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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말씀보존학회 - 한글킹제임스성경 및 진리의 지식을 전파합니다 &amp;gt; 바이블마스터 &amp;gt; 지식뱅크 - 신학과 교리</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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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요한복음”과 세대적 진리 (3)</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C%9A%94%ED%95%9C%EB%B3%B5%EC%9D%8C%EA%B3%BC-%EC%84%B8%EB%8C%80%EC%A0%81-%EC%A7%84%EB%A6%AC-3/</link>
<description><![CDATA[“요한복음”은 “요한계시록”을 방불케 하는 계시와 예언의 복음서이다. 두 책 모두 사도 요한이 기록했으며, “교회 시대부터 영원까지” 일어날 일들을 담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세대주의적 순서로 기록되었다면, 요한복음은 그 진리들이 책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요한복음의 진리들을 취합하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 구도”가 잡힌다. [“요한계시록”의 세대주의적 구도에 관해서는 본지 406호의 “85페이지”에 게재한 「요한계시록 요약」 도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br/><br/>6) 교회 시대 끝에 있을 일들 - “신약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<br/>요한복음에는 “신약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가 계시되어 있는데, 이 점이 요한복음 11장에서 주님과 마르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하시니』(요 11:25,2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자신”이 하실 일을 말씀하시면서 ① 주님을 믿고 죽은 자는 “죽어도 살 것”이고, 곧 “부활”할 것이며, ②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그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공중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성도들이 다시 새 몸을 입고 살아나는 부활이 있음을 일깨워 주며, 또한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주님을 맞이한다면 산 채로 휴거되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보여 준다. 즉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①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성도들은 죽음에서 깨어나 부활함으로써 무덤에 더 이상 갇혀 있지 않게 되고(『오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 고전 15:55), ② 그때 살아 있는 성도들은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어 산 채로 들림받아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된다(『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고전 15:55). 신약 교회의 이와 같은 두 가지 휴거 양상이 데살로니가전서 4:15-17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②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는 마르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 11:26)라고 물으신다.<br/><br/>“신약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6장의 “물 위를 걸어오신 사건”을 통해서도 계시된다. 주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은 보리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약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요 6:1-11)을 행하신 뒤에 일어났다. 주님께서는 주님께 양식을 얻어먹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억지로 데려다가 왕으로 세울 것을 아시고 혼자서 산으로 가셨는데(요 6:15), 제자들은 저녁 때가 되자 바다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카퍼나움을 향해 바다를 건너갔다. 이때부터 전개되는 사건들은 조목조목 교회의 휴거를 예표한다. 구절별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br/><br/>(1) 요한복음 6:16,17 『저녁 때가 되어 제자들이 바다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카퍼나움을 향하여 바다를 건너가는데, 날이 이미 어두워졌으나, 예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로 오시지 아니하더라.』 이 부분은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라는 로마서 13:12과 관련이 있다. “날이 이미 어두워졌으나 예수께서는 아직 제자들에게 오시지 않았듯이,” 주님께서는 교회 시대의 밤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으셨다.<br/>(2) 요한복음 6:18,19 『바다에 강풍이 불므로 파도가 일더라. 그때 그들이 노를 저어...』 강풍이 불고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 제자들이 노를 젓는 일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라는 디모데후서 3:1과 관련이 있다. 교회 시대의 마지막 날들에 하는 사역은 세상보다는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함으로써” 이전보다 더 악해져 있기 때문에(딤후 3:2-5) 사역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죄의 강풍이 부는 이 배교의 바다에서 말씀의 노를 저으면서 가는 일은, 강풍으로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 힘겹게 노를 젓던 제자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리고 이처럼 어려운 때에 주님께서는 드디어 “바다”를 거쳐 우리에게로 오실 것이다!<br/>(3) 요한복음 6:19 『그때 그들이 노를 저어 이십오 내지 삼십 스타디온쯤 갔을 때,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로 다가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보라, 힘겹게 노를 젓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셨다! 그때 주님께서는 “바다” 위로 걸어오셨으며, 이 놀라운 사건은 교회 시대의 마지막 날들에 비난과 박해를 감수하며 힘겹게 섬기고 있을 그리스도인들을 데려가려고 주님께서 셋째 하늘 “유리 바다”(계 4:6; 15:2)를 통과해 “공중 재림” 하실 사건을 보여 준다.<br/>[이 부분은 주님께서 “유리 바다”를 통과하여 “유대인” 제자들에게 오셨다는 점에서 “지상 재림”에 이중적용이 된다. 대환란 때 “유대인” 성도들은 『인자』께서 “유리 바다”를 통과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힘겹게 섬기고 있을 것이다(마 10:17-23).]<br/>(4) 요한복음 6:20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더라.』 강풍으로 파도가 심하게 일렁이는 밤바다를 걸어 다가오시는 주님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두려움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니, 두려워 말라.”라고 하셨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관련하여 교회 시대 성도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두려움과 그에 합당한 반응을 계시한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에 관하여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영으로나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웠다고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라』(살후 2:1,2). <br/>(5) 요한복음 6:21 『그때 그들이 주를 기꺼이 배 안으로 영접하니 배가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닿았더라.』 제자들이 주님을 배 안으로 영접하자 배는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이동이었는데, 교회가 휴거될 때에도 눈깜짝하는 순간에 몸이 변화되어 우리가 가려던 셋째 하늘에 곧 닿게 될 것이다(고전 15:51,52). <br/><br/>“신약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데리러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에도 계시되어 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이 구절은 교회 시대의 끝에 교회가 휴거되는 공중 재림에 관한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다시 오셔서,” 곧 공중 재림하시어 “너희”(유다 이스카리옷을 제외한 “열한 제자”)를 하늘로 영접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때 제자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들림받는 휴거의 첫 번째 부류가 될 것이다(살전 4:16). 이 휴거의 첫 번째 부류에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D.L. 무디, 찰스 스펄전, 요한 웨슬리, 빌리 선데이, 찰스 피니, 조지 휫필드, 아도니람 저드슨, 피터 럭크만, “이송오”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일으켜지면, 그때 살아남아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죽지 아니할 몸”으로 눈 깜짝하는 순간에 변화되어(고전 15:52,53) 그들과 함께 하늘로 끌려 올라가게 될 것이다(살전 4:17).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Feb 2026 09:32:3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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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요한복음”과 세대적 진리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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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요한복음”은 “요한계시록”을 방불케 하는 계시와 예언의 복음서이다. 두 책 모두 사도 요한이 기록했으며, “교회 시대부터 영원까지” 일어날 일들을 담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세대주의적 순서로 기록되었다면, 요한복음은 그 진리들이 책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요한복음의 진리들을 취합하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 구도”가 잡힌다. [“요한계시록”의 세대주의적 구도에 관해서는 본지 406호의 “85페이지”에 게재한 「요한계시록 요약」 도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br/><br/>1. 요한복음에 계시된 “교회 시대”<br/><br/>4) 교회 시대에 있게 될 “성령님의 사역들”<br/><br/>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교회 시대에 있을 성령님의 사역들이 예언되어 있다.<br/>첫째, 예수님께서는 주님 자신이 셋째 하늘로 돌아가신 후 성도들이 성령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 『그 명절의 가장 큰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씀한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르리라.”고 하시니 (이것은 주께서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라. 이는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직 성령을 주지 아니하셨음이라.)』(요 7:37-39).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뒤 셋째 하늘에 올라가셔서 보좌에 앉으실 것을 뜻한다. 그렇게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셔서(요 16:7) 제자들 속에 영원히 내주하시게 하심으로써, 주님을 믿는 자는 성경이 말씀한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를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셨다. 오순절 날 한 장소에 모인 제자들에게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렀으며,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는데(행 2:1-4), 이때 제자들이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며(고전 12:13),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br/><br/>이와 같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성령님께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죄인들 안에 들어가셔서 그의 혼과 몸을 분리시키는 영적 수술을 행하시고(골 2:11), 그 성도를 하나님의 소유로서 인을 치신(고후 1:22, 엡 1:13,14) 뒤 그의 안에(고전 6:19) 영원히 내주하신다.<br/><br/>둘째, 요한복음에는 교회 시대와 관련하여 성령님의 “영원한 내주하심”과 “가르치시는 사역” 그리고 “화평”이 계시되어 있다.<br/>1 성령님의 “영원한 내주하심”은 “요한복음 14:16,17”에서 발견된다. 『또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겠고, 그분께서 또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그가 너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리라. 진리의 영인 그를 세상은 영접할 수 없으니 이는 세상이 그를 보지도 못하며 또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이는 그가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임이라.』 <br/>2 성령님의 “가르치시는 사역”은 “요한복음 14:26”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기억나게 하시리라.』 성령님께서는 이 교회 시대에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고전 2:13)이라고 불리는 “기록된 말씀”으로 성도들을 가르치신다. <br/>3 성령님께서 주시는 “화평”은 “요한복음 14:26,27”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남겨 두나니 나의 화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 두신” 화평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오신 성령님에 의해 실질적으로, 효과적으로 성취되었다. “로마서 14:17”에 따르면 “교회 시대에 전파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다. 이 교회 시대에 성도 안에 임하는 화평은 그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또한 “갈라디아서 5:22”은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 가운데 『화평』을 제시하며, “에베소서 4:3”은 『화평의 띠 안에서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도록 열심히 노력하라.』라고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하고 있다. <br/><br/>셋째, 요한복음에는 “교회 시대에 죄인을 거듭나게 하는 성령님의 사역”이 계시되어 있다. 예수님은 밤에 찾아온 니코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요 3:5-8)라고 하셨다. 이처럼 성령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의 영을 살리시는(엡 2:1,5) 사역을 교회 시대에 하고 계신다.<br/><br/>넷째, 요한복음에는 성령님께서 오시면 “성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리라.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리라』(요 15:26,27).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증거했던 것은,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사도행전 2장부터였다. 사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사도행전만큼 주님을 적극적으로 증거했다는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들 안에 내주하기 시작하셨을 때 비로소 제자들은 주님을 생명을 다해서 증거했다(행 12:2-5).<br/><br/>다섯째, 요한복음에는 성령님께서 오셔서 이 교회 시대에 “세상을 책망”하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 주시지 않은 많은 진리들로 성도들을 인도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다. 『그분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말할 것들이 많이 있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요 16:8,12,13). 교회 시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통해서 “모든 진리”로 인도받을 수 있는 대단한 시대이다. 갈보리 십자가 이전에는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었기에 알려 주시지 않았던(요 16:12) 많은 진리들이 성령님께서 오심으로써 하나씩 펼쳐 보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교회 시대에 가르쳐 주시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진리”이며(요 16:13,14), 지난 2천 년 신약교회사에서 가르쳐지고 증거되었던 그 모든 방대한 진리들, 곧 “현재까지 축적되어 온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들”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언하신 “교회 시대의 성령님의 사역”을 입증한다.<br/><br/>5) “겸손과 사랑” - 요한복음에 계시된 “교회 시대의 섬김”<br/><br/>“요한복음 12:35-41”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거부당하셨음을 선언하는데, 그때 주님께서는 『빛이 있을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자녀들이 되리라.』(요 12:36)라고 말씀하신 후 유대인들로부터 숨으셨다. 유대인들의 거부로 주님의 공적 사역이 “요한복음 12장”에서 끝난 것이다. 이후 “13장”에서는 얼마 있으면 세상을 떠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 후(『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자기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절), “주님께서 떠나시면” 그 뒤 제자들이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를 “종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써 본을 보이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들을 자기 손 안에 주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아시고 저녁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옷을 벗어 한쪽에 놓고 수건을 가지고 허리에 두르시더라. 대야에 물을 부으신 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또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시기 시작하고』(요 13:3-5). 제자들의 발을 『주와 선생』(요 13:14)으로서 씻겨 주신 주님은, 제자들도 주님의 본을 받아 서로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다(요 13:15).<br/><br/>예수님의 위와 같은 명령은 주님의 제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그들의 말을 통하여 주님을 믿을 사람들(요 17:20)도 위한 것이다. 세상의 빛이신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 제자들의 증거를 통해 믿게 된 성도들의 섬김, 곧 교회 시대의 섬김은 반드시 “겸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허영을 따라서 하지 말고 오직 생각의 겸손함으로 남을 자신들보다 존중하고』(빌 2:3).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자비로운 마음과 친절과 마음의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입으라』(골 3: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br/><br/>“겸손을 통한 높여짐”은 겸손한 낮추심으로 지극히 높임을 받으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한 이름을 소유케 되신 예수님을 통해 증명되었다(빌 2:5-11). 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시면” 성도들이 “서로 사랑해야” 된다고 하셨으며(요 13:34,35), 이로써 “사랑”은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 도래할 교회 시대의 섬김에 있어서 “겸손”과 더불어 필수 덕목이 되었다.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2). 교회 시대의 성도들은 사랑으로 서로 섬기고(갈 5:13), 형제애로 서로 다정하게 사랑하며(롬 12:10), 성령을 통하여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자신들의 혼을 정결케 하여 가식 없는 형제 사랑에 이르렀기에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벧전 1:22). 하지만 이러한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이 아닌 “악을 증오하고 오직 선과 연합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에 거짓이 없게 하라. 악을 증오하고 선과 연합하라』(롬 12:9).<br/>“겸손과 사랑”은 “섬김”의 쌍두마차를 끄는 “두 필의 말”이다. 겸손만 혼자 갈 수 없고,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겸손과 사랑”이 한 멍에에 묶여서 함께 끌 때 섬김의 추진력은 높아진다. 섬김의 능력은 바로 “겸손과 사랑”에 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7 Jan 2026 17:44: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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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요한복음”과 세대적 진리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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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요한복음”은 그 기록자인 사도 요한이 쓴 또 다른 책 “요한계시록”을 방불케 하는 계시와 예언의 복음서이다. 요한복음은 요한계시록처럼 교회 시대와 그 이후, 즉 “교회 시대부터 영원까지” 일어날 일들을 담고 있다. 요한복음은 세대주의적 순서로 계시된 요한계시록과 달리 그 진리들이 책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그 진리들을 취합하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의 구도가 잡히는데, 말하자면 “요한복음,” 이 한 권의 책은 요한계시록을 알면 볼 수 있게 되는 “작은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세대주의적 구도에 관해서는 본서 “85페이지”의 ｢요한계시록 요약｣ 도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br/><br/>1. 요한복음에 계시된 “교회 시대”<br/><br/>1) 침례인 요한이 선포한 “하나님의 어린양”과 “신부”의 “신랑”이신 그리스도<br/><br/>요한복음에는 그 첫 장부터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선포되신다.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요 1:29,36). 침례인 요한은 예수님에 관하여 유대인의 왕이 아닌 “제물로서의 어린양”을 선포했다. 세상 죄를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제물”(창 22:8)이 침례인 요한의 선포를 통해 계시된 것이다. 이는 갈보리 십자가를 통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언한 것인데, 침례인 요한은 “구약의 끝에 서 있던 인물”이었기에(눅 16:16, 율법과 선지서는 요한까지), 그가 선포한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새 시대를 여시는 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주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제거하셨을 때 교회 시대의 새 문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br/><br/>요한복음에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는 “신랑의 친구”로서의 침례인 요한과 신랑의 “신부”가 언급됨으로써, 침례인 요한 이후 “교회 시대”가 열릴 것을 계시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다만 그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내가 말한 것을 증거해 줄 자는 바로 너희니라. 신부를 얻는 사람은 신랑이지만 신랑의 친구는 곁에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으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게는 이런 기쁨이 충만하니라』(요 3:28,29). 침례인 요한이 언급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부”는 “신랑”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얻게 되는 “교회”를 가리키기 때문에(엡 5:29-33), 요한복음에는 장차 신랑의 죽음으로 얻게 될 “신부,” 곧 “교회”가 경륜의 중심을 이루는 “교회 시대”가 계시되어 있는 것이다.<br/><br/>2) 유대인들이 주님을 거부할 때 “헬라인들”이 방문한 사건은 “교회 시대”가 도래할 것을 암시한다.<br/><br/>명절에 경배하러 온 어떤 “헬라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고자 했던 사건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는 교회 시대를 계시한다. 즉 명절에 경배하러 온 헬라인들이 주님을 뵙고자 했을 때, 주님께서는 “교회 시대”의 도래와 관련한 네 가지 핵심적인 말씀을 하셨다.<br/><br/>1 『인자가 영광받을 시간이 왔도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3,24). 즉 십자가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br/><br/>2 『누구나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라오라... 누구나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시리라』(요 12:26).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을 유대인에게 한정하지 않으시고 “누구나,” 즉 이방인에게까지 그 문을 열어 주셨다. 즉 “교회 시대”가 그런 기간이다. <br/><br/>3 『아버지시여, 이 시간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그러나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이 시간까지 왔사옵니다』(요 12:27). 이 말씀의 『이 시간』은 “요한복음 17:1”을 떠오르게 한다. 『아버지시여, 그 시간이 왔나이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보라, 너희가 각자 자기 집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남겨 놓을 그 때가 오나니, 실로 이미 왔노라.』(요 16:32)라고 말씀하신 뒤에 드린 이 기도는, 『그 시간』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실 시간”임을 보여 준다. 말하자면 “이방인”인 “어떤 헬라인들”이 방문했을 때 언급하신 『이 시간』 역시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실 시간”을 말하고 있다. <br/><br/>4 『또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오리라.”고 하시니라. 이것을 말씀하심은, 주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으실 것인가를 의미하심이라』(요 12:32,33). 이 말씀은 주님께서 “땅에서 들리는”(요 3:14) 십자가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 죽음을 통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릴 것을 예언하고 있다. <br/><br/>3)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기댄 일은 “교회의 탄생”을 예표한다.<br/><br/>『그때 주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자가 예수의 품에 기대어 있더라』(요 13:23). 사도 요한은 공생애 기간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 그 품은 주님의 다섯 번째 갈비뼈로, 아담의 아내인 이브가 나온 아담의 품과 일치한다. 아담의 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을 예표하는데, “아담”이 그의 “아내”를 얻기 위해 “죽음의 잠”을 자야 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해 “죽으셔야” 했다. 주님께서 찔리신 곳은 다섯 번째 갈비뼈 아래였으며, 그 품에 요한이 기대어 있었다. “신부인 교회”의 유형인 이브가 나온 “아담의 품”이 예표하는 곳에 “요한”이 기대어 있었던 것이다. 아담은 자기 품에서 나온 “이브”를 보고서 “내 뼈들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했으며(창 2:23), 이브가 예표하는 “교회” 역시 “주님의 몸과 살과 뼈의 지체”라고 불린다(엡 5:30-32). “아담의 품”에서 나온 “이브”가 “교회의 예표”이듯이, “예수님의 품”에 기대었던 “요한”은 “교회의 예표”가 된다.<br/><br/>예수님께서는 다른 제자들보다 “요한”에게 더 특별한 사랑을 보이셨으며, 요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지만”(요 13:1), “요한”은 “특별한 사랑을 받은” 제자였다. 요한은 그러한 자신을 가리켜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자』(요 13:23, cf. 요 20:2; 21:20)라고 표현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품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 값주고 사신 것이 “교회”이며, “교회”는 다른 어떤 시대의 성도들보다도 주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 요한이 받았던 “특별한 사랑”은 바로 이 요한이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교회”를 예표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사랑받는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그 “교회”를 예표하는 “요한”이 “대환란이 닥치기 전에” “요한계시록 4:1,2”에서 “휴거”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요한계시록 4장 이후로 19장까지, 즉 대환란 기간에 “요한”은 지상에 없고, “교회” 역시 요한계시록 3장을 끝으로 지상에 보이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서 대환란이 묘사되기 전에 “요한”이 “휴거”되었다는 점은, 대환란이 있기 전에 “교회”가 “휴거”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3 Dec 2025 10:40: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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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첫 번째 부활”과 세대적 진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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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요한계시록 20:5에서 “첫 번째 부활”이 계시되는데, 이것에 속한 “세 가지 부활들”에서 세대주의가 계시된다.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라.』<br/>요한계시록 20:5의 “첫 번째 부활”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까지 있게 될 모든 부활을 총칭하는 것으로, 초림 때의 “구약 성도들의 부활”(마 27:52)과 교회의 휴거 때 있을 “신약 성도들의 부활”(살전 4:14-17, 고전 15:51-53), 대환란 끝에 있을 “환란 성도들의 부활”(계 11:11,12)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약 성도들의 부활 – 신약 성도들의 부활 – 환란 성도들의 부활”을 세대주의적으로 정의하면 “구약 시대 – 신약 시대 – 대환란과 재림”을 뜻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세 시대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천 년 통치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계 20:4), 이 “첫 번째 부활”은 재림 이후에 있을 천년왕국 시대까지 그 의미를 연장하게 된다. 