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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과 “점술”에 빠진 자칭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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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10월호>
국내에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 들어온 때는 1980년대 후반으로, 이때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문학,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의 형태로 유입되었다. 초기는 물론, 뉴에이지 사상에 대한 학술적, 이론적 논의가 이루어진 뒤로도 뉴에이지 운동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의 압축성장의 그늘 속에서 사람들이 점점 메말라가던 때였고, 그리하여 “집단과 사회”에서 “자아와 개인의 행복”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돌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서울올림픽(1988년)과 해외여행 자율화(1989년)를 계기로 서구에서 이미 대중화되어 있던 뉴에이지 신비주의 사상이 국내로 들어와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7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는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원론”과 “자아의 신성화”와 같은 뉴에이지 운동의 핵심 관념들은, 대량 해고와 파산이라는 현실적 위기 앞에서 “한가한 소리”가 되고 말았다. 뉴에이지 운동의 열기는 그렇게 해서 급격하게 식어 버렸고, 현재 “뉴에이지”라는 말은 다소 고리타분한 구시대적 표현이 되어 버렸다.그러나 문제는 거대한 사조로서의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그 사상적 조류들이 파편화되어 정치, 종교,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마술”과 “점술”이 그 대표적인 예로서, 이제는 주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속 사회에 녹아든 “마술”과 “점술”이 기독교계 안에도 흘러들어왔다는 점이다.
“마술”은 교계 안에 “번영신학,” “관상기도,” “복음 마술” 등과 같은 여러 형태로 스며들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복음 마술”은 교단 차원이 아닌 개교회 차원에서, 그것도 성인들보다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행해지고 있다. 문제는 어려서부터 마술을 접한 아이들이 마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술”(마법)을 엄히 금하시며 “극악한 죄”로서 경고하고 계신다(출 22:18, 레 20:27).
성경에서는 “마술”이 “마술(마법)을 사용하다,” “쓰다,” “행하다”와 같은 표현으로 등장하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헬라어 단어들은 문맥에 따라 “때를 살피는 행위,” “요술을 쓰다,” “점쟁이,” “점술,” “점괘”와 연관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술”을 명백한 죄라고 규정하셨기에, 유다 왕 히스키야의 아들인 므낫세왕이 자기 아들로 불을 통과하게 하고, 때를 살피며, 마법을 사용하고 부리는 영들과 마법사들을 대면하는 일을 했을 때 그가 주의 목전에 악을 많이 행하여 주를 격노케 했다고 말씀하셨다(왕하 21:6). 그뿐 아니라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사울왕에게 사무엘은 “거역하는 것은 마법하는 죄와 같다”고 책망했다(삼상 15:23). 마지막 백보좌 심판 때 선포되는 둘째 사망, 곧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는 죄인들 중에 특히 “마술하는 자들”(계 21:8)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마술”이 매우 중대한 죄라는 점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도 레위기 19:31에서는 부리는 영들을 지닌 자들을 주시하거나 마법사들을 추종하여 그들로 말미암아 더럽혀지지 않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마술(마법)하는 것은 “악한 영들과 음행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돌이켜서 부리는 영들을 지닌 자들과 마법사들을 따라 그들과 음행하는 혼은 내가 그 혼을 대적하여 내 얼굴을 두고, 그를 그의 백성 가운데서 끊으리라』(레 20:6). 마술로 악한 영들과 음행하는 것은 우상 숭배의 죄로 연결되는데, 에스겔 16장과 2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홀라와 아홀리바의 비유를 드시면서 이스라엘이 주님을 버리고 이집트, 앗시리아, 바빌론의 우상들과 이교도 문화를 받아들인 것은 “창녀짓”이며 “가증한 간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그들이 간음하였으며 그들의 손에는 피가 있고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과 더불어 간음하였으며 그들이 내게 낳아 준 아들들로 그것들을 위하여 불을 지나가게 하여 그들을 삼키게 하였음이니라』(겔 23:37). 『마치 자기 남편 대신에 타인들을 끌어들이는 간음하는 아내와 같도다!』(겔 16:32)
“마술”이 위와 같음에도 교회 안에 그것을 끌어들이는 사람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마술”이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흥미를 유발시켜 교회로 오게 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들이 전하는 것은 복음이며 그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 곧 방법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으므로 요즘 시대에는 “마술”이라는 그릇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복음 마술”에서 자신들이 행하는 “마술”은 마귀나 악한 영들과 연관된 마술이 아니라 눈속임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무해하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기에 크게 잘못되었다. 복음과 진리를 전한다는 미명 아래, 하나님께서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굳이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살전 5:22). 특히 아직 선악 판단이 분명치 않은 아이들에게 마술이 “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선과 악을 하나로 만들려는 뉴에이지 운동의 전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큰 죄악으로서 정죄하셨던 “마술”(마법)은 그것이 악령에 의한 것이든 눈속임에 의한 것이든 철저히 배척해야 할 대상이지 그것을 복음과 진리를 전하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는 “마술”은 교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점술”이 한국 교회를 잠식하고 있는 상황은 마술보다 더 심각하다. 