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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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확실한 예언, “이스라엘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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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8월호>

배교한 기독교계는 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시온주의는 유대인의 영토적·국가적 실체를 지향하는 민족주의 운동에 불과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성경에 대한 단편적인 왜곡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그와 같이 해석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는 성경적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성경의 핵심은 땅 자체가 아니라 그 땅에서 공평과 정의를 이루는 “윤리적 성취”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이야말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예언”의 문자적인 성취를 간과한 편향된 해석이다.

세대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무조건적인 언약”에 따른 자연스런 과정이다.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힛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기르가스인들과 여부스인들의 땅이니라.” 하시니라』(창 15:18-21). 이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윤리적 기독교 담론”을 『배설물』(빌 3:8)로 만든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왜 성경적인지, 성경이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는지 예언의 성취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성경의 “문자적 성취”를 피하려다가 “윤리적 성취”라 불리는 “오물구덩이”에 빠져 버린, 비참한 “소경”이 되고 말았다(마 15:14).

하나님께서는 카나안 땅의 소유권과 관련한 “아브라함의 언약”을 “영원한 언약”으로서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확증해 주셨다. 『내가 나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 사이에 대대로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씨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에게 네가 타국인으로 있는 땅, 즉 카나안의 모든 땅을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8). 이 “영원한 언약”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주어졌고(『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창 12:7),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설 때 반복되었다. 『롯이 아브람에게서 갈라진 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부터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이는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며, 네 씨에게 영원히 주고 내가 네 씨를 땅의 티끌 같게 할 것임이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다면 네 씨도 셀 수 있으리라. 일어나서 그 땅을 가로와 세로로 걸으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겠음이라.” 하시더라』(창 13:14-17). “땅의 소유권”과 관련된 “영원한 언약”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에게도 확증되었다(창 26:2,3; 28:13-15).

아브라함에게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창 12:1,2)이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땅”과 관련된 “영원한 언약”을 맺으실 때 함께 언급하신 것은 그들의 “씨”였다(창 12:7; 15:18; 17:7,8; 26:3; 28:13,14). 말하자면 “땅”과 그 안에 거주할 “씨”와 관련된 언약이 바로 “아브라함의 언약”인 것이다. “거주할 사람”이 없는 “약속의 땅”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카나안 땅의 소유자를 “아브라함과 그의 씨”로 정해 놓으셨으며, 아브라함을 칼데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목적도 바로 그 점에 있었다.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려고 칼데아 우르에서 너를 불러온 주라.” 하시니』(창 15:7). 따라서 아브라함의 육적 씨인 “이스라엘 민족”이 카나안 땅의 소유주라는 점은 “성경적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실제적인 땅의 영역”을 다루는 언약이며, 그 땅의 불법 거주자들을 모두 내쫓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로 채우시려는 계획과 함께 체결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 이후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되어 카나안 땅의 “영원한 소유주”로서 확정된 것이다.

시편 105편에서 위와 관련하여 동일한 계시가 주어진다. 『그가 자기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곧 천 대에 명령하신 그 말씀이라. 이는 그가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그의 맹세요 또 같은 것을 야곱에게 율법으로,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확증하셨으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카나안 땅, 곧 너희 유업의 몫을 주리라.” 하셨도다』(시 105:8-11). 피터 럭크만 박사는 이 말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9-11절에서 논의되는 『언약』은 ‘부동산 한 구획’에 대한 ‘토지 거래’와 같은 것이다(출 3:5, 창 15:18).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칼데아 우르 출신 양치기와 그 계약을 맺으셨다. 그것은 ‘한’ 아들, 곧 이삭에게 양도되었고, 이스마엘은 그 언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삭은 그것을 그의 아들들 중 단 ‘한 명’에게만 물려주었고, 에서에게서 나온 요르단인들은 그 언약에 대한 권리를 내세울 수가 없다. 그러나 야곱은 그 언약을 물려줄 때 그것을 그의 ‘열두’ 아들 모두와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하는 그들의 가족들에게 승인해 준다(민 23:9,10; 21:23; 24:2-9). 그 언약은 어떤 아랍인이나 모슬렘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영적 유대인”(롬 2:29)이나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그리스도의 예표로서의 이삭(갈 3:16), 그리스도인(갈 4:28)과도 관련이 없다.」

“카나안 땅”은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 14:19)께서 그분 자신의 권한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영원히” 주신 땅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열두 지파와 맺으신 언약은 인간이 시비를 거는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으로 이름이 변경된 “카나안” 땅을 모슬렘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가 그 땅을 “끝없이” 소유할 것을 보장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충만함이 차기까지 민족적으로 완고한 상태에 갇혀 있다(롬 11:25). 이것은 초림 때 그들의 메시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대가로 주어진 것으로(요 12:37-40), 이방인의 충만함, 곧 이방인의 죄가 가득 찰 때까지만 그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완고함의 시기가 지나면 돌올리브 나무인 이방인은 잘려 나가고, 참올리브 나무인 유대인이 본래의 줄기에 다시 접붙여지게 된다(롬 11:24).

이스라엘은 교회가 휴거된 후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라 불리는 대환란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불에 타면서도 소멸되지 않는 가시덤불처럼(출 3:1-3), 대환란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보존되며(말 3:6), 그들의 하나님께 돌아올 준비를 갖출 것이다. 대환란의 끝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로 지상에 나타나실 때,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그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되신 메시아시라는 점을 깨닫고서 통곡할 것이다(슼 12:9-14). 이처럼 본토로 회복된 이스라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 왕으로 영접하고 마음에 할례를 받아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하는 민족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신 30:5,6, 겔 36:24-27). 그리고 그 이스라엘 민족은 두 번 다시 약속의 땅에서 뽑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자를 다시 데려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들을 세워 그곳에 거주할 것이요, 또 그들이 포도원들을 만들어 그 포도주를 마시겠고 그들은 또한 정원들을 만들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다 심으리니 그들이 다시는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그들의 땅에서 뽑히지 아니하리라. 주 너의 하나님이 말하노라』(암 9:14,15).

대환란 기간 동안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본토로 다시 모이면, 다윗에게 약속되었던 그 영원한 왕국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세워질 것이다(삼하 7:10-16, 시 89:3,4,35-37, 대상 17장). 이스라엘이 영원히 차지할 “땅”은 본 논단의 전반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약속된 광대하기 그지없는 지역이다(창 15:18-21). 아직 “유대인 메시아”께서 재림하시지 않은 탓에 그 땅의 소유권이 불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메시아께서 다시 오시면 세상은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계 11:15)이 될 것이고, 그 천년왕국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위대한 백성이자 민족들의 머리로서 우뚝 설 것이다(신 28:13, 사 49:23; 60:11,12). 이처럼 이스라엘이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에서 민족적으로 재건되는 일은 구약성경에서만 약 500구절 이상 다루고 있는 핵심 주제이다. 이 주제는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서 각각 100구절 정도 다루고 있고, 에스겔서는 12개 장에서, 다니엘서는 2,7,9,12장에서 그 위대한 회복을 다루고 있다. 특히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의 골짜기 환상”은 마르고 관절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소망이 사라져 버린 뼈들(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집이라.』(겔 37:11)라는 말씀에 주의하라! 하나님께서는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로 너희의 무덤들로부터 나오게 하여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리라.』(겔 37:12)라고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부활”과 “카나안 땅으로의 회복”은 성경에 분명히 예언된 “기정사실”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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