즉 “구약 시대 – 신약 시대 – 대환란 – 재림 – 천년왕국”이 되는 것이다.<br/><br/>성경에는 요한계시록의 “첫 번째 부활”을 그 서열대로 설명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고린도전서 15:20-24”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셔서 잠들었던 자들의 첫열매들이 되셨느니라.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즉 부활의 서열]대로 되리니 1)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요, 2)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3) 그후에는 끝이 오리니 주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폐하시고 그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바칠 때라.』 고린도전서의 이 말씀에는 세 가지 부활이 함축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요』에 해당하는 “구약 성도들의 부활”과,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에 해당하는 “신약 성도들의 부활”과, 『그후에는 끝이 오리니』에 해당하는 “환란 성도들의 부활”이 그것이다. <br/><br/>1) “구약 성도들의 부활”은 초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함께 부활한 구약 성도들로 구성된다. 『예수께서 다시 큰 음성으로 소리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더라.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구약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더라『(마 27:50-53). <br/><br/>2) “신약 성도들의 부활”은 교회의 휴거 때 무덤에서 깨어날 잠든 신약 성도들로 구성된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4-17). 이 “신약 성도들의 부활”은 그에 관한 참조 구절인 “고린도전서 15:51-53”에서 “신비”로서 언급되며, 그 신비는 모든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썩지 않는 몸”으로 일으켜지는 일을 가리킨다. 물론 그 순간 지상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는데, 신약 성도라면 누구나 입게 될 이 초자연적인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과 똑같은 『영적인 몸』(고전 15:46)이요 『영광스러운 몸』(빌 3:21)이다. 이 몸은 문자 그대로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고전 15:49)과 똑같이 될 것인데,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사건을 가리켜서 우리가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롬 8:29) 되는 일이라고 기록했다. <br/><br/>3) “환란 성도들의 부활”은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 곧 “모세와 엘리야의 부활”로 대표되는 부활로서(계 11:11,12),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에게 목베임을 당한 환란 성도들이 지하 세계의 낙원에서(계 6:9-11) 나와 하늘로 들림받게 되어 셋째 하늘에 있는 모습이 요한계시록 7장에서 발견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모든 민족들과 족속들과 백성들과 언어들에서 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이방인 환란 성도들]가 흰 옷을 입고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셋째 하늘이다!]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하기를 “구원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하더라... 그때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여 나에게 말하기를 “흰 옷을 입은 이 사람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 하기에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며 그의 성전에서 그를 밤낮 섬기고,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리라』(계 7:9,10,13-15). [참고로 요한계시록 7장에서 인장으로 표시받은 144,000명의 유대인 환란 성도들은, 그들이 셋째 하늘로 휴거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모습이 요한계시록 14장에서 발견된다. 『또 내가 쳐다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있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더라』(계 14:1).]<br/><br/>위와 같이 부활한 성도들에 관하여 요한계시록 20:4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1) 그이 그 위에 앉았는데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더라. 또 2)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통치하더라.』 이 말씀의 도입부에서 “그들”은 어린양의 혼인식을 마친 뒤에, 그때 입었던 희고 정결한 세마포를 입고(계 19:7,8,14) 만왕의 왕이신 신랑과 말을 타고 함께 내려오는(솔 8:5) “신약 성도들”과, 또 그들과 함께 내려오기에 『두 군대』(솔 6:13)의 구성원으로 보이는 “구약 성도들”을 가리킨다. 또한 요한계시록 20:4에서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은 『그 짐승』 곧 적그리스도와 그의 형상에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이마나 손에 받지 않은 환란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 세 부류, 곧 “구약 성도들”과 “신약 성도들”과 “환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을 다스리는 통치권이 주어지며, 그 통치는 영원으로 이어진다(계 22:5). 따라서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들과 관련된 연대기적 전개는 “구약 시대 – 신약 시대 – 대환란 – 재림 – 천년왕국 – 영원 시대”라는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5 Nov 2025 01:18:0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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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인물”과 세대적 진리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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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들”과 관련된 “세대적 진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리가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지난 호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서 “이삭과 리브카”로 이어지는 인물들을 통해, 또한 “요셉”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세대적 진리를 확인했다. 이번 호에서는 “에녹과 노아,”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의 연속적인 역사를 통해 세대적 진리의 확실성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br/><br/>3. 에녹 → 노아<br/>: 교회의 휴거 – 대환란<br/><br/>“에녹”은 “대환란 전에 살아서 휴거되는 교회(그리스도의 몸)의 예표”이다. 교회는 에녹이 대홍수(대환란의 예표)가 땅에 임하기 전에 휴거되었듯이, 대환란이 있기 전에 살아서 휴거될 것이다(살전 4:14-17). 반면 “노아”는 “대환란을 통과하는 환란성도의 예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란』(21절) 관련 문맥에서 “노아의 날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다. 『그러나 노아의 날들과 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의 날들에 그들이 먹고 마시며,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기를,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까지 하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다 쓸어 버릴 때까지 그들이 알지 못하였던 것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 24:37-39). 본문은 『노아의 날들』을 『인자의 오는 것』, 즉 “재림”과 연결시킨다. 따라서 “노아의 대홍수”는 재림 전에 있을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라 불리는 “대환란”을 예표하며, “노아와 그의 가족”은 대환란 때에 “믿는 남은 자,” 곧 “환란성도”를 예표한다. 노아의 가족이 대홍수를 통과하며 보존되었듯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도 대환란을 통과하며 보존될 것이다(계 7장, 144,000명). “휴거”된 에녹과 달리, 지상에 남겨졌으나 대홍수의 심판 동안 보호받는 노아는, “교회의 휴거” 후 땅에 남아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환란을 통과하는 유대인 환란성도들을 예표한다.<br/><br/>4. 사울 → 다윗 → 솔로몬<br/>: 대환란(적그리스도) – 재림(정복전쟁) – 천년왕국(안식)<br/><br/>1) 사울왕 : 대환란 때의 적그리스도의 예표, 불량스러운 이스라엘의 통치자 사울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삼상 8:7) 받아들인 육신적이고 불법적인 왕이라는 점에서 “적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다윗을 대적했다는 점에서 문자 그대로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예표가 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초림 때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신 주님(그리스도)을 거부하자 그들이 장차 적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내가 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는도다.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하리라』(요 5:43). 에스겔 21:25에서는 적그리스도가 『불량스럽고 악한 이스라엘의 통치자』라고 불리는데, 이스라엘의 통치자이면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들을 죽이고(삼상 22:17,18)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다윗을 대적하며 죽이려고 쫓아다녔던 사울왕은, 대환란 때 활동할 불량스럽고 악한 이스라엘의 통치자, 곧 적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인물이다. <br/><br/>2) 다윗왕 : 재림 때 정복전쟁을 치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br/><br/>다윗왕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인물이다. 다윗은 시편에 있는 수많은 시들을 기록했는데, 그 시들은 대부분 “예언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며, 이로써 다윗은 “선지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게 된다. 또한 다윗은 제사장 외에는 먹어선 안 되는 성막의 “차려 놓은 빵”을 먹었고(삼상 21:1-6), 그의 치리 말년에 인구조사를 한 뒤 하나님의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직접 “제사를 드린” 일은(삼하 24장) 그가 “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함을 알게 한다. 또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기름부음받은 왕이기에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이로써 그는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모형이 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사울왕이 죽고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된 다윗은 그 뒤 “정복전쟁”을 펼치는데, 그 일은 사무엘하 8장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가 정복한 땅은 유프라테스 강까지 그 경계를 이룸으로써(삼하 8:3)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땅의 경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힛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기르가스인들과 여부스인들의 땅이니라.” 하시니라』(창 15:18-21).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왕처럼 재림 때 “정복전쟁”을 펼치셔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정복하시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분배해 주실 것이다(계 19:11-16, 겔 48:1-7,23-29).<br/><br/>3) 솔로몬왕 : 천년왕국 때 주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br/><br/>재림 때 정복전쟁을 치르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다윗왕 다음으로 등극한 왕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었다. 솔로몬의 통치는 『다윗의 아들』(마 1:1)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통치의 예표가 되는데, 이는 그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평화롭게 통치했기 때문이다(왕상 4:21, 24,25). 솔로몬이 왕국을 평화롭게 통치한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민족들의 열망인 평화를 가져와(학 2:7-9) 『화평의 통치자』(사 9:6)로서 통치하실 것이다. 솔로몬이 앉았던 보좌는 아버지 다윗처럼 『주의 보좌』였으며, 이 역시 다윗과 솔로몬이 주님의 통치를 예표하는 왕들임을 보여 준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으로서 주의 보좌에 앉으니 번영을 이루었으며 온 이스라엘이 그에게 복종하였더라』(대상 29:23). 『주의 보좌』는 『주의 영광의 보좌』(렘 14:21)라고도 불리며, 초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재림하시면 『그의 영광의 보좌』(마 25:31)에 앉아 통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3 Oct 2025 16:07:2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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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인물”과 세대적 진리 (1)</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C%9D%B8%EB%AC%BC%EA%B3%BC-%EC%84%B8%EB%8C%80%EC%A0%81-%EC%A7%84%EB%A6%AC-1/</link>
<description><![CDATA[성경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 여러 명 있다. “성경 속 인물들”과 관련된 “세대적 진리”는 배교한 교회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리가 무엇인가를 확증해 준다.<br/><br/>1. 아브라함과 사라 → 이삭과 리브카(창 23,24,25장) <br/>&nbsp;: 교회 시대 – 교회의 휴거 – 어린양의 혼인식<br/><br/>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제물로 바치신 “아버지 하나님”을 예표하게 된다.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나무를 들어서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그는 자기 손에 불과 칼을 들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이삭이 그의 아비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여.”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니, 그가 말하기를 “불과 나무를 보소서. 그런데 번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그곳에 와서,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가지런히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묶어서 제단의 나무 위에 올려 놓고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 하는데』(창 22:6-10). 따라서 아브라함이 “아버지 하나님”의 예표라면, 그의 아내 사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아내인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 사라가 창세기 23:1에서 죽자, 그 뒤 아들 이삭의 아내인 “리브카”를 취하러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시리아 땅으로 보냄을 받는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교회 시대”와 “교회의 휴거,” “어린양의 혼인식”을 예표하고 있다.<br/><br/>1)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아내인 “이스라엘”의 상징인데, 이스라엘은 교회 시대 2,000년 동안, 즉 “아들 하나님”(이삭)이 “이방인 신부”(리브카)를 취하는 동안 밀려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아버지 하나님(아브라함)께서 성령님(엘리에셀)을 통해 현 교회 시대에 이방인들 가운데서 아들 하나님(이삭)의 신부(리브카)를 구하시는 동안(창 24장), 아버지 하나님의 아내인 “이스라엘”은 지상 재림 때까지 뒤로 밀려나 있는 것이다. 『너를 지으신 분이 네 남편이니 만군의 주가 그의 이름이며, 너의 구속주,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 그가 ‘온 땅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네가 거절 당했을 때[교회 시대 2,000년] 주가, 버림받고 영 안에서 슬퍼하는 여인같이, 젊은 아내같이 너를 불렀노라[재림]. 네 하나님이 말하노라. 잠시 동안 내가 너를 버렸으나[교회 시대 2,000년] 큰 자비로 내가 너를 모을 것이니라[재림]. 적은 진노로 내가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감추었으나[교회 시대 2,000년] 내가 영원한 인자함으로 네게 자비를 베풀리라[재림]. 주 네 구속주가 말하노라』(사 54:5-8). 재림 때 이스라엘은 아버지 하나님을 『이쉬』(호 2:16), 곧 “나의 남편”이라고 부를 것이며, 남편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하나님 자신께 정혼시키실 것이다(호 2:19,20). <br/><br/>2) 위와 같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창세기 24장을 통해 성령님께서 이방인을 아들 하나님의 신부로 취하시는 교회 시대와 휴거, 또 어린양의 혼인식을 미리 볼 수 있다. <br/><br/>1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신부”를 취하러 보내는 “엘리에셀”은 교회 시대에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취하시는 성령님을 예표한다(창 24:1-58). - [교회 시대]<br/>2 성령님을 상징하는 “엘리에셀”이 신부인 교회를 예표하는 “리브카”를 데려와 그녀가 “이삭”과 만나는 장면은 “교회가 휴거되어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건”을 예표한다. - [교회의 휴거]<br/>[성경에 사라와 라헬의 죽음은 기록되어 있지만, “리브카”의 죽음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리브카”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모형이다. 따라서 이 몸에 속해 있는 신약 성도들은 비록 죽었어도 살아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곧 영원히 살 것이라는 점을, 성경에 그 죽음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리브카”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br/>3 “이삭”이 “리브카”를 만나서 그녀를 “장막으로 데려가 취하는 장면”은 아들 하나님께서 신부인 교회를 만나 그녀와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을 치르시는 것을 예표한다. - [어린양의 혼인식] <br/><br/>3) “교회 시대”와 “교회의 휴거,” 그리고 “어린양의 혼인식”까지 보여 주는 창세기 24장을 지나 25장으로 가면, 아브라함이 죽어서 그의 아내 사라와 함께 묻히는 이야기가 나온다(창 25:8-10). 이때부터 성령님께서는 “이삭”을 드높이기 시작하시는데, 이 점은 예표적으로 분명한 것을 계시하고 있다. 즉 구약 시대에는 주로 “아버지 하나님”(“아브라함”)께서 “이스라엘”(“사라”)을 다루시는 반면, “사라가 사라지고 난 후”에는(A.D. 70년에 이스라엘이 흩어짐)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하자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 이상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중심인물이 아니시고, 그 대신 아들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신약 시대에 주인공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딤전 2:4-6).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시대의 중심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고 계신다. 『나는 내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그것을 구하시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요 8:50).<br/><br/>2. 요셉 <br/>: 초림 – 교회 시대 – 대환란 – 재림 – 천년왕국<br/><br/>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가장 많은 예표를 지닌 인물은 단연 “요셉”이다. “요셉의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비롯하여 주님께서 이 교회 시대에 하고 계시는 일과, 교회 시대 뒤에 닥칠 대환란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까지 매우 풍성한 예표적 진리를 담고 있다. 클라렌스 라킨은 이 점에 관해 그의 저서 &lt;세대적 진리&gt;(p.279,282)에 다음과 같이 정리해 놓았다. (참고로, 각 사항의 끝에 “대괄호”나 “괄호”로 표기된 시대별 구분은 필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br/><br/>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듯이,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셨다. - [초림]<br/>2)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보내졌듯이, 예수님께서도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보내지셨다. - [초림]<br/>3)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듯이, 예수님께서도 유대인 형제들에게 배척당하셨다. - [초림]<br/>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은에 팔렸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은에 팔리셨다. - [초림]<br/>5) 요셉이 죄 없이 고소당하고 정죄당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죄 없이 고소당하고 정죄당하셨다. - [초림]<br/>6) 요셉이 감옥에 갇혔듯이, 예수님께서도 아리마대 부자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다. - [초림]<br/>7) 요셉이 감옥에서 풀려나와 파라오의 오른편에 앉게 되었듯이,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시어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다. - [초림]<br/>8) 보좌에 오른 요셉이 이집트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었듯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께서도 멸망해 가는 세상을 위한 “생명의 빵”이 되셨다. - [교회 시대]<br/>9) 요셉이 보좌에 오른 후 이방인 신부를 아내로 취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이방인 신부인 교회를 아내로 취하신다. - [교회 시대]<br/>10) 요셉이 그 아내를 얻은 후 그의 형제들에게 기근이 닥쳤고, 그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요셉을 찾아왔듯이, 예수님께서 그 신부(교회)를 데려가신 후 대환란이 닥칠 것이며 그때 그 형제들, 즉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돌이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 [대환란]<br/>11) 요셉이 처음에 그의 형제들을 알아보았으나 그 형제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초림 때 그분의 형제들을 알아보셨으나 그들은 그분을 알지 못했다. - (초림)<br/>12) 요셉의 형제들이 두 번째 왔을 때, 요셉을 알아보았듯이, 예수님께서도 두 번째 오실 때는 유대인들이 그분을 참으로 알아보게 될 것이다. - [재림]<br/>13) 요셉이 자신을 형제들에게 알리자 그들이 밖으로 나가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렸듯이,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면 그들은 세상을 향해 그분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인류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외칠 것이다. - [재림]<br/>14) 당시 요셉이 그 형제들과 가족들을 고센 땅에 정착시켰듯이,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을 다시 팔레스타인 땅에 살도록 해 주실 것이다. - [천년왕국] <br/><br/>세대주의는 한 사람의 생애에서도 예수님을 읽게 하는 위대한 진리이다! 세대주의를 멸시하면 결코 성경을 배울 수 없다. 항상 배워도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면(딤후 3:7), 교회와 신학교에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을 뿐이다.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24 Sep 2025 11:47:2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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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속적인 장들”과 세대적 진리 (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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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지난 호에서 우리는 “시편 22,23,24편”에 “초림(22편) - 교회 시대(23편) - 재림(24편)”의 세대적 진리가 담겨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시편 44,45,46,47편”에 세대적 진리가 담겨 있음을 알아볼 것인데, 구약성경에 자리 잡은 “시편”의 또 다른 골짜기에 군락하고 있는 “세대주의 백합화들”은 “대환란(44편) - 아마겟돈 전쟁 출전과 그 전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식(45편) - 아마겟돈 전쟁과 재림 이후의 상황(46편) - 천년왕국 통치(47편)”의 순서로, 즉 교회의 휴거 이후에 있을 일들을 세대주의적으로 배열하고 있다.<br/><br/>1. 시편 44편 - 대환란<br/><br/>시편 44편은, 다음 시편인 “45편”을 보면 셋째 하늘에서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이 치러지는데(시 45:8-15), 그 혼인식이 거행되는 동안 땅 위에서 대환란을 통과하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여 준다. “44편”은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인 “대환란”에 처한 유대인 환란 성도들의 간구로 시작되며, 그들은 과거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에서 일어난 이스라엘의 카나안 땅 정착이 주님의 은총으로 된 일이고(1-3절), 그 민족적 구속의 역사 속의 주님께서 지금 다시 구원을 베푸시면(4절) 『우리가 주를 통하여 우리 원수들을 누르고 주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들을 밟으리이다.』(5절)라고 기도한다. 그 원수들을 짓밟는 것은 『내 활』과 『내 칼』로 되는 것이 아니라(6절) 오직 주님께서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신 것이라고, 이미 그 일이 완료된 것처럼 확정적으로 말하는데(7절), 그렇기에 『우리가 온종일 하나님을 자랑하며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나이다. 셀라.』(8절)라고 승리의 주님을 찬양한다. <br/><br/>하지만 분위기는 갑자기 반전되어 다시 대환란의 암울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버리셨고 수치를 당하게 하셨으며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진군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원수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약탈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내어주셨고 이방 가운데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시고 그들의 값으로 주의 부유함을 늘리지 않으시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우리의 이웃들에게 비방거리로 만드시며 우리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이방 가운데서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머리를 내저음이 되게 하시나이다. 내 능욕이 계속해서 내 앞에 있으며 내 얼굴의 수치가 나를 덮었으니 이는 비방하고 모독하는 자의 음성 때문이요, 원수와 보복하는 자의 연고니이다』(9-16절). 이 모든 일들이 임했음에도 유대인 환란 성도들은 하나님을 잊지 않았고(17절), 주의 언약을 거짓되이 대하지 않았으며(17절), 그들의 마음과 발걸음이 주께로부터 돌아서지 않았고(18절),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지도 그들의 손을 이방신에게 뻗치지도 않았다(20절). 그럼에도 주를 위하여 온종일 죽임을 당하고 도살당할 양으로 여겨졌던 유대인 환란 성도들은 결국 구원(재림)해 주실 것을 간절히 간구한다. 『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소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소서』(23-26절).<br/><br/>2. 시편 45편 - 아마겟돈 전쟁 출전과 그 전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식 <br/><br/>시편 44편의 내용과 같이 “대환란”의 징계를 겪으면서도 주님을 잊지 않고 있는 백성의 간구를 들으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넓적다리에 칼을 차고 재림하신다. 『오 지극히 능하신 분이여, 당신의 칼을 당신의 영광과 당신의 위엄과 더불어 당신의 넓적다리에 차소서. 진리와 온유와 공의로 인하여 당신의 위엄으로 승자와 같이 타고 나가소서. 왕의 오른손이 두려운 일들을 왕께 가르치리이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들의 심장을 뚫으니 백성이 왕 아래 엎드러지나이다』(3-5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시는 이 아마겟돈 전쟁은 주님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다음 6절에서는 그 뒤 “영원으로 이어지는 천년왕국 통치”를 예언한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로운 홀이니이다.』 그러나 시편 45편의 이후 내용은 주님의 재림과 영원한 통치가 있기 전, 지상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대환란을 통과하는 동안 셋째 하늘에서 거행된 “어린양의 혼인식”을 묘사한다. 『당신의 모든 옷에서는 상아 궁전에서 나온 몰약과 알로에와 계피의 향내가 나며 그것들이 당신을 기쁘게 하였나이다. 왕의 궁녀들 가운데는 여러 왕들의 딸들이 있었으며 왕의 우편에는 오필의 금으로 단장한 왕비가 서 있었나이다... 왕의 딸이 안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나니 그녀의 옷은 금으로 짰도다. 그녀가 수놓은 옷을 입고 왕께로 인도될 것이요, 그녀를 따르는 그녀의 동료 처녀들도 왕께로 인도되리니 그들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되어 왕궁으로 들어가리이다』(8,9,13-15절).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에서 상아 궁전에서 나온 몰약과 알로에와 계피의 향내가 나는(8절) 이유는 재림 전에 셋째 하늘에서 어린양의 혼인식을 치르셨기(9절) 때문이다.<br/><br/>3. 시편 46편 - 아마겟돈 전쟁과 재림 이후의 상황<br/><br/>시편 45편에 이어지는 “46편”은 “재림”과 관련하여 앞선 45편의 부연설명이며, 거기서 상세히 다루지 않았던 아마겟돈 전쟁과 그 뒤 주님께서 지상에서 이방 가운데 높임을 받으실 일을 다룬다. 어린양의 혼인식 뒤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이방을 산산조각 내시고(6,8,9절), 그 후 하나님의 도성에 계시면서(4,5절) 이방 가운데 높임을 받으신다는(10절) 내용이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기술되어 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세대적 진리를 무시하는 이들에게는 성경의 이러한 구도가 그들로 하여금 세대적 진리를 거부하게 만든다. 하지만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진리를 깨닫는 성도들에게는 그와 같이 흩어져 있는 진리들의 퍼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<br/><br/>1 『이방이 격노하고 나라들이 요동하였으나 주께서 음성을 내시니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라. 셀라. 와서 주의 역사, 즉 그가 땅을 황폐케 하신 것을 보라. 그가 땅 끝까지 전쟁들을 그치게 하시나니 활을 꺾고 창을 두 동강내시며 병거를 불사르시는도다』(6-9절, 아마겟돈 전쟁).<br/><br/><br/>2 『강이 있으니, 그 시내들이 하나님의 도성,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막들의 성소를 기쁘게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니 그 도성이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그 도성을 이른 아침에 도우시리로다』(4,5절, 천년왕국). <br/><br/>3 『가만 있으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인 것을 알라. 내가 이방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리니 내가 지상에서 높임을 받으리라』(10절, 천년왕국에서 이방 가운데 높임을 받으시는 하나님). [천년왕국 때 이방인들에게 높임을 받으시는 내용은 구약성경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들에 주의 전의 산이 산들의 정상에 세워질 것이요, 그 산은 작은 산들 위에 높여지고 백성들이 그곳으로 몰려들리라. 많은 민족들이 와서 말하기를 “오라, 주의 산과 야곱의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자. 그가 우리에게 그의 길을 가르치시리라. 우리가 그의 길에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라』(미 4:1,2).]<br/><br/>4. 시편 47편 - 천년왕국 통치<br/><br/>대환란 끝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식과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을 다룬 45,46편 뒤에 나오는 “47편”은 그 첫 구절에서 『승리의 함성』(1절)이 들리고, 이방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신 『지극히 높으신 주』, 곧 『온 땅을 통치하시는 위대하신 왕』(2절)을 찬양한다. 즉 45,46편에 더하여 “재림”을 한 번 더 강조하는데, 주님의 재림은 이처럼 중요한 사건이다. 47편의 “세대주의적 압권”은 이 진리대로 인류 역사를 경영해 오신 그 “하나님”께서 마침내 솔로몬의 통치로 예표되던 『주의 보좌』(대상 29:23, 렘 3:17)에, 곧 “그분의 거룩하심의 보좌”에 “함성과 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올라가 좌정하신다는 내용에 있다! 『하나님께서 함성과 더불어 주께서 나팔 소리와 더불어 올라가셨도다. 하나님께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의 왕께 찬송하라,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시니 명철로 찬송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하심의 보좌에 앉으셨도다』(5-8절). 이 보좌에서의 통치는 영원으로 이어진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로운 홀이니이다』(시 45:6).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믿는 이 땅의 “세대주의자들”은 바로 이날을 사모한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서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수립하시고 『주의 보좌』에 앉아 백성들의 찬송을 들으시며 『온 땅의 왕』(시 47:7)과 『온 땅의 주』(수 3:11)와 『온 땅의 심판자』(창 18:25)로서 치리하실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8 Jul 2025 14:58:5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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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속적인 장들”과 세대적 진리 (5)</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C%97%B0%EC%86%8D%EC%A0%81%EC%9D%B8-%EC%9E%A5%EB%93%A4%EA%B3%BC-%EC%84%B8%EB%8C%80%EC%A0%81-%EC%A7%84%EB%A6%AC-5/</link>
