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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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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8월호>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 가운데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요함을 전파』(엡 3:8)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고, 또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영광 가운데서 그의 풍요함을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빌 4:19)이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요함”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족 문제, 돈 문제, 자녀 문제, 사회 문제, 건강 문제를 겪다 보면 복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잊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전체에 걸쳐서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요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요함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했다면, 그 풍요함은 바로 당신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이다.그리스도인이 가진 헤아릴 수 없는 풍요함 중 첫 번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엡 1:15). 당신은 이것이 그 자체로 대단한 것임을을 아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당신은 올바른 분께 믿음을 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또 매번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사람에게 신뢰를 두기보다 주를 신뢰하는 것이 나으며』(시 118:8).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을 받는 것이고, 불가능한 것을 행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5:4,5은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외에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씀하는데, 나는 이 구절에 대해 궁금해 하곤 했다. 내게도 응답받지 못한 기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분석해 보니, 성경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것저것을 하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을 말한다. 즉 주님께서 특정 시간에 특정 일을 하실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 그 자체인 것이다. 바로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 곧 승리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을 때, 주님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눅 24:17-21). 당신은 해당 본문 21절에서 『우리는... 믿고 있었나이다.』라고 과거 시제로 말한 것을 보았는가? 오히려 “우리는... 믿나이다.”라고 했다면 얼마나 멋진 고백이 되었을까?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과거형이 되어 버렸다. 즉 믿음을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다. 찬송가 중에 “신뢰하고 순종하라. 예수 안에서 행복해지는 다른 길은 없나니, 오직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뿐이라.”라는 소절이 있는데, 주님을 향한 “믿음,” 곧 “신뢰”는 그것이 현재 시제일 때 의미가 있다.
거듭났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인데(엡 1:15), 이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요함 중 하나이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한 설교자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 낡은 <킹제임스성경>을 고집하는 겁니까? 고어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잖아요. 왜 현대어로 된 성서들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 겁니까?” 그러자 설교자가 말했다. “나는 <킹제임스성경>이 좋습니다. 그 언어가 참 아름다워요.” 이에 그 남자는 “그렇다고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시잖아요?”라고 했고, 설교자는 다음과 같이 되받아쳤다. “이봐요. 나는 40년 전에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아직도 내 아내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더 알기 쉽거나 더 못생긴 여자와 아내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이 말에는 많은 진리가 있다!
구원받은 후 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과 바꿀 생각은 없다. 이미 나는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과 27년을 보냈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을 이해하든 못하든 그 죄인들과 바꿀 생각은 없다. 그것이 성경대로 믿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식 중 하나이다. 즉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으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성경은 성령의 열매의 첫 번째 사항이 “사랑”이라고 말씀한다(갈 5:22). 오늘날 세상은 사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사랑 노래들과 책들도 있고, 어딜 가나 사랑 타령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하나님”을 알아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책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성도들은 때로 사랑하기가 어렵다! 심술궂은 이들도 있고, 나름대로 문제들이 있다. 즉 여전히 육신 안에 있는 것이다. 수년간 함께 살아온 남편과 아내도 이따금씩 관계가 순탄치 않은 날들이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하면서도 힘든 날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에 대한 너희의 사랑』(골 1:4)을 이야기했다. 침례교인이든, 감리교이든, 감독교인이든 누가 되었든지 일단 구원받았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고 당신은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그 헤아릴 수 없는 “풍요함” 중 하나인 이유는 그 일을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인데, 실로 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라』(롬 5:5). 이것이야말로 풍요함이다! 이것은 아무데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허락하시고 그분을 계시해 주신 것이 풍요함이다(엡 1:17, 마 11:27).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즉 성령님께서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서 계시하시면(고전 15:3,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당신은 이것이 풍요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런 계시를 어디서 살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우리 교회에는 여덟아홉 살 먹은 아이들이 있는데, 웨스트플로리다 대학교에 있는 일부 교수들 옆에 세워 두면 그 아이들이 오히려 지식인이다. 오늘날 소위 “지식인”이란 자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되기 위해 돈을 내고 대학에 다녔는가? 우리 교회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를 믿었는지를 분명하게 안다!(딤후 1:12) 또한 주님의 몸과 똑같은 몸이 될 것을 알고 있고(요일 3:2), 자기가 영생을 소유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요일 5:13)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에게 계시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풍요함이다!
