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안식교 분류

“안식”을 영원히 누리지 못하는 안식교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7월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이하 안식교)는 1800년대 초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던 윌리엄 밀러의 교리를 계승 및 발전시켜 1863년에 설립한 교파다. 이 교파는 자칭 “선지자”요 공동 설립자이기도 했던 엘렌 G. 화이트라는 여인에 의해 널리 확산되어 현재 전 세계 216개국에 퍼져 있고, 1,850만 명의 교인과 148,000개의 교회 수를 자랑하는 수준으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안식교는 그 공식 명칭에 “안식일”과 “재림”을 넣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안식일과 재림에 관해 특이한 교리를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적 잣대로 재어 보면, 그들의 교리는 허점투성이일 뿐 아니라, 어떤 죄인도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오류가 드러난다.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을 정확히 지키는가?

안식교인들은 “선지자 화이트”의 가르침에 따라 한 주의 첫날인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 즉 한 주의 일곱째 날인 토요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러한 실행의 근거는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안식일을 지킬지니, 그들 대대에 걸쳐 안식일을 지켜서 영속하는 언약을 삼을 것이며 그것이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히 표적이 되리라. 이는 엿새 동안에 주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시어 숨을 돌리셨음이라.’ 하라.” 하시니라.』(출 31:16,17)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과연 토요일은 안식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지 않을 수 없다.

안식일은 팔레스타인의 시간을 기준으로, 그것도 0시가 아닌 일몰 시점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는 성경의 날짜 계산법에 따라 지켜져야 하는 날이었다. 만일 일몰 시간이 저녁 6시라면, 미국의 경우에 “안식일”은 미국 동부 시간을 기준으로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토요일 오전 11시까지가 된다. 그들이 “미국의 토요일”에 교회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을 때쯤이면 이미 그날은 이스라엘 땅의 유대인에게는 “일요일”이 된다. 따라서 엘렌 G. 화이트처럼 미국에 사는 안식교인들은 사실 “유대인들의 토요일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은 한 주의 일곱째 날에만 오는 날도 아니었다. 성경에는 절기마다 요일에 관계없이 지켜지는 “특별한 안식일”이 나온다. 가령 “무교절 기간의 첫째 날”이 그랬다(레 23:7, 요 19:31). 그러나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을 그렇게나 중요시하면서도 이런 안식일은 전혀 지키지 않는다.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어떤 종류의 일이라도 삼가야 했다. 심지어는 처소에서 취사를 비롯한 “불을 피우는” 행위조차 금지될 정도였다(출 16:23; 35:2,3), 이동할 수 있는 거리도 도보로 가깝게 여길 만한 반경 안으로 제한되었다(행 1:12). 이런 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극형을 내려야 했다(민 15:35,36). 그러나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에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이때 엔진 룸에서 불꽃이 튄다!) 먼 거리를 운전해서 교회로 온 사람들을 돌로 쳐서 죽이지 않는다.

위와 같은 지적을 받으면 안식교인들은 “주님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느냐.”(막 2:27)라고 항변하곤 하지만, 궁색하기 그지없다. 주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을 위반”했던 것은, 누군가가 치유받는 상황이나, 생명 유지를 위해 꼭 필요했던 상황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닌가?
이런 점을 보면 안식교인들의 안식일 준수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열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남들이 지키지 않는 날을 임의로 정해서 지킴으로 자기만족감을 느끼려는 욕구로부터 나온 종교적 실행에 불과한 것이다.

이 시대에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안식교인들은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경적 구원관을 제시하는가 싶다가도,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임으로써 그들이 행위 구원론자들임을 무심결에 자백하고 만다. 그들은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을 자연스럽게 “십계명”의 첫 네 계명,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연결시키는데,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 준수”도 이러한 맥락에서 강조된다.