<description><![CDATA[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나누어서 공부하라고 명령하셨으며(딤후 2:15), 그렇기에 성경은 그 자체에 “세대적 진리”가 내장되어 있다. 세대주의란 하나님께서 각 시대를 운영하시는 경륜, 곧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인데,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각 시대를 어떤 경영방침으로 다루시는가가 계시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원 시대 - (루시퍼의 반역으로 인한 우주적 심판과 재창조) - 양심 시대 - (대홍수 심판) - 인간 정부 시대 - 족장 시대 - 율법 시대 - (갈보리 십자가에서의 죄에 대한 심판) - 교회 시대 - (대환란의 심판) - 왕국 시대 - (큰 백보좌 심판) - 영원 시대.” 자세히 살펴보면 시대들의 분기점이 대체적으로 “죄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임을 알 수가 있다. 죄에 대한 큰 심판이 있고 나면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다루시는 “경륜”이 바뀌는 것이다.<br/><br/>시편에는 그와 같은 세대적 진리가 감춰져 있다. 150편의 시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세대적 진리”의 지표가 되는 시들이 연달아 기록되어 있다. 시편에서 발견되는 세대적 진리는 위의 모든 시대를 망라하기보다는 “초림부터 (영원으로 이어지는) 천년왕국까지”의 시대별 경륜을 보여 준다. 즉 “시편”이 기록된 “구약 시대” 이후에 있을 일들에 대한 “예언”으로, “(갈보리 십자가에서의 죄에 대한 심판) - 교회 시대 - (대환란의 심판) - 왕국 시대 - (큰 백보좌 심판) - 영원 시대”의 경륜이 마치 골짜기의 백합화들처럼 시편의 계곡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이다.<br/><br/>본 특강에서 살펴볼 부분은 “시편 22,23,24편”인데, 이 세 시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22편) - 교회 시대(23편) - 재림과 천년왕국(24편)”의 구도를 이룬다.<br/><br/>우선 “시편 22편”은 “초림 때의 갈보리 십자가”를 예언한다. 시편 22편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지 아니하시며 나의 신음하는 말들을 멀리하시나이까?』(1절)로 시작하면서 갈보리 십자가의 그 외침을(마 27:46) 듣게 할 뿐만 아니라, 6절의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들에게 멸시거리니이다.』라는 말씀은 “붉은 구더기”가 되어(막 9:44)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게 될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음을 보여 준다. 또한 7,8절의 『나를 보는 자는 다 조롱하며 비웃나니 그들이 입술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그가 주께서 자기를 구하실 줄 신뢰하였도다. 주께서 그를 기뻐하시니 그를 구하시게 하라.” 하나이다.』라는 말씀은, 『그가 다른 사람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면 지금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하라.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으리라.』(마 27:42)라고 말한 갈보리 십자가 아래의 그 죄인들을 보여 준다. 그리고 『개들이 나를 에워싸고 악인의 무리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그들이 내 손과 내 발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들을 셀 수 있으니 그들이 나를 보며 쳐다보나이다. 그들이 그들 가운데서 내 겉옷을 나누고 내 속옷을 제비뽑나이다.』(16-18절)라는 말씀은 갈보리의 그 처참한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br/><br/>이어지는 “시편 23편”에서는 위의 “초림의 십자가”를 뒤로하고 그 후에 전개되는 “교회 시대”를 묘사하며, 자신의 십자가 희생으로 구원한 양을 인도하는 『선한 목자』(요 10:11)께서 등장하신다. 즉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1절)로 시작되는 시편 23편은, 양에게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에서의 풍성한 삶을 선물하시는 목자(1-3절)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인 이 세상에서 동행하시는 목자(4절), 마귀들과의 영적 전쟁 중에 원수들 앞에서 식탁을 마련해 주시며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우리를 성별시켜 주시는 목자를 보여 준다(5절). 그리고 우리의 지상 삶이 다할 때까지 그 선하심과 자비하심으로 끝까지 동행하시고, 우리를 “미래에”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목자를 또한 알 수 있게 한다. 『진실로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내 생애의 모든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전에 영원히 거하리로다』(6절).<br/><br/>시편 24편은 “재림”에 관한 예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앞에서 다룬 22,23편과 함께 세 시편들을 연이어서 해석해 보면 “초림(22편) – 교회 시대(23편) – 재림(24편)”의 체계를 읽을 수 있다. 22편과 23편에 밀려 그리 익숙지 않은 24편을 재림과 관련해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br/><br/>(1)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은 주의 것이요,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자들도 그러하도다. 이는 그가 바다들 위에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큰 물들 위에 그것을 세우셨음이라』(1,2절). 시편 24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다루는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게 첫 절부터 주님의 왕국 통치를 노래하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자들이 주님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기를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분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고 하더라』(계 11:15).<br/><br/>(2) 『주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니 그는 헛된 것에 자기 혼을 들어올리지 아니하며 거짓되이 맹세하지 아니하였도다』(3,4절). 본문 3절의 『주의 산』은 천년왕국의 통치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세워지실 곳이다.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 왕을 세웠도다』(시 2:6). 3절의 『그의 거룩한 곳』은 시편 15:1에서 언급된 바로 그 『거룩한 산』이다. 『주여, 주의 장막에 누가 거하며 주의 거룩한 산에 누가 거하리이까?』(시 15:1) 또한 본문 4절에는 대환란 때에 “믿음”과 “행위”로 받는 구원이 나타난다(계 14:12). 그때 『깨끗한 손』(4절, 행위)과 『순결한 마음』(4절, 믿음)을 지닌 환란성도들은 『헛된 것』(4절), 곧 『짐승의 형상』(계 13:15)에게 혼의 소망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대다수의 유대인들과 달리 그 짐승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겠다고 맹세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대환란이 끝나고 천년왕국 때 『주의 산』(3절)에 올라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3절)가 바로 그 유대인 환란성도들인 것이다.<br/><br/>(3) 『그는 주로부터 복을 받고 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으리라. 이는 그를 찾는 자들의 세대니, 오 야곱이여, 네 얼굴을 찾는 자라. 셀라』(5,6절). 이것은 본문 3,4절의 유대인 환란성도들이 대환란을 거치며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는 것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이 구절은 대환란을 믿음과 행위로 끝까지 견뎌 낸 유대인 환란성도들이 그들의 민족적인 죄악을 용서받고(사 40:1,2) 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게 될 것을 보여 준다. 『주께서 우리의 의를 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주 우리의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자』(렘 51:10). 신약 교회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지만(롬 3:22), 대환란 때에는 믿음에 행위가 끝까지 뒤따라야 하나님께 의를 받을 수 있다. 그들에게 의를 주실 『구원의 하나님』(5절)께서는 『주 우리의 의』(렘 23:6)라고 불리신다. 『그를 찾는 자들의 세대』(6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세대인 유대인 환란성도들이며, 6절 끝의 『셀라』는 그것이 “재림” 문맥임을 보여 준다. 다음에 이어지는 7절은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기 시작한다.<br/><br/>(4) 『오 너희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영원한 문들아, 너희는 들어올려질지라. 그리하면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시리라』(7절). 본 시편의 기자인 다윗은 7절에 와서야 재림을 노래한다. 왕의 대관식을 위해 한 문을 통해 들어오시는 『영광의 왕』(7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재림하시는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동편 대문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그의 발이 그 날에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서시리니』(슼 14:4). 『그 전망이 동쪽을 향한 대문 길을 통하여 주의 영광이 그 전으로 들어오더니』(겔 43:4). 『영광의 왕』(7절)께서는 초림 때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셨고, 그날 밤 예루살렘 동편 케드론 시내를 건너 그곳 동산에 계실 때 횃불과 무기를 든 무리들에게 붙잡히셨다(요 18:1-12). 그날 예루살렘 동편 대문으로 “나가셨던” 주님께서는 이제 재림 때 그 동편 대문을 통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재림하시어 발로 딛고 선 올리브 산을 떠나(슼 14:1-6) 케드론 시내를 다시 건너(요 18:1)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것이다.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가셨던(슼 9:9, 창 49:11) 그 길을, 재림 때에는 “흰 말”을 타고 가실 것이다(계 19:11; 14:19,20). 그때 주님의 옷은 주님을 대적한 죄인들의 피로 흠뻑 젖어 있을 것이다(사 63:1-6, 계 14:19,20).<br/><br/>(5)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강하고 능력 있으신 주시며 전쟁에 능력 있으신 주시로다』(8절). 8절은 『전사』(출 15:3)이신 주님께서 『영광의 왕』 곧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서 재림하실 때 치르실 아마겟돈 전쟁을 보여 준다.<br/><br/>(6) 『오 너희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영원한 문들아, 그것들을 들라. 그리하면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시리라』(9절).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실 이 영원한 문은 예루살렘 동편 대문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문”이다.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는데 내가 들은 첫 음성은 나팔 소리 같았으며,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리 올라오라. 내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네게 보여 주리라.” 하더라』(계 4:1). 이 하늘의 문은 『영광의 왕』께서 십자가로 마귀와 그의 권세를 굴복시키신 후 승천하시면서, 승리하신 분답게 지하 세계의 낙원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엡 4:8) 셋째 하늘로 데리고 들어가신 그 문이다. 사도 요한은 이 하늘의 문을 통해서 휴거되었다. 교회의 예표인 그가 그 문을 통해 올라갔듯이, 교회는 그 문을 통해 휴거될 것이다(살전 4:16,17).<br/><br/>(7)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만군의 주시니 그는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10절). 재림하시는 『영광의 왕』은 또한 『만군의 주』라고 불리신다. 『왕』과 『주』로서 불리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딤전 6:15)시라고 불리시며,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라고 불리시는, 재림하실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br/><br/>이처럼 시편 24편은 “재림”을 예언하는 위대한 시이다. 이 시편을 22,23편과 연이어서 읽으면 “초림(22편) - 교회 시대(23편) - 재림(24편)”의 세대적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7 Jun 2025 10:14:3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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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속적인 장들”과 세대적 진리 (4)</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C%97%B0%EC%86%8D%EC%A0%81%EC%9D%B8-%EC%9E%A5%EB%93%A4%EA%B3%BC-%EC%84%B8%EB%8C%80%EC%A0%81-%EC%A7%84%EB%A6%AC-4/</link>
<description><![CDATA[“세대적 진리”가 발견되는 성경의 연속적인 장들에는 “마태복음 12,13,14장”이 있다. 마태복음의 이 세 장들은 “초림 - 교회 시대 - 대환란 - 재림”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는, 세대주의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장들이다. 본 글에서는 이 위대한 진리를 지난 호에 이어 계속 논의해 가고자 한다.<br/><br/>2. 마태복음 13장 : 천국의 신비들을 통해 계시된 “교회 시대” (2)<br/><br/>4) “네 번째 신비”와 “네 번째 교회”<br/><br/>네 번째 신비(마 13:33)<br/>누룩의 비유<br/>“어떤 여인”이 넣은 누룩, 곧 “거짓 교리”로 가루 서 말, 즉 “기독교계”가 부풀어 오름<br/><br/>네 번째 교회(계 2:18-29)<br/>두아티라 교회(A.D. 500-1000)<br/>이세벨의 거짓 교리가 교회 내에서 가르쳐짐<br/>(“계시록의 창녀 교회”의 영향력 확대)<br/><br/>1 “네 번째 신비”에서 천국은 “어떤 여인”이 가져다가 “가루 서 말”에 숨겨 넣어,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 이 점은 “계시록의 창녀”가 그녀의 “거짓 교리”를 “로마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와 개신교”(가루 서 말, three measures of meal)에 숨겨 넣어 “현 기독교계”(가루 서 말 전체)가 결국 로마카톨릭 체계로 회귀할 것을 보여 준다. 즉 기독교계 전체가 “카톨릭의 누룩”으로 부푸는 것이다.<br/><br/>2 “네 번째 신비”인 “누룩의 비유”에 해당하는 “두아티라 교회 기간”(A.D. 500-1000)은 중세 암흑시대로서, 교황 제도에 입각한 로마카톨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 카톨릭에게 박해당하는 것이 특징이다.<br/><br/>3 “누룩의 비유”와 “두아티라 교회 기간”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br/><br/>누룩의 비유<br/>“어떤 여인” 등장<br/>어떤 여인이 숨겨 넣는 “누룩”(거짓 교리)<br/>계시록의 창녀가 용납되어 카톨릭의 거짓 교리가 전체 기독교계에 침투한다.<br/>계시록의 창녀가 “믿음을 공언하는” 세 그룹, 즉 로마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개신교에 누룩을 숨겨 넣는다.<br/><br/>두아티라 교회<br/>“이세벨” 등장<br/>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이 가르치는 “거짓 교리”(계 2:20,24)<br/>이세벨을 용납하여 그녀의 거짓 교리가 교회 내에 침투한다.<br/>이세벨이 “믿음을 공언하는”(계 2:19) 두아티라 교회에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<br/><br/>4 “세 번째 신비”(겨자씨의 비유)와 “네 번째 신비”(누룩의 비유)는 로마카톨릭의 형성과 전체 기독교계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다룬다(“세 번째 신비”에 대해서는 본지 398호 참고). 퍼가모 교회와 두아티라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br/><br/>5) “다섯 번째 신비”와 “다섯 번째 교회”<br/><br/>다섯 번째 신비(마 13:44)<br/>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<br/>세상에 흩어져서 박해당하는 “이스라엘”<br/><br/><br/>다섯 번째 교회(계 3:1-6)<br/>사데 교회(A.D. 1000-1500)<br/>십자군 전쟁과 흑사병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함<br/><br/>1 천국은 “밭”(세상)에 “숨겨진 보물”(이스라엘, 출 19:5의 “독특한 보물”)과 같은데, “어떤 사람”(인자)이 그것을 찾은 후에 “다시 숨기고”(세상에 숨김) 그 기쁨으로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십자가) “그 밭을 산다”(재림).<br/>2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독특한 보물”을 찾으셨으나(출 19:5)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부한 이후로 현재 이 보물은 “세상”(밭)에 숨겨져 있다(『다시 숨기고』 - 마 13:44).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세상 속에 숨기셔서 세상 가운데 흩으심으로써 그들이 “박해”를 받도록 허락하셨다.<br/>3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라는 말씀은 인자께서 십자가 사건 이후로 세상을 송두리째 사시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세상을 송두리째 사시는 날은 “재림” 때로서, 이는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기를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분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고 하더라』(계 11:15). 이때 이스라엘은 세상 속에서의 극심한 고난에서 벗어나 회복된다.<br/>4 “다섯 번째 신비”인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에 해당하는 “사데 교회 기간”(A.D. 1000-1500)은 중세 암흑시대가 최절정에 달하여 교회가 극심한 박해를 받았던 기간이다. 사데 교회 기간은 “유대인들”의 고난과 박해가 전례 없이 극에 달했던 기간이기도 한데, 말하자면 십자군 전쟁(11세기 - 13세기 말) 이후 유럽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고, “14세기”(1347년부터 약 5년간)의 “흑사병” 창궐로 유대인들을 희생양 삼아 유럽에서 몰살시켰다.<br/>5 “독특한 보물”(이스라엘)이 밭(세상)에 “숨겨져”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유대적 요소”가 “숨겨진” 두 교회 기간(사데 교회와 라오디케아 교회 기간)에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다는 점과일맥상통한다.<br/><br/><br/>일곱 교회 기간 [에베소 교회] 유대적 요소 [『자칭 사도』(계 2:2)]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<br/>일곱 교회 기간 [스머나 교회] 유대적 요소 [『자칭 유대인』(계 2:9)]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<br/>일곱 교회 기간 [퍼가모 교회] 유대적 요소 [『이스라엘 자손들』(계 2:14)]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<br/>일곱 교회 기간 [두아티라 교회] 유대적 요소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계 2:20)]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<br/>일곱 교회 기간 [사데 교회 A.D. 1000-1500] 유대적 요소 [(숨겨짐)]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 [십자군 전쟁(11세기 - 13세기 말) 이후 유럽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함. “14세기”(1347년부터 약 5년간)의 “흑사병” 창궐로 유대인들을 희생양 삼아 유럽에서 몰살시킴.]<br/>일곱 교회 기간 [필라델피아 교회] 유대적 요소 [『자칭 유대인』(계 3:9)]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<br/>일곱 교회 기간 [라오디케아 교회 A.D. 1900-현재] 유대적 요소 [(숨겨짐)]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 [제2차 세계대전 때(1939-1945) 유대인들이 히틀러에게 6백만 명 이상 몰살당함. 라오디케아 교회는 대환란으로들어갈 교회이며, 이 대환란 때 유대인들에 대한 최후의 박해가 예고됨(마 24장, 계 11,12장).]<br/><br/>[사데 교회 기간(A.D. 1000-1500)에는 요한계시록에서 “유대적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라오디케아 교회 기간(A.D. 1900-현재)도 마찬가지다. 이 일곱 교회와 관련된 표가 부가적으로 강조하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숨기신”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박해를 당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성별되어 하나님 편에 서야 할 민족이지 이 세상과 뒤섞여서 살아도 되는 민족이 아니다. 『너희 마음속에 들어온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방인같이 되고 그 나라들의 족속들같이 되어 나무와 돌을 섬기리라.” 함이라』(겔 20:32). 이 유대인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항상 이방 민족들과 같이 되고자 결심하는” 데 있다(삼상 8:5, 신 17:14).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지난 19세기 동안 그 민족에게 죽음과 멸망을 가져왔을 뿐이다. 마태복음의 “다섯 번째 신비”와 관련된 진리는 “이스라엘은 세상에 숨겨지면 안 되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오히려 세상에서 성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독특한 백성이 됨으로써 민족들의 머리로서 우뚝 솟아 있어야 할 민족이다(신 26:16-19).]<br/><br/>6) “여섯 번째 신비”와 “여섯 번째 교회”<br/><br/>여섯 번째 신비(마 13:45,46)<br/>진주의 비유<br/>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교회<br/><br/>여섯 번째 교회(계 3:7-13)<br/>필라델피아 교회(A.D. 1500-1900)<br/>십자가의 복음을 전 세계로 전파했던 교회<br/><br/>1 천국은 “좋은 진주”(한 몸으로 된 유기체 = 교회)를 찾는 “상인”(예수 그리스도)과 같은데, 그가 매우 값진 “진주” 하나를 찾아,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것을 샀다”(십자가). <br/>2 “여섯 번째 신비”인 “진주의 비유”에 해당하는 “필라델피아 교회 기간”(A.D. 1500-1900)은 바른 성경인 &lt;킹제임스성경&gt;(1611)을 수호하고, 또 왕성한 선교 활동을 통해 전 세계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했던 “열린 문”(계 3:8)의 교회 시대이다.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계 3:8). 이 신실한 교회의 기간은 신약교회사에서 종교 개혁과 부흥을 이룩한 시대였다. <br/>3 “필라델피아 교회 기간”은 두 번째 교회 기간인 “스머나 교회”에서 언급된 “자칭 유대인”이 교회사를 관통해서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계 3:9). 이러한 사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리신 공로로 사신 “진주”로서 온전하다고 평가되는 교회가 바로 “필라델피아 교회”이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말씀을 지켰고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한 이 교회 기간은 교회사에서 가장 교회다운 교회를 보여 준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을 통해 교회를 사셨다는 “진주의 비유”와 매우 잘 어울리는 기간이다.<br/><br/>7) “일곱 번째 신비”와 “일곱 번째 교회”<br/><br/>일곱 번째 신비(마 13:47-50)<br/>그물의 비유<br/>현 세상 체계의 끝(“대환란”의 끝)에 악인들을 의인들로부터 분리하여 불못에 던져 넣음<br/><br/>일곱 번째 교회(계 3:14-22)<br/>라오디케아 교회(A.D. 1900-현재)<br/>참된 교회가 휴거된 후 “대환란”으로 들어가게 될 배교한 교회들<br/><br/>1 천국은 갖가지 종류의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바다에 던져 놓은 “그물”과 같은데,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물고기”(의인)는 그릇에 담고 “나쁜 물고기”(악인)는 내어 버린다. “세상의 끝,” 즉 “대환란의 끝”(마 24:3,6,13,14,21)에도 그러한데, 천사들이 나아와서 악인들을 의인들로부터 가려내어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질 것이고, 악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마 13:49,50). 이것이 “그물의 비유”의 결론이다.<br/>2 “일곱 번째 신비”인 “그물의 비유”는 “현 세상 체계의 끝”에 있을 사건을 다룬다. 주님께서는 “대환란 끝”에 지상 재림하셔서 이 땅에 남아 있는 “환란 끝의 사람들”을 위와 같은 모습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br/>3 이 “그물의 비유”에 해당하는 것이 일곱 번째 교회 기간인 “라오디케아 교회 기간”(A.D. 1900-현재)이다. 이는 이 기간의 배교한 교회들은 참된 교회가 휴거될 때 함께 들림받지 못하고 모두 “대환란”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br/>4 “대환란”에 들어간 “라오디케아 시대의 교인들” 중에는 대재앙으로 죽지 않고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대환란의 끝”까지 이를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악인들로 불리며 심판받을 것이고, 천사들에 의해 불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질 것이다. <br/><br/>3. 마태복음 14장 : 대환란(“엘리야”의 목베임, 초자연적인 부양) - 재림<br/><br/>1) “초림” 때 거부당하신 왕을 계시하는 “12장,” 천국의 신비들로 “교회 시대”의 일곱 교회를 계시하는 “13장”에 이어, “14장”에서는 “대환란 – 재림”이 계시된다. <br/>2) 마태복음 “14장”에는 처음부터 영주 “헤롯”이 등장하는데, 이 자는 “적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그가 “14장”에서 저지른 일은 자신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의 요구에 따라 “침례인 요한의 목을 벤 일”이었다(마 14:6-11). “침례인 요한”은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그의 탄생이 고지될 때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주의 길을 예비할 인물로 제시되었다(눅 1: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요한”을 가리켜서 『만일 너희가 그것을 받을 의향만 있다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가 바로 그 사람[“침례인 요한”]이니라.』(마 11:14)라고 하셨다.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지닌 “침례인 요한”은, 만일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으로 영접했더라면 말라키 4:5,6에서 오기로 예언되었던 “엘리야”가 될 수도 있었다. 바로 이 “요한”을 “헤롯”이 “목베어 죽였다”는 사실은,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두 증인 가운데 하나인 “엘리야”를 “적그리스도”가 “목베어 죽이는” 일을 예표한다. 