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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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암살”에 가담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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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6월호>

지난 4월, <본회퍼 : 목사, 스파이, 암살자>라는 제목의 전기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철저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에서 지난해 11월 개봉되어 박스오피스 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영화 감독인 토드 코마르니키는 <크리스찬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본회퍼)는 불의를 보고는 그것에 맞섰다. 그는 유대인들이 타자화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을 위해 싸웠다. 그는 게슈타포가 교회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들을 대항하여 설교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에 뿌리를 둔 순수한 용기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라고 “본회퍼”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했다. “본회퍼”가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겠으나, 사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성당 한편에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도열된 “현대의 순교자” 10인 가운데 들어 있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다. (참고삼아 덧붙이자면, 그 가운데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도 있다.)

국내외의 기독교계에서는 영화를 통해 새삼 부각된 이 “본회퍼”라는 인물을, “행동하는 신앙인”의 본으로서 추켜세우는 분위기다. 누리꾼들은 관람평을 통해 “본회퍼는 39세의 일기를 예수님의 참 제자로 살았다.” “나치독일의 유대인 말살과 종교탄압의 과정에서 참 교인의 행동을 적나라하게 표출했다.” 등의 의견을 표했다. 그러나 본회퍼라는 인물의 삶이 과연 “성경적”이었는지는 “성경”으로 따져 봐야 할 일이다.

독일에서 1906년에 태어난 디트리히 본회퍼는 튀빙겐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하여 21세의 나이에 신학 박사학위를 수석으로 취득한 촉망받는 수재였다. 당시 그는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던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꾸려 가던 노동자들의 삶에 큰 연민을 느꼈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담하여 유럽 국가들의 군비 축소와 평화 유지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당시 본회퍼의 조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신학”은 히틀러의 신학이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극단적 민족주의 이념을 집약해서 쓴 책인 <나의 투쟁>에 이렇게 썼다. “현재 나는 전능하신 창조주의 뜻에 따라 내가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내 스스로를 유대인들로부터 보호함으로써, 나는 주님의 사역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1934년 히틀러는 스스로를 총통이라고 칭하며 독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생학적인 믿음에 따라 독일의 번영을 위해서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아리안”들만이 번성해야 하고, 열등하며 저주를 부르는 민족인 “유대인”은 말살되어야 한다는 그의 이념을 각처에서 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당시 기독교계 또한 히틀러와 나치당의 그와 같은 정책에 동조하였고, “유대인 성도들”을 심지어 “목사”라고 해도 교회에서 쫓아냈다.

나치의 이념에 동조할 수 없었던 목사들은 “고백교회”를 결성했는데, 본회퍼는 여기에서 신학교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1937년 고백교회의 신학교 사역이 불법으로 규정됨에 따라 본회퍼는 본격적으로 “지하 사역”에 발을 담갔다. 이로써 도망과 교육과 추방을 반복하던 나날들 가운데, 미국 유니언 신학교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할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 실제로 본회퍼는 미국 땅을 밟지만, “미국에 가자마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속히 마음을 고쳐먹고 독일에 귀국했다. 독일인들과 함께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나고 난 뒤 교회의 정상화 작업에 참여할 자격이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치정권의 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 저항 세력에 합류했다. “비폭력 평화주의자”의 길을 버리고 “폭력 저항운동가”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이들 저항 세력은 표면상으로는 “압베어”라는 이름의 독일군 정보기관이었으나, 물밑에서는 유대인 보호, 연합군과의 소통, 히틀러의 암살 등을 꾀하고 있었다. 본회퍼가 이 조직에 합류할 수 있도록 주선했던 처남은, 세계 교회와의 소통 창구로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본회퍼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군을 설득했다. 그렇게 본회퍼는 “이중간첩”이 되어 세계 이곳저곳으로 날아가 “압베어”의 나치 체제 전복 계획을 도왔다.

