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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도를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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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11월호>
부모가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육을 통해 자식이 한 인격자로 성장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이라는 것은 직업을 구하는 한 방편일 뿐, 인격 함양과는 거리가 멀다. 초중고교 12년에 걸쳐 교육을 받고 심지어 대학 교육까지 받았다고 해도, 인격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이다.오래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한 법안을 제안했는데, 예전처럼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기도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는 적어도 참된 “교육”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알았던 것이다. 인격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 될 때 길러진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제도, 선생 같은 외형적 요소는 아무것도 이뤄 내지 못한다. 인간으로 하여금 도덕성을 갖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쓰레기를 길에 버리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어기는 이에게 벌을 주면 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노력으로 외형적 공중도덕은 형성될지 몰라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오늘날의 교육이 바로 그런 식이다. 외형을 바로잡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한 사람 안에 도덕성을 형성할 힘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을 함양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다. 『현명한 사람은 두려워하여 악에서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자신만만해 하느니라』(잠 14:16). 이러한 두려움은 외부에서 강제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만이 이와 같이 경건한 두려움을 가질 수가 있다.
잠언 22:17-21의 말씀은 인간으로 하여금 정도를 걷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다. 먼저 『너는 귀를 기울여 현명한 자의 말들을 듣고, 내 지식을 네 마음에 두라.』(잠 22:17)라는 것이 성경의 조언이다. 성경은 현명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조언을 들으라고 수없이 이야기한다. 『어리석은 자의 행위가 자신의 눈에는 옳으나, 조언에 경청하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2:15). 『현명한 조언으로 너는 네 전쟁을 하라. 조언자가 많아야 안전하니라』(잠 24:6). 당연하게도 그런 조언이란 성경적 지식에 입각한 조언이다. 『나의 걸음들을 주의 말씀에 고정시키시어 어떤 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시 119:13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지식”과는 상이하다.
사람들은 지식에서 하나님을 배제하려 든다. 소위 “과학적”이라는 말은 “창조주 없이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런 일은 불가능함에도 과학자들은 궤변을 늘어놓는다. 바다와 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연히” 원소들이 생겨나고 물질이 순환해서 만들어졌는가? 그렇다면 왜 과학자들은 지구와 같은 바다와 땅이 있는 행성을 단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는가? 성경은 말씀하신다. 『바다가 그의 것이요, 그가 만드셨으며 또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시 95:5). 생명을 움트게 하는 비는 누가 내려주는가? 성경은 말씀하신다. 『이방인들의 헛된 것들 가운데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자가 있나이까? 아니면 하늘들이 소나기를 줄 수 있나이까?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분이 아니시니이까?』(렘 14:22)
“과학”을 “신”으로 숭배하는 현대인들은 그것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며 “하나님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송사를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의 강력한 주장을 내어 놓으라. 그들로 주장들을 내어 놓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에게 보이게 하라. 그들로 이전 일들을 보이게 하여, 그것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로 그 일들을 숙고하고 그 일들의 나중 결말도 알게 하라. 아니면 앞으로 있을 일들을 우리에게 선포할지니라. 이후에 있을 일들을 보여 주어 우리로 너희가 신들인 것을 알게 하라. 정녕,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라. 우리가 놀라며 그것을 함께 보리라.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의 일은 헛것이라.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함이라』(사 41:21-24).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그렇게 똑똑하단 말이냐? 그렇다면 어디 한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해 보라.”라고 도전하시는 것이다. 단 5초 뒤에 있을 일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단 말인가?
인간이 모르는 게 어디 미래의 일뿐이겠는가? 과학자들은 UFO의 정체를 아는가? 근래에도 목격되었다고들 떠들지만 그 정체를 정확히 아는 과학자가 있는가? 현대 의학으로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고칠 수 있는 병보다 고칠 수 없는 병의 수가 더 많지 않던가? 우리는 그런 유한하고 유치한 지식에 인생을 걸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식은 “머리,” 곧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성장할 수 있는 지식이다(엡 4:14,15).
다음으로 우리가 인생의 정도를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이다. 『너의 신뢰가 주께 있게 하려고 오늘 내가 너에게 이것을 알게 하였으니, 바로 너에게라』(잠 22:19). 우리는 해외로 여행을 가야 할 때 비행기를 탄다. 대부분은 별다른 생각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태도도 이와 같다. 하나님께서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리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 같은 사람은 공포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탔다고 한다. 혹 사고나 테러라도 벌어져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한 것이다. 하기야, 인간을 도구처럼 여기기에 어떤 신뢰도 없는 그런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던 그로서는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일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대로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주님 안에서 길을 걷지 못하고 정도에서 이탈하게 된다.