마태복음 “14장”의 “헤롯”은 바로 이런 면에서 “대환란” 때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br/>3) 마태복음 “14장”은 침례인 요한을 목베어 죽인 사건에 이어 주님께서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등장한다(마 14:13-21). 이 “초자연적인 부양”은 주님께서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피해 셀라 페트라로 피신할(계 12:13,14)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출애굽 때처럼(미 7:14,15) 만나로 “초자연적으로” 먹이실 것을 예표한다.<br/>4) 마태복음 “14장”은 “대환란”을 예표하는 “초자연적인 부양”에 이어 파도에 시달리며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유대인”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걸어서”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기술한다(마 14:22-34). 이 이야기는 “대환란”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유대인의 남은 자들”에게 주님께서 대환란 끝에 셋째 하늘의 거대한 물층인 “깊음”을 지나서 다가오실 “재림”을 예표한다.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9 May 2025 10:01: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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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속적인 장들”과 세대적 진리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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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세대적 진리”가 발견되는 성경의 연속적인 장들에는 “마태복음 12,13,14장”이 있다. 마태복음의 이 세 장들은 “초림 - 교회 시대 - 대환란 - 재림”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는, 세대주의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장들이다.<br/><br/>1. 마태복음 12장 : “거부당한 왕”과 “십자가” - 초림<br/><br/>1) 마태복음 12장은 “1-8절”에서 “거부당한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다. 주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시장하여 이삭을 따먹자 이를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다윗과 그의 일행”이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차려 놓은 빵을 먹었다는 점을 예로 드시면서, 다윗과 같이 “거부당한 왕”이신 주님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셨다. 이때 예수님과 다윗의 공통점은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거부당하여 아직 보좌를 차지하지 않은 왕이라는 것이었다.<br/><br/>2) 마태복음 12장의 두 번째 사건(“9-14절”) 역시 “고소”(10절)와 “죽음”(14절)의 위험 속에 계신 “거부당한 왕”을 보여 주는데,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안식일”에 치유해 주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은혜와 진리”가 장차 “율법”을 대체할 것을 보여 주셨다(요 1:17).<br/><br/>3) “21절”(『또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을 신뢰하리라.』)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왕을 거부한 결과 이방인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뢰할 “교회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한다.<br/><br/>4) “38-40절”에서는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최후의 표적인 “요나의 표적”을 제시하시면서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40절)라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셨다. 이것은 “왕께서 거부당하신 결과”이다.<br/><br/>5) “43-45절”에서는 어떤 사람에게서 나왔던 더러운 영이 그 사람, 곧 그 더러운 영의 집이 『비어 있고, 소제되고, 단장』된 것을 보고서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일곱 영을 데리고 들어가 거기서 산 것을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었으며, “초림” 때의 악한 세대, 곧 이스라엘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3년 반 공생애 기간 동안 주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 이스라엘이 결국 자신들의 왕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이전보다 더 많은 마귀들로 채워질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실제로 백성들로부터 마귀들을 쫓아내며 그들을 정결케 하셨지만, 정결케 된 자신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었다. <br/><br/>2. 마태복음 13장 : 천국의 신비들을 통해 계시된 “교회 시대” (1)<br/><br/>마태복음은 12장을 종점으로 천국이 거부되고, 거부된 천국이 “13장”에서 신비의 형태로 전개된다. 그것을 “천국의 신비들”이라고 부르며, 그 신비들에 “거부되어 감추어진 천국(Kingdom of Heaven)”이 계시된다. 그 왕국(Kingdom)은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드러나는 세대가 올 때까지, 즉 재림 때까지 “2,000년 동안”(교회 시대)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형태”로 주어지게 된다. 주님께서 가져오시려고 했던 정상적인 왕국이 아닌 “다른 형태의 왕국”으로 주어지는데, 그것을 “기독교계”(Christendom)라고 부른다. 따라서 마태복음 13장의 “일곱 신비”가 2,000년 교회 시대의 “기독교계”를 계시한다면, 그 “교회 시대의 행로”를 기술하는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와 마태복음의 “일곱 신비”는 그 각각이 짝이 맞아야 함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거부당한 왕”과 그분의 “십자가”를 계시했다면, 이어지는 13장에서는 “천국의 일곱 신비들”을 통해 초림의 십자가 이후에 전개될 “교회 시대”가 계시된다. <br/><br/>1) “첫 번째 신비”와 “첫 번째 교회”<br/><br/>첫 번째 신비 [마 13:3-9(비유),18-23(해석)] <br/>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말씀”의 씨가 뿌려져 열매를 맺음<br/><br/><br/>첫 번째 교회(계 2:1-7)<br/>에베소 교회(A.D. 30-100)<br/>“신약성경”을 기록하고 전파하기 시작한 기간<br/><br/>1. “첫 번째 신비”는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씨 뿌리는 자”)께서 뿌리신 “왕국의 말씀”(마 13:19)에 대한 유대인들의 마음 상태와 그 열매를 네 가지 유형으로 설명한다.<br/><br/>2.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마가복음(4장)과 누가복음(8장)의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에도 등장하는 비유로서 “교회 시대”의 은혜의 복음에도 적용할 수가 있다. 뿌려진 씨앗이 마태복음에서는 “왕국의 말씀”(19절)이라고 해석되기에 마태복음은 “천국의 신비”로서 제시될 수밖에 없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씨앗이 각각 “말씀”(막 4:14)과 “하나님의 말씀”(눅 8:11)으로 기술되기 때문에 이것은 교회 시대에 전파되는 “은혜의 복음”으로도 적용할 수가 있다.<br/><br/>3.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이 비유가 적용되는 기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에 은혜의 복음을 전파했던 “열두 사도들”의 활동 시기이다. 사도 요한의 사역을 끝으로 본다면 A.D. 90년에서 넉넉잡아 100년까지 잡을 수 있는 기간으로, 천국의 일곱 신비 중 첫 번째 신비인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전체 교회 시대에서 A.D. 30-90년에 해당되는 “에베소 교회”에 적용될 수 있다. <br/><br/>4, 일곱 신비 중 “첫 번째 신비”는 “씨”(말씀)가 뿌려진다는 것이 그 특징인데,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 기간 역시 사도들에 의해 “말씀”(신약성경)이 기록되고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첫 번째 교회 기간은 첫 번째 신비인 “씨 뿌리는 자의 비유”처럼 “말씀의 씨가 열심히 기록되고 전파되는 시기”였다. <br/><br/>2) “두 번째 신비”와 “두 번째 교회”<br/><br/><br/>두 번째 신비[마 13:24-30(비유),36-43(해석)]<br/>밭의 독보리의 비유<br/>곡식 vs. 독보리<br/><br/><br/>두 번째 교회(계 2:8-11)<br/>스머나 교회(A.D. 90-325)<br/>유대인 vs. 자칭 유대인<br/><br/>1.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세상)에 뿌린 사람(인자)과 같은데,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그의 원수(마귀)가 와서 곡식(왕국의 자녀들) 사이에 독보리들(악한 자의 자녀들)을 뿌리고 가 버리니 싹이 나고 이삭이 패일 때에 독보리들도 나오게 된다. 밭의 주인은 “그 독보리들을 뽑아 한데 모으면 어떻겠느냐”는 종들의 질문에, 독보리들을 한데 모으다가 곡식까지 함께 뽑으면 안 되므로, 추수(세상의 끝 = 대환란의 끝)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 주인 자신이 추수꾼들(천사들)에게 말하여, “독보리들”을 먼저 모아서 불사르기 위해 단으로 묶고, “곡식”은 주인의 곳간(아버지의 왕국 = 천년왕국)으로 모아들이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br/><br/>2. 마태복음 13장의 “두 번째 신비”에 등장하는 “왕국의 자녀들”은 기본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조상으로 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마 8:11,12). 구약 시대부터 줄곧 언급되어 온 그 “왕국”의 자녀들은 “유대인들”이다.<br/><br/>3. “곡식,” 즉 “왕국의 자녀들”(유대인들)과 구분이 잘 안 되는 “독보리”를 언급한 것이 두 번째 신비의 특징이다. 이 신비와 영적으로,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스머나 교회 기간”(A.D. 90-325)에 이 “유사 곡식”인 독보리 같은 “자칭 유대인들”이 등장한다. 『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계 2:9). 이 “자칭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물리적인 이스라엘 민족과 영원히 관계를 끊으셨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들이 그들을 대신하는 참된 “유대인들”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성경에 무지하면 그들에게 속아 그들과 진짜 유대인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들의 주장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유대인(롬 2장)이기 때문에 육적으로도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영원히 관계를 끊으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을 대신하고,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은 같다는 것인즉, 이것이 곧 비성경적인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 신학의 시작이다.<br/><br/>3) “세 번째 신비”와 “세 번째 교회”<br/><br/>세 번째 신비(마 13:31,32)<br/>겨자씨의 비유<br/>거짓 믿음의 씨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시작하는 “로마카톨릭”<br/><br/>세 번째 교회(계 2:12-17)<br/>퍼가모 교회(A.D. 325-500)<br/>A.D. 325년,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으로 “로마카톨릭”이 준비되고 형성되는 기간<br/><br/>1. 천국은 어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다. 겨자씨는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지만, 그것이 자라나면 푸성귀 중에서 가장 커지고, 이후에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마귀들)이 와서 그 가지들에 깃들이게 된다. <br/><br/>2. 마태복음 13장의 “겨자씨”는 비정상적인 나쁜 씨이다. 왜냐하면 “겨자씨”라면 푸성귀와 같은 나물로 자라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자라나 “나무”가 되었다.<br/><br/>3. “겨자씨”는 기본적으로 “믿음”을 상징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마 17:20). 이러한 “겨자씨”가 자라서 비정상적으로 커진 “나무”가 되었다면 그 “겨자씨”는 비정상적인 씨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겨자씨의 비유”에서 “겨자씨”는 “비정상적인 믿음”을 나타낸다.<br/><br/>4. 이 비유에서 비정상적으로 자라난 “나무”는 “공중의 새들”(마귀들)이 거처를 삼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의 유형이다. 이 점을 적그리스도의 예표인 느부캇넷살이 “공중의 새들”이 깃든 “나무”에 비유되었던 점을 통해 알 수가 있다. 『왕[바빌론의 느부캇넷살]께서 보신 그 나무[느부캇넷살이 꿈과 환상 가운데서 본, 하늘과 온 땅의 끝까지 이른 큰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게 되고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았는데 그 모양은 온 땅에 이르렀고 그의 잎사귀들은 아름다우며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을 위한 식량이 되며 들의 짐승들이 그 아래 거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들에 거처를 삼았나이다. 오 왕이여, 그것[나무]은 왕이시오니, 곧 왕께서 자라서 견고해지심이라. 이는 왕의 위대하심이 자라서 하늘에 닿고 왕의 통치권이 땅 끝까지 미침이니이다[적그리스도의 왕국의 유형]』(단 4:20-22).<br/><br/>5. 겨자씨가 비정상적으로 자라서 결국 공중의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되었다는 것은, 이 교회 시대에 “거짓 믿음”으로 비정상적으로 성장하여 “공중의 새들”(마귀들)이 깃들어 있는 “로마카톨릭”을 보여 준다. 『그가 큰 음성으로 힘있게 외쳐 말하기를 “큰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마귀들의 거처가 되었고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이요, 모든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이로다』(계 18:2). “마귀들”이 깃들어 있는 이 “비정상적인 나무” 교회는 “느부캇넷살의 나무”가 예표하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의 토대가 되는 교회이다. <br/><br/>6. “세 번째 교회” 시대인 “퍼가모 교회 기간”(A.D. 325-500)은 A.D. 325년에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한 기간으로, “숱한 결혼”을 의미하는 “퍼가모”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교회가 세상과 연합하여 숱한 음행을 저지르기 시작함으로써 “로마카톨릭”이 준비되고 형성되는 기간이다. 이 점은 “세 번째 신비”(겨자씨의 비유)가 거짓 믿음의 씨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시작하는 “로마카톨릭”을 보여 준다는 점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br/><br/>7. 겨자씨 비유의 “겨자씨”가 “믿음”을 상징하듯이, “퍼가모 교회”에서도 “믿음”이 강조된다. 『네가 나의 이름을 굳게 붙들어서 심지어는 나의 신실한 순교자 안티파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하던 그 날들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여기서 주의할 것은, “세 번째 교회”인 퍼가모 교회에서는 『나의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거스르는 “거짓 믿음” 또한 활보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발라암의 교리”(계 2:14, 우상 숭배)와 “니콜라파의 교리”(계 2:15, 성직자 계급 제도)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겨자씨와 같은 “거짓 믿음”이 자라나서 “로마카톨릭”이 됨으로써 적그리스도의 왕국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30 Apr 2025 15:50:2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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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속적인 장들”과 세대적 진리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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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성경의 연속적인 장들에서는 “세대적 진리”가 발견되는데, “이사야 26,27장”이 그러하다. 이사야 26,27장은 각 장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각각 “대환란”과 “재림”을 예언하는 장들이다. 그러나 26장을 15절부터 본다면 “교회 시대”의 이스라엘과 그들이 그 뒤에 겪을 “대환란”과 “환란 후 휴거,” 그리고 “재림”을 읽을 수 있으며, 재림에 관한 내용은 27장으로 이어져서 그 장 전체에서 다루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내용을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br/><br/>이사야 26,27장 <br/>: 교회 시대(이스라엘) - 대환란 - 환란 후 휴거 - 재림<br/><br/>1. 이사야 26:15 ▶ 교회 시대(이스라엘)<br/><br/>『주께서 그 민족을 증대케 하셨나이다. 오 주여, 주께서 그 민족을 증대케 하셨나이다. 주께서 영화롭게 되셨으며 주께서 그 민족을 땅의 모든 끝까지 멀리 옮기셨나이다』(사 26:15).<br/>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증대케 하셨지만 그 민족을 땅의 모든 끝까지 멀리 옮겨 버리신 때는 “교회 시대”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현실이다. 그들이 교회 시대에 겪는 증대와 고난은 이사야 9:3에서도 다루고 있다. 『주께서 그 민족을 번성케 하셨으나 그 즐거움은 늘리지 아니하셨나이다. 그들이 주 앞에서 추수하는 기쁨과 사람들이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같이 즐거워하니』. 이 구절 역시 한 절에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케 하셨으나 그 즐거움을 늘리지 않으신 것은 그 민족이 전 세계로 흩어져 개처럼 죽어 가던 교회 시대를 다루고, 그 민족이 주 앞에서 추수하는 기쁨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재림 때를 다룬다(슼 14:14). 그러나 변개된 성경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케 하셨으나 그 즐거움은 늘리지 아니하셨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여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한글개역성경)라고 바꿔 놓았다. 소위 “학자”란 자들이 그 구절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한글개역성경처럼 바꿔 버린 것이다. 변개된 성경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즐거움”을 늘리셨다고 해 놓았다. <br/><br/>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은, 이사야 9:3에 두 시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케 하셨으나 그들의 즐거움을 늘리지는 아니하신 때는 “교회 시대”이다. 지난 신약교회사 2,000년 동안 유대인들은 번성하면서도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자기 땅도 없이 1,900년 가까이 전 세계를 방황했으며, 히틀러에게 600만 명이나 살해당했고, 지금도 모슬렘들에게 둘러싸여 각종 테러와 전쟁의 위협 속에 고통을 겪고 있다. 둘째, 이사야 9:3의 후반부는 “재림” 때를 가리킨다. 『그들이 주 앞에서 추수하는 기쁨과 사람들이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같이 즐거워하니』라는 말씀은 재림 때 있을 탈취물로 인한 기쁨을 예언한다. 『내가 그들에게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으리니, 이는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또 그들은 전에 번성하였던 것처럼 번성하리라...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울 것이요, 에워싼 모든 이방의 재물, 곧 금과 은과 의복이 지극히 풍부하게 모아지리라』(슼 10:8; 14:14). 성경 변개자들은 이사야 9:3에 두 시대가 들어 있다는 점을 몰랐다.<br/><br/>2. 이사야 26:16-18 ▶ 대환란 <br/><br/>『[16] 주여, 그들이 고난 중에[야곱의 고난의 때, 렘 30:7] 주를 찾아뵈옵나니 그들은 주의 징계가 그들 위에 임할 때에 기도를 부었나이다[“대환란”의 고난 가운데 기도하는 이스라엘, 호 5:15]. [17] 마치 아이를 가진 한 여인이 출산 때가 가까워져 아픔중에 고통으로 부르짖는 것처럼, 오 주여, 우리가 주의 목전에 그러하였나이다[“대환란” 때의 이스라엘, 계 12:1-5]. [18] 우리가 아이를 가졌고 우리가 아픔중에 있었으나 우리가 내는 것은 마치 바람을 낳는 것 같으니 우리는 땅에서 어떠한 구원도 이루지 못하며 타락한 세상의 거민들도 이루지 못하였나이다[“교회 시대”에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상태, 즉 이방인들의 죄가 충만해지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됨, 롬 11:25]』(사 26:16-18).<br/><br/>16-18절은 본문 안에 직접 표기한 것처럼 “대환란 때의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다. 특히 18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대환란에 들어가기 전에 교회 시대에 겪을 일을 잠깐 언급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현 교회 시대에 그들의 메시아를 거부한 상황에서 어떤 구원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타락한 세상의 거민들』인 이방인들도 그들의 죄를 충만히 채워나갈 뿐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다(롬 11:25).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교회 시대를 거쳐 대환란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들은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라고 불리는 징계의 기간에 주님을 찾으며 기도하게 된다. 『이는 내가 에프라임에게 사자같이, 유다 집에 젊은 사자같이 될 것임이라. 나, 곧 내가 찢어 갈 것이요 탈취해 갈 것이나 아무도 그를 건져내지 못하리라. 내가 가서 내 자리로 돌아가, 그들이 그들의 범죄를 인정하고 나의 얼굴을 구할 때까지 있으리니, 그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 나를 먼저 찾으리라』(호 5:14,15). <br/><br/>3. 이사야 26:19,20 ▶ 환란 후 휴거<br/><br/>『[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리니 그들이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나리이다. 흙에 거하는 너희는 깨어서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수풀의 이슬 같으니 땅이 죽은 자들을 던져 버릴 것임이니이다. [20] 내 백성아, 오라, 네 방들에 들어가서 네 문들을 닫고 그 분노가 지나갈 때까지 잠깐 동안만 숨으라』(사 26:19,20).<br/>16-18절에서 대환란을 다룬 뒤, 19,20절에서 대환란 끝에 있을 “환란 후 휴거”를 예언한다. 주의 죽은 자들인 구약 성도들(겔 37:1-14)과 적그리스도에게 목베임을 당한 환란 성도들(계 6:9-11; 11:9-12)을 땅이 대환란 끝에 던져 버려서 부활하게 할 것이고, 그들은 살아 있는 환란 성도들과 함께 셋째 하늘로 휴거되어(마 24:31) 대환란의 나머지가 지나갈 때까지 잠깐 동안 숨어 있을 것이다. 『주께서 그들을 사람의 음모로부터 주의 면전의 은밀한 곳에 숨기시며 주께서 그들을 장막에 은밀히 감추시어 혀들의 다툼에서 벗어나게 하시리이다』(시 31:20). <br/><br/>4. 이사야 26:21-27장 ▶ 재림<br/><br/>『[21] 보라, 이는 주가 땅의 거민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벌하시려고 그의 처소에서 나오심이니 땅도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들을 더 이상 가리지 않을 것임이라.” [1] 그 날에 주께서 그의 격심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쌘 뱀 리비야단을 벌하시리니, 즉 꼬부라진 뱀 리비야단이라. 또 주께서는 바다에 있는 그 용을 살해하시리라』(사 26:21-27:1).<br/><br/>26:19,20의 “환란 후 휴거” 뒤에 21절부터는 27장으로 넘어가 그 장 전체에 걸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다. 『보라, 이는 주가 땅의 거민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벌하시려고 그의 처소에서 나오심이니 땅도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들을 더 이상 가리지 않을 것임이라.”』(사 26:21). 이 말씀은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의 죄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셋째 하늘에서 나오실 것을 예언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의 거민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벌하시려고 그분의 처소인 셋째 하늘 시온 산에서 나오시는 때는 “재림” 때이며, 그때 주님께서는 이사야 27:1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 날에 주께서 그의 격심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쌘 뱀 리비야단을 벌하시리니, 즉 꼬부라진 뱀 리비야단이라. 또 주께서는 바다에 있는 그 용을 살해하시리라』(사 27:1). 『그러나 그 짐승이 잡히고, 짐승 앞에서 기적들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그와 함께 잡혔으니 그는 짐승과 더불어 그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들을 속이던 자라. 이 둘이 유황으로 불타오르는 불못에 산 채로 던져지더라』(계 19:20).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의 손에는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와 큰 사슬을 가졌더라. 그가 그 용을 잡으니, 곧 마귀요 사탄인 옛 뱀이라. 그를 천 년 동안 묶어 두니 그를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서 가두고 그 위에 봉인하여 천 년이 찰 때까지는 민족들을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 하더라. 그후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게 되리라』(계 20:1-3). <br/><br/>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인 용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 재림 때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림하신 주님께서는 위의 요한계시록 20:3에서 말씀하듯이 사탄을 천년왕국 기간 동안에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가둬 두셨다가 그 천 년 끝에 잠시 풀려나게 하실 것인데, 그때 천년왕국 통치 기간에 주님의 독재에 불만을 품은 민족들을 잠시 풀려난 사탄을 통해 한데 모아서 한꺼번에 심판하실 것이다. 『그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가서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을 일으키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땅의 넓은 데로 올라가서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하시는 도성을 포위하니, 하늘에서 불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리더라. 그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그곳에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무궁토록 밤낮 고통을 받으리라』(계 20:7-10). <br/><br/>또한 이사야 27장은 “재림” 때 있을 사탄에 대한 심판은 물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그가 야곱에게서 나온 자들로 뿌리박게 하시리니 이스라엘은 꽃이 피고 싹이 나서 열매로 세상의 지면을 채우리라』(사 27:6). 『그 날에 주께서 강의 수로로부터 이집트의 시내에 이르기까지 격퇴하시리니 그러므로, 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하나씩 모여지리라. 그 날에 큰 나팔이 불려지리니 그러면 앗시리아 땅에서 멸절케 된 자들과 이집트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 와서 예루살렘에 있는 거룩한 산에서 주께 경배하리라』(사 27:12,13). 대환란을 통과한 이스라엘 민족은 지상에 다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초림 때 십자가에 넘겨 준 메시아이심을 알아보고 실로 애통해 하며 영접할 것이다(슼 12:10). 이렇게 모든 것이 회복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들을 버리고 자신들을 지으신 분께 참되게 복종하면서 경배하는 참으로 “독특한 보물”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제사장들의 왕국”(출 19:5,6)으로서 세상 모든 민족들 앞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Mar 2025 11:42:2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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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속적인 장들”과 세대적 진리 (1)</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C%97%B0%EC%86%8D%EC%A0%81%EC%9D%B8-%EC%9E%A5%EB%93%A4%EA%B3%BC-%EC%84%B8%EB%8C%80%EC%A0%81-%EC%A7%84%EB%A6%AC-1/</link>
