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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에 오염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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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10월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1643년 7월 1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서 소집되어 5년 넘게 이어진 웨스트민스터 총회(1643-1649) 기간 중, 신학자 121명과 의원 30명 등 총 151명의 참여로 1647년에 완성 및 채택된 신앙고백 문서이다. 전체 33장으로 총 1만 4천여 단어로 기록된 장문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1648년 영국 의회에 의해 공인되었다. 이 문서들은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을 통해 미국 장로교회(PCUSA)의 교리적 표준문서로 인정되었고, 한국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와 1907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독노회 설립 때 공식적으로 수용되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작성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합당하다고 믿는 것 이외에 여하한 교리에 대하여 주장하지 않는다.”라고 서약했다. 그러나 이 신앙고백은 성경의 진리와 현저히 다르고 구원의 교리를 망쳐 버린 “칼빈주의”를 진리인 것처럼 수용하고, 칼빈의 <기독교강요>(1559년)를 신앙고백의 교과서로 사용함으로써, 당대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신약교회사에 치명적인 오류들을 확산시켰다. “칼빈주의”에 오염되었으면서도 진리인 양 행세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파괴하는 영적 독소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원래의 부패로 말미암아 모든 선을 전적으로 싫어하고, 그것을 행할 수 없으며」(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 4절).
「사람은 죄의 상태로 타락하여 구원을 수반하는 어떤 영적 선을 향한 의지의 모든 능력을 전적으로 잃어버렸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을 돌이킬 수 없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킬 수 없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9장 3절).
I. 인간이 “전적 타락”을 넘어 “전적 무능력” 상태에 있다는 주장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은 성경적 진리이다. 그러나 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나타난 것처럼 인간의 의지가 전적으로 무능력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주장하기 위해 “자유의지”마저 부정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시고 그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노니, 만일 너희가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복종하면 복이요, 만일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복종하지 않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에서 벗어나서 너희가 알지 못하였던 다른 신들을 따라가면 저주니라』(신 11:26-28). 간단히 말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칼빈주의의 첫 번째 강령인 “전적 타락”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 강령은 “전적 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용어의 본래의 의미를 넘어 “전적 무능력”의 교리를 주장한다. 즉 인간은 구원받기 위해 “의지”를 발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하다는 것이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타락하여 영적 파멸에 들어간 인간에게서 여전히 자유 선택을 찾는 자들이야말로 분명히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이며」(제1권 1장 8절), 「인간은 지금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비참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해 있다.」(제2권 2장 제목), 「의지는 죄의 속박을 받아 노예 상태에 빠졌으므로 선을 향해서 움직일 수 없으며, 더더욱 선에 전력을 다할 수는 없다.」(제2권 3장 5절)와 같이 인간의 “타락”이 “의지”에까지 영향을 미쳐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와 같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죄를 가지고 있으며(시 51:5, 욥 14:4), 태어나면서부터 거짓을 말하고(시 58:3), 어릴 때부터 악하다(창 8:21)고 말씀한다. 또한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롬 3:23,24)라고 말씀함으로써, 죄에 의한 타락은 보편적이라는(『모든 사람』) 점과, 구원의 유일한 방법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속은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를 발휘한 선택에 기초한다(살전 1:4). 결코 창세전 하나님의 강제적인 선택에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자기의 작정으로 어떤 사람과 천사는 영생으로 예정하셨고, 다른 이들은 영사(永死)로 정하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3절).
「하나님께서는 예상되는 모든 형편에서 일어나겠거나 일어날 수 있는 바를 아시지만, 장래를 내다보시거나 그런 형편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에 그것을 작정하지는 않으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2절).
2. “무조건적인 선택”으로 “예정”되며, “미리 아심”과 무관하다는 주장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이 예정되었을 뿐 아니라 영원히 확정되어 변동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예정하고 미리 작정하신 천사들과 사람들은 개별적이고 불변하게 지정받았다. 그래서 그들의 수효는 고정되고 한정되었기 때문에 증감될 수 없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4절). 이것은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영원한 선택”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영원한 선택 : 하나님께서는 이 선택에 의해 어떤 사람은 구원에, 어떤 사람은 멸망에 처하도록 예정하셨다」(제3권 21장 제목).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하고도 변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구원으로 받아들이신 사람들과 멸망에 내어 주실 사람들을 오래 전에 확정하셨다」(제3권 21장 7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예정하고 미리 작정하신 사람들이 개별적이고 불변하게 지정되었으므로 그 수효가 고정되고 한정되었다고 가르치는데,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명령과 완전히 반대된다. 만약 구원이 “예정”되어 “변동 불가”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굳이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시면서 “믿으라”(행 16:31)고 명령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이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향해 구원의 초대를 보내며 “믿으라”고 명령하신다는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실제적인 선택권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만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주장대로 구원이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안타까운 책망과 인격적인 부르심은 모두 한갓 시늉에 불과하게 된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거역하였고 내가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나의 모든 조언을 무시하였고 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므로』(잠 1:24,25).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예정”과 “미리 아심”의 관계에 대해서도 비성경적인 주장을 한다. 즉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실 때, 그 사람의 미래를 미리 알아채는 “미리 아심”의 능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시며, 그 사람이 앞으로 행할 어떠한 반응이나 행위와도 아무런 상관없이 결정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믿음이나 선행이나 견인(堅忍)을 미리 보심이 없이, 혹은 피조물에게 있는 어떤 자질이나 조건도 자기를 움직이게 하는 원인으로 삼지 않으시고, 너그러운 은혜와 사랑만으로 하시되 이들이 자기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게 하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5절). 이러한 비성경적 주장 역시 장로교와 칼빈주의의 모태가 된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그대로 베껴 온 것에 불과하다. 「선택은 공로에 대한 예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에서 온다... 창세전의 선택은 공로의 예지와 관계가 없다」(제3권 22장 1,2절 제목).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 구원받을 사람을 선택하고 예정하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단정함으로써, 무엇이든 미리 아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사실상 아무 쓸모없는 무가치한 능력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고 “예정”하실 때 자신의 “미리 아심”이라는 신성한 능력을 분명히 활용하신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함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 1:2),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성경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 선택과 예정의 중요한 바탕이 됨을 명백히 증언한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 안으로 넣어질지를”(고전 12:13) “미리 알고” 계신다.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사람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사람들을 “미리 알고” 선택하시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일이다(엡 1:4).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