안식교인들은 처음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포함해서 십계명을 모두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엘렌 G. 화이트는 일곱째 날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첫날을 지키는 것은 짐승의 표라고까지 이야기했다. 후일 안식교의 교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지만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는 것으로 변화했고, 그러다가 “나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요 15:10-14)을 들먹이며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안식일을 지킨다고 교묘하게 말을 바꿨다. 이단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들도 여기서는 이 말을 저기서는 저 말을 한다.

일례로, 안식교인들은 구약 시대처럼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일과 같은 “의식법”을 지키지 않는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의식법이 모두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골 2:14). 그래서 엘렌 G. 화이트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의식법이 아니라 도덕법이라고 우긴다. 그래야 그들의 안식일 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계명 중 도덕법을 열거하는 로마서 13:9은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너는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라고는 말하지만, 안식일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성경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의식법”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성경은 이미 폐해진 안식일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러므로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

이처럼 안식일 준수는 교회 시대 성도들의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표적이었기 때문이다(겔 20:12, 20). “표적”이란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이 교회 시대는 “보지 않고 믿는” 시대이지 않은가?(요 20:29, 고후 5:7) 그런데 교회 시대만 안식일과 구원이 서로 관련 없는 것이 아니다. 아담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까지 약 2,500년의 기간 동안에도 그랬다. 그 기간 동안에 안식일은 그 존재조차 계시된 적이 없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전체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인” 기간에만 한정되며, 그렇지 않았던 기간이 훨씬 길었다.

안식일 준수는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권장 사항 정도조차 되지 못한다. 개신교인들 가운데도 주일을 “안식일”로 여기면서 지키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데, 그런 인식은 비성경적이다. 그들은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서는 주일로 바뀌었고, 구약의 할례가 신약의 침례로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그런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 흉내를 내려는 “자칭 유대인들”의 행위를 주님께서는 “모독”이라고 말씀하셨다(계 2:9).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인데(갈 3:13), 왜 그 저주를 형태만 바꿔서 다시 취하려고 하는 것인가?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토요일에 교회에 모여 경배를 드렸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신약 성도들은 토요일이 아니라 “안식 후 첫날인 주의 첫날”에 모여 설교를 들으며 예배를 드렸고(행 20:7), 헌금을 드렸다(고전 16:2). 왜냐하면 이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마 28:1, 막 16:1,2, 눅 23:56; 24:1, 요 20:1).

이런 말을 들으면 안식교인들은 “그렇지만 사도 바울이 안식일에 회당에 가곤 하지 않았는가?”라고 따지고 싶을지도 모른다(행 13:14; 17:1,2; 18:4). 그러나 회당은 교회가 아니다! 그곳은 신약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믿는 유대인들이 모이던 장소였다. 바울이 그곳을 찾았던 것은 스스로 유대인같이 됨으로써 더 많은 유대인들을 주님께로 이겨오기 위함이었지(고전 9:20), 교회 시대의 성도로서 예배를 드리고자 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방법대로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시도를 싫어하신다. 안식일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만일 네가 안식일로부터, 내 거룩한 날에 네 즐거움 행하는 데서 네 발을 돌이키고... 네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지도 아니하고 네 자신의 즐거움을 찾지도 아니하며 네 자신의 말로 말하지 아니하면 그때에 네가 주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요』(사 58:13,14). 안식일을 지켜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혹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여긴다면, 원하는 대로 되기는커녕, 역효과만 날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카인에게 주어졌던 이 말씀이 제격이다.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창 4:7)

안식교인들은 성경적 재림을 믿는가?

안식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고 믿는데, 이는 엘렌 G. 화이트가 “1844년”에 하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가르친 데서 기인한다. 1844년은 원래 윌리엄 밀러가 지목한 재림의 시점이었다. 그때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고, 화이트를 포함한 밀러의 추종자들은 모두 실의에 빠졌었다. 그러나 이내 화이트는 비록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특별한 일이 일어났음에는 틀림없다는 망상을 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히브리서 9:23-26을 바탕으로 “1844년경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성소의 가장 거룩한 부분에 들어가셨다.”라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그런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재림이 곧 일어날 것임을 알리는 표식이라는 게 안식교인들의 설명이다.

