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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안식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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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6월호>

피터 럭크만 박사는 그의 저서 <나는 왜 안식교인이 아닌가?>에서 안식교인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안식일과 미국의 안식일 사이에는 약 9시간의 차이가 있다. 미국의 모든 안식교인들은 기본적으로 9시간 정도 안식일을 잘못 지키고 있는 셈이다(그들은 토요일에 교회 가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안식일에 먼 거리를 다니고(행 1:12, 출 16:29), 안식일에 음식을 만들거나(출 35:3) 일을 함으로써(민 15:32,33) 안식일을 수시로 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안식일 자체를 9시간 일찍 시작해서 9시간 일찍 끝냄으로써 일그러진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안식교인들이다. 서커스에만 광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p.16).

「안식교인들은 엘렌 G. 화이트(Ellen G. White)라는 여자가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 그때부터 약 9,000시간 정도 “안식일의 쉼”을 범했다. 안식일을 지킬 때마다 그 시작과 끝이 9시간씩 차이가 난 결과 2년마다 24시간에서 96시간의 시간 차이가 생겼고, 이런 식으로 100년 가까이 지내온 것이다. 성경의 안식일은 현재 우리가 쓰는 달력상의 금요일(저녁 6시)부터 토요일(저녁 6시)에 해당되지 않는다... 마귀에게 속은 이 여인은 유대인들이 쓰는 달력은 30일을 한 달로 치고 일 년(음력임)을 360일로 정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365일이 아니다. 엘렌이 만들어 낸 어리석은 이론 때문에 이 “자기 의”를 내세우는 유대주의적인 사이비 종파는 매주 토요일 예배당에 들어가 앉아서는 성경의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매년 똑같이 토요일이나 금요일에만 안식일을 지킨 예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p.17,18).

피터 럭크만 박사가 안식교와 관련하여 위의 글에서 문제 삼은 것은 “시간”과 “공간”이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지켜지는 안식일과 미국의 안식교인들이 지키는 안식일 사이에 벌어져 있는 약 9시간이라는 시간 차, 곧 시공간에 있어서 결코 일치할 수 없는 두 가지 상이한 의식법의 충돌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력을 기준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지구의 한 모퉁이, 아니 지구의 중심 지역에서 지켜졌던 안식일은 결코 미국, 한국, 일본, 동남아, 유럽 등지와 같은 곳에서 지켜질 수 없는 유대인들의 의식인 것이다.

이스라엘과 그들의 하나님 사이에 표적으로 주어진(출 31:13) 안식일이 제정된 것은 한 “거룩한 땅”에서였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여기로 가까이 다가서지 말고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는 네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임이니라.” 하시더라』(출 3:5). 성경에서 “거룩한”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대상은 시내 반도에 있는 한 조각 땅이었고, 주님께서 바로 그곳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을 탈출시키는 책무를 부여받은 민족의 구원자였으며, 그가 그 위대한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가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표가 되리라. 네가 이집트에서 그 백성을 데리고 나오면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니라.” 하시니라』(출 3:12). 모세는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 곧 “시내 산”에 도착했으며(출 19:1,2), 바로 그곳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겼다. 이로써 모세가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위해 부름받았다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그 거룩한 땅에서 유대교의 의식법인 “안식일”이 제정된 것이다. 『안식일 날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 네가 일할지니 네 모든 일을 할지니라. 그러나 일곱째 날은 주 너의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그 날에는 너와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있는 네 타국인까지도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라. 이는 엿새 동안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는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 날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안식일”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될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내 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신정통치 아래서 지켜질 의식법이었다. 이후로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도 안식일을 지켰고(민 15:32-36),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거룩한 성읍』이라 불리는 『예루살렘』(느 11:1)이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서도 안식일을 지켰다(대상 9:32, 대하 31:3). 말하자면 안식일은 구약 시대에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인들이 지키던 “유대교”의 의식인 것이다. 당신은 안식교를 믿는 유대인을 본 적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생아로 여기는 유대인들은 주님을 계시하는 신약성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비록 안식교인이 안식일을 지킨다 해도, 유대인 자신은 신약성경을 인정하지 않기에 결코 안식교인이 될 수가 없다. “안식일”과 “안식교”는 시공간의 차이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인정 유무와 관련해서도 결코 일치될 수 없는 별도의 세계이다. 안식교는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 곧 이방 세계에서 생겨난 이단에 불과하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땅”에서 “거룩한 주의 백성”이 지켜야 할 “거룩한 의식”에 팔레스타인 땅 바깥의 이방인들이 끼어듦으로써 “덫”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 난 자들은 누구든지 저주 아래 있느니라. 기록되기를 “행하도록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해서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저주를 받느니라.”고 하였음이라』(갈 3:10).

