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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을 위한 나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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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2월호>
성경은 젊은이들에게 “젊음의 정욕을 피하라”고 훈계한다(딤후 2:22).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경적 통찰(눅 11:13)을 고려할 때, 우리의 육신이 거의 모든 기회를 육체의 정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려 한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갈 5:19). 특히 오늘날의 젊은 그리스도인 남자들은 과거 그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거센 유혹에 직면해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겪는 유혹의 근본적인 세 가지 양상(눅 4:3-11, 창 3:6, 요일 2:16)은 변함이 없을지라도 말이다(고전 10:13).그러나 휴거를 앞둔 이 마지막 날들에는 그 세 가지 유혹이 백 배나 더 강렬해졌다. “보기에도 즐거운”(창 3:6) “육신의 정욕”(벧후 2:14)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천 배나 더 확대되었다. “몸의 빛은 눈”이기에(마 6:22), 오늘날 대다수의 젊은이는 사춘기와 청소년기에 본 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인격과 미래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TV는 본질적으로 정욕을 자극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롬 7:7). 그 원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광고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반드시 인위적인 “필요”를 창출해야만 한다(딤전 6:10). 따라서 TV 시청은 육신이 하루 24시간 내내 무언가를 갈구하게 만들며,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자신이 소외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끔 조종을 한다. 구원받은 청년도 그 점에 있어서 예외가 아니다. 그 안에 내재된 인간 본성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아담의 옛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롬 6:6).
그리스도인 청년이 직면한 문제는 명확하다. 짧은 치마, 몸에 딱 붙는 바지, 가슴이 깊게 파인 상의가 도처에 널려 있으며, TV를 시청한다면 기독교 학교에 다닐지라도 이러한 노출을 피할 길이 없다. 정부와 언론 매체가 낙태, 음란물, 사생아, 성매매, 마약, 동성애, 그리고 온갖 범죄적 요소들을 방임하거나 장려하는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할 마지막 안전장치란 무엇인가?
음란한 복장과 외설적인 언어 외에도, 그리스도인 청년은 자기 집 거실이나 침실 안에서 벌거벗은 채 춤추는 밸리 댄서들을 접하며, 매일 혹은 매주 혼전 성관계나 합의된 간음 장면을 봐야 한다. 최근 연속극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TV 속 성행위의 79%가 불륜이나 간음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속극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오직 21%만이 법적 배우자와 잠자리를 가졌다. 기독교 학교에 다닌다 해도 TV가 주입하는 이러한 유형의 “교육”은 전혀 통제할 수 없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집 안에서 TV를 통해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성질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겪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상담해 주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그들이 죄를 짓는 것을 멈춘 것은 아니다. 또한 죄짓기를 원하거나, 죄를 계획하거나, 죄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열망을 멈춘 것도 아니다. 오늘날 젊은이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시대에는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어떤 급진적인 조치들이 반드시 취해져야만 할 정도이다.
30년 이상 미국 40개 주에서 4,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사역하며 이 문제를 지켜보다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이것이다. 곧 이 시대의 젊은이가 다음의 기본 원칙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정결하게 빠져나올”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조언하는 조치를 숙고해 보라!
첫째, 가능한 한 옥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라. 대부분의 죄는 방이나 차 안에서 행해진다. 대부분의 죄악된 생각들은 실내에서 부화하고, 또한 실내에서 배양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숲, 산림, 언덕, 나무, 평원, 산, 그리고 호수는 내면의 더러움을 물리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해변이나 호숫가 휴양지가 때로는 반쯤 벗거나 8분의 1만 걸친 사람들을 위한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붐비는 장소들을 피한다면 죄를 피할 수 있다.
둘째, 성경을 암송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 이외에 죄를 이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험을 받으시는 동안 사탄에게 세 번 대답하셨는데, 세 번 모두 구체적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맞서 싸우셨다. 만약 당신에게 필요한 말씀의 장과 절을 알지 못한다면 유혹을 이겨 낼 가망 자체가 있겠는가?
셋째, 뉴스 매체와 보내는 시간을 가능한 한 줄이라. 내가 말하는 것은 잡지, 신문, 그리고 TV다. 이 세 가지는 모두 계시를 대신하는 인간의 대용품들이다. (역자 주 : 오늘날 컴퓨터, 스마트패드, 휴대폰을 통해 접하는 소셜미디어, 숏츠, 게임, 유튜브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인간의 말이다. 뉴스 매체의 어휘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재미, 카톨릭, 통합, 빈민가, 관용, 교회 일치(에큐메니컬), 대주교, 총력, 역동적인, 의미 있는, 관계 맺다, 가치관, 수녀, 교황, 환상적인, 개입, 나눔, 공유, 추기경” 등이 그렇다. “이 세상의 신”(고후 4:4)인 사탄은 자기에게 귀를 기울이는, 자기에게 속한 자들(요일 4:5)을 위해 자기 자신만의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다.
넷째, 불같은 유혹이 올 때, 즉시 비상구(피할 길)를 찾으라(고전 10:13). 이러이러한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논쟁하며 빈둥거리지 말라. 할지 말지를 마음속에서 논쟁할 때 죄는 이미 시작된다. “죄를 짓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제시, 조명, 논쟁, 결정, 그리고 실행이다. 죄는 심지어 죄를 짓기로 결정하기도 전인 “논쟁” 단계에서 이미 들어온다.
다섯째, 로마서 6:11을 적용하는 법을 배우라.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이것은 육신을 정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절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필요들”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그 어떤 것도 “욕망”할 수 없고, 어떤 “필요들”도 채울 수 없다(롬 6: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씀하신다. 핵심은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야말로 “여기는” 것이다.
