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세대주의 분류

“연속적인 장들”과 세대적 진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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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7월호>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나누어서 공부하라고 명령하셨으며(딤후 2:15), 그렇기에 성경은 그 자체에 “세대적 진리”가 내장되어 있다. 세대주의란 하나님께서 각 시대를 운영하시는 경륜, 곧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인데,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각 시대를 어떤 경영방침으로 다루시는가가 계시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원 시대 - (루시퍼의 반역으로 인한 우주적 심판과 재창조) - 양심 시대 - (대홍수 심판) - 인간 정부 시대 - 족장 시대 - 율법 시대 - (갈보리 십자가에서의 죄에 대한 심판) - 교회 시대 - (대환란의 심판) - 왕국 시대 - (큰 백보좌 심판) - 영원 시대.” 자세히 살펴보면 시대들의 분기점이 대체적으로 “죄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임을 알 수가 있다. 죄에 대한 큰 심판이 있고 나면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다루시는 “경륜”이 바뀌는 것이다.

시편에는 그와 같은 세대적 진리가 감춰져 있다. 150편의 시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세대적 진리”의 지표가 되는 시들이 연달아 기록되어 있다. 시편에서 발견되는 세대적 진리는 위의 모든 시대를 망라하기보다는 “초림부터 (영원으로 이어지는) 천년왕국까지”의 시대별 경륜을 보여 준다. 즉 “시편”이 기록된 “구약 시대” 이후에 있을 일들에 대한 “예언”으로, “(갈보리 십자가에서의 죄에 대한 심판) - 교회 시대 - (대환란의 심판) - 왕국 시대 - (큰 백보좌 심판) - 영원 시대”의 경륜이 마치 골짜기의 백합화들처럼 시편의 계곡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이다.

본 특강에서 살펴볼 부분은 “시편 22,23,24편”인데, 이 세 시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22편) - 교회 시대(23편) - 재림과 천년왕국(24편)”의 구도를 이룬다.

우선 “시편 22편”은 “초림 때의 갈보리 십자가”를 예언한다. 시편 22편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지 아니하시며 나의 신음하는 말들을 멀리하시나이까?』(1절)로 시작하면서 갈보리 십자가의 그 외침을(마 27:46) 듣게 할 뿐만 아니라, 6절의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들에게 멸시거리니이다.』라는 말씀은 “붉은 구더기”가 되어(막 9:44)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게 될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음을 보여 준다. 또한 7,8절의 『나를 보는 자는 다 조롱하며 비웃나니 그들이 입술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그가 주께서 자기를 구하실 줄 신뢰하였도다. 주께서 그를 기뻐하시니 그를 구하시게 하라.” 하나이다.』라는 말씀은, 『그가 다른 사람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면 지금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하라.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으리라.』(마 27:42)라고 말한 갈보리 십자가 아래의 그 죄인들을 보여 준다. 그리고 『개들이 나를 에워싸고 악인의 무리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그들이 내 손과 내 발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들을 셀 수 있으니 그들이 나를 보며 쳐다보나이다. 그들이 그들 가운데서 내 겉옷을 나누고 내 속옷을 제비뽑나이다.』(16-18절)라는 말씀은 갈보리의 그 처참한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어지는 “시편 23편”에서는 위의 “초림의 십자가”를 뒤로하고 그 후에 전개되는 “교회 시대”를 묘사하며, 자신의 십자가 희생으로 구원한 양을 인도하는 『선한 목자』(요 10:11)께서 등장하신다. 즉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1절)로 시작되는 시편 23편은, 양에게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에서의 풍성한 삶을 선물하시는 목자(1-3절)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인 이 세상에서 동행하시는 목자(4절), 마귀들과의 영적 전쟁 중에 원수들 앞에서 식탁을 마련해 주시며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우리를 성별시켜 주시는 목자를 보여 준다(5절). 그리고 우리의 지상 삶이 다할 때까지 그 선하심과 자비하심으로 끝까지 동행하시고, 우리를 “미래에”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목자를 또한 알 수 있게 한다. 『진실로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내 생애의 모든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전에 영원히 거하리로다』(6절).

시편 24편은 “재림”에 관한 예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앞에서 다룬 22,23편과 함께 세 시편들을 연이어서 해석해 보면 “초림(22편) – 교회 시대(23편) – 재림(24편)”의 체계를 읽을 수 있다. 22편과 23편에 밀려 그리 익숙지 않은 24편을 재림과 관련해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은 주의 것이요,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자들도 그러하도다. 이는 그가 바다들 위에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큰 물들 위에 그것을 세우셨음이라』(1,2절). 시편 24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다루는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게 첫 절부터 주님의 왕국 통치를 노래하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자들이 주님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기를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분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고 하더라』(계 11:15).