한번은 어느 그리스도인 어머니가 십대 아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아들 방에 들어가서 보니 벽 전체에 플레이보이 사진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그녀는 열두 살의 예수님이 성전에서 박사들과 이야기하는 그림을 가져와서는 다른 사진들을 떼지 않고 예수님 그림을 정중앙에 붙이고 문을 닫고 나온 것이다! 다음 날 집안을 청소하던 중 문을 열어 보니 플레이보이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아들의 친구 중 하나가 아들에게 물었다. “왜 벽에서 사진들을 떼어 버렸냐?” 그러자 아들은 대답했다. “응, 서로 너무 다른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못 견디겠더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올라가시면, 다른 건 모두 그냥 내려와야지!” 얼마나 맞는 말인가!
언젠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어떤 남자가 일요일 오후에 광산 옆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는 한 무리의 노새들을 보고서 근처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저 노새들은 뭐죠?” 그 남자가 말했다. “광산에서 일하는 노새들입니다.” “그런데 들판에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네, 주일에는 노새들을 데려와 빛 가운데서 걷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광산에만 있게 하면 눈이 멀어 버리죠. 그래서 주일에는 거기서 데리고 나와 빛을 쬐게 해 준답니다.” 참으로 곱씹어 볼 말이다! 주님의 빛을 통해 눈을 뜨게 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소경이 아니다. 당신은 세상의 수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보고자 해도 결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것은 또 다른 풍요함이다(엡 1:18, 골 1:27, 딛 2:13). 나는 어떤 부르심을 받았는지 알고 있다. 즉 예수님의 형상과 일치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롬 8:29,30), 이것이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엡 1:18)이요 『복된 소망』(딛 2:13)이다! 하늘의 휘장 안에 내려진 혼의 닻처럼, 확실하고 견고한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히 6:19). 그 어떤 것으로도 이 확실한 소망과 바꿀 수 없고, 그 무엇도 이 견고한 소망을 좌절케 할 수 없다! 지상에선 천 번을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결국에는 내가 구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죄 없는 몸을 갖는 것과, 하나님과 하늘나라에서 영원을 함께 보내기를 바라고 있으며, 결국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소망이 무엇인지 안다. “나의 소망은 오직 예수의 피와 그분의 의 위에 세워져 있다!”
당신은 미국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사람이 정부에 대해 소망을 품고 있다면, 그는 각성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복된 소망이 없다면, 도대체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성도들 안에 있는 그의 유업의 영광』(엡 1:18)을 소유했다. 당신은 “유업”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가 참으면 우리도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요』(딤후 2:12).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것에 대해 말씀한다. 당신은 그 나라를 상속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라, 나의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마 25:34).
한번은 세금 징수원이 시골에 왔는데, 꽤 여러 해 동안 기록이 누락된 매우 초라한 집을 발견했다. 그는 현관에 있는 노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견적을 내고 무엇에 세금을 매길 수 있는지 보려고 이곳에 들렀습니다.” “들러 줘서 기쁘구려. 나는 아주 부유한 여자라오.” “그럼 세금을 좀 내셔야겠군요.” “아니, 내겐 세금을 매길 수 없을 거요.” “아뇨, 정부는 아주머니에게 세금을 매길 수 있습니다.” “아니, 못 매겨요!” “부자시라면, 매길 수 있어요.” “그럼요, 나는 부자죠!” “그럼, 신고하세요. 무엇을 가졌습니까?” “음, 하늘나라에 집이 있어요.” “그건 세금을 매길 수 없어요. 또 뭐가 있습니까?” “마음과 생각에 평강을 가졌다오.” “그것도 세금을 매길 수 없습니다.” “죄들의 용서함도 받았어요. 또 매일의 양식을 공급받고, 이 성경 안에 있는 모든 약속들을 가졌소!” “그것도 세금을 매길 수 없어요.” 그러자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거보시오! 내가 부자라고 했지 않소!” 세금 징수원은 “네, 부자이신 것 같군요.”라고 말하고는 떠나 버렸다. 구원받았다면, 당신은 부자인 것이다!
