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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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이단! 그리스도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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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7월호>

“그리스도의 교회”는 1800-1830년 사이 미국 켄터키주에서 컴벌랜드 밸리 부흥회 기간에 “바톤 스톤”(1772-1844)과 “알렉산더 캠벨”(1788-1866)이 장로교회에서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캠벨을 추종했다고 하여 “캠벨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정통”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결코 정통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성경적 교리들을 실행하는 명백한 이단이다. 그들은 매 주일 아침 로마카톨릭처럼 “성체”를 먹고 있으며,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조차 비성경적이라며 초대 교회의 찬송 방식인 무반주 찬송을 고수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한국의 제도권 교회들과 교리가 다름에도 그동안 제도권에 들어가서 행동을 같이함으로써 그들의 이단 교리를 비난하지 못하게 꼼수를 편 것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글을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얼마나 “명백한 이단”인지 “성경”으로 밝히고자 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는 교회가 원래의 초대 교회로 회복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 같은 회복 운동을 “환원 운동”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환원 운동”은 초대 교회로의 환원이 아니라 “로마카톨릭”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행하는 “침례”와 “주의 만찬”은 로마카톨릭과 거의 일치한다. 그들은 “로마카톨릭”처럼 자신들의 교회만이 “참된 교회”인 양 행세하고자 교회 이름도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라 칭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로마카톨릭의 교황이 자칭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그 교회의 창시자인 바톤 스톤과 알렉산더 캠벨에 의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회복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19세기 초에 출현한 “그리스도의 교회”만이 참된 교회라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그때까지의 신약교회사 기간인 약 1,800년 동안 참된 교회가 없었다는 얘기인데, 이것이 말이 되는 주장인 것인가!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1,800년 동안 지옥의 문들이 주님의 교회를 이겨(마 16:18) 사탄에게 완전히 패배한 채로 있었다는 말인데, 이처럼 편협하고 배타적인 주장은 로마카톨릭이나 몰몬교, 안식교, 지방교회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의 교회 이름부터가 비성경적인 것은,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용어가 하나의 지역 교회의 “명칭”으로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딱 한 번, 그것도 복수 형태로 『그리스도의 교회들』(롬 16:16)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이것은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 있던 “여러 지역 교회들”을 의미할 뿐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교회는 일요일 아침마다 로마카톨릭의 “미사”처럼 “성찬식”을 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근거로 “사도행전 20:7”을 제시한다. 『그 주의 첫날 제자들이 빵을 떼고자 함께 모였을 때 바울이 그들에게 설교하되 다음 날 떠날 준비를 하고 한밤중까지 설교를 계속하더라.』 그들은 이 구절의 “빵을 떼는 것”이 고린도전서 10,11장의 『주의 만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빵을 떼는 것”(행 20:7)은 주의 만찬이 아니었다. 사도행전 2:46에도 보면 제자들이 빵을 떼고 있던 것을 보는데 그것은 “날마다” 행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교회 건물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돌아가며” 교제를 위해 행한 것이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빵을 떼신” 적이 있는데(마 14:19) 이 역시 주의 만찬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빵을 떼던 일을 다 주의 만찬을 행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서 침례라는 말만 나오면 다 물침례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주장일 뿐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교회는 “침례”와 관련해서 명백히 이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이단 교리는 “구원”에 관한 교리인데, 대부분의 이단들이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구원론”으로, 특히 “침례에 의한 구원”으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낸다. “침례에 의한 구원” 교리는 교부들의 시대부터 존재할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로마카톨릭의 공식적인 교리이며, 그것을 그리스도의 교회 역시 믿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침례가 구원의 표”라고 말한다. 물론 그들도 믿음을 전혀 부정하지는 않는다. 침례의 효력은 “물”에 있지 아니하고 고백하는 “믿음”에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교리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그들이 얼마나 겉 다르고 속 다른 집단인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 믿을 때의 믿음보다 침례받을 때의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다.”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은 “믿음과 침례의 관계”에 대하여 아주 해괴한 주장을 하는데, 즉 믿음은 “새 생명의 시작”이며 침례는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믿음은 “수정란”이 생기는 것과 같고 침례는 “출생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에서 침례까지를 하나의 과정, 즉 “구원을 얻는 공식적인 시간”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침례를 받지 못했다면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괴한 주장은 사도행전 2:38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 그들은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for the remission of sins)에서 “인하여”를 의미하는 “for”를 “위하여”로, 즉 “죄사함 받기 위하여” 침례받으라는 말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그들의 교리들 중 그 어떤 것보다 바로 이 부분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단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들은 구원론에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성경 어디에도 죄사함을 받기 위해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구절이 없다. 만일 침례가 죄사함의 필수 조건이라면 침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침례를 받을 수 없는 환경이나 여건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포함한 “침례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의 문제는, 성경에서 “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구절들을 읽을 때, 문맥상으로 “침례”라는 단어가 없음에도 그것을 “침례”로 해석한다는 데 있다. 특히 그들은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5,6)라는 말씀의 “물”이 침례와 전혀 상관없는데도 불구하고 “침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은 『육신으로 난 것』, 곧 육적 출생을 의미할 뿐이다. 성경에 무지한 이단들은 성경에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며 대며 자신들의 거짓 교리를 정당화하는 아주 고약한 습성이 있다.

물론 성경이 신약 성도의 구원과 연관해서 침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골 2:12).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3,4). 『한 분 주요, 한 믿음이며, 한 침례이고』(엡 4:5).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 3:27). 그러나 이 구절들이 말하는 침례는 물로 받는 침례가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의 한 지체로 만들어 주는 영적 침례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성령 침례”(고전 12:13)인데, 바로 이것이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하는 “한 침례”이다. 이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게 되며, 이것은 결코 물에 잠기는 침례 예식이 아니다. 물침례는 성령으로 먼저 침례를 받은 사람이 그 뒤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의식일 뿐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그런데 이처럼 침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가르치면 그들은 다시 히브리서 5:9로 달려가서 『온전하게 되심으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고』라는 구절을 들이민다. 즉 예수님께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께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니 침례가 곧 “순종”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본문에 따라 “순종”할 때까지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되는데, 결국 “침례에 대한 순종”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는 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행위 구원으로서 명백한 이단 교리이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히브리서 5:9의 “순종”은 로마서 6:17,18의 “순종”과 같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이라.』 이 말씀은 죄인이 “복음의 교리”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순종을 통해 구원받는 것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죄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분명하게 선포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또한 신약의 지역 교회들을 세운 사도 바울은 “침례의 행위”가 “구원”에 필수 요소라는 거짓 교리를 정죄하고 있다.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딛 3:5).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갈 2:16).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교인들은 자신이 여전히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분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사도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이 아니다. 죄인의 죄들은 물침례를 받음으로써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써”(행 22:16)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계 1:5) 씻기기 때문이다. 침례에 의한 구원을 믿는 그들은 자기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죽어서 가는 곳을 알고 있었고(딤후 1:12) 요한도 알고 있었으며(요일 5:13) 베드로도 알고 있었다(벧후 1:14, 벧전 1:4,5).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의 거짓 교리에 속아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아 지옥의 대기자 열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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