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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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예수를 만나 “변화된” 청년 조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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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11월호>

지난 9월 <청년 조용기 : 신을 저주하던 청년, 시대를 긋는 종이 되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다. 취재와 연출은 KBS PD 출신인 권혁만 감독이 맡았는데, 그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성공한” 조용기보다 심한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며 신을 부정하고 삶을 비관하기까지 했던 청소년기와, 천막 교회에서 어렵게 사역을 일궜던 전도사 시절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사족일지 모르겠으나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영화를 보고 온 필자로서는 이 “거짓말”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청년 조용기>에서 청년 시절의 절망과 고난에 관한 부분은 전체의 30% 정도에 그쳤고, 상영 시간 대부분은 “조용기 미화,” 곧 그가 이 땅에 얼마나 큰 교회를 세웠고, 세계의 교계와 정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조명하는 데 할애되었다. 심지어 영화의 말미에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조용기 부자 130억 배임 사건”이 “가족을 차마 버리지 못한 아버지,” 혹은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대인배”라는 프레임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개봉 한 달 시점의 누적 관객 수(약 2.6만)가 지난날 기독교 다큐멘터리들의 그것(약 4-9만)에 비해 저조한 데에는 (홍보와 전혀 다른) 영화의 이런 내용에 실망감을 느낀 이들이 주위에 전한 혹평도 한몫했으리라.

제작진은 세간에 공개된 바 없는 조용기의 투병 일기를 바탕으로 조용기의 “구원 간증”을 재구성한 것을 무슨 대단한 성과라도 되는 양 영화 안팎에서 자랑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매우 의아스러웠다. 후일 CTS기독교TV에 출연하여 “나는 예수야.”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순종하면 내가 네 폐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간증”한 것과는 달리, 당시의 조용기는 이렇게 썼다. “천지에 충만한 신의 손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힘으로 나를 깨끗이 해 주었다.” 영화에 소개된 그의 일기 어디에도 “예수”라는 이름은 없었고, “신의 손,” “신의 사랑,” “신의 존재”라는 표현만 등장할 뿐이었다. 구원은 “주 예수”를 시인함으로써 받는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롬 10:9)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그날 일어났던 일은 “구원”과 무관했음이 틀림없다.

당초 조용기가 만난 존재는 실제 예수님도 아니었다. 그는 이때 “히피 같은 머리”를 늘어뜨린 이를 만났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러한 인상착의는 예수님의 그것과는 상이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남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이 수치가 된다는(고전 11:14) 상식조차 모르실 만큼 어리숙한 분이 아니시다. 게다가 만일 조용기가 “진짜” 예수님을 봤다면, 그분의 머리 모양에서 발견했어야 할 가장 큰 특징은 양모처럼 하얗다는 것이었어야 한다(계 1:14). 그러나 그가 본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 조용기는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남긴 그림을 떠올리며 “긴 머리”를 한 예수를 꾸며냈거나,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이 아닌 “다른 예수”(고후 11:4)를 만난 것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건강을 회복한 조용기는 만 20세가 되던 1956년 상경하여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했고, 신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대조동에 천막 교회를 세웠다. 영화에는 당시 그가 자신의 “사역”에 대해 가족에게 썼던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아버님, 저는 최근에 병자를 고치는 데 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생 용우에게... 오늘은 전혀 걷지 못했던 앉은뱅이 소년이 일어났다. 이것은 정말 미증유의 기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가 하신 역사이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생과 영멸, 구원과 심판이 확연히 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조용기는 언젠가 설교를 통해 왜 자신이 이 같은 치유 사역, 곧 “성령 운동”에 매진하게 되었는지를 밝힌 바 있다(순복음위드교회 유튜브 채널, <청년 조용기 전도사의 불광동 천막 교회 이야기 - 이것이 믿음이다>). 내용인즉, 6ㆍ25 전쟁으로 인한 절대적 빈곤이 만연해 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당에 가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라는 “전통적인 복음”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여 박대받기 일쑤였기에, 다른 방법을 강구해 냈다는 것이었다.

