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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철학에 노략질당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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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6월호>
철학에 관한 “성경적 입장”은 너무나 분명하다!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 2:8). “철학”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닌 『땅에 속한』 지혜로, 『시기와 다툼』과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이 가득한,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지혜다(약 3:15,16).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며, 오직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르는 『헛된 속임수』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존재와 계시의 말씀”을 배제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본주의적인 “인간 중심의 사상”이고, 심지어 매우 “미신적”이기까지 하다.“사도 바울”은 “아레오파고,” 곧 “그리스 철학의 심장부”인 『마르스 언덕 한가운데 서서』(행 17:22), “어리석은 철학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으로 그들의 더러운 정욕에 따른 무지와 어리석음과 우상 숭배를 다음과 같이 책망했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가 보니 너희는 매사에 너무나 미신적이니라. 지나다니다가 너희가 섬기는 대상을 보았는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 놓은 제단도 있었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알지 못하면서 섬기는 그 대상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니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며 또한 무슨 필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시니 이는 그분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심이라』(행 17:22-2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철학자도 “인생의 주요 문제들과 쟁점들”에 대해 해법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헛된 망상 속에서 “철학”을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지만, 그들의 “신”은 “종교적인 갈등,” “질병,” “가난,” “전쟁,” “죽음,” “범죄,” “자연재해”를 해결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들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왜 의인이 고난을 받는가?”와 같은 질문들 앞에 어떤 답도 제시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설령 답변을 내놓았다 해도 아무 쓸모없는 “개똥철학”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철학자들은 “내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나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허무함”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처럼 “네 자신을 알라!”라는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기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세상 지혜”로는 결코 진리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인[영이 죽어 있는 구원받지 못한 모든 죄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고전 2:14).
“철학의 어릿광대들”은 비싼 밥 먹고 하루 종일 “철학”과 씨름하면서도, “성경”만 읽으면 누구나 쉽게 깨달아 알 수 있는 “다음 20가지 진실”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1.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어 있으며 지옥을 향하고 있다. 2. 사람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 3. 구원은 문자적인 영원한 불못에서, 실제적인 불길의 고통으로부터 구해 냄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4. 구원은 셋째 하늘의 영원하고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5. 하나님께서는 이 땅(지구)에 사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6. “콜럼버스” 이전에 외계로의 여행이 이미 “아홉 번”이나 있었다[사탄, 에녹, 바벨탑, 모세, 엘리야, 예수 그리스도(2회), 바울, 요한]. 7.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그 사람 안”에 거하신다. 8.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받고 보존된 절대적인 진리다. 9.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실 때 죽어 있든, 살아 있든, 거듭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입게 된다. 10. “적그리스도”의 이름, 표시, 표적, 종교, 숫자와 글자를 알 수 있다. 11. 향후에 전개될 세계 역사의 정확한 흐름을 알 수 있다. 12.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신다. 13.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14. 하나님께서는 “주는 자”에게 주신다. 15. 구원은 인간 스스로는 얻을 수 없는 “값없는 선물”이다. 16. 여러분의 죄들이 여러분을 찾아낼 것이다. 17.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둔다. 18.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과 교제할 때 참된 기쁨이 넘친다. 1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영광 가운데서 그분의 풍요함을 따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 20. 종교적이고 영적인 문제들에 관해, 거짓말을 들을 때도 있고, 진리를 들을 때도 있다.
“피터 럭크만 박사”는 “철학과 철학자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어떤 ‘헬라 교부들’도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죄인들의 마음속에 ‘어리석음’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몰랐으며, 그들이 일은 안 하고 하루 종일 떠들어 대는 게으름뱅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부패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미래에 구속주가 오실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그분이 유다 지파의 33세 된 유대인이 되실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으며, 베들레헴에서 육신을 입고 태어나실 것도 몰랐고,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시어 죄인들을 위해 대속적인 죽음을 겪어야 하신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특히 그들은 “자기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자신이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경적 진리를 고의로 무시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의심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철학적 기준들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이 땅에 계시된 진리를 강력하게 거부하는 “가장 어리석고 무지한 고집쟁이들”이요, “가장 완고한 미신적인 사람들”이다.
