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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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 없이도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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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4월호>

“금식”(fasting)은 “구약 시대”부터 “사도들의 시대”(교회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줄곧 행해져 왔다. “모세”가 금식했고(출 34:28), “다윗”이 금식했으며(삼하 12:16), “에스라”(스 8:21), “느헤미야”(느 1:4), “에스더”와 “모르드캐”(에 4:16), “다니엘”(단 9:3) 등이 금식했고, 심지어 북왕국 이스라엘의 가장 사악한 왕이었던 “아합”도 금식했다. 『아합이 이 말들을 듣고 나서 그의 옷을 찢고 그의 몸에 굵은 베를 두르며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걸음을 조심스럽게 하더라』(왕상 21:27). 또한 “인자”(Son of man)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금식하셨으며(마 4:2), “아셀 지파”의 여선지자 “안나”가 금식했고(눅 2:37), “코넬료”(행 10:30), “바울”(고후 6:5) 등이 금식을 했다. 오늘날 현 교회 시대에 “금식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물론 이러한 금식을 오용하여 “사순절”(“태양신,” 곧 “이집트”의 “오시리스”를 기리기 위해 40일 동안 금식하는 절기)을 지키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금식하는 사람들과 교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금식”을 비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금식”은 “기도의 응답”(마 17:21)과 “육신을 부인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또한 “금식”은 신구약 어느 곳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으로 제시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어떤 시험과 고난에 직면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으로 행한 행위”였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금식”에 대해 책망하신 적이 있는데, 이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금식하였는데도 어찌하여 주께서는 보지 않으시나이까? 우리가 우리의 혼을 괴롭게 하는데도 어찌하여 주께서는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의 금식하는 날에 너희는 기쁨을 찾으며 모든 너희의 일꾼들을 억압하는도다. 보라, 너희가 투쟁과 논쟁을 위하여 금식하며 사악한 주먹으로 치니 너희는 오늘 한 것처럼 너희의 목소리가 높은 곳에 들리도록 금식하지 못할 것이라. 내가 택한 것이 그러한 금식이겠느냐? 그것이 사람이 자기 혼을 괴롭게 하는 날이겠느냐? 이것이 자기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자기 밑에다 베옷과 재를 펴는 것이겠느냐? 너는 이것을 금식이라고 부르며 주께 받아들여질 만한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택한 금식은 이것이 아니겠느냐? 사악한 결박을 풀어 주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며 억압받는 자들을 놓아주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냐? 굶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눠 주며 방랑하는 가난한 자를 네 집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한 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네 골육으로부터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3-7) 『그 땅의 모든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일러 말하라. 너희가 그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을 때, 너희가 나를 위하여 금식하였더냐, 정녕 나를 위한 것이었느냐? 또 너희가 먹고 너희가 마실 때에, 너희 자신을 위하여 먹고 너희 자신을 위하여 마신 것이 아니냐?』(슼 7:5,6)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금식”은 필요하다. 시리아의 “안티옥 교회”에서는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 “성령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나바”와 “바울”을 “제1차 선교 여행”을 위해 따로 구별했고(행 13:2,3),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전 11:1)라고 권면했던 “바울”은 “금식”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임을 입증했고(고후 6:4,5), 또 자주 “금식”했다(고후 11:27). 물론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어야 하고(슼 7:5), “진실한 금식”이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이 되어서는 안 되며(마 6:16-18), 반드시 “올바른 행실”이 수반되어야 한다(사 58:3-7).

그러나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하나같이 “금식”을 삭제했다. 우선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마 17:21)라는 말씀을 통째로 없애 버렸고, 『코넬료가 말하기를 “나흘 전 이 시간까지 내가 금식하고 제구시에 내 집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행 10:30)에서 『금식하고』라는 말씀을 자기 멋대로 제거했으며, 『너희는 서로 권리를 빼앗지 말라. 다만 금식과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고전 7:5)에서도 『금식과』라는 말씀을 삭제했다. 특히 “마귀들을 쫓아내는 사건”에서 “금식”을 삭제했다. 『예수께서 무리가 함께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영을 꾸짖으시며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벙어리이며 귀먹은 영아,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시자 그 영이 소리지르고 그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나오더라. 그때 그가 죽은 자같이 되었으므로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죽었다.”고 하니라.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그가 일어나더라. 그후 주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은밀히 주께 묻기를 “어찌하여 우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하니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으로도 내보낼 수 없느니라.”고 하시더라』(막 9:25-29). 이 본문에서 “변개된 성서들”은 모두 『금식』(29절)이란 단어를 삭제했다.

특히 『이런 종류[This kind]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으로도 내보낼 수 없느니라.』(29절)라는 주님의 답변을 통해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마귀들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이고, 그 “사악함의 정도”가 마귀들마다 다르다. 『그러자 그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일곱 영을 데리고[데려와서] 들어가 거기서 사니,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었더라』(마 12:45, 눅 11:26). “능력”과 “권세”도 마귀들마다 차이가 있다(엡 6:12). 둘째, 어떤 마귀들은 단순히 『기도』(29절)하는 것,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쫓아낼 수 없는데, 우리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금하는 행위,” 곧 음식을 금하는 『금식』(29절)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이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금식』이란 어휘를 제거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마귀 들린” 누군가에게서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와 그 사람을 “더러운 영들”에게서 해방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도구”를 없애 버렸다. 말하자면 “마귀들과의 전쟁”에서 “기도”를 더욱 능력 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금식”이 “변개된 한글 성서들”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개된 성서들을 쓰는 “은사주의 목사들”은 이 구절을 붙들고, 소위 “축사”를 한다며 “기도와 금식”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의 성서들에는 “금식”이 삭제되어 있으니, “어떤 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 “마귀 들린 사람”이 되고 마는데, 성경은 이 나라 “대한민국”의 소위 “귀신을 쫓아낸다고 떠들어 대는 가짜 목사들”(조용기, 김기동, 이초석, 박혁 등)을 향해 이렇게 경고한다. 『그 악령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 악령들린 사람이 그들 위에 뛰어올라 그들을 짓누르니 그들보다 힘이 센지라, 그들이 상처를 입고 벌거벗은 채로 그 집에서 도망치더라』(행 19:15,16). 속는 자만 “손해”를 보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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