<description><![CDATA[성경을 읽다 보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들에서 “세대적 진리”가 발견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솔로몬의 노래 2,3장”이다. 솔로몬의 노래 2장에서 “교회의 휴거”를 노래하고, 이어지는 3장에서는 교회의 휴거 이후에 있게 될 “대환란”과 “재림”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를 보여 주는 구성인데, 이로써 성경은 그 저자이신 성령님의 치밀한 계획 가운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이 입증된다.<br/><br/>솔로몬의 노래 2,3장<br/>: 교회의 휴거 – 대환란 – 재림(유대인들의 회심 / 어린양의 혼인식)<br/><br/>1. 솔로몬의 노래 2장 : 교회의 휴거 <br/>솔로몬의 노래 2장은 신부인 교회의 휴거를 다루는 장이다. 이 점을 구절별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br/><br/>1) 솔로몬의 노래 2:8,9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 보라, 그가 산들 위로 뛰며, 작은 산들 위로 가볍게 뛰며 오는도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니, 보라, 그가 우리의 벽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창살을 통해 몸을 내보이는도다.』<br/><br/>본문에서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신랑,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다. 우리는 휴거 때 들려올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기 위해서 귀 기울이고 있으며(살전 4:16),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인의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요 10:3). 주님께서 우리의 몸을 『눈깜짝하는 순간에』(고전 15:52) 변화시키실 때 들려올 『이리 올라오라.』(계 4:1)라는 말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공중으로 오실 신랑께서는 신부를 만날 기쁨에 산들과 작은 산들 위로 노루나 어린 사슴처럼 경쾌하게 오실 것이다(솔 2:8,9). 말하자면 우리가 신랑을 만나는 휴거 때는 『공중』의 『구름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살전 4:17). 또한 솔로몬의 노래 2:9의 본문은 『그가...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창살을 통해 몸을 내보이는도다.』라고 말씀하는데,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 사이에는 맨 윗부분이 “단단하게 얼어 있는”(욥 38:30) 물 덩어리가 있으며, 그 깊음을 관통하여 열리는 한 물리적 “문”이 있다(계 4:1). 이것은 신랑께서 하늘에 있는 창문들 중 하나를 통해 보시다가 그 창살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br/><br/>2) 솔로몬의 노래 2:10-13 『나의 사랑하는 이가 내게 일러 말하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 보라,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쳐 사라졌으며, 땅에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왔도다. 산비둘기의 소리가 우리의 땅에서 들리는도다.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들을 내고 포도 넝쿨은 부드러운 포도로 좋은 향기를 내는도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 하였도다.』<br/>본문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10절)라는 말씀은 신랑께서 신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휴거”를 보여 준다. 휴거가 일어나는 시점은 『보라, 겨울도 지나고』(휴거는 12월이나 1월, 2월이 아니다). 『비도 그쳐 사라졌으며』(휴거는 4월이 아니다. 왜냐하면 3,4월에 내리는 “늦은 비”가 그쳐 사라졌기 때문이다). 『땅에는 꽃들이 피고』(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5월”이다).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들을 내고』(이것은 여름으로 들어가는 “늦은 봄”으로, 달력으로 보면 “5월” 말과 “6월” 초이다). 이때 신랑은 신부에게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다름 아닌 “오순절”을 가리킨다. 솔로몬의 노래에서는 5,6월에 걸쳐 있는 “오순절”이 신부인 교회를 휴거시키시는 때로 제시되고 있다.<br/><br/>3) 솔로몬의 노래 2:14,15 『바위 틈과 가파른 산 은밀한 곳에 있는 오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용모를 보게 하고 나로 네 음성을 듣게 하라. 네 음성은 달콤하고 네 용모는 아름다움이라.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포도 넝쿨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 넝쿨에는 부드러운 포도가 있음이라.』<br/>본문에서 신부는 “바위 틈과 가파른 산 은밀한 곳에 있는 비둘기”로서 표현된다. 『가파른 산 은밀한 곳에 있는』(in the secret places of the stairs, 14절)이라는 말씀은 휴거 때 보게 될 우주의 구조를 암시한다. 『가파른 산』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마드레가”는 『절벽』(겔 38:20)처럼 “가파른 장소”를 의미하는데, 가파른 “계단”과 같은 “사다리”에 적용될 수도 있다. 창세기 28:12에서 야곱은 『사다리가 땅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보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꿈을 꾸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리라.』(요 1:51)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교회가 휴거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면 교회를 주님과 함께 셋째 하늘로 데려다 줄 수 있는 “가파른 통로”가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모세는 그것을 『사다리』(창 28:12)라고 불렀고, 솔로몬은 『가파른 산』(14절)으로 번역된 “마드레가,” 곧 stairs(계단)로 부른 것이다.<br/><br/>신랑께서는 신부에게 『나로 네 용모를 보게 하고 나로 네 음성을 듣게 하라. 네 음성은 달콤하고 네 용모는 아름다움이라.』(솔 2:14)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신랑께서 신부인 교회를 몹시도 보고 싶어 하신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신랑께서는 솔로몬의 노래 2:15에서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포도 넝쿨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 넝쿨에는 부드러운 포도가 있음이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신부가 자신에게 맡겨진 영역(포도원)에서 교활한 작은 죄들(작은 여우들)을 제거하며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그러한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육신의 일들”(갈 5:19-21)과 싸우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신부인 교회가 자신의 신랑을 만날 때까지 수행해야 할 일인 것이다.<br/><br/>4) 솔로몬의 노래 2:16,17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요, 나는 그의 것이니 그가 백합꽃들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도다. 날이 밝고 그림자가 사라지면 돌아오소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은 벧엘 산 위의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이다.』<br/>본문의 『날이 밝고』는 신랑께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샛별로서 떠오르실 “공중 재림”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벧후 1:19). 또한 『그림자가 사라지면』은 신부인 교회에게는 “밤으로 묘사되는(롬 13:12) 교회 시대가 지나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교회 시대의 밤이 지나면 돌아오시라는 공중 재림과 휴거를 위한 간구가 된다. 또 『당신은 벧엘 산 위의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이다.』(17절)라는 신부의 고백은 “휴거”를 언급하는 8,9절로 다시 돌아간다.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 보라, 그가 산들 위로 뛰며, 작은 산들 위로 가볍게 뛰며 오는도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니, 보라, 그가 우리의 벽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창살을 통해 몸을 내보이는도다.』 따라서 본문 17절은 신부인 교회가 휴거가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드리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br/><br/>2. 솔로몬의 노래 3장 : 대환란 – 재림(유대인들의 회심 / 어린양의 혼인식) <br/><br/>1) 솔로몬의 노래 3:1의 첫 두 단어는 3장 전체가 “대환란”의 예표임을 보여 준다. 『내가 밤에 내 침상에서 내 혼이 사랑하는 그를 찾았도다. 내가 그를 찾았으나 그를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여기서 “밤”은 “대환란”의 특징이다. 『밤새도록 울음이 지속될지라도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울음이 지속되는 “밤”은 “대환란”이고, “기쁨”이 오는 “아침”은 『의의 태양』(말 4:2)께서 떠오르시는 재림의 아침인 것이다.<br/>2) 솔로몬의 노래 3:6,7은 『광야에서』 오시는 “다윗의 아들”의 재림을 다룬다. 『연기 기둥과도 같이, 몰약과 유향과 상인들의 모든 향료로 향내를 내며, 광야에서 오는 이가 누구인가? 그의 침상을 보라, 그것은 솔로몬의 것이로다.』 “다윗의 아들”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서는 광야를 질러 행진하실 것이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백성들 앞에 나가시어 광야를 질러 행진하실 때 셀라』(시 68:7). 주님께서 『연기 기둥과도 같이』(6절) 재림하실 때는 문자 그대로 “연기 기둥”이 보일 것이다. 『내가 하늘들과 땅에 이적들을 보이리니 피와 불과 연기 기둥들이라』(욜 2:30).<br/>3) 솔로몬의 노래 3:7,8은 솔로몬으로 예표되는 “다윗의 아들”께서 재림하실 때(6절) 군대와 함께 오실 것을 보여 준다. 『연기 기둥과도 같이, 몰약과 유향과 상인들의 모든 향료로 향내를 내며, 광야에서 오는 이가 누구인가? 그의 침상을 보라, 그것은 솔로몬의 것이로다. 이스라엘의 용사 중에서 육십 명의 용사가 그것을 호위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칼을 잡으며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이라. 각자가 그 밤에 두려움으로 인하여 넓적다리에 칼을 찼도다』(솔 3:6-8). 다윗의 아들께서 이처럼 “군대”와 함께 오신다는 점은 재림과 관련된 “요엘 2:11”(『그의 군대』)과 “요한계시록 19:14”(『하늘에 있는 군대들』)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br/>4) 솔로몬의 노래 3장은 “대환란”과 “재림”을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림과 관련된 두 사건을 이야기한다. 즉 “11절”에서 재림 전에 있을 “유대인의 남은 자들의 회심”과 “어린양의 혼인식”을 동시에 보여 준다. 『오 너희 시온의 딸들아, 나가서 왕관을 쓴 솔로몬왕을 보라. 그의 어머니가 그의 혼인식 날, 그의 마음의 기쁨의 날에 그에게 씌워 준 왕관이로다』(11절). 첫째, “시온의 딸들”이 “왕관을 쓴 솔로몬왕”을 본다는 것은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왕관을 쓰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회심할 것임을 나타낸다(슼 12:10-14). 둘째, 『그의 혼인식 날』, 곧 “솔로몬왕의 혼인식 날”은 솔로몬이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식, 곧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을 보여 준다. “유대인들의 회심”과 “어린양의 혼인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사건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Feb 2025 17:28:3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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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속적인 구절들”과 세대적 진리 (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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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성경이 세대주의를 가르치는 책이라는 점은 성경을 면밀히 공부해 본 성경학도에게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성경은 “연속적인 구절들”을 통해서도 성경 자체가 세대주의적인 책임을 계시하는데, 성경의 주인공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대적 진리”를 알아야 한다.<br/><br/>1. 아모스 9:10,11 ▶ 교회 시대 - 대환란 - 재림 - 천년왕국<br/><br/>『내 백성 가운데서 말하기를 “재앙이 우리를 따라잡지도 막지도 못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들은 칼에 죽으리라. 그 날에 내가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리라. 또 내가 그의 파괴된 것들을 일으켜 옛날처럼 세우리니』(암 9:10,11). <br/><br/>“아모스 9:8”은 『보라, 주 하나님의 눈이 죄 많은 왕국 위에 있으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내가 완전히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에 따르면, 주 하나님께서 죄 많은 왕국들을 지면에서 없애 버리신다 해도 이스라엘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기에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자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에스라, 느헤미야, 스룹바벨(스 1-4장) 때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러한 “8절”에 이어지는 “아모스 9:9,10”은 첫 번째 사로잡힘 이후의 일이 된다. 『이는 보라, 내가 명령할 것임이라. 곡식을 체로 치듯이 내가 모든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집을 체질할 것이나, 가장 작은 알곡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내 백성 가운데서 말하기를 “재앙이 우리를 따라잡지도 막지도 못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들은 칼에 죽으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을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체질하신 때”는 그들이 자신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게 멸망한 뒤 전 세계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진 “교회 시대”를 뜻한다. 말하자면 A.D. 70년에서 2024년 현재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흩어진 상태이며,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러시아, 중국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미국도 이스라엘을 멸절시키기 위해 단합할 것이다. 이 일은 “교회 시대”와 더불어서 “대환란” 때에 있게 된다.<br/><br/>이어지는 “아모스 9:11”은 이스라엘 민족이 대환란을 통과한 뒤 “재림” 때 있을 일이다. 그날에 주님께서는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켜 그 틈을 막으실 것인데, 이는 다윗이 거의 모든 재료를 구함으로써 건축된 솔로몬 성전이 무너졌지만 재림 때 그것이 “천년왕국 성전”으로(겔 40-46장) 다시 세워질 것을 뜻한다. “천년왕국” 때에는 파괴된 구약 시대의 성전이 더 크고 더 웅장한 성전으로 세워질 것이다.<br/><br/>2. 미카 5:2,3 ▶ 초림 - 교회 시대 - 대환란 - 재림 <br/><br/>『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네가 비록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가 너로부터 내게로 나오리라. 그의 나오심은 예로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 그러므로 진통하는 그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는 그가 그들을 버려 두실 것이나 그후에 그의 형제 중에 남은 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라』(미 5:2,3). <br/><br/>“베들레헴 에프라타”와 관련된 2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 출생 장소인 “베들레헴”에 관한 위대한 예언이다. 주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벧전 1:9-11) 주님 자신의 출생지뿐만 아니라(미 5:2) 자신의 출생 시기(단 9:25,26), 출생 방법(사 7:14), 그리고 주님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사 53:1-12)를 예언하셨고, 다윗의 시를 통해 주님 자신의 부활까지도 예언하셨다. <br/><br/>『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셨도다.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이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소망 가운데 안식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하신 분으로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리니 주의 면전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편에는 즐거움이 영원무궁토록 있나이다』(시 16:8-11). <br/><br/>미카 5:2의 『베들레헴 에프라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이기 때문에 “초림”을 나타내고, 같은 절의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자로서 오실 “재림”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초림)과 “통치”(재림)가 같은 절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역시 세대주의적 배열이라고 할 수 있다.<br/><br/>또한 이어지는 미카 5:3의 『진통하는 그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는 그가 그들을 버려 두실 것이나』라는 말씀은 “대환란” 끝에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태어나기까지(사 66:8, 계 12:1,2) 그 민족이 “교회 시대”와 “대환란” 기간 동안 “버림받음으로써” 겪게 될 고난을 보여 준다. 그리고 동일한 구절 후반부에서 『그후에 그의 형제 중에 남은 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재림” 때에 있게 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보여 준다. 2절의 “초림”과 3절의 “교회 시대, 대환란, 재림”은 이 두 구절에서 엿보이는 세대주의적 배열이다.<br/><br/>3. 하박국 2:13,14 ▶ 대환란 - (재림) - 천년왕국<br/><br/>『보라, 백성이 바로 그 불 속에서 수고하고 백성이 그 헛된 일로 지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냐?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땅이 주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 차리라』(합 2:13,14). <br/><br/>13절처럼 백성이 불 속에서 수고하고 헛된 일로 지치게 되는 때는 “대환란” 기간이다. 또한 14절처럼 땅이 주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 차는 때는 “천년왕국”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거부하는 모든 죄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대환란의 재앙을 보내실 것이며(계 6-19장), 재림 때에도 그들을 제거하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살후 1:7-9, cf. 2:11,12). 그 뒤 주님께서는 다윗의 보좌에 앉아 온 땅을 철장으로 통치하실 것이다(시 2편, 슼 14장). 본문 14절(『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땅이 주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 차리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통치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며, 그때 땅은 주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에 창조물들이 서로 해치지 않는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사 11:6-10).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br/><br/>4. 스카랴 9:9,10 ▶ 초림 - 재림 - 천년왕국<br/><br/>『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오 예루살렘의 딸아, 소리지르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지니셨고, 겸손하시며 나귀를 타시리니 나귀의 새끼인 어린 나귀니라. 또 내가 에프라임으로부터는 병거를, 예루살렘으로부터는 말을 끊어 버릴 것이며, 전쟁의 활도 끊어지리라. 그리고 그가 이방에게 평화를 말하리니 그의 다스리심이 바다로부터 바다까지이며 강으로부터 땅 끝까지 되리라』(슼 9:9,10). <br/><br/>9절은 “초림” 때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사건에 관한 예언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말하기를 “너희는 시온의 딸에게 말하라. 보라, 너의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온유하여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수나귀 위에 타셨도다.” 하였더라』(마 21:4,5). <br/><br/>10절은 구절 전체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를 가져와서 다스리실 “재림”과 “천년왕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내가 에프라임으로부터는 병거를, 예루살렘으로부터는 말을 끊어 버릴 것이며[재림 – 미 5:9-11,15], 전쟁의 활도 끊어지리라[재림 – 시 76:1-3]. 그리고 그가 이방에게 평화를 말하리니[재림 – 학 2:7,9] 그의 다스리심이 바다로부터 바다까지이며 강으로부터 땅 끝까지 되리라[재림 – 시 72:8, 사 49:6].』 선지자 호세아 역시 재림 후 천년왕국 때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임을 예언한다.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의 짐승들과 하늘의 새들과 땅에 기는 것들과 언약을 세우며, 또 활과 칼을 꺾어 땅에서 전쟁을 없게 하고 그들로 평안하게 눕게 하리라』(호 2:18). 이 점은 선지자 이사야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심판하시며, 많은 백성을 책망하시리니 그들이 자기 칼들을 두들겨서 보습을 만들며, 자기 창들을 두들겨서 낫을 만들 것이요,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칼을 들어올리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사 2:4). <br/><br/>5. 요한복음 4:3,4,43,45 ▶ 초림 - 교회 시대 - 재림<br/><br/>『유대를 떠나서 다시 갈릴리로 가시니라. 그런데 주께서는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만 하였더라... 이틀 후에 주께서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가시니라... 그때 주께서 갈릴리에 오시니, 갈릴리 사람들이 주를 영접하더라』(요 4:3,4,43,45).<br/><br/>본문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를 떠나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로 가셔야 했는데,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머무셨다. 사마리아에서 “이방인들”과 머무신 “이틀”은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찾고 계신 “교회 시대 2천 년”을 나타낸다. 이 점은 “천 년”을 “하루”로 보는 성경의 계산법에 근거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유대인들, 초림)를 떠나 “사마리아”(이방인들)에서 “이틀”(2천 년)을 머무시는 동안 그 이방인들이 주님을 영접했으며(요 4:39-42, 교회 시대), 이틀 후에(교회 시대 2천 년 후에) “갈릴리”로 가시니(재림) 그곳 사람들(유대인들)이 주님을 영접했다(재림, 이스라엘의 회복). 말하자면 주님께서 “이틀” 후에 “고향에 귀환”하셨을 때 “영접”받으시는 광경은 “2천 년간의 교회 시대”가 끝나고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의해 “환영”받으시는 사건(슼 12:10-14)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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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02 Dec 2024 11:42: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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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들의 죽음”으로 낳으신 “교회” (2)</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C%95%84%EB%93%A4%EC%9D%98-%EC%A3%BD%EC%9D%8C%EC%9C%BC%EB%A1%9C-%EB%82%B3%EC%9C%BC%EC%8B%A0-%EA%B5%90%ED%9A%8C-2/</link>
<description><![CDATA[“요한복음 17장”에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관한 특별한 계시가 주어져 있으며,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교회가 서로 안에서 “하나”가 되는 교리와 맞물려 있다.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요 17:21). 이 “하나 됨”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을 “신비”라고 했다. 『이것은 그분이 계시로 내게 신비를 알게 하신 것이며 (내가 전에 간략하게 쓴 것과 같으니 너희가 읽을 때 거기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있는 나의 지식을 이해하게 되리라.)...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며』(엡 3:3,4,6). 이 “한 몸 됨,” 곧 “하나 됨”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죄인들이 거듭날 때 성령님에 의해 그 “한 몸”(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를 받음으로써 일어난다(고전 12:13). 그렇게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롬 12:5) 되고 『개별적으로는 그 지체들』(고전 12:27)이 된 것인데, 이처럼 요한복음 17장의 “하나 됨”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되어 그 “한 몸”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요 17:22). <br/><br/>위의 요한복음 17:22은 앞선 21절과 함께 교회통합주의자들이 굳게 붙들고 있는 구절이다. 21절을 다시 인용하자면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요 17:21)인데, 교회통합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우리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연합하는 것이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교리가 달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모여 하나가 되자.”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 됨”을 로마카톨릭 교황을 “목자장”으로 한 모든 교파 교회들의 통합으로 해석하는 것인즉, 그들이 이를 위해 내세우는 슬로건이 바로 “사랑으로 하나 되자.”이다. 사랑만 있으면 교리가 달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br/><br/>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에 관해 기록한 “사랑의 사도” 요한은 결코 사랑으로 거짓 교리를 덮어 주지 않았다. “사랑의 사도”는 바른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과는 교제하지 말고 성별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오되 이 교리를 가지고 오지 아니하면 그를 집에 영접하지도 말고 그에게 문안하지도 말라. 이는 그에게 문안하는 자는 그의 악한 일들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 1:10,11). 말하자면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기뻐한다”(고전 13:6). “사랑의 사도”는 성도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했으니(요삼 1:1), “사랑”으로 각색의 이단 교리를 포용하는 것은 “진리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벌이는 작태인 것이다. 진리를 뺀 “사랑”만 강조하면 장차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됨을 알아야 한다. 『그 악한 자가 오는 것은...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살후 2:9,10). 솔로몬이 우상 숭배의 이방 민족들과 “사랑으로 결합”하였듯이(왕상 11:2), 그 가짜 교회들도 『우상 목자』(슼 11:17)인 적그리스도와 “사랑으로 결합”하게 될 것이다. <br/><br/>교회통합을 주장하는 거짓 교회들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영광을 받은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옵니다』(요 17:22). 이 영광은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의 영광이며(빌 2:6) 『만물의 상속자』이신 『아들』의 영광이다(히 1:2). 아들께서는 그 영광을 자신과 하나 된 교회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으니, 교회가 『복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살후 2:14)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딤후 2:12) “고난”을 견뎌 낸다면 『아들』과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롬 8:17)이 되어 “아들의 형상과 정확히 일치된 모습으로”(롬 8:29) 영원히 통치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다윗의 보좌에 앉아(사 9:7, 마 19:28) 천년왕국을 수립하실 때(계 19:11-16) 신부인 교회도 “주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골 3:4) 만물이 회복된 천년왕국에서(행 3:21) 주님과 통치하게 될 것이다(계 5:10; 20:1-7). 그 천년왕국이 지나면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 세계에서 새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계 21:1-8) 주님과 영원히 통치하게 되는데(계 22:5), 이 영원한 통치의 영광이 『영광스러운 교회』(엡 5:27)에게 주어진 『영원한 영광』(딤후 2:10)인 것이다.<br/><br/>“영광스러운 교회”가 교회통합주의자들과 함께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의 구절이 계시해 주고 있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우리가 교회통합주의자들과 함께할 수 없는 이유는 “진리,” 즉 “교리” 때문이다. 교회통합주의자들은 “교리” 문제로 다투지 말고 십자가 밑에서 하나가 되자고 한다. 그들은 교리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만, 교리는 성경이 주어진 “첫째 목적”이자, 교회를 비진리로부터 분리시켜 안전한 항로로 인도하는 “나침반”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이 디모데후서 3:16의 “교리”는 3장 전체의 문맥상 『경건의 능력』(5절), 『진리의 지식』(7절), 『나[바울]의 교리』(10절), 『박해와 고난』(11절)과 관련이 있다. 바울은 5절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7절의 『진리의 지식』에 결코 이를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진리의 지식은 10절의 『나의 교리』, 곧 “바울의 교리”를 뜻한다. 바울이 그 밑의 12절에서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라고 한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갈 1:12) 받은 『나[바울]의 교리』대로 살고자 하면 누구나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바울은 그의 교리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딤후 3:10,11). 그뿐만 아니라 모든 순교자들이 성경이 주어진 “첫째 목적,” 즉 “교리”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lt;폭스의 순교사&gt;와 &lt;피흘린 발자취&gt;에 나오는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가르친 교리”에 따라 불경건과 세상 정욕들을 거부하고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이 현 세상을 살아가려고 했기에(딛 2:12) 고난과 박해와 죽음을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br/><br/><br/>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성도였고, 그가 가르친 교리는 무엇이었는가? 요한복음 17장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사옵니다.』(요 17:16)라는 말씀으로 바울의 정체성을 계시한다. “아들”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신다면 “그분의 몸” 된 “교회” 또한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라고 명령하셨고(마 8:22), 바울은 그가 주님을 따른 것처럼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한다(고전 11:1).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성별된 분이셨고, 사도 바울 역시 주님을 따라 세상에서 성별된 것이다. 『바울이 회당으로 들어가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니 석 달 동안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변론하고 설득시키더라.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완고하여 믿지 아니하고 무리 앞에서 그 도를 비방하니 그가 그들로부터 떠나서 제자들을 분리시켜 날마다 투란노 학교에서 토론하니라』(행 19:8,9). 이 일은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 때 소아시아 북부를 경유하여 에베소에 왔을 때 일어난 일로서(행 19:1), 우리는 여기서 한 “담대한 성별주의자”의 세 가지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바울은 “담대하게” 바른 교리를 전했다. 둘째, 바울은 완고하여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을 경우 그들로부터 “떠나” 제자들을 “분리시켜” 따로 가르쳤다. 셋째, 바울은 그렇게 분리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2년 동안 “꾸준히” 바른 교리를 가르쳤으며, 그로 인해 소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주 예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행 19:10). 