벨기에 “루뱅대학교”에서 “철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강영안 박사”는 “철학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흔히 기독교 신앙을 철학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철학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그것을 기독교와 대립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철학이 기독교 신앙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학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반대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신앙을 버린 사람도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저의 기독교 신앙을 보다 더 단단하게 했고, 기독교가 가장 합리적이며 체계적이라는 확신을 저로 하여금 갖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철학을 통해 기독교가 인간의 삶을 가장 윤택하게 만드는 사상이자 세계관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기독교인 철학자들’이 꽤 많습니다.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등등, 모든 것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묻고, 답을 구하면서 결국 ‘자기 인식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참된 철학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철학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철학과 기독교는 결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에 노략질당한 “강영안 박사”에게 딱 들어맞는 성경 구절 하나가 있으니, 곧 『누구든지 무지하다면 무지하게 내버려 두라.』(고전 14:38)라는 말씀이다.
“백석대학교”의 “이경직 교수”는 “기독교 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 철학의 작업은, ‘비(非)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신앙과, 그것이 우리 삶과 사회, 우주 전체에 대해 지니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혀 주는 작업이기에, 변증적이고도, 선교적이며, 또 복음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그렇기에 ‘기독교 철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복음 전파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철학’은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우상들을 타파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우상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합니다. ‘기독교 철학’은 자기 전제뿐 아니라, 방법, 내용까지도 철저하게 ‘성경의 계시’에 근거를 둠으로써 ‘복음의 증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철학에 노략질당한 “이경직 교수”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망발을 늘어놓은 것이다.
이처럼 철학에 노략질당한 “기독교 철학자들”은 “교회 시대 초기”부터 있어 왔는데, 그들 가운데 하나인 “저스틴 마터”(110-165)는 “철학자”이자, “기독교 변증가”로서, 한때 “스토아 철학”과 “플라톤주의”에 심취해 있었고, “플라톤 철학의 목적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는 망발을 쏟아 냈다. “교회 시대의 교리”와 전혀 무관한 “로마카톨릭 교리들”을 변증하는 데 시간을 낭비했고, 특히 “세례를 통한 중생”을 옹호했다. “클레멘트”(150-215)는 “판태누스”(120-200)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세운, “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대학교”를 인수한 장본인으로, 소위 “기독교 변증론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아낙시맨더”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성령으로 감동된 사람들”이라고 말할 만큼 “영적 분별력”이 전혀 없었고, “인간은 ‘철학적인 추론’을 통해 ‘신성’을 얻을 수 있다는 헛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이렇듯 “클레멘트”는 “신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철학”을 활용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이 ‘신학의 시녀’로 쓰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또한 당시에 만연했던 “영지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인간은 사랑과 명상을 통해 참 ‘영지주의자’가 된다.”라고 말했으며,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지식 못지않게 ‘하나님에 대한 명상’이 필요하다.”라고 가르쳤다. 이런 식의 가르침은 훗날 “기독교계 안”에 “금욕주의”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는 데 중대한 영향을 끼쳤으니, 곧 “클레멘트”는 “인간이 ‘관능, 곧 육체적인 쾌감’을 극복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믿은 것이다.
