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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의 기적? 부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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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5월호>
지난 4월 3일, 미군 F-15E 전투기가 이란군에 의해 격추되자, 긴박한 수색 작전 끝에 실종된 미군 장교를 “부활절 당일”(그레고리력 기준 4월 5일) 극적으로 구조했다. 이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 구조 작전을 “부활절의 기적”이라면서 구조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한편 4년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은 “정교회의 부활절”(율리우스력 기준 4월 12일)을 맞아 현지 시간으로 4월 11일 오후 4시부터 12일 자정까지 약 32시간 동안 모든 교전 지역에서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정교회 최대 명절인 부활절을 맞아 신자들이 평화롭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모든 전선에 공격 중단을 명령한 것인데, 이에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호응하여 동의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인들의 우려스런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전쟁 당사국 수장들, 곧 국제법상으로 “침략국”(Aggressor State)에 해당하는 국가의 수장들이 공히 “부활절”을 언급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들은 과연 ‘부활’을 믿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부활의 기적’을 믿는 것일까?”한국 교회는 지난 4월 5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73개 교단이 “2026 한국 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로 모였다. 언론에 따르면 “생명의 부활,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개최된 금번 예배의 대회사를 맡은 이영훈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요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면서 “한국 교회가 연합 예배를 통해 다시 하나 되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이 나라와 민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뤄 가는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번 연합예배에는 이재명 대통령도 참석해 축사를 전했는데, 그는 “부활절 연합예배는 우리 사회에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온 자리다. 오늘날 우리는 전쟁과 경제 불안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부활의 의미인 평화와 사랑을 되새겨야 한다”면서 “요한복음 20:19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신 것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과 서로를 향한 사랑과 연대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므로, 분쟁이 아닌 평화를, 증오가 아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보다시피 이번 부활절의 특징은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부활절 혹은 부활에 관하여 무언가 한마디씩 거들었다는 데 있다. 그들은 “부활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인류에게 미칠 긍정적 영향 정도는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교도 로마카톨릭의 부활절을 흉내 내어 연합예배를 드린 한국 교회 역시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든 아니든” 교회사적으로 끼친 영향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적용하는 영역이 기껏해야 “한반도 평화”라는 점은, 그 신앙의 수준이 부활절을 지키려고 “휴전”을 선포한 러시아 대통령 정도밖에 안 되며,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가지고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한 이 나라 대통령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지고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의 부활은 그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기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셔서(딤전 3:16) 죄인들에게 “고난”을 당하신 뒤 삼 일 만에 “부활”하신(마 16:21) 일은 인류 역사에 두 번 다시 없을 위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다시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일은 없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리신 후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히 10:1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말하면서도 마음에 아무런 변화도 없고 세상의 평화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음의 세 가지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진리로 돌이켜야 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의 “신성”을 증명한다. 로마서 1:3,4은 주님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으며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말씀한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포되신 방식은 바로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었다. 성경은 이것을 “능력”이라고 말씀하는데, 인류 역사상 자신의 능력으로 부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능력으로 부활하셨는데, 주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능력으로 부활하실 것이라고 친히 선언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삼 일 만에 이것을 다시 일으키리라.”고 하시니라... 그러나 주께서는 성전 된 자기 몸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라. 그후 주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을 때 제자들은 주께서 그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더라』(요 2:19,21,22). 성경에는 부활한 사람들이 여럿 나오지만, 그들 모두는 다시 죽어야 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요일 5:20)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자신의 능력으로 부활하여 다시 죽지 않으셨다. 주님을 빌라도에게 고소했던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 하여 죽이려 했는데(요 19:7),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주장 자체가 주님의 신성을 강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유대인들이 걸고넘어진 죄목은 “신성모독죄”였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으로써 “하나님”이심을 자처했으니 그것이 하나님을 모독한 죄가 되므로 율법에 따라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율법 준수에 철저했던(빌 3:5,6)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이란 점은 경건의 신비이기에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다고 선언했다(딤전 3:16). 주님께서는 친히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셨다.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는(골 2:9) 『참 하나님』(요일 5:20)이심을 부활로서 입증하신 것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의 “동정녀 탄생”을 증명한다. 『그녀에게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보라, 한 처녀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해석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마 1:20,23).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와 달리 썩어질 남자의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이었다. 남자를 알지 못한 마리아가 처녀인 상태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께서 그녀를 초자연적으로 잉태시키셨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씨를 통해 나셨다면 요셉의 씨는 죄성을 유전시키는 “썩어질 씨”이기에 주님은 결코 부활하시지 못하고 여타 인간들처럼 사망과 썩어짐 가운데 계셔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죄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사망에 매여 계실 수가 없었다! 다윗은 이와 같으신 주님에 관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예언하기를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서 미리 뵈었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어 나로 요동치 못하게 하심이라. 그러므로 내 마음이 즐거워하였고 내 혀가 기뻐하였으며 또한 나의 육체도 소망 속에 안식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또 주의 거룩하신 분으로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들을 알게 해주셨으니 주께서 나를 주의 임재하심 속에서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리로다.』(행 2:25-28)라고 했다. 『주의 거룩하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예언에 따라 “썩어짐을 보지 않고” 부활하셨다! 본래 씨가 없는 여자에게서 “여자의 씨”(창 3:15)로서 초자연적인 탄생을 하신 주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인간으로서의 본성”과 “하나님으로서의 본성”을 동시에 소유할 수 있으셨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본성을 지니셨어도 죄가 없으셨기에(히 4:15) 썩어짐을 보지 않고 부활하셨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의 “동정녀 탄생”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만일 요셉의 씨를 통해 나셨다면 결코 부활하실 수 없으셨을 것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 안에서 죽은 성도들의 부활”을 보장한다. 사도 바울은 부활에 관해 논쟁이 일어난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한 것이라』(고전 15:13,17,18)라고 기록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쓰던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것이 전파되었음에도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다(고전 15:12).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15장 전체(총 58절)를 할애하여 “부활”에 관해 논증한 것인데, 요점은 다음과 같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그분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가 처리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설령 우리가 그분을 믿고 죽는다 해도 결국 지옥에서 직접 죗값을 치러야 한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도 없는 것이다.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셔서 잠들었던 자들의 첫열매들이 되신 주님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기에, “그분 안에서” 잠든 모든 성도들 또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 아닌가!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셨던 말씀, 곧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 11:25,26)라는 말씀대로, “죽어도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복음의 정수인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 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그때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전 15:51-5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의 부활은 주님의 부활이 보장하는 성경의 진리이다. 주님의 부활은 썩고, 수치스럽고, 약하고, 흙으로 만들어진 몸을 지닌 성도가 썩지 아니하고, 영광되고, 능력 있고, 하늘에서 나신 분과 똑같은 몸을 입고 부활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주님께서 공중재림하실 때 살아 있을 성도들 또한 주님의 부활하신 몸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모되어(빌 3:21, 요일 3:2) 영원히 살면서 하나님을 영원무궁토록 찬양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오, 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됨이라』(시 106:1).
“부활절의 기적”으로 자축하지 말라! “부활절 휴전”으로 의로운 척하지 말라! “부활절의 평화와 사랑”으로 부활을 오도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지닌 의미에 무지한 채, 부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 드릴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인류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왕들과 권세자들이 모두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딤전 2:2,4). “부활의 생명”이 “정치적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