그 일의 가장 큰 핵심은 진리를 “담대하게” 증거한 사도 바울이 그의 교리를 믿지 않고 비방하는 자들에게서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자기만 떠난 것이 아니라 바른 교리를 믿는 사람들까지 “함께 분리시켜서” “투란노 학교”라는 한 거점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계속 진리를 가르쳤다. <br/><br/>그렇게 성별되어 진리를 지속적으로 가르친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소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주 예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만일 믿지 않고 반박하는 무리들과 어떻게든 교제해 보려고 머뭇거렸다면 사도 바울의 교리와 사역은 빛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빛을 어두움에서 분리시켰더니 진리의 빛이 더 멀리 확산되었던 것이다.<br/><br/>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분리”는 영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고린도후서 6장이 사도 바울의 “분리”가 무슨 의미였는가를 보여 준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17). 고린도후서 6:17의 “따로 있고(separate)”라는 단어는 사도행전 19:9에서 바울이 그 도를 비방하는 자들로부터 제자들을 따로 떼어놓을 때 사용한 “분리시켜(separated)”라는 단어와 같은 말이다. 헬라어로는 둘 다 “아포리조(ἀφορίζω)”로서 “경계선을 그어 서로 떨어져 있게 하다(to border off).”라는 뜻이다. 바울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분리,” “의와 불의의 분리,” “빛과 어두움의 분리,” “그리스도와 벨리알의 분리,”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의 분리”를 말하고 있다. “불의,” “어두움,” “벨리알,” “우상들”과 어떤 부분도 함께할 수 없으므로 분리해서 나와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성경의 교리와 다른 것을 가르치는 자들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그 어떤 단체나 개인으로부터도 분리되어야 한다. 똑같은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롬 16:18)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로부터 분리되어 “그들에게서 떠나야”(롬 16:17) 한다. 각 지역에 우리만의 거점을 확보하고 그곳에서 바른 교리를 계속해서 가르치고 공부하여 진리의 빛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게 하는 것이 진리를 전파하는 성경적인 방법인 것이다. <br/><br/>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제자들을 분리시켜 가르친 바른 교리는 무엇인가? 그 “담대한 성별주의자”의 “교리”는 디모데후서 2:15이 밝혀 주고 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바울의 교리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서 알아낸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이다. 이 교리는 성경을 시대별로 나누어서 알게 된 교리로서, 이처럼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지 않으면 성경은 모순투성이가 된다. 어디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고(엡 2:8) 어디서는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고 한다(마 24:13). 어디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고(레 11:8), 어디서는 음식에 관한 규례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골 2:16). 어떤 말씀을 따라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시대별로 역사하시는 경영방침에 따라 해석하고 우리가 사는 “교회 시대”에 맞게 따르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 세 부류로 나눠 다루시기 때문에(고전 10:32), 하나님께서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말씀하셨는가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성경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br/><br/>시편 118편에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놀라운 것이로다.』(시 118:22,23)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자칭 성경학자라는 자들이 그들의 교단 신학교들에서 『쓸데없다고 제쳐 놓은』(행 4:11) 교리가 바로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성경을 공부해 보면 그 교리는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놀라운』 교리임을 알게 된다. 비로소 성경이 밝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으로 태어난 교회가 실행해야 할 교리는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이다. 이 성경적인 교리를 깨닫고 성별했다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해야 한다. <br/><br/>바른 교리를 공부했을 때 교회가 얻게 되는 유익은 “순결”을 지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신랑께서 신부인 교회가 셋째 하늘에서 그분 앞에 서게 될 날을 위해 말씀으로 신부의 “순결”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교회를 말씀에 의한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고 깨끗게 하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서 점이나 주름진 것이나 또는 그러한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성경에는 순결을 잃어버린 지역 교회가 나오는데, 바로 고린도 교회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한 남편』에게 정혼시켜 『한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했지만(고후 11:2), 그들은 “바울이 전파하지 않은”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영』, 『또 다른 복음』을 용납하는 영적 간음을 저질렀다(고후 11:4). 『마지막 때에... 마귀들의 교리들』(딤전 4:1)과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들』(히 13:9)로 영적 간음을 저지르지 않고 『한 순결한 처녀』로서 주님께 드려지려면,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로 무장하여 성경대로 섬겨야 한다. 그래야만 셋째 하늘에서 있을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에서 『성도들의 의』인 『정결하고 흰 세마포』(계 19:8)를 입고 주님의 순결한 신부로서 설 수 있게 된다.<br/><br/>성경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만 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는 교회이다. 『지옥의 문들』(마 16:18)이 이기지 못하는 교회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해 주신 바로 그 교회이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아버지께 영광이 모든 시대들, 곧 끝없는 세상에 걸쳐 있게 하기 위함이다”(엡 3:20,21). 그 일은 다가올 끝없는 세상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진행 중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들의 죽음”으로 교회를 낳으신 “아버지”께 “순결한 성별”과 “참된 경배”(요 4:24)로 나아가야 한다. 휴거될 때까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꾸준히 공부함으로써(딤후 2:15) “아들”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며(벧후 3:18)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휴거를 기다리며 천년왕국을 바라보는 참된 신약 교회의 모습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9 Oct 2024 16:56:0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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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들의 죽음”으로 낳으신 “교회”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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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진정한 “주기도문”인 “요한복음 17장”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죽음”이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한 특별한 계시가 주어진다. “교회”는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들의 죽음”을 통해 낳으셨기에 그 가치가 무한하고 “아버지”와의 관계 또한 영원하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행 20:28)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하고 의로우신 “아버지”를 섬기는 길은 “순결한 성별”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자신을 낳아 주신 “아버지”께 나아가는 성경적으로 올바른 길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br/><br/>예수님께서는 『아버지시여』(요 17:1)라는 말로 그분의 기도를 시작하셨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주님의 기도는 “아들”께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다. 성경은 이 “아들”과 관련하여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계시한다.<br/><br/>1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참되신 분(『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도다.』 - 요 7:28), <br/><br/>2 말씀이신 아들과 함께 계셨던 분(『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 요 1:1, cf. 요일 1:2), <br/><br/>3 아들을 세상에 구주로 보내신 분(『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 요일 4:14), <br/><br/>4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한 처녀의 몸을 통해서 낳으신 분(『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사 7:14, cf. 시 2:7, 히 1:5,6, 요 1:14), <br/><br/>5 자신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신 분(『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 딤전 2:5), <br/><br/>6 죄인들이 화해해야 할 대상이신 분(『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 고후 5:19), <br/><br/>7 자신과 화해한 죄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모든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 요 14:26,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 요 16:13), <br/><br/>8 우리에게 천상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을 주신 분(『그리스도 안에서 천상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복되시도다.』 - 엡 1:3), <br/><br/>9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을 갖게 하시며, 우리를 위해 하늘에 유업을 간직해 두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br/><br/>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는 분(『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송축하리로다. 그분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으니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 - 벧전 1:3-5), <br/><br/>10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심으로써 함께 영광을 받으시는 분(『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빌 2:11). <br/><br/>11 영과 진리로 경배를 받으시는 분(『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 - 요 4:24), <br/><br/>12 홀로 영원무궁토록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는 분(『영원무궁토록 찬양받으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 고후 11:31).<br/><br/>위와 같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는 인간이 영생을 얻으려면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알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사람들이 유일하시고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옵니다』(요 17:3). 말하자면 “인간 예수”를 아는 것은 인간의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며, “셋째 하늘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br/><br/>“아버지”와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공유하실 정도로 “일체”이시다. 『나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오며 또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옵니다』(요 17:10).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로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br/><br/><br/>1 성경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묘사한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니라』(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 <br/><br/>2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아버지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고후 4:4).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골 2:9, 신격의 일부가 아니라 “신격의 모든 충만함”을 지니신 분, 곧 완벽한 “하나님”이시다!). <br/><br/>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의 영예를 버리고 종의 형체인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에”(빌 2:7,8) 아버지께 종속되셨던 것이지 결코 “신격”을 버리신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께서는 『신격[Godhead]』, 곧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서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시다.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두 분 다 “참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며』(요일 5:20).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요 17:3). <br/><br/>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7장의 변형산에서 성육신 이전의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잠시 보여 주셨다.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의 옷은 빛처럼 희어지더라』(마 17:2). <br/><br/>5 아버지께서는 창조주이시며 구약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똑같은 육체의 모양을 입고 나타나셨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음이니... 그의 이름은... 영원하신 아버지라』(사 9:6).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딤전 3:16). <br/><br/>성경은 신구약 성경 모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히 1:8).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시 45:6). 바로 이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3:18)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은 이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딛 2:13)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br/><br/>요한복음 17:1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아들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그 시간이 왔나이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시간이 시작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과 같은 시간은 그때까지 지나간 적이 없었다. 즉 『그 시간』은 아버지의 아들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실 시간이다. <br/><br/>『그 시간』은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 일치하여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정해진 특별한 시간이었다. 『영생의 소망 안에서 주어진 것으로, 이 영생의 소망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약속하셨다가』(딛 1:2). 이 약속은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제안을 창세 전에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들었을 때 그 아들께 주어진 약속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뒤 죄인들을 위해 죽으면 “아버지”께서 그분을 “부활”시켜서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이 『영생의 소망』을 품은 “아들”께서는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시면서도 실로 “그 시간”을 위해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딤전 3:16), “그 시간”을 위해 세상으로 들어오셨는데, 바야흐로 “그 시간”이 이르렀던 것이다. 『아버지시여, 그 시간이 왔나이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그렇다면 “아들”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셔야 할 “그 시간”은 요한복음 17장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들”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서 그분 자신의 아버지를 『거룩하신 아버지』(요 17:11)와 『의로우신 아버지』(요 17:25)로 불러드렸다. 이 두 호칭은 “그 시간,” 곧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일”이 “아버지”의 두 성품과 갖는 관계를 보여 준다.<br/><br/>1 『거룩하신 아버지시여』(요 17:11) : 하나님께서는 빛이시기에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다(요일 1:5). 하나님의 이와 같은 거룩하심은 “죄에 대한 그분의 증오”를 의미한다. 『주께서는 정결한 눈을 가지셨기에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죄악을 볼 수도 없나이다』(합 1:1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하신 성품에 따라 어두운 죄를 반드시 심판하셔야 하는 것이다. 『보라, 너희는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은 것이니, 반드시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것임을 알라』(민 32:23). <br/>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롬 16:26)께 죄를 지은 인간이 자신의 죗값을 치른다면 그 대가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살후 1:9)이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소멸케 하시는 불』(신 4:24)이시다. 죄인이 스스로 속죄하고자 한다면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막 9:43)에서 직접 영원히 불타는 길밖에 없는데, 바로 이것이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는 속죄이다. 말하자면 죄인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br/><br/>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를 “영원한 속죄제물”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신 것이다! 죄를 싫어하셔서 죄인들에게 죽음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그분의 아들을 그 죄인들의 자리에서 대신 죽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대속”(代贖)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대신 속죄하는 심판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벧전 2:24). <br/><br/>2 『오 의로우신 아버지시여』(요 17:25) : 이 호칭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셔야 하는 일의 문제를 보여 준다. 영원히 멸망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실수와 오류투성이이요, 사악하고 반역적이며, 헛되고 아무것도 아니며, 모태로부터 곁길로 벗어난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셔야 할 문제를 안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에게 화를 선언하셨던 분이시다(사 5:20). 그런 분께서 어떻게 “사악한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도 자신이 의로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거룩하심과 죄에 대한 진노’를 주님 자신의 ‘은혜와 자비’와 화해시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화목제물”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심으로써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도 의로우실 수 있게 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br/><br/>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초림 때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충족시키는 “죄 없는 의로운 삶”을 사셨다. 그 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대신 받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충족시키셨으며, 우리에게는 그분 자신의 “하나님의 의”를 주심으로써(전가) “은혜와 자비”를 충족시키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가져가시고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를 맞바꾸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하나님을 그 누구도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게 하셨다. 결코 의롭지 못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해 죄와 죽음과 지옥의 문제를 해결받았으며, 하나님의 의를 소유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br/>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십자가의 대속 사역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거룩한 죽음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등장하는 한 독특한 시대, 곧 “교회 시대”를 예고했다. <br/><br/>요한복음의 기록자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예표이다(계 4:1, 요 13:23,25; 21:22).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교회 시대”의 구원 교리를 다루는 구절들이 다수 발견되며, 그 17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위대한 진리가 계시된다.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내가 그들 안에,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은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1-23). 이 기도는 주님의 제자들은 물론,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사람들도 위한 것』(요 17:20)이었다. 이 때문에 이것은 사도들 이후로 주님을 믿게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도이기도 한 것이다.<br/><br/>위의 기도는 『우리[아버지와 아들]가 하나인 것같이』(요 17:22),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 되게 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내가 그들 안에,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은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요 17:21,23).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3). 이 때 그리스도께서도 그리스도인들 안으로 들어오신다(『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 골 1:27).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도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자동적으로 아버지 안에 있게 되고 아버지께서도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시게 되는 신비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관계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위대한 신비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30 Sep 2024 17:09: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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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속적인 구절들”과 세대적 진리 (3)</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C%97%B0%EC%86%8D%EC%A0%81%EC%9D%B8-%EA%B5%AC%EC%A0%88%EB%93%A4%EA%B3%BC-%EC%84%B8%EB%8C%80%EC%A0%81-%EC%A7%84%EB%A6%AC-3/</link>
<description><![CDATA[성경이 세대주의를 가르치는 책이라는 점은 성경을 면밀히 공부해 본 성경학도에게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성경은 “연속적인 구절들”을 통해서도 성경 자체가 세대주의적인 책임을 계시하는데, 성경의 주인공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대적 진리”를 알아야 한다.<br/><br/>1. 다니엘 9:24-27<br/>▶ 구약 시대 - 초림 - (교회 시대) - 대환란 - 재림 - 천년왕국<br/>『[24절] 칠십 주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성에 정해졌나니, 허물을 끝내고 죄들을 종결시키며 죄악에 화해를 이루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그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고 지극히 거룩한 이에게 기름부으려 함이라. [25절] 그러므로 알고 깨달으라.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나오는 때부터 메시아 통치자까지 칠 주와 육십이 주가 될 것이요, 그 거리와 그 성벽이 재건되리니, 곧 고난스런 때들이라. [26절] 육십이 주 후에는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 또 장차 올 그 통치자의 백성이 도성과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 끝은 홍수로 뒤덮일 것이요 그 전쟁의 끝에는 황폐함이 정해졌느니라. [27절] 그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주 동안 언약을 확정하고, 그 주의 중간에 그가 희생제와 예물을 금지시킬 것이요, 그는 가증함을 확산시킴으로 황폐케 하리니 진멸할 때까지 할 것이며, 정해진 것이 황폐케 한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더라』(단 9:24-27).<br/><br/>다니엘 9장의 이 구절들은 그 유명한 “다니엘의 70주”를 다루고 있다. 25절의 『칠 주와 육십이 주』, 곧 “69주”와 나머지 『한 주』(27절)인 “70째 주”는 세대주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br/><br/>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의 백성과 그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70주”를 정해 주셨는데(24절),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오는 때부터 메시아 통치자까지 7주와 62주, 즉 “69주”가 되며, 그때 『메시아』께서 끊어지신다(25,26절). 그리고 나머지 한 주 동안 적그리스도가 세력을 잡을 것이고, 그 후 메시아께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다. 이 70주(70 weeks)에서 “한 주”는 “7년”을 의미한다(즉 하루가 1년을 뜻함). 그리고 1년은 365일이 아니라 “360일”로 계산되는데, 문제는 “언제부터 그 70주가 시작되느냐”에 있으며, “69주와 70째 주 사이에 끼어 있는 기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또한 풀어야 할 숙제이다. <br/><br/>25절은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나오는 때부터[구약 시대] 메시아 통치자까지 칠 주와 육십이 주가 될 것이요, 그 거리와 그 성벽이 재건되리니, 곧 고난스런 때들이라.』라고 말씀하는데,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은 느헤미야 2:1-8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아탁세르세스왕(아탁세르세스 롱기마누스) 제20년에 있었다. 그 이전에도 코레스왕 이후로 몇 번의 명령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성전”과 연관된 것이었으며, “예루살렘 성읍”과 연관된 명령은 아탁세르세스왕 제20년에 주어졌다. 그때로부터 69주, 즉 483년(1년을 360일 체계로 했을 때)을 계산하면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 기간이 나오게 된다. “로버트 앤더슨”에 따르면 69주의 종료 시점은 그리스도께서 호산나 환호를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에 떨어진다(마 21:1-11). 이때 참으로 주님께서는 다윗의 아들이신 『왕』(마 21:5)으로서 환호를 받으시며 등장하셨기 때문에(“초림”) 『메시아 통치자』로서의 모습을 갖추신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의 예언에 따라 주님께서는 즉시 “끊기셨다.” 『육십이 주 후에는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26a절). 이 말씀은 “초림” 때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끊어지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여기서 『육십이 주 후』는 『칠 주와 육십이 주』(25절)에서의 『육십이 주』이기 때문에 『칠 주』가 더해진 총 “69주” 후에 메시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끊어지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26절은 그 뒤 “콤마(,)”를 경계로 곧바로 『장차 올 그 통치자』인 적그리스도를 언급하며(대환란), 그가 행할 일 또한 예언한다. 『육십이 주 후에는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 또 장차 올 그 통치자의 백성이 도성과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 끝은 홍수로 뒤덮일 것이요 그 전쟁의 끝에는 황폐함이 정해졌느니라』(26절).