“클레멘트의 계승자”인 “오리겐”(184-254)은 “신(新)플라톤주의 철학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고, “마리아”를 숭배했으며, “행위 구원”을 가르쳤다. “영지주의자”요, “금욕주의자”였고, “성경 변개자”요, “만인구원론자”였다. 인간은 이 땅에서 숨을 거둔 후에 그 “혼”이 잠을 자게 된다는 “혼의 수면,” “환생,” “세례를 통한 중생” 등을 가르쳤고, “문자적인 지옥이나 구원”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외경”에 있는 “토빗서”와 “유딧서”가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이라고 생각했으며, “누가복음 4:1-13의 내용”이 거짓말인 것처럼 “창세기 1-3장의 내용”도 거짓이라고 표명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은 아무것도 성취될 수 없기에, 자연히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도 없고,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민족적인 구원”도 없으며, “교회의 휴거”도, “그리스도의 심판석”도 없고, 문자적인 “새 예루살렘”도 없다고 주장했다. “전천년주의 성경적 신앙”을 증오했던 “오리겐”은 기독교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점진적인 진화를 이루어 가면서, “제사장,” 곧 “사제들”을 통해 전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으로 믿었던 최초의 사람인데, 이런 사상을 “후천년주의”라고 부른다. “오리겐”이 이런 이단 사상을 가르친 이유는, 마태복음 13:33과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창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연옥 사상”을 믿었으며, “연옥”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낸 후에 종국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만인구원론”을 주장했다. 이에 덧붙여 육체적인 쾌락을 끊고, “죽을 때까지 견뎌 내면” 선행을 통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말하자면 “행위 구원”을 믿은 것이다. 특히 조상들로부터 유전된 죄들을 씻기 위해서는 “물을 뿌려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거스틴”(354-400) 역시 “철학자”였고, 또한 “진정한 최초의 카톨릭교도”였다. 그는 당대의 성경대로 믿는 그룹인 “도나티스트들”을 저주했고, 영원한 구원은 로마카톨릭 안에 있다고 믿었다. “선택받지 못한 어린아이”는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으며, 매 주일 카톨릭 미사에서 제공되는 소위 “성찬용 빵”을 통해 “그리스도의 재림”이 한 번에 한 조각씩 이루어진다고 거짓말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부정했으며, 그의 책 <하나님의 도성, The City of God>에서는 “로마카톨릭이 ‘새 예루살렘’으로서, 어린 아기들에게 물을 뿌림으로(유아 세례) 이 땅을 정복하도록 운명이 정해졌다.”라고 주장한다. 일찍이 “신(新)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은 “어거스틴”은 구원받지 않은 “이교도 철학자 플라톤”을 극찬하면서 그를 “아프리카의 모세”라고 추켜세웠고, 특히 “기독교”와 “철학”을 접목시키는 가증한 시도를 했다. “로마카톨릭”을 통해 이 땅에 “신정 국가”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는데, 결국 이것은 “교회와 국가 간의 불의한 결탁”을 가져왔고, “이단 사냥”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하는 “피의 대학살”로 이어졌다.
이러한 철학자들 외에도, 철학에 심취한 “알쿠인”(735-804), “신(新)플라톤주의자”로서 “중성의 신”을 섬겼고, 창조에 관하여 “영지주의적인 입장”을 취한 “에리게나”(815-877),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로 “철학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보다 더 우위에 둔 “안셀름”(1033-1109),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판단할 수 있다고 가르친 “아벨라르”(1079-1142), “참된 지식은, 로마카톨릭 신앙을 제외한 어떤 신앙보다 우월하고, 로마카톨릭 교리에 근거한 추론은 성경을 이해하고 변증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길”이라고 가르친 “피터 롬바르드”(1100-1160), 철학에 미혹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193-1280),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결합해서 “스콜라 철학”을 완성시켰고, “신앙과 이성 간의 조화로운 통일성”을 추구한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등이 있다.
“철학에 노략질당한 자들의 행렬”은 오늘날 배교한 교회 시대의 “신학자들 및 신학교 교수들, 현대 기독교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내다 버린 “지적인 쓰레기들”(Intellectual Garbages)로 이 땅과 기독교계가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 바울은 그런 쓰레기들을 『세상의 유치한 원리』(골 2:8,20),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갈 4:9), 『배설물』(빌 3:8)로 분류했다. 우리는 이것을 “전문 용어”로 “똥”(dung)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철학과 철학자들의 참모습”이다. 그들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성경은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골 2:8)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