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세례냐, 침례냐

"그들이 물 속에서 올라오자 주의 영이 빌립을 데려가시니 그 내시가 그를 다시 보지 못하더라. 그러나 그는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가더라." (행 8:39)

아도니람 저드슨은 미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였다. 그는 지금의 미얀마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버마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처음에 그는 세례를 받은 회중 교회 소속이었는데, 선교지로 가는 배 안에서 성경을 읽으며 세례에 관한 성경적인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침례교도들이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걱정이 된다고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그리하여 저드슨은 인도에서 침례교 소속 선교사인 윌리엄 캐리를 만나 아내와 함께 침례에 순종했고, 자기가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사람들에게도 침례를 주었다. 또 처음에 자기와 함께했던 선교사들 가운데 침례가 아닌 세례를 주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세례와 같은 의식을 성경에서 찾아본 적이 없소. 직접 성경을 읽어 보고 판단하시오.” 마가복음 1:10에서도 예수님께서 “물 속에서 올라오셨고,” 오늘 본문에서도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가 “물 속에서 올라오자”라고 말씀한다. 물을 뿌리는 의식은 로마카톨릭에서 시작한 것으로, 구약 시대에 정결례로서 물을 뿌리던 행위와 이교도식 물 뿌리는 정결 의식을 교회 안으로 들여와 섞어서 가르친 것이 그 유례였다. 하지만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물은 죄를 씻지 못한다. 오히려 죄의 대가는 피라고 말씀하신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게다가 침례는 구원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벧전 3:21). 죄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 흘리심을 근거로 제거되며, 그 피의 효력은 “믿을 때” 발휘된다. 세례는 결코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적이 없는 비성경적인 의식이다.

세례는 죄인을 지옥으로 보내는 종교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