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예루살렘 도성과 그곳의 성소를 파괴할 것이며, 그 일의 끝은 홍수로 뒤덮이고 그 전쟁의 끝에는 황폐함이 정해져 있다. 적그리스도가 활동할 기간은 전체 70주에서 69주를 뺀 나머지 『한 주』(27절), 곧 “7년 대환란 기간”(70째 주)이다.<br/><br/>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69주”와 “70째 주”의 불연속성을 본다. 왜냐하면 마지막 한 주의 예언은 초림 당시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의 활동과 관련된 마지막 한 주에 관한 예언은 “대환란” 때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메시아께서 끊어지신 “69째 주”와 적그리스도가 활동하는 “70째 주” 사이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을까? 거기에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에게 감춰졌던 “교회 시대 2천 년의 기간”이 감춰져 있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이 진리를 “초림”과 “대환란”과 관련된 두 기술 사이에 “콤마(,)”를 위치시키심으로써 표현하셨다. 『육십이 주 후에는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초림], 또 장차 올 그 통치자의 백성이 도성과 성소를 파괴하리니[대환란]』, 즉 『육십이 주 후에는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 다음에 위치한 “콤마(,)”가 “초림”과 “대환란” 사이에 끼인 “교회 시대 2천 년의 기간”을 담고 있는 것이다.<br/><br/>26절 끝의 『그 전쟁[아마겟돈 전쟁]의 끝에는 황폐함이 정해졌느니라.』라는 말씀과 27절 끝의 『정해진 것이 황폐케 한 자[적그리스도]에게 쏟아지리라.』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실 “아마겟돈 전쟁”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재림”을 통해 “다니엘의 70주”가 종료되고, 『허물을 끝내고 죄들을 종결시키며 죄악에 화해를 이루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그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는(2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천년왕국 시대”가 마침내 그 장엄한 막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br/><br/>2. 호세아 3:4,5 ▶ 교회 시대 - (대환란) - 재림 - 천년왕국<br/><br/>『[4절]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들 동안 왕도 없고 통치자도 없고 희생제도 없고 형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트라빔도 없이 거하다가 [5절] 그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와서, 주 그들의 하나님과 그들의 왕 다윗을 찾아서, 훗날들에 주와 그의 선하심을 두려워할 것임이라』(호 3:4,5).<br/>위의 말씀들은 “교회 시대”에 있을 이스라엘의 상태와 그 뒤 그들이 회복되는 “재림”과 “천년왕국”을 다루고 있다. 즉 4절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들 동안 왕도 없고 통치자도 없고 희생제도 없고 형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트라빔도 없이 거하는” 때는 “교회 시대”이다. 이는 그들이 현재 왕정이 아니라 “민주주의”이기 때문인데, 왕도 왕국도 없는 그들은 현재 “희생제”도 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드릴 성전이 현재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월절 기간에도 희생제를 드리지 않으며, 그들 스스로 제정한 속죄일인 욤 키푸르 전날에 희생제를 드리긴 하지만 성경적인 희생제는 아니다. 그들은 그날 성경에도 없는 수탉을 희생제로 드리면서 “이제 이것이 나의 몸값이며, 이것이 나의 대속물이다. 이것은 죽게 되나, 나는 영원한 행복과 생명으로 갈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신구약성경 어디에도 없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종교 행위에 불과하다.<br/><br/>5절은 4절의 “교회 시대”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오는 “재림”을 예언하고 있다. 물론 4절과 5절 사이에는 “대환란”이 생략되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와서, 주 그들의 하나님과 그들의 왕 다윗을 찾』는 일은 재림 뒤에 수립될 “천년왕국” 때 있을 것인데, 회복된 이스라엘이 그들의 하나님과 다윗의 통치 아래로 들어간다는 사실은 에스겔서에 예언되어 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우면 그가 그들을 먹이리니, 곧 나의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일 것이요, 그가 그들의 목자가 되리라. 나 주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가운데 통치자가 되리라. 나 주가 그것을 말하였노라』(겔 34:23,24). 『내 종 다윗이 그들 위에 왕이 될 것이며 그들 모두에게는 한 목자가 있으리라. 그들은 또한 나의 명령대로 행하고 나의 규례들을 준수하며 그것들을 행하리라. 그들은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주어 너희 조상들이 살았던 그 땅에서 거하리니 그들, 즉 그들과 그들의 자손과 그들 자손의 자손이 영원히 그 안에서 거하리라. 내 종 다윗은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되리라』(겔 37:24,25). 대환란 끝에 부활한 다윗은 “천년왕국” 때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 세움을 받을 것이고, 그 훗날들에 이스라엘은 주와 그분의 선하심을 두려워하는 민족이 될 것이다(호 3:5). <br/><br/>3. 호세아 6:1,2 ▶ 교회 시대 – 대환란 - 재림 - 천년왕국 <br/><br/>『[1절]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찢으셨으나 우리를 낫게 하실 것이요, 그가 치셨으나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절] 이틀 후에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그가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목전에서 살리라』(호 6:1,2).<br/>위의 두 구절은 하나님께서 교회 시대 2천 년의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을 “찢으셨고” “치셨던” 일과 그 일이 대환란 때 극에 달한 뒤, 재림 때 이스라엘을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며 “살리시고” “일으키실” 것을 보여 주고 있다. <br/><br/>2절의 “이틀,” 즉 『이틀 후에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의 “이틀”은 “2천 년의 교회 시대”를 뜻하는데, 이 교회 시대가 현재 거의 다 지나갔으며, 이제는 그 이스라엘 민족을 일으키시어 주님의 목전에 살리실 “셋째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회복”은 성경에 약속된 예언적 진리인 것이다(롬 11:1-29). <br/>“이틀”을 “2천 년”으로 보는 해석은 “베드로후서 3:8”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성경은 “천 년”을 “하루”로 계산한다.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으신” 하나님께 “이틀”은 “2천 년의 교회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고, “셋째 날”은 그 “이틀”이 다 지나가고 이르게 될 또 하나의 “하루”(천 년)인 “천년왕국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회복될 그 “셋째 날”을, 즉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 백성이 살게 될 “천 년”을 선지자 호세아는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30 Aug 2024 16:09: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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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주의 천사와 능력의 천사들</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C%A3%BC%EC%9D%98-%EC%B2%9C%EC%82%AC%EC%99%80-%EB%8A%A5%EB%A0%A5%EC%9D%98-%EC%B2%9C%EC%82%AC%EB%93%A4/</link>
<description><![CDATA[성경에서 “천사”는 전달자(messenger)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천사는 성경에서 “현현”(顯現, 명백하게 나타남)을 뜻한다. “하나님의 천사”는 하나님의 현현을 뜻하고, “빛의 천사”는 빛의 현현을 뜻하며, “주의 천사”는 주의 현현을 뜻한다. 따라서 『주의 천사』는 『주』께서 “사람의 몸의 형태”로 나타나신 것을 의미한다.<br/><br/>성경에서 “주의 천사”(the angel of the Lord)가 처음 나타나시는 곳은 창세기 16:7로, 여주인 사라의 면전에서 도망쳐 나온 하갈을 만나 주신 사건에서이다. 『주의 천사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로 가는 길에 있는 샘 곁에서 그녀를 만나 말하기를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니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내 여주인 사래의 면전에서 도망하나이다.” 하더라.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녀의 손 아래서 복종하라.” 하고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 씨를 심히 번성케 하리니,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되리라.” 하더라. 또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보라, 네가 아이를 가졌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주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 그가 거친 사람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대적할 것이요,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대적할 것이라. 그가 그의 모든 형제들 면전에서 거할 것이라.” 하니라』(창 16:7-12).<br/><br/>“주의 천사”에 관한 성경의 다음 기록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창 22:2) 바치려고 할 때 그를 막아서신 사건이다.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그가 말하기를 “네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하더라...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말하기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스스로 맹세하노라. 이는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곧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음이니, 복으로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번성으로 내가 너의 씨를 하늘의 별들처럼, 또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케 하리니, 네 씨가 그의 원수들의 문을 차지하리라.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음성에 복종하였음이라.” 하더라』(창 22:11,12,15-18). 이 사건에서 주의 천사께서는 『주가 말하노라.』(16절)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자신을 가리켜 『주』라고 말씀하신다.<br/><br/>이와 같은 “주의 천사”의 정체에 관해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분에 관한 성경의 다음 기록인 광야의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사건이다. 『이제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광야의 뒤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더니, 주의 천사가 가시덤불 가운데서 나온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주께서 그가 보려고 옆으로 비켜서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께서 가시덤불 가운데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모세야, 모세야.” 하시므로... 주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나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시니라』(출 3:1-14). 이 말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주의 천사』는 『주』, 『하나님』, 『나는 곧 나니라』(I AM THAT I AM), 『나이신 분』(I AM)으로 불리신다. 『주의 천사』께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현현”이시기에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이 『주의 천사』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주의 군대 대장』으로 나타나셔서 “경배”를 받으셨다. 『여호수아가 여리코 근방에 있었을 때 눈을 들어 보니, 보라,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어 들고 그를 향해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그 사람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대적 편이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나는 주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여기에 왔노라.” 하더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나의 주여 종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주의 군대의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함이라.” 하시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하더라』(수 5:13-15). 『주의 천사』께서는 초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신 것처럼(마 8:2; 9:18; 14:33; 15:25; 28:9,17, 막 5:6, 눅 24:52, 요 9:38) 여호수아의 경배를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셨기에 구약 시대에 『주의 천사』로서 역사하실 때처럼 경배받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셨던 것이다.<br/><br/>사람들에게 경배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천사” 곧 “하나님의 현현”이셨다. 『또 너희는 나의 육체 안에 있는 나의 시련을 무시하거나, 거절하지도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같이 곧 그리스도 예수같이 나를 영접하였도다』(갈 4:14).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고난 때문에 천사들보다 조금 낮아지셨다(히 2:9).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현현”이셨다. 그렇기에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리신 것이다(마 1:23).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는 스스로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시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있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니라』(요 10:3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Before Ab- raham was, I am].”고 하시니라』(요 8:58).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몸에 해당하는 분이시며, 그분 자신을 “I am”으로 계시하셨다. 그러나 이 “I AM”의 “힘”(power)을 사용하셨을 때는 주님의 대적들이 뒤로 물러서서 땅에 엎드리고 말았다. 『주께서 “내가 그니라.”[I am he]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뒤로 물러서서 땅에 엎드리더라』(요 18:6). 주님의 대적들은 “I AM”이신 분께 엎드려 경배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출애굽기 3:14의 “I AM,” 곧 『나이신 분』께서 육신으로 오신 분이셨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딤전 3:16). <br/><br/>셋째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머지않아 공중에 재림하시어 교회를 휴거시키신 뒤(살전 4:16-18), 대환란 어느 시점에 “주의 천사”로서 땅의 유대인들에게 출현하실 것이다! 『내가 보니, 다른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구름으로 옷입고 머리에 무지개가 있으며, 얼굴은 해와 같고 그의 발은 불 기둥 같더라. 그의 손에는 작은 책이 펴 있고 오른쪽 발은 바다를, 왼쪽 발은 땅을 밟고서 사자가 포효하는 것처럼 큰 음성으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 일곱 천둥이 소리를 발하더라』(계 10:1-3). 이 힘센 천사의 외모는 그가 요한계시록 1:14-16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준다. 『그의 머리와 머리털은 눈처럼 희어서 양모처럼 하얗고, 그의 눈은 불꽃 같더라. 그의 발은 용광로에 달군 듯한 빛나는 놋 같고,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가졌고 또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가진 칼이 나오며, 용모는 해가 그 맹렬한 기세로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4-1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 지파의 사자』(계 5:5)이시므로 『사자가 포효하는 것처럼 큰 음성으로 외치』신다(계 10:3). 힘센 천사가 옷입은 “구름”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다(『보라, 그가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니』 - 계 1:7, cf. 행 1:9). <br/><br/>말하자면 요한계시록 10장에서 “힘센 천사”의 출현은 지상 재림 전에 있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환란 기간 중 어느 때에 “주의 천사”로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면 144,000명의 유대인들의 회심이 있게 될 것인데(계 7:4-8), 이 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요셉이 이집트의 7년 흉년 중에 자기 형제들을 만나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사건이 예표한다. 『그때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는 모든 자들 앞에서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질러 “모든 사람은 나에게서 물러가라.” 하니, 요셉이 자신을 자기 형제들에게 알리는 동안 그와 함께한 자가 아무도 없더라. 그가 큰 소리로 우니 이집트인들과 파라오의 집이 듣더라.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하나, 그의 형제들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었으니, 이는 그들이 그의 면전에서 불안해 함이더라』(창 45:1-3). 또한 “후 3년 반” 기간인 “42”개월 동안 대환란을 겪는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욥”에 관한 이야기인 “욥기”가 전체 “4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욥기 “38”장에서 “욥”에게 나타나신 일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환란 기간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실 사건을 예표한다. 『그때 주께서 회오리바람 속에서 욥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지식이 없는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이 자가 누구냐? 너는 이제 남자답게 네 허리를 동이라. 내가 너에게 요구할 것이니 너는 내게 대답하라』(욥 38:1-3).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만난 사건에서 “요셉의 형제들”은 회심했고, 하나님께서 “욥”을 만나신 사건에서 “욥” 또한 “회심”했다. 이 점은 대환란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유대인 환란성도들이 회심할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<br/><br/>대환란이 끝나기 전에 “회심한” 144,000명의 “유대인 남자 동정들”(계 14:4)은 “진통하기 전에 낳은 사내아이”(사 66:7,8)와 같은 존재들이며, 마치 “달을 채우지 못하고 난 자 같은 바울”처럼(고전 15:8)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게 될 것이다(롬 15:18, 갈 2:7,8). “유대인 환란성도”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종들』로서 『그들의 이마에 인장으로 표시』를 받아(계 7:3) 대환란의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게 된다(계 9:4, 막 16:18). 바로 이들이 대환란 때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마 24:13,14)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이 그 점을 보여 준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왕국 복음을 들고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는 일에 대환란 때의 『첫열매들』이라고 불리는 유대인 『동정들』이 쓰임받는 것이다(계 14:4). 그들 신실한 유대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감으로써(계 14:4) 세상 『모든 민족』에게 『왕국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br/><br/>힘센 천사로서 표현되시는 주의 천사께서는 지상 재림 때에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서 오실 것이다. 그때 함께 내려올 “천사들”이 있으니, 바로 “능력의 천사들”이다! 『고통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라.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살후 1:7-9). 주님께서 죄인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실 때는 “지상 재림” 때이다. 따라서 본문의 『능력의 천사들』이란 『부활 때에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기에(마 22:30) 지상 재림 때 부활의 몸을 입고서 주님과 함께 내려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계 19:13,14). <br/><br/>『그분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바 오는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에 맡기지 아니하셨으니』(히 2:5). 일반 천사들은 천년왕국에서의 지배권이 없지만, “능력의 천사들”은 그 왕국을 통치할 것이다. “능력의 천사들”은 왕국 통치권을 부여받는 특별한 천사들을 가리킨다. “한 가지 조건”은 지금 이 교회 시대에 주님을 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고난을 견뎌 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참으면 우리도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요 우리가 그를 부인하면 그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딤후 2:12).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롬 8:16,17).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의 몸 안의 지체들이라고 해서 장차 주님께 모두 동일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한 “종”으로서 받는 대우는 각자가 다를 것이다. 『각 사람은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니라』(고전 3:8).<br/><br/>“능력의 천사들”에게는 큰 백보좌 심판 때 “세상”과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심판권 또한 주어진다. 『너희는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세상이 너희에게 심판을 받을진대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들을 심판할 역량도 없느냐? 너희는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물며 이생에 관한 일들이랴?』(고전 6:2,3) “능력의 천사들”인 그리스도인들은 백보좌 심판 때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할 엄청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백보좌 심판 때 “천사들”까지도 심판하게 되는데, 이 천사들은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창 6:2)이라 불리는 자들로서, 그때 죄를 짓고 타락하여 현재 흑암의 사슬에 묶인 채 갇혀 있는 천사들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조차 아끼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흑암의 사슬에 내어주어 심판 때까지 가두어 두셨으며』(벧후 2:4, 유 1:6). 이 타락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약의 『하나님의 아들들』(요 1:12)인 “능력의 천사들”에게 심판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심판이 끝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날 것이다.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 12:3). 성경에서 천사는 “별”로 일컬어진다(계 1:20; 9:1). 이 땅에서 죄인들을 구령한 “능력의 천사들”은 별들처럼 영원히 빛나게 될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Jun 2024 11:07: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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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동성 연애”를 조장하는 유엔사무총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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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재림 직전에 일어날 일들에 관해 경고하시면서 “롯의 날들”을 강조하셨다. 『그것은 또한 롯의 날들에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라...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그들 모두를 진멸시켰느니라. 이와 같이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하리라』(눅 17:28-30). 롯이 거주했던 소돔 성읍은 음행의 소굴이었다(유 1:7). 특히 동성 연애자들의 소굴이었으니, “소돔 사람”을 의미하는 “sodomite”는 “남자 동성 연애자”를 뜻하기도 한다. 이렇듯 롯의 날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동성 연애”가 일상생활 속에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특징은 “완전한 통합”이었다.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말을 공유하는 시대! 특히 바벨탑 사건은 오늘날 “국제연합”(UN)의 모체라 할 수 있다.<br/><br/>바벨탑은 창세기 11장에 나온다. 롯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 역시 창세기 11장에서이다. 그리고 롯은 13장에서 소돔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여기에서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특징짓는 두 가지 현상, 곧 “국제연합”과 “동성 연애”를 보게 된다. 이것은 재림 직전 현 세상의 상황을 반영해 주고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반기문 “국제연합” 사무총장은 유엔 직원들의 “동성(同性) 결혼”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던 것이다.<br/><br/>죄와 불법을 조장하는 리더<br/><br/>유엔 뉴욕 지부의 한 동성 연애자 직원은 “유엔 직원을 위해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반 총장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죄를 짓도록 조장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부추기겠다고 분별없이 나서는 만용이자,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불법적인 행동일 뿐이다.<br/><br/>오늘날 언론 매체들은 성적 변태자들을 “성적 소수자”(LGBT),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와 같은 그럴듯한 말들로 옹호하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단호하게 “죄인”이라고 규정한다. 성경에서 “죄인”(sinner)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13:13에서이다. 『그러나 소돔인들은 사악하였고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이었더라.』 말하자면 동성 연애자들을 다루는 구절에서 죄인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이다. 특히 이와 같은 죄인들을 다루는 구절이 “13:13”이란 사실에 주목하라. 성경에서 “13”은 “반역의 숫자”이다(창 14:4). 죄인들은 반역자들이다. 동성연애자들은 『주 앞에』 서 있는 반역자들인 것이다. 창세기 11장에서 최초의 국제연합을 주동했던 “초대 유엔사무총장” 님롯은 아담의 “13”대 후손으로서 『주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 되었다(창 10:9). 그러니까 주님의 면전에서 주님을 거슬러 반역하고 대항하며 불법을 조장하는 죄인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동성애 범죄를 저질렀던(창 9:24) 함의 후손이었다. 그리고 함의 후손은 동성 연애자들의 소굴인 소돔을 세웠다(창 10:19). 롯은 그곳에서 그들의 음란한 행실, 곧 불법적인 행동을 날마다 보고 들으면서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벧후 2:8).<br/><br/>이상의 내용을 통해서 동성 연애와 국제연합 사이에 모종의 연결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성경은 그런 일련의 행위들을 가리켜 죄요, 반역이요, 불법적인 행동이라고 규정짓는다. 사실이 그러한데 어찌 반 총장의 불법적인 결정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죄와 불법을 조장하는 일이 지도자라는 사람이 할 일인가! 국제 분쟁 하나 제대로 해결 못하는 유엔은 이처럼 쓸데없는 짓만 할 뿐이다.<br/><br/>인권을 최종권위로 삼은 유엔<br/><br/>반기문 사무총장이 동성 결혼을 인정한 가장 큰 이유는 “인권”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이번 유엔 차원의 공식적인 결정으로 “유엔의 모든 직원들이 더욱 평등한 권리를 누리게 됐다.”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br/><br/>반 총장도 말했듯이, “인권은 유엔 임무의 핵심”이다. 롯의 날들에 최초의 국제연합이 전면에 내세웠던 표어 역시 인권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그들은 하나님을 배제한 채 “우리”만을 부르짖으며(창 11:4) 휴머니즘을 노래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인위적인 재료와 인간적인 동기와 태도를 취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인간 문명을 건설했고(도성), 인권을 지키기 위해 위로 올라가려는 욕구를 관철시켰다(탑). 또한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기를 거부했다. 인권을 내세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것이다.<br/><br/>마지막 교회 시대 역시 하나님의 권리보다 “인권”이 중시되는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첫째로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다(딤후 3:2,4). 또한 인권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있다. 그래서 현대의 설교자들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정욕을 채워 주기 위해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그들의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들은 인권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던져 버린다. 인권을 위해서라면 성경을 변개시켜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br/><br/>인권이 최종권위가 되어 버린 이 시대는 선과 악의 기준을 바꾸어 버리기까지 한다. 휴머니즘에 사로잡힌 유엔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사회적 소수도 인권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모두 ‘우리’가 만든 ‘탑’으로 모여라. 흩어지지 말라! ‘성적 소수자’ 역시 인권을 보호받아야 한다. 그들이 죄인이건 아니건 중요치 않다. 그들을 혐오하거나 정죄하지 말라!” 분명 성경은 동성 연애자들을 죄인들로 정죄하고 있지만, 유엔은 오히려 그러한 정죄 자체를 인권침해로 보고 죄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스스로 인권 유린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성경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br/><br/>성경혐오증에 사로잡힌 사무총장<br/><br/>한번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다음과 같이 연설한 적이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공격에 소리 높여 맞서자!” 그는 또한 “모든 유엔의 가족들은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br/><br/>반면 성경은 동성 연애자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한다. “그들은 가증한 자들이고(레 18:22),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한다(레 20:13). 그들은 본성을 거역하여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자들로서 그들의 그릇된 생활 방식에 대한 상당한 보응을 받았다(롬 1:26,27). 그 보응의 일부는 임질이나 매독, AIDS와 같은 성병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마땅히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이 정해져 있다(롬 1:32).” 이처럼 성경은 동성 연애자들을 “혐오”하고 있다.<br/><br/>반 총장에 의하면 성경은 “호모포비아”에 걸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엔의 모든 가족들은 성경을 거부해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혐오하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그들의 죄들을 낱낱이 명백하게 드러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히 4:13). 그래서 그들은 “성적 소수자,” “인권 보호,” “에큐메니칼”이란 테두리 안으로 숨어 버린다. 반 총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동성애혐오증을 거부한 대신 성경혐오증에 사로잡힌 것이다.<br/><br/>결론적으로, 최초의 국제연합 바벨탑 사건은 “혼란”으로 마감되었고 동성 연애자들의 소굴인 소돔은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국제연합과 동성 연애자들에게는 무엇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절대로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4 Jun 2024 15:01:2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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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책 마태복음</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A%B5%AC%EC%95%BD%EC%97%90%EC%84%9C-%EC%8B%A0%EC%95%BD%EC%9C%BC%EB%A1%9C-%EC%A0%84%ED%99%98%EB%90%98%EB%8A%94-%EC%B1%85-%EB%A7%88%ED%83%9C%EB%B3%B5%EC%9D%8C/</link>
