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도다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정녕, 우리가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도다." (시 137:1)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유다는 바빌론의 여러 강변에 앉은 채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 떠나온 고향을 생각할 때, 포로로 사로잡혀 온 신세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어쩌면 바빌론의 그 강물이 유대인들에겐 눈물의 강물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바빌론의 강물은 고향 시온에 대한 그리움을 강의 길이만큼 늘리고 강의 깊이처럼 깊게 했을 것이다. 유다는 자신들의 죄로 인해 사로잡혀 왔기 때문에, 그 강변이 분명 삶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었다. 그곳은 주님께 반역한 죄에 대해 깊은 회개를 낳는 곳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하프들을 그곳 가운데 있는 버드나무들에 걸었나니... 우리가 타국 땅에서 어찌 주의 노래를 부르리요? 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아니하면 만일 내가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즐거움보다 더 좋아하지 아니하면 내 혀로 내 입천장에 붙게 하라』(시 137:2-6). 당신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 정상적인 믿음의 성도라면 분명 죄로 인해 눈물을 흘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쏟아 낸 비통한 울음은 분명 눈물의 강물이었을 것이다(마 26:75). 주님을 참으로 사랑했기에, 베드로는 사랑하는 분을 부인한 자신이 몹시도 미웠을 것이다. 그렇게 흘린 눈물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값진 회개의 증거였다. 회개의 눈물 한 방울이 수천 번의 번제보다도 낫다. 그 눈물은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증언하는 증인이다. 눈물의 회개에는 거짓이 없는 법이다.
회개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심판에 맞서려고 하는 무모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