물론 화이트의 주장은 궤변이다. 히브리서 9장은 하늘에 있는 성막의 성소가 아니라(계 15:5) “하늘 자체”(히 9:24)에 들어가신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셋째 하늘로 들어가셔서 행하신 구속 사역을, 주의 명절 가운데 하나였던 속죄일의 모형을 통해 계시하는 것이다(히 9:24,25). 이어지는 10장에서 성경은 주님께서 (바울이 히브리서를 기록하던 때를 기준으로) 이미 “과거”에 속죄제를 드리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고 말씀한다(히 10:12). 그뿐 아니라 바울은 우리도 “지성소”(히 10:19)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바울도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을 예수님께서 1,800년 후에나 들어가셨다는 게 말이 되는가?

또한 안식교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는 “재림”이 마태복음 24장과 누가복음 21장, 마가복음 13장 등에서 설명하는 전쟁이나 지진을 비롯한 재난들 끝에 있을 일이라고 말하며,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해서 휴거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더해 안식교는 “1844년” 이후 기간을 “조사 심판” 기간이라고 가르침으로써, 현 교회 시대와 앞으로 있을 대환란 시대를 뒤섞는다. 그들이 말하는 “조사 심판”이란, 주님께서 누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졌는지(계 12:17)를 심사함으로써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을 정하시는 일이다. (그들은 이 대목에서도 자신들이 행위 구원론자들임을 실토한다.) 그러나 현 교회 시대에 “계명들”을 지켜서 구원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갈 2:16).

안식교인들이 위와 같은 오류에 빠진 것은, 주님께서 앞으로 두 번에 걸쳐 오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두 번의 오심을 같게 봤기 때문이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이 악한 현 세상으로부터 데려가기 위해 공중으로 먼저 오실 것이고(공중 재림), 그 뒤 죄의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실 것이다(지상 재림).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구름 속으로 사라지셨는데, 성경은 그때 제자들이 본 그대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행 1:9-11). 이러한 공중 재림이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공중으로 내려오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갈 것이다(살전 4:17). 반면 주님께서 지상에 내려오실 때는 승천하실 때와 달리 흰 말을 타고 오시는데,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있는 군대들로서 셋째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흰 말들을 타고 내려올 것이다(계 19:14).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환란 기간 동안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질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대환란이 닥치기 전에 휴거되기에 대환란 때는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대환란이라고 불리는 다가올 진노로부터 구해 내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지(살전 1:10), 적그리스도의 미혹과 고통을 끝까지 견디며 대환란을 통과해야 구원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3,4장에서 “네 종류의 안식”을 소개한다. 즉 카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누렸던 안식(히 3:11)과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끝내시고 스스로 쉬신 안식(히 4:4), 앞으로 있을 천 년 동안의 안식(히 4:5-9),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안식(히 4:10, 마 11:28)이 바로 그것이다. 명색이 “안식교인”이라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이와 같은 “안식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그중 현 시대에 누릴 수 있는 안식이 무엇인지도 마땅히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안식교인들은 히브리서 4:4의 “창조 사역 끝의 안식”에만 집착하여 토요일이면 일에서 안식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는 참된 안식을 얻을 수가 없다. “안식”을 누리고 싶다면 “안식일”을 버리라! 이 시대에 어울리는 안식은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안식”(히 4:10)이다. 어떤 행위도 덧붙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써 지옥의 저주로부터 구원받으라.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릴 뿐만 아니라, 장차 천년왕국에서의 안식에도 참여할 수가 있다. 하나를 버리고 둘을 얻는 셈이니 유익이 아주 큰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안식교인들의 안식일 준수는 겸손과 금욕에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골 2:23) 결코 그리스도인의 쉼에는 이르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BB

전체 64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