<description><![CDATA[과도기적인 책들 가운데 마태복음, 사도행전, 요한계시록은 내용들 대부분이(예외는 있음) 순차적인 흐름에 따라 교리들이 전개되어 나가기 때문에 경륜들이 “변하는 주요 지점”에 대한 올바른 지식만 있으면 경륜에 따른 서로 다른 교리들을 구분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마태복음의 경우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지점은 27장이다. 이 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된다.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7장이다.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민족적인 차원에서 왕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장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은 이스라엘(유대인)에서 교회로 옮겨간다. 요한계시록은 1-3장(교회 시대), 4-19장(환란 시대), 20-22장(천년왕국과 영원 시대)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변화의 기점을 중심으로 경륜적인 진리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전되는지 공부해야 진리의 지식들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 반면에 히브리서는 다른 과도기적인 책들과 다르게 순차적이지 않고 경륜에 따른 서로 다른 교리들이 여기 저기 섞여 있어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br/><br/>이제 과도기적인 책들에 나타난 경륜적인 특징들을 책별로 살펴볼 것인데, 신약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과도기적인 책은 “마태복음”이다.<br/><br/>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책<br/><br/>마태복음은 “신약”을 여는 첫 번째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의 내용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약과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 주는 책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도 같은 위치에 놓여진다. 사복음서 모두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속에 놓여있는 책이며 그 중 첫 번째 책이 마태복음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신약의 첫 번째 책으로서 가지는 위상과 다르게 신약적인 특징보다는 오히려 구약적인 특징들이 주를 이룬다. 이로 인해 수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 및 교사들은 상당한 혼란을 느낀 나머지 마태복음의 많은 구절들을 교회 시대를 향한 “교리”로 무분별하게 가져와 적용함으로써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br/><br/>이처럼 마태복음은 신약에 있으면서도 구약적인 구절들을 많이 담고 있다. 경륜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기까지 당시의 사람들은 율법 아래에 있었고 구약의 연장선상에서 율법의 규례들을 지키며 살았다. 그래서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교리들, 곧 거듭남과 십자가의 보혈, 믿음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은혜의 구원,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개념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런 교리들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시된 적도 없었다(암시만 되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마태복음에는 교회나 이방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구절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보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라. 이것은 마태복음이 경륜적으로 차지하는 위치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준다.<br/><br/>img-X30121122-0001.jpg <br/><br/>위 그림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기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그래서 십자가 이전을 구약, 십자가 이후를 신약이라 부르는 것이다. 구약이라 하면 말 그대로 “옛 언약”(the old testament, 고후 3:14)을 말하는데, 이는 “첫 언약”(the first testament, 히 9:15)이라 불리기도 한다. 반면에 신약은 “새 언약”(the new testament, 히 9:15)이며 “더 좋은 언약”(a better testament, 히 7:22)으로도 불린다. 무엇보다 더 좋은 언약인가 하면, 십자가 이전의 경륜에서 제시되었던 육신적 계명의 율법에 따른 “첫 번째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말하자면 신약은 구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br/><br/>여기에서 구약과 신약할 때, “약”(약속)에 해당하는 “testament”(헬, 디아데케)는 “유언”과 “약속”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신학적인 용어로는 “언약”이라 하고 성경에서는 문맥에 따라 둘 중 하나로 적절하게 번역된다. 1)&nbsp; 기본적으로 유언은 이제 곧 죽게 될 사람이 지상에 남겨두고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다. 그래서 유언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따라온다. 또한 죽음은 일반적으로 “피”와 연관되는데, 2)&nbsp; 이때 죽으면서 흘리게 될 피로 맺은 언약이 바로 “testament”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구약은 “옛 피”(old blood)로 맺은 언약을, 신약은 “새로운 피”(new blood)로 맺은 언약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누가 죽었고 누구의 피가 흘려졌다는 것인가? 구약은 최초 “어린양”의 피가 흘려진 이래로(창 3:21, “가죽 옷”) 율법의 규례를 따라 해마다 계속해서(히 10:1) 죽어간 수많은 동물들의 희생제사로 점철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구약은 “옛 동물들의 피”로 맺은 언약이다. 반면 신약에서는 모든 죄인들의 구속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다. 그분은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진정한 “어린양”이셨다(요 1:29). 따라서 신약이라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언약이다.<br/><br/>그런데 히브리서 히 9:15-20에 따르면 유언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언한 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유언은 사람이 죽은 후에야 효력이 있으며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전혀 효력이 없느니라』(히 9:17). 그러니까 새 언약의 중보자(히 9:15)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신약이 시작될 수 있다. 이 유언(마 26:28)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유언을 남기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한다. 그래서 구약은 말라키로 끝나고 신약이 마태복음부터 시작되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까지는 아직 신약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유언한 자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이전까지는 여전히 구약의 상황이지 신약이 아니다. 때가 차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 아래 태어나셨고(갈 4:4,5), 또한 할례의 일꾼으로서 구약의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는 가운데 율법 아래에서 사역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고 율법의 끝이 되셨다(롬 10:4, 요 1:17).<br/><br/>이렇게 율법의 마침이 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마태복음 27:50(막 15:37, 눅 23:46, 요 19:30)에 가서야 비로소 신약이 시작된다. 유언한 자가 죽었으니 드디어 신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십자가를 기점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게 된다. 마태복음 전체 28장 가운데 27장에 이를 때까지는 여전히 “구약”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구절들 대부분이 “구약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미리 아심 가운데 신약은 시작될 것이었으므로, 신약시대로의 새로운 경륜의 변화와 이에 따라 등장하는 교회에 관한 내용들은 마태복음 곳곳에서 간접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br/><br/>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의 차이<br/><br/>전환기적인 책은 두 가지 경륜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경륜에 해당하는 두 가지 교리적인 특징들이 동시에 발견된다.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이므로,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이 함께 다루어진다. 따라서 구약에 해당하는 교리와 신약에 해당하는 교리가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구약에는 여러 개의 경륜들이 등장하지만 “구약의 경륜”이라 한다면 주로 “율법시대의 경륜”을 말한다. 신약에도 역시 여러 개의 경륜들이 등장하지만 신약을 대표하는 경륜은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제시되는 “교회 시대의 경륜”이다.<br/><br/>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은 동일하지 않다. 이는 전자에 해당하는 율법과 후자에 해당하는 바울 서신의 내용을 간단히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지켜라.”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등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규례들이 나오는 반면, 사도 바울은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단 한 번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 적이 없고 또한 음식은 감사함으로 먹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음식을 삼가라고 명령한 적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경고했다(딤전 4:1-5). 이것이 모순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명령들은 각각이 속한 경륜 안에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올바른 진리인 것이다. 다만 교리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 올바르게 적용해야 하는 가의 문제인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신약의 복음은 신약 성도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구약의 율법은 신약 성도들에게 얼마든지 영적으로는 적용이 가능하지만, 결코 교리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br/><br/>이처럼 모순은 아니지만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교리적인 내용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책들이 바로 전환기적인 책들이다. 전환기적인 책들 안에는 두 개 이상의 경륜이 포함되어 있다. 바울 서신은 교회 시대에 적용해야 할 교리들로 가득 차 있고 은혜의 복음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전환기적인 책들은 신약에 속해 있으면서도 은혜의 복음이나 신약 성도들이 지켜야 할 교리들로만 일관하지 않는다. 어떤 구절들은 구약적인 율법과 관계가 있고, 행위구원이라든지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는 등의 내용들, 왕국복음, 그에 따른 표적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전환기적인 책을 다룰 때에는 특히 성경 구절들을 올바로 나누어(rightly dividing) 공부할 수 있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딤후 2:15). 고기를 올바르게 잘게 나누어 먹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걸리기 마련이다. BB<br/><br/>(각주)--------------------------<br/><br/>1) “testament”란 단어는 구약에는 등장하지 않고, 신약에서만 14회 등장한다. 이 중 “유언”의 의미로는 2회 사용되었고(히 9:16,17), 나머지는 모두 “언약”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6:28, 막 14:24, 눅 22:20, 고전 11:25, 고후 3:6,14, 히 7:22; 9:15,18,20, 계 11:19).<br/><br/>2) 성경에서 “죽음”에 관한 내용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2:17에서이다. 금지된 열매였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런데 그 나무로부터[그 나무는 포도나무였다, 피터 S. 럭크만, 『창세기 I』(서울: 말씀보존학회, 1998), pp.70,71 참조] 인간은 “피”를 얻게 된다(성경에서 포도는 피의 예표이다, 마 26:26-28). 말하자면 “죽음”은 “피”와 더불어 인류에게로 들어온 것이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1:50:2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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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태복음에서 볼 수 있는 “구약과 신약의 차이” (1)</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6/%EB%A7%88%ED%83%9C%EB%B3%B5%EC%9D%8C%EC%97%90%EC%84%9C-%EB%B3%BC-%EC%88%98-%EC%9E%88%EB%8A%94-%EA%B5%AC%EC%95%BD%EA%B3%BC-%EC%8B%A0%EC%95%BD%EC%9D%98-%EC%B0%A8%EC%9D%B4-1/</link>
<description><![CDATA[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책이므로, 하나의 책 안에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이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034;구약과 신약&#034;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마태복음이 혼란스러운 책이 되고 만다. 두 가지 경륜에 속한 서로 다른 교리들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br/><br/>죄사함(remission)과 구속(redemption)의 차이<br/><br/>이 두 용어는 구약과 신약의 경륜적인 차이를 보여 준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흘려진 피의 속성이나 효력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br/><br/>구약의 율법 하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034;죄사함&#034;(remission), 곧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가 짐승들의 피였다. 이는 그들이 동물의 피로 맺어진 언약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출 24:6-8). 하지만 구약의 희생제물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 것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짐승의 피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어도 죄가 완전히 제거되거나 깨끗하게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런 한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이 출애굽기 34:7이다. 『자비를 수천 대까지 간직하며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나 범법자가 결코 깨끗게 되지는 아니하리니』, 즉 구약의 성도들은 죄들의 사함은 받았어도 죄들이 구속되지는(redeemed) 않았던 것이다.<br/><br/>이처럼 동물들의 피의 효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① 죄와 허물이 용서는 되었지만 깨끗하게 되지는 않았다(민 14:18). 제단과 성전 기명들, 사람의 몸, 옷 등은 깨끗하게 할 수 있었어도 죄나 양심을 깨끗하게 하지는 못했다. ②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히 10:4). ③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도 마련해 주지 못했다(히 9:8).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을 찢지 못했다. 즉 동물의 피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은 죄가 용서되어 구원을 받았어도 죽은 뒤에 곧바로 셋째 하늘의 낙원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정해진 때가 이를 때까지 땅 아래에 있는 &#034;아브라함의 품,&#034; 곧 &#034;지하 낙원&#034;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것이다. ④ 죄인들의 양심을 온전케 하지도, 정결케 하지도 못했다(히 9:9,14). 그래서 계속해서 죄들에 대한 의식(conscience)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해마다 죄들이 다시 기억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히 10:2,3). ⑤ 피의 효력이 영원하지 못했다(히 10:14). 그래서 희생제사를 해마다, 여러 번, 자주 반복해서 드려야 했던 것이다.<br/><br/>이처럼 구약의 효력은 죄를 용서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034;죄사함&#034;만 있고 &#034;구속&#034;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옛 언약 속에 묶여 있던 구약 성도들에게는 온전하고 영원한 구속이 필요했다. 새로운 언약의 중보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다. 『첫 언약 때에 범죄한 것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히 9:15). 정확히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죄들을 &#034;용서&#034;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034;구속&#034;하기 위해 죽으셨다. 이는 &#034;죄사함&#034;은 구약에도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만을 위해 죽으셨다면 그것은 의미 없는 죽음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짐승의 죽음만으로도 죄는 용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보다 더 좋은 중보자로 오셨으니 &#034;구속&#034;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br/><br/>주께서는 구약 성도들이 동물의 피를 근거로 죄들을 용서받은 것 때문에 &#034;새 언약의 피&#034;를 흘리시려고 했다. 『이는 이것이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마 26:28). 피를 흘리신 목적이 죄들을 용서하는 것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구약에서도 동물의 피로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죄의 용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구속이었다. 주님께서는 &#034;구속&#034;을 위해 죽으셨다. 말하자면 죄들을 제거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034;구속&#034;(redemption)은 &#034;실제로 값을 지불하는 것&#034;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값을 지불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충족시키셨다. 그 피는 죄들을 단번에 제거했고 영원히 온전케 해주었다(히 10:11-14). 그래서 신약은 구약보다 &#034;더 좋은 언약&#034;이다. 이는 신약의 죄 용서가 동물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br/><br/>동물의 피보다 우월한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의 피로써(행 20:28) 온전한 구속을 이룬다(엡 1:7). 구약이 지녔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① 죄와 허물이 용서되는 것은 물론 온전히 깨끗하게 된다. 심지어 성막의 원형인 하늘 그 자체마저도 깨끗하게 한다(히 9:23). ② 죄들을 제거했다(요 1:29). ③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히 10:19,20). 성소와 지성소의 중간을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다. 구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롬 3:23,24). 따라서 교회 시대의 성도들은 죽은 뒤에 지하 낙원이 아닌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셋째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마 27:51-53, 엡 4:8). ④ 죄인의 양심은 온전해졌고 정결케 되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따라서 죄들에 대한 의식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히 10:17) 계속 반복해서 기억할 필요도 없다. ⑤ 피의 효력은 영원하다(히 10:14). 그래서 해마다, 여러 번, 매일, 자주 반복해서 드릴 필요도 없어졌다(히 7:27). 단번에 영원히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찬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br/><br/>이것이 바로 구약의 용서와 신약의 용서의 차이이다. 구약에는 용서만 있고 구속은 없었다. 그러나 신약에는 용서뿐만 아니라 구속도 있다. 그래서 골로새서 1:14에서는 &#034;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다.&#034;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처럼 동물의 피로 죄를 용서받은 것과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용서받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예수님의 피는 인간의 모든 죄를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요 1:29). 그 피는 영원하고 완전하다. 그래서 십자가 이전인 구약의 구원 방법과 그 이후인 신약의 구원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숨을 거두시는 마태복음 27:50에 이르기까지는 죄의 용서(죄사함)만 있는 구약적인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구속될 수 없었다(갈 4:4,5). 이러한 경륜적인 차이 때문에 신약적인 방법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을 마태복음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통해 교회 시대의 구원의 교리를 정립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는 것이다. 사실 구원의 교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교리들도 신약의 교리들과 차이를 보인다.<br/><br/>유대인 중심에서 교회 중심으로<br/><br/>십자가 사건 이전까지는 신약이 시작되기 전이므로 구약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율법적이고 유대인 중심적인 교리가 등장한다. 아직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태어난 새로운 세대, 곧 &#034;교회&#034;(시 22:30,31, 이방인들이 중심을 이룸)를 위한 경륜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로 유대인들을 위해 사역하셨으니 할례의 일꾼이셨던 것이다(롬 15:8). 이런 이유 때문에 마태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는 내용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br/><br/>① &#034;예수&#034;란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들에서 구원하실 분이란 뜻이다(마 1:21). 여기에서 &#034;자기 백성&#034;은 교회, 곧 신약의 성도들이 아니다. 아직 신약의 문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구약적인 상황이기에 이들은 유대인들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목적은 &#034;유대인들&#034;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②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셔서 그들에게 왕국 복음을 전파하라고 위임하셨을 때에도 &#034;이스라엘 집&#034;의 잃어버린 양(유대인들)에게로만 가라고 명령하셨다(마 10:5,6). ③ 투로와 시돈 지방의 한 카나안 이방 여인이 마귀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간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034;자녀들&#034;(유대인들)의 빵을 개들(이방인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시면서 매몰차게 거절하셨는데, 이는 그분의 주된 사역이 이스라엘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마 15:23-25). 여기에는 이방인이든, 교회든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구약을 배경으로 하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구약적인 교리들을 교회 시대를 위한 교리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<br/><br/>그러나 십자가 이후로 경륜의 중심이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넘어갈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성령님께서는 마태를 통해 몇몇 구절들에서 교회에 대한 내용들도 직간접적으로 암시해 놓으셨다. 이렇듯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주된 대상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대인들이 왕을 거부하는 모습이 두드러지는 마태복음 11,12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즉 왕 없이 왕국을 세우고, 왕을 받아들일 의향이 전혀 없으며, 예수님을 비방할 뿐만 아니라 왕의 표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이스라엘을 예수님께서는 이제 민족적으로 다루시지 않고 개인적으로 초청하기 시작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 이후 교회 시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믿고 영접하기 위해 그분께로 나아오게 될 것을 암시해 준다. 심지어 마태복음 16장에서는 &#034;교회&#034;를 직접 제시하시면서 반석이신 그분 자신 위에 &#034;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034;고 말씀하셨다(마 16:18). 특히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언급하는 문맥에서(마 16:21) 처음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의미가 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맺어지게 될 신약의 주된 대상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경륜적 변화 속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대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마태복음 후반부로 갈수록 보다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신약적인 교회의 중요한 위치나 교회의 징계에 대한 규례로 삼을 수 있는 구절들(마 18:15-18), 그리고 지역 교회의 단순한 형태(마 18:20)에 관한 내용들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말하자면 &#034;자기 백성&#034;인 이스라엘에서 &#034;모든 민족들&#034;인 이방인들, 특히 교회에게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유대인을 위한 교리와 교회를 위한 교리가 함께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을 각 대상에 맞게 교리적으로 올바르게 구분하여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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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0:52: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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