“안식일”은 율법의 효력이 다시 발휘되는 “대환란” 때에 유대인들에 의해 다시 지켜질 것이다. 『너희는 피난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환란을 통과할 유대인들에게 주시는 경고인데, 거기에 “안식일”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은 대환란 기간에 “안식일”이 지켜진다는 점을 보여 준다. 대환란 때의 유대인 환란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 12:17)이라고 불리며, 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뒤에 율법을 지킬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그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계 14:12)이라는 것은, 대환란 기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구주로 믿은 후에 율법을 끝까지 지켜야만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환란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 24:13)라는 말씀과 일치하는데, 이로써 대환란 때의 유대인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들에는 십계명의 일부인 “안식일”도 포함되는 것이다. 대환란 때의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안식일”은 천년왕국 기간에도 지켜지며, 그때는 그 의식법의 실행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구약 시대에 잠시 이뤄졌던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신정통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종교들을 철폐하고 유일하게 숭배받으시는 천년왕국 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인데, 그때 주님의 통치하에 있게 될 이방인들은 주님께 율법을 배워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 『주께서는 온 땅을 치리할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한 분 주께서 계실 것이며, 그의 이름 하나만 있으리라』(슼 14:9). 『마지막 날들에 주의 전의 산이 산들의 정상에 세워질 것이요, 작은 산들 위에 높아지리니 모든 민족들이 그곳으로 몰려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산에,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자. 그리하면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며, 우리는 그의 길에서 행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라.” 하리라』(사 2:2,3). 천년왕국 기간에는 예루살렘에 계신 『야곱의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모든 민족들이 몰려와 그분께 “율법”을 배울 것이다. 그때 “왕국 헌법”(마 5-7장)의 지배를 받는 이방인들에게는 유대인들의 명절인 “장막절” 준수가 강제되는데(슼 14:16-19), 이 점은 “안식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스스로 주께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고, 그의 종들이 되는 타국인들의 아들들, 곧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고 지키며 나의 언약을 붙잡는 모든 자들을, 내가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나의 집에서 그들을 즐겁게 해줄 것이며, 그들의 번제들과 희생제들도 나의 제단 위에 받아들이리니 이는 나의 집이 모든 백성에게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임이라』(사 56:6,7). 『주가 말하노라. 새 달부터 그 다음 새 달까지, 또 안식일부터 그 다음 안식일까지 모든 육체가 내 앞에 경배하러 오리라』(사 66:23).

말하자면 “율법”은 다시 등장할 것이다. 이 은혜의 시대에 한쪽으로 치워져 있는 “율법”은 대환란과 천년왕국 기간에 다시 나타날 것이고, 그 두 기간에 “안식일” 또한 지켜질 것이다. “레위인 제사장들”이 등장하는(겔 40-48장) 천년왕국 때에는 “모든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설교를 따라 행위의 율법 아래서 “안식일”을 지키며 살게 된다. 그러나 지금 이 교회 시대에는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이 아닌 “성경”에서 나온다. “성경”은 “교회 시대”에 안식일에 관해서는 아무도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고 있다(골 2:16). 이제 곧 교회가 휴거되면 거듭나지 못한 안식교인들은 대환란으로 들어가 멸망할 것이고, 그 뒤 천년왕국 때는 “안식일”은 있어도 “안식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안식일”과 “안식교”의 차이점이다. 다른 것은 결코 같지 않은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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