(2) 『주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니 그는 헛된 것에 자기 혼을 들어올리지 아니하며 거짓되이 맹세하지 아니하였도다』(3,4절). 본문 3절의 『주의 산』은 천년왕국의 통치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세워지실 곳이다.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 왕을 세웠도다』(시 2:6). 3절의 『그의 거룩한 곳』은 시편 15:1에서 언급된 바로 그 『거룩한 산』이다. 『주여, 주의 장막에 누가 거하며 주의 거룩한 산에 누가 거하리이까?』(시 15:1) 또한 본문 4절에는 대환란 때에 “믿음”과 “행위”로 받는 구원이 나타난다(계 14:12). 그때 『깨끗한 손』(4절, 행위)과 『순결한 마음』(4절, 믿음)을 지닌 환란성도들은 『헛된 것』(4절), 곧 『짐승의 형상』(계 13:15)에게 혼의 소망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대다수의 유대인들과 달리 그 짐승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겠다고 맹세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대환란이 끝나고 천년왕국 때 『주의 산』(3절)에 올라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3절)가 바로 그 유대인 환란성도들인 것이다.

(3) 『그는 주로부터 복을 받고 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으리라. 이는 그를 찾는 자들의 세대니, 오 야곱이여, 네 얼굴을 찾는 자라. 셀라』(5,6절). 이것은 본문 3,4절의 유대인 환란성도들이 대환란을 거치며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는 것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이 구절은 대환란을 믿음과 행위로 끝까지 견뎌 낸 유대인 환란성도들이 그들의 민족적인 죄악을 용서받고(사 40:1,2) 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게 될 것을 보여 준다. 『주께서 우리의 의를 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주 우리의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자』(렘 51:10). 신약 교회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지만(롬 3:22), 대환란 때에는 믿음에 행위가 끝까지 뒤따라야 하나님께 의를 받을 수 있다. 그들에게 의를 주실 『구원의 하나님』(5절)께서는 『주 우리의 의』(렘 23:6)라고 불리신다. 『그를 찾는 자들의 세대』(6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세대인 유대인 환란성도들이며, 6절 끝의 『셀라』는 그것이 “재림” 문맥임을 보여 준다. 다음에 이어지는 7절은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기 시작한다.

(4) 『오 너희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영원한 문들아, 너희는 들어올려질지라. 그리하면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시리라』(7절). 본 시편의 기자인 다윗은 7절에 와서야 재림을 노래한다. 왕의 대관식을 위해 한 문을 통해 들어오시는 『영광의 왕』(7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재림하시는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동편 대문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그의 발이 그 날에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서시리니』(슼 14:4). 『그 전망이 동쪽을 향한 대문 길을 통하여 주의 영광이 그 전으로 들어오더니』(겔 43:4). 『영광의 왕』(7절)께서는 초림 때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셨고, 그날 밤 예루살렘 동편 케드론 시내를 건너 그곳 동산에 계실 때 횃불과 무기를 든 무리들에게 붙잡히셨다(요 18:1-12). 그날 예루살렘 동편 대문으로 “나가셨던” 주님께서는 이제 재림 때 그 동편 대문을 통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재림하시어 발로 딛고 선 올리브 산을 떠나(슼 14:1-6) 케드론 시내를 다시 건너(요 18:1)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것이다.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가셨던(슼 9:9, 창 49:11) 그 길을, 재림 때에는 “흰 말”을 타고 가실 것이다(계 19:11; 14:19,20). 그때 주님의 옷은 주님을 대적한 죄인들의 피로 흠뻑 젖어 있을 것이다(사 63:1-6, 계 14:19,20).

(5)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강하고 능력 있으신 주시며 전쟁에 능력 있으신 주시로다』(8절). 8절은 『전사』(출 15:3)이신 주님께서 『영광의 왕』 곧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서 재림하실 때 치르실 아마겟돈 전쟁을 보여 준다.

(6) 『오 너희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영원한 문들아, 그것들을 들라. 그리하면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시리라』(9절).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실 이 영원한 문은 예루살렘 동편 대문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문”이다.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는데 내가 들은 첫 음성은 나팔 소리 같았으며,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리 올라오라. 내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네게 보여 주리라.” 하더라』(계 4:1). 이 하늘의 문은 『영광의 왕』께서 십자가로 마귀와 그의 권세를 굴복시키신 후 승천하시면서, 승리하신 분답게 지하 세계의 낙원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엡 4:8) 셋째 하늘로 데리고 들어가신 그 문이다. 사도 요한은 이 하늘의 문을 통해서 휴거되었다. 교회의 예표인 그가 그 문을 통해 올라갔듯이, 교회는 그 문을 통해 휴거될 것이다(살전 4:16,17).

(7)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만군의 주시니 그는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10절). 재림하시는 『영광의 왕』은 또한 『만군의 주』라고 불리신다. 『왕』과 『주』로서 불리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딤전 6:15)시라고 불리시며,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라고 불리시는, 재림하실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시편 24편은 “재림”을 예언하는 위대한 시이다. 이 시편을 22,23편과 연이어서 읽으면 “초림(22편) - 교회 시대(23편) - 재림(24편)”의 세대적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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