신뢰는 개인적인 문제다. 잠언의 말씀은 “너”의 신뢰가 주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너,” 바로 “너”에게 이것을 알게 한 것이라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기에(딤전 2:5), 하나님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성직자, 마리아, 성인들 같은 인간 중보자는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맺는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3-2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로 인하여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나니, 그가 우리를 위해 바치신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휘장, 곧 그의 육체를 통하여 들어가느니라』(히 10:19,20).
{신뢰는 개인적인 문제다. 잠언 22:19의 말씀은 “너”의 신뢰가 주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너,” 바로 “너”에게이것을 알게 한 것이라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기에(딤전 2:5),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성직자, 마리아, 성인들 같은 인간 중보자는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직접 맺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은, 그분께서 “내”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고, “나”로 하여금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판단력과 건강, 상황 등 모든 것을 채워 주시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일깨워 주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구축된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우리는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신뢰를 “교회”나 “목사”에게 두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하나님을 일대일로 직접 섬기는 제사장들이다(벧전 2:9).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정상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잘못된 교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속한 지역 교회의 목사가 성경적이지 않다면, 소위 “평신도”라도 “성직자”에게 (물론 이 두 용어는 성경적이지 않은 용어다) 당신은 왜 성경적으로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하고, 시정되지 않는다면 그런 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롬 16:17, 딤전 6:3-5). 그렇지 못하면 믿음의 정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저는 목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요?”라는 변명은 하나님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인생을 올바로 살려면 앞서 언급한 현명한 자들의 “조언”을 통해 주어지는 성경적 지식 외에도, “기록된 조언,” 곧 “성경” 자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내가 조언과 지식의 훌륭한 것들을 네게 기록하였으니』(잠 22:20).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롬 15:4)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정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내, 위로, 소망이 필수적이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그 자체가 인내요, 그런 삶을 하루하루 버티려면 반드시 위로가 필요하다. 또 궁극적으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기록된 말씀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가 있다.
성경은 계시의 책이다. 『과연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진대 이것은 그분이 계시로 내게 신비를 알게 하신 것이며 (내가 전에 간략하게 쓴 것과 같으니 너희가 읽을 때 거기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있는 나의 지식을 이해하게 되리라.)』(엡 3:2-4)라는 말씀으로부터도 알 수 있듯, 기록된 말씀은 그것을 탐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물론 이 일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기도는 “주님, 제 지각을 여셔서 하나님 말씀을 보게 해 주십시오.”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면서, 자신의 노력 배후에 하나님을 두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태도를 매우 싫어하신다. 인간이 모든 영광을 차지해 버리고 하나님을 들러리처럼 만드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계시를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주신 것도, 깨달을 수 있도록 조명을 주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시라는 인식 가운데 겸손하게 말씀에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 성경은 그 안에 숨겨진 보화를 우리에게 내어준다. 『은을 구하듯이 지식을 구하며 숨겨진 보물들을 찾듯이 명철을 찾는다면, 네가 주의 두려움을 깨달을 것이요, 하나님의 지식을 발견하리니 주께서 지혜를 주시고 그의 입에서 지식과 명철이 나오느니라』(잠 2:4-6). 이 보화는 물론 영적인 것이지만, 때로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충족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나[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사랑하나니, 일찍 나를 찾는 자들은 나를 만나리라. 부귀와 명예가 나와 함께 있으니, 정녕, 지속되는 부와 의도 그러하니라. 나의 열매는 금보다 더 좋으니, 정녕, 정금보다 더 나으며, 나의 소산은 순은보다 더 나으니라. 나는 의의 길과 공의의 길 한가운데로 인도하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로 재산을 상속받게 하여 내가 그들의 창고를 가득 채워 주려는 것이라』(잠 8:17-21). 물론 물질적인 복을 얻겠다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해서 항상 그런 것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말씀을 살펴서 얻은 교훈, 곧 “영적인 보화들”이 실제적인 보화들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 정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전파하고 수호하는 일이다. 『이는 너로 하여금진리의 말씀들의 확실함을 알게 하며, 너에게 사람을 보낸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들을 대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잠22:21) 교회들이 배교의 늪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쌓았던 지식을 모두 배설물처럼 여긴다(빌 3:7,8). 그런 것을 가지고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수 없기 때문이다. 바른 길을 걸으려거든 잘못된 길을 배제해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조언에 귀를 내어주지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거기에 인생의 모든 해답이 있음을 믿고 전진해야 한다. 주님께서 다시오시면, 그 모든 세상의 행로가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