그러던 1943년 어느 날, 압베어의 핵심 멤버 가운데 하나였던 처남이 그만 꼬리를 밟히고 말았다. 본회퍼도 체포를 면할 수 없었는데, 이때 그에게 씌워진 주요 혐의점은 유대인들의 탈출을 도왔다는 것이었다.
이듬해인 1944년, 대망의 “히틀러 암살”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졌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분노한 히틀러는 배후를 색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본회퍼가 암살 계획에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히틀러는 암살 음모 가담자들을 전원 사살하라고 지시했고, 그렇게 본회퍼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것은 1945년 4월 9일, 나치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가 자살하기 정확히 21일 전의 일이었다.

본회퍼는 자신의 활동을 정당화하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친 자가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것을 볼 때, 목회자가 할 일은 그 자동차에 치어 죽는 이들의 장례를 주관하는 것보다 먼저 그 미친 자를 운전대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이다.” 본회퍼가 처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말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 “운전대를 잡은 미친 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세는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롬 13:1).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로 악명 높은 “네로”였다. 네로는 집권 당시 로마에서 발생했던 대화재를 그리스도인들 탓으로 돌리고는 수백 명의 성도들을 학살했다. 베드로와 바울도 네로 치하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럼에도 사도들은 그 제국을 무너뜨리려 들거나 황제를 암살하려 들지 않았다. 그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주신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세는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롬 13:1).

본회퍼가 몸담았던 루터교회의 창시자인 마틴 루터도 그와 같은 일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1524년 독일에서 농노들이 무장 봉기를 일으켰을 때, 루터는 “루터가 봉건 질서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 우리들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던 그들에게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들이 루터의 권면을 무시하고 “농민전쟁”을 일으키자, 루터는 귀족들에게 “반역보다 더 독이 되고, 해로우며, 마귀적인 것은 없다”며 “무력 진압”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본회퍼와 같은 수재가 그처럼 단순한 성경적 지침조차 분별하지 못했던 까닭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갖고 있던 신학적 입장은 이러한 추측을 확신에 가깝게 만들어준다. 그는 <나를 따르라>라는 책을 통해 “물론 여러분은 죄를 지었지만, 이제 모든 것이 용서되었으니, 여러분은... 용서로부터 오는 위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라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값싼 은혜”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술 더 떠서 “값비싼 은혜”를 얻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라고 썼다. 이를 종합해 보면, “순종”이라는 행위를 통해 얻는 “값비싼 구원”의 은혜를 설파한 셈인데, 이는 구원과 순종의 행위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모르는 자의 주장이다. 구원은 값없이(롬 3:24) 단번에(히 10:11,12) 받는 반면, 순종은 대가를 요구하는, 평생에 걸친 과정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은혜로 받아야 할 구원에 행위를 섞는 셈이 되므로, 구원받을 수가 없다(엡 2:8,9, 롬 11:6).

본회퍼의 머릿속에서 성경의 교리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던 까닭은, 그가 성경을 나누어 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신학을 산상설교 위에 세웠다. 그래서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셨던 사역을 현 시대의 교회들이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다.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가 된다. 우선, 교회는 모든 재산을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한다... 교회는 일반적인 인생이 겪는 세속적 문제를 공유해야 하며 지배하려 들어서는 안 되고 도우며 섬겨야 한다.” 그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이란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는 게 아니라 약자들을 돕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전파했던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아닌 “사회 복음”이었던 것이며, 성경에 따르면 그것은 저주받을 다른 복음이다(갈 1:8).

불의에 항거하며 신념을 지켰던 본회퍼의 삶은 일견 숭고해 보인다. 심지어 성경적인 견지에서 봐도, 유대인들을 구해 줬던 사역에는 훌륭한 면이 있다(창 12:3). 그러나 그는 권세자에게 대적하여 암살을 모의했고, 사회 복음을 전했으며, 구원받지도 못했다. 따라서 그는 지옥에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숭고한 일들을 했다 해도 자신의 죄들에 대한 대가가 면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악인의 쟁기질은 죄요, 인간의 의는 더러운 걸레와 같을 뿐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지옥에 간 것은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직시해야 한다. “숭고한 사람들”이여, 숭고한 일들을 하되 진리를 거스르지는 말라(고후 13:8). 그럼으로써 지옥에도 가지 않고 영원한 상도 쌓기를, 또한 장차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하늘에서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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