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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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들이 거쳐 가는 두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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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5월호>

우리는 지난 호부터 인생의 길로서의 골짜기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그중 첫 번째가 모든 사람이 걷고 있는 길로 묘사되는 “바카 골짜기,” 곧 “눈물의 골짜기”였는데, 이 땅에서의 인생 여정은 눈물로 점철된 고단하고 험난한 여정이다. 그런데 그 눈물의 골짜기는 어둡고 컴컴한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로 이어진다. 인생을 눈물로 걷는 것도 고생스러운데, 언제나 죽음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정녕, 내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요, 주의 막대기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심이라』(시 23:4).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히 9:27).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 종교, 나이, 성별, 국적 등과 상관없이 인간의 생은 짧고 죽음은 확실하며, 이것은 실로 참된 진리이다.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약 4:14).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시 39:5). 이처럼 사람은 이 땅에서의 짧은 생을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에서 보낸 후 죽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닥치는 일이기에 다윗왕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자 아들 솔로몬에게 자기가 “세상 모든 자들의 길로 간다”고 말했다. 『이제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하여 말하기를 “내가 세상의 모든 자들의 길로 가노라. 그러므로 너는 강한 사람이 되고 스스로 남자답게 보이라』(왕상 2:1,2). 하지만 세상의 모든 자들의 길로 가는 다윗왕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님께서 함께 계셔서 위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죽어서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삼하 12:23).

문제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당신이다. 당신이 통과하는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가 어디에 이르는지를 알고 있는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당신은 “지옥”으로서 예표되는 “힌놈의 골짜기”(수 18:16)에 가게 될 것이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이 골짜기는 유다의 부패한 왕이었던 아하스(대하 28:3)와 유다의 왕들 중 최악의 왕이었던 므낫세(대하 33:6)가 그들의 자녀들을 우상에게 불살라 바쳤던 곳이다. 이곳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우상인 몰렉에게 아이들을 바쳤던 곳인데(렘 7:31; 32:35), 요시야왕이 그곳을 더럽힌 후로는(왕하 23:10) 예루살렘 성읍의 쓰레기장이 되었다. 바로 그곳에서 불꽃이 끊임없이 타오르며 연기가 피어올랐고,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이 불살라지면서 지르는 비명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으며, 각종 오물과 쓰레기 등에서 온갖 악취가 풍겨 나왔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이처럼 참혹한 곳이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옥”을 헬라어로 “게헨나”라고 부르는 “힌놈의 골짜기”(히. 게힌놈)와 연관시켜 묘사하셨다. 특히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심으로써 지옥이 실재하는 장소임을 강조하셨다.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4,46,48).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는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나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곧 “지옥”에 이르렀다. 그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당하던 그는 구렁 건너편의 낙원에 있던 나사로를 보고서, 그를 자기 아버지 집에 보내서 자기 형제들만큼은 그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했다(눅 16:27-30). 생전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부자는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 믿었더라면”과 같은 후회 말이다! “아, 그때 길에서 어느 거리 설교자가 외치던 지옥의 경고에 좀 더 귀를 기울일걸!”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일걸!” “그때 나에게 전도지를 전해 주던 손길을 거부하며 조롱하지 말걸!” 당신은 복음을 듣고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했지만(행 26:28) 결국 믿지 않았던 생전의 기억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통해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때늦은 자책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면서 잘못했다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며 빌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제야 믿겠노라고 회개하고 영접 기도를 하며 울부짖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더 늦기 전에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복음을 거부하는 당신의 모습이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할지 말지를 그의 결정에 맡겨 둔다. 아무도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채 마음껏 죄의 낙을 누리며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살라. “지옥으로 가는 길이 선행으로 잘 포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죄짓지 않고 선을 행하여 자기의 의와 덕을 쌓고자 한다면 그렇게 살라. 하지만 “죽음으로부터의 문제”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 죽음 이후의 일들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따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자기 멋대로 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죽음으로부터의 문제는 주 하나님께 속하였느니라』(시 68:20). 인간이 죽고 또 지옥에 가는 것은 죄 때문이다(롬 5:12; 6:23).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생명”이 있는 “피”가 흘려져야 한다(레 17:11, 히 9:22). 그렇기에 구약 시대에는 속죄제사를 위해 흘린 동물의 피를 보시고 죄를 용서해 주셨다(레 4장). 이렇게 속죄제에 바쳐진 제물은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또한 속제제사를 드릴 때는 그 희생제물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는데, 제단 위에서 태우지 않은 제물의 나머지 부분은 진영 바깥의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살랐다. 이러한 실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속죄제물로서 드려지셨을 뿐만 아니라 진영 밖에서 수치를 짊어지셨던 일을 예표한다(히 13:10-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곧 “지옥”에 내려가셨다. 주님께서는 그 죄의 소각장에 내려가셔서 세상 죄를 버리셨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죽음에 머물지 않으셨다. 한번은 죽음의 문제에 관해 『누구든지 내 말을 지키면 그는 결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 8:51)라고 하셨을 때,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이제 우리는 네가 마귀들린 것을 알게 되었노라. 아브라함도 죽었고 또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네가 말하기를 ‘누구든지 내 말을 지키면 그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으니』(요 8:52)라고 대답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본래의 의도를 몰랐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유대인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라고 왜곡해서 들어 버린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맛본다.” 누구나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나서 죽게 되는데, “인자”로서 오신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맛보셨다”(히 2:9).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맛보겠지만” 모든 사람이 무조건 죽음 그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 그 자체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시 16:10, 행 2:31). 이로써 죽음을 폐기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을 밝히신 것이다(딤후 1:10).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는(고전 15:1-4) “복음”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불멸을 소유하게 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주님께서는 그분의 부활을 우리에게도 약속하셨다(요 11:25,26). 죽음을 두려워함으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던 우리에게 죽음으로부터의 영원한 자유를 선포하신 것이다!(히 2:14,15)

하루라도 빨리, 아니 지금 당장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구주로 믿고 영접하라. 그래야만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참으로 가깝기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휴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살전 4:13-18; 고전 15:50-56)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러한 영광을 누릴 수가 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무섭고 맹렬한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도록 하라.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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