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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장 위험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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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9월호>
지난 1961년, 예루살렘의 한 법정에서는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 현장으로 실어 나른 나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피에 굶주린 괴물이거나 광기에 찬 악마의 모습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법정에 선 그는 너무나 평범하고, 오히려 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중년 신사의 모습이었다. 재판 내내 그의 변론은 한결같았다. 자신은 단 한 명도 직접 죽이지 않았으며, 국가의 명령에 따라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므로 그 모든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한다는 사실보다는, 국가의 명령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이 나치 전범 재판을 참관했던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렸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국가의 명령과 관료 조직의 규칙을 양심적 판단보다 앞세웠고, 피해자의 처지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일에 동참하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한다고 생각했을 뿐, 악한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모든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사람의 모든 행위가 자신의 눈에는 깨끗하나, 주께서는 그 영들을 달아보시느니라』(잠 16:2). 『사람의 모든 행위가 자신의 눈에는 옳으나, 주께서는 마음들을 감찰하시느니라』(잠 21:2). 사람이 자기 눈에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예외가 없다.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밀어 넣은 히틀러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 밑에서 유대인 학살에 동참한 아이히만도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했다. 재판관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의 죄에 빠졌던 것도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한 결과였다(판 17:6; 21:25).
사람들은 자기가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들을 달아보시고, 마음들을 감찰하신다(잠 21:2).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동기를 보시는 것이다. 여름수련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참석하려고 기도하며 애썼으나 여러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사람과, 처음부터 갈 마음이 없어서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결과만 놓고 보면 같지만, 『마음들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둘을 다르게 판단하신다. 성경은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 자신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저버리지 말라고 명령하시는데(히 10:25), 충분히 참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참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질』시키는 것과 같다(렘 23:36).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사람과(고후 2:17), 주어진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착각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다. 이슬람 폭탄테러범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죽인 로마카톨릭도, 성경을 변개시키는 자들도,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지역 교회를 비난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들도,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선함을 선언』하고 있다(잠 20:6). 그러나 성경은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한다(롬 3:12).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땅 위에 한 명도 없느니라』(전 7:20). 이것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이다.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 하지 않고 자기가 보기에 옳은 것을 행하려고 하는 악한 본성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짐승들과 아말렉인들의 왕 아각을 살려 두고도 『내가 주의 계명을 이행하였나이다.』(삼상 15:13)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충분히 이행했다고 스스로 판단했고, 살려서 가지고 온 짐승은 제물로 바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울의 죄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이행하지 못한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다. 아이히만이 국가의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었다면, 사울은 반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여 바꾸었다. 방향은 다르지만, 둘 다 자신의 행위가 왜 잘못됐는지 알지 못했고, 오히려 옳은 일을 했다고 착각했다.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님을 붙들고 말리기 시작했다(마 16:22).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이 되는도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함이라.』(마 16:23)라고 책망하셨다. 베드로는 아이히만처럼 생각하기를 멈추지도, 사울처럼 명령을 노골적으로 거스르지도 않았다. 오히려 주님을 사랑하는 선한 마음과 의도로 행동했다.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주님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해서 그 일이 옳다는 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마음속에 주를 배반할 생각을 넣은 것처럼(요 13:2) 마귀가 넣어 준 생각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일 수도 있다(막 7:21).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어서 구별이 어려울 뿐이다. 사람들은 심지어 “옳다”는 기준마저 마음대로 바꾼다.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과 빛 대신 어두움을, 어두움 대신에 빛을 두며, 단것 대신에 쓴 것을, 쓴 것 대신에 단 것을 두는 자들에게 화로다!』(사 5:20) 그러므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 그 일이 옳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말렉을 완전히 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가장 좋은 것으로 양들과 소들을 취하였』다고 말한다(삼상 15:21). 그러나 사무엘은 『거역함은 마법하는 죄와 같고 완고함은 행악과 우상 숭배와 같』다고 경고한다(삼상 15:23).
그렇다면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행해야 하는데, 문제는 확신을 갖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확신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그러나 너는 네가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라. 네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를 알며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으니, 그 성경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딤후 3:14,15). 디모데의 확신은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이 아니라, 그가 “배운 것,” 곧 “성경”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아이히만도, 디모데도 똑같이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아이히만은 “자기 자신”에게, 디모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확신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이라면 그것은 아이히만의 확신과 다를 바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확신이 없는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이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서신을 기록한 목적이 『너희로 기억나게 하여 너희의 순수한 생각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벧후 3:1). 그리스도인의 생각도 세상의 가치관과 육신의 욕망에 영향을 받아 얼마든지 흐려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각이 날뛰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고후 10:5). 이를 위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순수한 생각을 일깨워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기(잠 30:5) 때문에, 사람의 생각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맞닿아 있을 때에만 순수해질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도 분별이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말씀이 나의 생각과 동기와 행동을 판단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기 때문이다(히 4:12).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더욱 말씀을 붙들고 다윗처럼 기도해야 한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생각들을 아소서』(시 139:23).
“나는 결코 악하지 않다”고 자신하지 말라. 선한 의도와 거리낌 없는 양심 뒤에도 자기 의와 완고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말씀으로 생각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라. 강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기꺼이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겸손이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완벽한 저울 위에 자신의 생각을 부지런히 올려놓음으로써,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