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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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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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9월호>

성경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그 장소를 거룩한 도성, 처소, 저택, 나라, 왕국, 천국 등으로 말한다. 나라가 있다면 그 안에 살아야 할 백성이 있어야 한다. 백성이 없다면 나라가 아무리 좋고 거대한들 무용한 일이다. 천년왕국 때가 되면 지금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폐한 땅도 모두 회복된다. 올해 복숭아를 먹고 씨를 심으면 내년에 복숭아를 따 먹을 수 있는 정도로 땅은 비옥해질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런 좋은 땅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데, 살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럭크만 형제에 따르면, 십자가 이후로 지금까지 구원받은 사람은 약 40억 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지구에 살고 있음에도 빈 땅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백성은 더 많이 필요하다. 캐나다만 해도 북쪽으로 가보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알래스카나 시베리아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 살아야 할 사람들을 채워야 하며, 이는 “현실적인” 필요이다.

누가복음 14장에는 주님과 함께 식사하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빵을 먹을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15절)라고 말씀 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집주인이 성대한 저녁을 마련했는데, 사람들이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각자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밭을 샀다는 둥, 소 다섯 겨리를 샀다는 둥, 장가를 들었다는 둥 변명을 댔던 것이다. 그러자 집주인은 종에게 『빨리 성읍의 거리와 골목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불구자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이리로 데려오라.』(21절)라고 명령했고, 그래도 자리가 남는다는 보고를 듣자 『대로와 산간마을로 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오게 하여 내 집을 채우도록 하라.』(23절)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초대되었던 그 사람들은 아무도 내 저녁을 맛보지 못하리라.』(24절)라고 덧붙였다. 그 잔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졌던 것이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준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마치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양 치부한다.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벧후 3:3,4).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농담처럼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목사들조차 그런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말씀을 읽거나 찬송가 가사를 불러도 상투적 표현 정도로만 여길 뿐, 정말로 주님께서 오신다고 믿질 않는다.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살았던 과거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지금 여러 가지 재림의 징조들을 목격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전쟁을 비롯해서 기상 이변, 고베 대지진과 같은 엄청난 자연재해 등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 공동체가 형성되어 유럽이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국가로 다시 정착하는 것도 그렇고, 복음이 세계 모든 나라에 거의 전파된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또 어떤가? 오늘 아침 뉴스에서도 범교단 회의를 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카톨릭, 불교 대표 등 여러 종교 대표들이 모여 연합 운동을 벌이고, 아나운서는 이를 대단한 일인 것처럼 보도한다. 도덕적 타락도 예언된 대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초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성폭행을 저지르며 본드를 흡입하고, 부모가 아동을 학대하는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는 이처럼 재림의 다양한 징조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재림이 임박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누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가? 그 심각성을 인지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파해야겠다는 열정이 생긴다. 우리는 단순히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아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그 일을 확신하면서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대형 병원들에는 암 병동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치지만, 암이라는 것에 대해 그 당사자들인 환자들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무감각하게 그곳을 지나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대환란”이라는 말을 들어도 무감각하다. 자기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차 주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시고, 이 땅에 남게 될 사람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교회에서 듣고, 또 스스로 성경에서 읽어서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행 4:20).

