔 44:23). 이 점을 가르치고 알려 주기는커녕, 그 차이를 무시하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오늘날의 작태는 하나님께서 옮기지 말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신 옛 지계표를 마음대로 옮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잠 22:28; 23:10).

하지만 결국 동성애자들의 주장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곧 등장할 “적그리스도”가 바로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또 그는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이나 여자들의 원하는 바를 개의치 않으며 또 아무 신도 개의치 아니할 것이니, 이는 그가 모든 것보다 자신을 높일 것임이라』(단 11:37). 적그리스도는 여자들의 원하는 바를 개의치 않는 자, 곧 여자들의 성적 욕구에 무관심한 “남색자”로 등장할 것이다. 성경에서 “극심한 죄인”이라고 규정하신 바로 그 “동성애자”로서 온 인류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적그리스도가 전면에 등장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되어 셋째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한 마지막 날들, 곧 교회 시대의 마지막 날들에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관련되어 조성되는 시대적 상황만큼은 미리 보고 올라갈 것이다.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2,4,5).

장차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여자들의 원하는 바, 곧 그들의 성적 욕구에 무관심한 동성애자이다. 적그리스도는 성경에서 “극심한 죄인”으로 규정된 “동성애자”로 온 인류 앞에 등장할 것이다. 배교한 교회들이 “퀴어 신학”을 공공연히 수용하는 것은, 그들이 “적그리스도 친화적”으로 준비되어 “남색자 적그리스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위와 같이 성경에 예언된 이 시대는 “퀴어 신학”이란 말이 교회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때이다. 성경을 가르친다는 신학자와 목사들이 하나님께서 성경에 “죄”라고 하신 “동성애”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모습은, 이제 곧 “남색자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을 때 그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회들을 “적그리스도 친화적”으로 준비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동성애가 보편화되는 현상을 목도하는 그리스도인은 낙담하지 말고 믿음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깝다는 점을 보여 주는 시대의 표적이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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