당신이 소유한 헤아릴 수 없는 풍요함은 “주님의 강력한 능력”이다!(엡 1:19-21) 이 능력이 당신 안에 있다. 구원받았다면, 즉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님께서 당신 안에 들어오셨을 때 로켓 과학자들도 알지 못하는 능력을 당신에게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로켓이 발사대에서 솟아오르면, “와, 저 힘 좀 봐! 인간이 정말 대단하지 않아?”라고 감탄한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당신의 몸 안에 계시고, 당신은 곧 발사되어 우주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발사대도, 카운트다운도 필요 없다! 어쩌면 카운트다운을 할 수도 있는데, 저 위 하늘나라의 모든 이들이 할지도 모른다. 미카엘, 가브리엘, 모세, 사보나롤라, 토레이, 무디, 피니, 선데이, 밥 존스 시니어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그러면 당신은 발사되듯 솟구쳐서 올라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능력의 지극히 위대하심』(엡 1:19)이다!
여기에 헤아릴 수 없는 풍요함이 또 있다.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를 구속하기까지』(엡 1:14). 다시 말해 우리의 몸은 이미 값 주고 산 바 되었다. 값을 치른 것이다. 우리의 몸은 특이하고, 웃기고, 비뚤어지고, 이상하게 생겼을지 모른다. 만일 구원받지 못했다면 비웃지 말라. 우리는 적어도 값이 치러졌기 때문에 언젠가 새 몸을 얻게 되는 것이다! 파나마시티에 사는 조지라는 친구는 등과 목이 부러졌다. 그래서 팔은 물론, 손조차도 움직일 수 없다. 지금까지 18년 동안을 그런 상태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 그도 새 몸을 얻게 될 것이다!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아프리카에서 한 선교사가 원주민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가 한 남자에게 말했다. “저는 ‘구속’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려고 수년간 애써 왔습니다. 당신의 언어에서 ‘구속’을 뜻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 원주민이 말했다. “제게 먼저 구속을 설명해 주세요.” 선교사가 설명하자, 그 아프리카인이 한 단어를 언급했다. 그러자 선교사는 “이 단어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고,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 단어는 ‘그가 네 목을 멍에에서 빼내 주었다.’라는 뜻입니다.” 그 원주민은 수년 전 아랍 노예상들이 마을을 지나가며 원주민들을 잡아다가 판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목에 멍에를 씌워 데려갔는데, 그들이 지나갈 때 어떤 사람이 자기 친척을 구하고 싶다면, 멍에에 메인 그를 대신하겠다고 제안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 단어를 아는 것은 우리 부족의 족장이 내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구속받다”라는 말의 뜻이다.
주님께서는 나를 값을 치르고 사셨다. 나는 목에 멍에를 멘 채 끌려가고 있었는데, 내 옆에 오신 주님께서 나를 빼내시더니 나를 대신해서 멍에를 메셨다. 나는 구속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풍요함이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힘들 수 있다. 몸의 구원은 지금 온전히 얻은 것이 아니고, 그 몸은 죽는 날까지 당신을 괴롭힌다. 그렇지만 당신은 풍요함을 가졌다. 뉴욕시의 어느 택시 기사가 야간 근무 중에 한 남자 손님을 태웠는데 요금이 3달러 80센트가 나왔다. 그런데 손님은 동전 한 푼 없었다. 기사는 회사에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고, 이런 답변을 들었다. “담보물을 받아요. 시계나 반지, 뭐 그런 거요.” 약 5분 후, 기사가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다. “이 담보물로 뭘 어떻게 하죠?” “그냥 밤새도록 운전하다가 아침에 회사에 가지고 들어와요.” 그러자 기사가 욕을 하며 이야기했다. “그럼 나더러 이 살아 있는 오리를 태우고서 밤새도록 운전하라는 거요?” 말하자면 오리가 담보물이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아침이 되어야 집에 간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제가 이 살아 있는 죄인(육신)을 좌석에 태우고 밤새도록 운전해야 한단 말씀입니까?” 그렇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아침에는 반드시 이 몸을 넘겨드릴 것이다. 왜냐하면 값을 치르시고 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받지 않았다면, 당신은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요함을 누릴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그 모든 풍요함이 당신을 위한 것이 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