말하자면 그 일은 심각할 뿐 아니라 중요하기까지 하다. 세상에는 심각한 일이 많다. 먹고 사는 문제도, 가족을 돌보는 문제도, 건강 문제도 모두 심각한 일들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 모든 문제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사도들은 그분의 이름을 위해 모욕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짐을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성전에서나 각 집안에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쉬지 않더라』(행 5:41,42). 그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파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 회개와 죄사함』(행 5:31)을 주신다는 사실보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토록 존중하던 구약 성경에 선지자들이 기록했던 메시아가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행 3:18-26)보다 귀중한 진리는 없었기에 그들은 쉬지 않고 전파했던 것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운 지금, 구원받지 못하면 대환란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에, 우리도 쉼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 회개와 죄사함』(행 5:31)을 주신다는 사실보다 귀중한 진리는 없었기에 사도들은 쉬지 않고 그분을 전파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운 지금, 구원받지 못하면 대환란에 들어가야 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에, 우리도 쉼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복음의 일꾼은 이토록 적은가?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 시대에는 능력 있는 복음의 일꾼이 이토록 적은 것일까? 성경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지혜와 영으로 충만하여서 그 누구도 당해 낼 수 없을 지경이었던(행 6:10) 스테판이 한 말을 보도록 하자. 『너희 목이 굳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 조상이 한 것과 같이 너희도 늘 성령을 거역하는도다. 선지자들 가운데서 너희 조상이 박해하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었느냐? 또 그들은 의로우신 분의 오심에 관하여 미리 말한 그들을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로우신 분을 배반한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천사들을 통해 지시하신 율법을 받고서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 7:51-53). 여기서 우리는 스테판이 지혜와 영으로 충만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알 수가 있다. 그는 율법, 곧 구약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었기에 당대의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율법사들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 성경을 손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다. 모두가 “성장”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정작 성경을 아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가 출간하는 서적과 학회지, 그리고 성경을 통해 눈을 뜨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 교회로 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이것이 다른 제도권 교회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다. 사람이 늘어나서 기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진리에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기쁜 것이다.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의 어느 건물 2층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진리에 눈을 뜨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130년 동안 기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을 우리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리를 전파하면 필연적으로 박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향해 가짜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개 그 대상이 되는 것은 당대의 기득권층이다. 당연하게도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당신들은 틀렸다.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를 지혜와 영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도한다. “지난 130년 동안 이 땅에서 이루지 못했던 부흥을 위해 누가 나서야 합니까? 이 민족을 누가 복음화시켜야 합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그 일에 나를 부르신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미 주어진 일이 너무나도 많다. 책도 써야 하고, 학생들도 가르쳐야 한다. 분명 주님께서 누군가를 부르셔서 그 일을 맡기실 것이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그 일에 예비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군인이든, 회계사든, 학생이든 관계없이 쓰임받을 수 있다. 문제는 순종이다.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나타나 『일어나서 남쪽을 향해 예루살렘에서 가자에 이르는 길까지 가라. 그 길은 사막이라.』(행 8:26)라고 말했을 때, 빌립은 이유도 묻지 않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일어나서 떠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누가복음 19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장사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에게 국한된 과업이 아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종들은 똑같이 한 므나씩을 밑천으로 받았다. 그들이 가진 것에는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주인은 재능과 은사를 더 가진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더 맡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과는 모두 달랐다. 왜 그런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달랐기 때문이다.

주인이 돌아와 이 장사의 성과를 확인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한 종들은 신실하게 장사했다. 많이 벌었는지 적게 벌었는지와 관계없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했던 종들은 신실하다는 평가와 함께 성읍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 그러나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던 종은 변명을 댔다. 주인이 두려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대의 종교인들이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되도록 모든 각본을 써 놓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제가 할 일이 없었습니다.”라는 둥, “주님, 저에게는 신유나 방언의 은사를 주지 않으셔서 일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둥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복음을 가지고 혼들을 이겨오라는 명령은 등한시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들 떠든다. 그들은 성령화 대회, 성시화 대회, 신년 축복 대성회 등 성경에 있지도 않은 것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나를 두려워한다면 왜 하라는 것은 안 하고 명령한 적이 없는 것만 하느냐?”라고 물으실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사람을 모으기만 할 뿐,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혼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 수익도 거두지 못한다. 그런 자들은 가진 것마저 다 빼앗기게 된다. 입으로는 무어라 고백했든지 간에, 실제로 그분이 왕이 되어 통치하시길 원한다는 증거가 삶에서 단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네 직무를 완수하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5,7,8).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타나실 날을 간절히 열망한다. 그분 없이는 이 땅에 평화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오염도, 도덕성의 타락도 심화될 것이다. 인간끼리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구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뿐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려면 의의 왕께서 오셔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렇게 고백한다면, 그분을 다시 만나기까지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실행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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