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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상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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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1월호>
미국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가정주부이자 아기 엄마인 선수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선수에게 등수나 기록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수의 자랑과 영광은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는 점에 있었다. 이 가정주부 선수는 “오늘은 나에게 승리의 날이었다.”라고 선언했는데, 이것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성취한 것을 승리로 여기고 한 선언이었다. 이 점을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순간부터 목표가 정해졌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히 12:1). 이 말씀에서 보듯이 믿음의 경주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경주에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오직,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히 12:2) 달려가야 하는 경주라는 점을 보여 준다. 특히 “경주”에는 “상”이 따르는 법인데, 사도 요한은 『너희 자신을 돌아보라. 이는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잃지 아니하고 온전한 상을 받으려는 것이라.』(요이 1:8)라고 말한다. 믿음의 경주를 달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보다 현실적인 말씀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꾸준히 인내하며 달려가서 온전한 상을 받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이 마귀의 공격으로, 또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방심하다가 하찮은 돌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위의 말씀을 기억하여, 주님께서 주실 온전한 상을 받기 위해 다시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 첫째,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구원받지 못했을 때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 럭크만 목사는 거듭나기 전의 자신을 “살인 병기”라고 했는데, 군대에서 훈련 교관을 했던 그는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의 27세 때 모습에 대해 기록한 것을 보면, 그때까지 그는 차를 가져 본 적도 없었고, 개인 수표책도, 은행 계좌도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옷가지 몇 개밖에 없었다. 그때 그는 어디서 권총 하나를 훔쳐서 “잔인한 이 세상이여, 안녕.”이라고 짧게 말한 뒤 입속에 권총을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수 없이 죽으려고 했던 것인데, 이때까지 “죄인 럭크만”은 파산했고 “술주정뱅이”였으며, 내일이 없는 “막가파 인생”이었다. 우리나라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스승인 이송오 목사 역시 40세까지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이 목사는 자신이 “세상에서 담대한 사람으로서 죄밖에 지을 것이 없었고, 개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위의 내용은 두 영적 스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태어난 죄인이라면 누구나 “죄인의 삶”을 살게 된다.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벧전 4:3). 모두 죽음과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지옥의 문 앞에 서 있었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 때문에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자신이 구원받지 않았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이후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성경대로 믿는 성경침례교회 성도들은 다른 교회에서 종교 생활을 하다가 구원받았던 시절을 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 대부분이 헛된 일에 시간을 보내다가 성별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헛된 종교 생활만 하던 사람이었다. 구원받고 안 받고는 둘째고, 나는 복음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몰랐고 복음을 전할 줄도 몰랐다. 교회 다닌 지 몇 년이 지나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데 복음을 전할 줄 몰랐기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지옥에 가지 않게 구원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아버지에게는 ‘아버지,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셔야 해요.’라고만 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이었다. 그때 내가 지금처럼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알게 된 후에 성경침례교회에 와서야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교회만 다녔던 그 헛된 시간이 참으로 아깝지만, 이제라도 올바른 경배를 드리고 잃어버린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이후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둘째,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사도 요한이 『너희 자신을 돌아보라. 이는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잃지 아니하고 온전한 상을 받으려는 것이라.』(요이 1:8)라고 한 것은, 이 서신을 쓸 때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잃어버리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의 편지를 받은 택함받은 부인과 그녀의 자녀들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권면이다.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자신이 받을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를 보여 주는 역사적인 사건이 구약성경에 나온다. 여호사밧왕은 유다의 선한 왕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친족 관계를 맺었다(대하 18:1). 그는 아합왕과 전쟁에 함께 나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간신히 살아났고(대하 18:31),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선견자 예후에게서 경고를 받았다(대하 19:2). 여호사밧왕은 그 후 이스라엘의 아하시야왕과 제휴를 맺어 타시스로 가는 배를 만들었다. 목적을 달성하고자 또다시 악인과 손을 잡은 것인데, 그의 배들은 『왕이 아하시야와 제휴한 까닭에 주께서 왕이 지으신 것을 부수셨나이다.』(대하 20:37)라는 엘리에셀의 예언대로 파선하여 타시스로 가지 못했다. 이 사건은 성도가 악인과 함께 하는 일이 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뤄 놓은 것들까지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상을 받으려면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자신이 받을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상을 받을 수 있다. 이 점을 여호사밧왕이 아하시야왕과 제휴를 맺어 타시스로 가는 배를 만들었지만 배가 파선해 버린 일에서 읽을 수 있다. 즉 성도가 악인과 함께 하는 일은 상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미 이뤄 놓은 것들까지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루어 놓은 것들을 잃지 않고 온전한 상을 받을 수 있을까? 간단하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죄를 짓더라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상을 잃어버리고 수치를 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항상 죄에 민감해야 하며, 자신의 처한 환경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카인은 “아벨을 시기함으로써 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에서는 “배고프고 몹시 지쳐 피곤할 때”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렸다. 다윗은 “나태할 때” 죄에 빠져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간” 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불을 쬐다가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함으로 제자의 지위를 상실했다. 아나니아와 삽피라는 교회의 사역을 위해 돈을 바칠 때 “신실한 척 위선을 부리다가” 죽고 말았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삶 전체를 하나의 경주로 보았다.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행 20:24).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7,8). 사도 요한이 말한 “온전한 상”(요이 1:8)은,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달려갈 길을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자기 앞에 놓인 경주를 했을 때”(히 12:1) 받을 수 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께만 시선을 고정시킨(히 12:2) 바울은, 그 십자가의 길에서 자신이 달려갔던 일들이 어떻게 해서든 헛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고, 이로써 생명의 말씀을 제시하는 일에 있어서 자기가 헛되이 달리지도 아니하였고 헛되이 수고하지도 아니하였다는 것을 확신했다(빌 2:16).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을 시작했다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라.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들이 있다면, 그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