특히 사주를 보고 타로를 치며 미래에 대한 조언을 듣는 교인들 대부분은 그저 재미로 한번쯤 해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성경은 “마술”과 더불어 “점술” 또한 악한 영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한다. 즉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신 18:11)나 부리는 영으로 일하는 자(왕하 23:24), 강신술사(신 18:11), 점성가와 별을 보는 자와 매달 징조를 예언하는 자(사 47:13), 점쟁이, 꿈꾸는 자, 마법사, 마술사(렘 27:9)가 각종 마술과 점괘, 점술, 꿈의 해석 등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미혹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점괘는 통계나 카드 패에 따라 우연히 나오는 결과가 아니라, 점치는 영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행 16:16). 더군다나 오늘날의 점술가들 사이에서는 점술로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 환상과 허망한 것과 마음의 속임수로 예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렘 14:14). 사람들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그런 거짓 예언이 주는 헛된 위로로 달래려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거짓 위로의 유혹에 걸려드는 것은 기독교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리서치가 2022년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중 23%가 최근 5년 사이 점을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점을 보는 이유로 인생사와 운세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많이 꼽혔는데(52%), 이는 사람들이 점술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그 안에서 위안을 얻으려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신년에 행해지는 “새해 말씀 뽑기” 행사다. 그들은 우연에 맡긴 채 말씀을 뽑고는, 그것이 올 한 해 동안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라면서 거짓된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 시작이 어느 때인지조차 불분명한 “새해 말씀 뽑기” 같은 교계의 연례행사는, 한국 전통의 점술식 사고방식과 형식적으로 닮아 있어 교인들을 악함 가운데로 내몰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새해”에 사주나 타로로 운세를 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닮아 있기에 한국 교회 교인들의 영적 피폐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때를 살피는 자들이나 점치는 자들에게 경청하는 것을 금지하셨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네가 차지할 이 민족들은 때를 살피는 자들이나 점치는 자들에게 경청하였지만, 너로 말하면 주 너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는 것을 네게 허락지 아니하셨느니라』(신 18:14).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가운데 있는 너희의 선지자들과 너희의 점쟁이들로 너희를 속이지 않게 하고 너희가 꾼 꿈들에도 경청하지 말라』(렘 29:8).
그리스도인은 “마술”과 “점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 안에 들어온 “마술”과 “점술”에 관계된 모든 뉴에이지적 현상들에 주의 깊게 대처해야 한다.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표면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마귀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 강력한 미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모세가 출애굽기 7장에서 파라오를 처음 대면하여 그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때, 파라오도 현자들과 마술사들을 불러 그들의 마법으로 모세와 같이 행하게 했다(출 7:11). 처음에는 흉내를 내었지만 더 이상 흉내 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손길』(출 8:19)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처음에 보았던 마법으로 파라오의 마음은 완악해져 있었고, 그리하여 모세와 아론을 통해 전파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성경은 그러한 이집트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심판하여 그들이 쇠약해지고 그들의 계략을 멸하실 것이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우상들과 마술사들과 부리는 영들을 지닌 자들과 마법사들을 찾아 그들에게 헛된 구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씀한다(사 19:3). 이집트에는 이러한 영이 있어서, “마술”과 “점술”로 미혹된 파라오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거역하여 고집을 피우고 말았다. 형벌과 고난에 처해도 회개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마술”과 “점술”에 미혹된 자의 전형적인 태도이다(계 9:21).
다니엘 2장에서 느부캇넷살이 꿈을 꾸었을 때, 그 꿈과 뜻을 해석코자 마술사들과 점성가들과 점쟁이들과 칼데아인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꿈의 내용조차 알지 못했다(단 2:2,10,27). 다니엘 4장에서 느부캇넷살이 다른 꿈을 꾸었을 때도, 마술사들과 점성가들과 칼데아인들과 점쟁이들은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다(단 4:7).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방 왕국의 흥망성쇠를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왕에게 일어날 일까지 미리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과, 개인을 향해 갖고 계신 뜻을 “마술”이나 “점술”로는 절대 알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적인 역사를 가로막을 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마술”과 “점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야 한다(사 8:19,20).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사람은 말씀에 따라 말하고, 말씀에서 위로와 평안과 확신을 얻는다. “마술”과 “점술” 같은 것들은 위로가 될 수 없다. 악령의 역사와 그 미혹에서 벗어나라. 무슨 흥미로운 것이나 대단한 것이 있을까 하여 발을 들이는 순간 악령에 사로잡혀 그의 종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 주신 <한글킹제임스성경>에 묻고 구하여 “뉴에이지”의 속임수에서 벗어나라.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