구원받기 전에는 불신의 괴롭힘으로, 순전히 “믿음으로”(요 5:24)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죄에 대한 승리를 주장하는 문제에 있어서 똑같은 믿음 없음 때문에 힘들어한다(롬 6:1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position), 즉 우리가 살아 있는 영을 가짐과 동시에 죽은 몸을 가졌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롬 6:6).
나는 이러한 권면들이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하고자 하며, 정결하게 발견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눈과 귀와 마음에 이르기를 바란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노력이다. 다시 말하건대, 가능한 한 “그림들”을 멀리하라(민 33:52). 몸의 빛은 눈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죄에 대해 생각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행할 수 없고, 생각할 재료가 되는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없다면 그 죄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어딘가에서 그것들을 보지 않았다면 그 이미지들을 마음속에서 그려낼 수 없다.
나는 미국 전역의 수많은 청소년 캠프에서 30년 이상 젊은이들에게 설교했으며, 네 명의 딸과 세 명의 아들을 모두 그리스도인으로서 공립학교 시스템에서 키웠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성경 구절을 단 하나만 고른다면, 결론은 잠언 23:17이다. 『네 마음으로 죄인들을 시기하지 말고 온종일 주의 두려움 가운데 있으라.』 이 구절은 특히 어린 나이에 구원받아 이른바 “진짜 죄를 맛보지” 않은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에게 더욱 중요하다. 많은 경우, 이러한 젊은 남녀들은 자신들이 자라온 세상과 어울리지 않을 경우 무언가 대단한 것을 “놓쳤다”는 느낌을 떨쳐 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 마음 때문에 “십 대” 시절에 끔찍한 곤경에 처하곤 한다. 말하자면 세상적인 삶과 죄를 경험한 나이 든 사람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드라마틱한 간증을 할 때, 많은 젊은이는 속았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난봉꾼”이 결국 살아남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눈에는 일종의 증거처럼 보이는 것이다. 즉 자신들도 똑같이 세상에서 죄를 탐닉하며 살더라도 결국에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늦은 나이에 구원받은 사람이 다섯 살에서 열 살 사이에 구원받은 사람보다 나은 유일한 점은, 나이가 들어서 회심하면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았는지를 똑똑히 알기에 대개 구원을 더 감사히 여긴다는 것뿐이다(눅 7:47). 이것이 전부다.
죄는 그 어떤 사람도 처음 상태보다 더 낫게 만들지 않음을 명심하라(갈 6:7,8). 오히려 더 일찍 구원받을수록 다음과 같은 더 많은 유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첫째, 나중에 거두어들일 타락의 수확물이 더 적다. 둘째, 죄에 대한 이중 장치(양심과 성령)가 어릴 때부터 작동하여 타락을 최소화한다. 셋째, 좋은 습관과 인격을 개발할 시간이 더 많다. 넷째,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길 시간이 더 많다. 다섯째, 하늘에 보물을 쌓을 시간이 더 많다.
마귀는 그리스도인 젊은이에게 잠시 누리는 “죄의 낙”(히 11:25)을 놓치면 본질적인 무언가를 잃는다는 착각을 심어 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당신은 시궁창 같은 삶을 경험했던 이들이 고백하는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신은 놓친 것이 없다! 만일 무언가를 놓쳤다면, 그것은 비통함과 눈물, 외로움, 수많은 실책, 당혹감, 낭비된 시간과 돈, 망가진 건강, 정신적·내면적 오염일 뿐이다. 에롤 플린, 존 레논, 엘비스 프레슬리, 행크 윌리엄스와 같은 방탕한 죄인들을 결코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은 가장 불행하고 비참하며 끔찍한 실패자들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브룩 쉴즈 역시 성공한 것도, 행복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이 그러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3:36, 엡 2:1-3). 『범죄자들의 길은 험난하니라』(잠 13:15). 그들이 옳은지 하나님이 옳으신지 확인하기 위해 당신의 인생을 실험대에 올릴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다.
모든 악한 일에서 빠져나올(전 7:18) 젊은 남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빌 2:12). 이들은, 겉으로 행복한 척하려고 애쓰지만 실제로는 비참함 속에 있는 불경건한 자들이 주변에서 무엇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결코 주눅 들지 않는 청년들이다. 『주의 면전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편에는 즐거움이 영원무궁토록 있나이다』(시 16:11). 죄인들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놓치는 것은 아무것도,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들과 어울릴 때 모든 것을 놓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롬 12:1-3)은 세상과 일치하지 않는 것(롬 12:2)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때를 기다리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서두르시는 법이 없다. “다시 할 시간이 있다면, 처음부터 올바르게 할 시간도 있는 법이다.” 죄인들이 당신을 놀리는 것을 개의치 말라. 그들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대마초 연기를 내뿜으며 술잔을 부딪칠 때, 그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실상을 읽어 내야 한다(잠 23:29-35). 그들은 일시적인 감정을 즐길 뿐이며, 그 감정은 죽음과 함께 썩어 버릴 육신에 매여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거나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실 때까지 이 썩어질 몸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몸 안에서 살아야 한다면, 마땅히 깨끗하게 지키고 관리해야 하지 않겠는가?(고전 3:16,17)
죄인들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을 부러워하는 순간, 당신은 그들처럼 되기를 원하게 된다. 그들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결국 그들을 흉내 내게 되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친구는 멸망하리라』(잠 13:20).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으며, 삶에 대한 해답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들에게 해답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짓들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네 마음으로 죄인들을 시기하지 말고 온종일 주의 두려움 가운데 있으라』(잠 23:17). 주님께서는 이 구절에 순종하기를 주저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바로 “다음 구절”을 말씀하셨다. 『이는 분명히 마지막이 있겠고 또 네 기대가 끊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라』(잠 23:18).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당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계신다(빌 4:19). 젊은이여, 하나님을 기다리라!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