조용기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다시 읽으면서 “예수님은...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병든 자는 고치시고, 귀신은 쫓아내시고, 배고픈 자는 먹이시고... 죽은 자는 살려 주시면서 천당 가라 그러셨다.”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경험적으로도 “전통적 복음”이 아니라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교인들을 모은다는 사실을 깨달은 조용기는 더더욱 이 메시지에 집착하게 되었고, 이윽고 예수님의 대속 사역이 혼의 구원뿐 아니라 현세에서의 환경과 질병의 문제에까지 적용된다는 “삼중 축복” 교리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필자는 천막 교회에서 일어났던 “기적”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어차피 결론이 날 리가 없는) 논쟁에 지면을 낭비하고픈 마음이 조금도 없다. 다만 “기적”을 통해 “영생과 영멸, 구원과 심판”을 증명하는 일이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성경적 “팩트”는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보는 것과 무관한 믿음”(요 20:29, 고후 5:7, 벧전 1:8)으로 구원받았고, 그 믿음으로 살며, 그 믿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 수 있도록 가시적인 형태로 주어지는 일이나 물건 따위를 성경은 “표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며(고전 14:22), 그것도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전 1:22). 주님의 공생애 당시 표적이 흔했던 것은 청중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며, 그들에게는 그분께서 정말로 메시아이신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 줄 표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신 18:21,22과 마 12:39,40, 요 2:19-22을 순서대로 읽어 보라). 그러나 교회 시대가 시작되고 난 뒤 사역의 중심이 점차 “유대인”(예루살렘)으로부터 “이방인”(안티옥)에게로 이동함에 따라 “표적”은 사라져 갔다(행 19:11,12과 딤후 4:20을 비교하여 읽어 보라).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낸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잘됨같이 네가 번성하고 강건하기를 바라노라.』(요삼 1:2)라는 편지의 내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용기는 이 말씀을 “삼중 축복”의 핵심 구절로 내세우며 믿는 사람에게는 응당 눈에 보이는 “번성”과 “강건”이라는 표적이 뒤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했지만, 요한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건강을 잃을 수 있기에, 요한은 가이오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조용기 전도사를 만나 병도 낫고 팔자도 고쳤다”는 입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듦에 따라 조용기는 20대 중반이던 1961년에 서울 서대문구에서 1,500석 규모의 교회를 갖게 되었다. 유명세를 얻은 조용기는 3년 뒤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엄격히 통제되던 시절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초청을 받아 미국 땅을 밟았고, 그 일을 필두로 하여 일생에 걸쳐 일본을 비롯해 유럽, 남미,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있는 72개국을 다녔다. 영화는 그의 이러한 행적을 “선교”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스크린에 비친 것은 “선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선교란 모름지기 하나님과 아직 원수 관계에 있는 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현장에는 자연스럽게 적의, 방해, 논쟁, 조롱 등의 반응이 나타나기 마련인데(행 9:29; 13:8; 15:2; 17:32), 조용기의 집회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중들은 대통령 의전차량, 헬기 등에서 나와 강단으로 걸어가는 조용기를 “록 스타”처럼 맞이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환호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그런 “열매”를 보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의 집회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벌인 “쇼”에 불과하거나, 하나님의 원수들의 귀에도 거슬리지 않을 법한 “사탕발림”으로 구성되었다는 (혹은 “둘 다”였다는) 것 외엔 없었다. 혹자는 그가 비록 “삼중 축복”이라는 허상을 전파했을지언정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라”는 복음적 메시지를 전한 사실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은 강신술사를 찾아간 사울의 입에서 나온 “주께서 살아 계시는 한”(삼상 28:10)이라는 말만큼이나 무의미하다 하겠다.
조용기의 삶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가운데 특히 청년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진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제아무리 열정적인 삶을 산다 해도 헛되다는 것일 터다. 조용기의 결정적 패착은 스스로와 타인의 병이 치유되는 “경험”을 통해 예수님을 규정하려 한 일이었다. “놀라운 경험”은 하나님이 아닌 존재도 얼마든지 줄 수 있다(출 7:11,22; 8:7). 그런 데 속아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경험이 아니라 “바르게 나누어 공부한 하나님의 말씀”(딤후 2:15)에 자신의 신앙의 근거를 두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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