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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인 요한이 엘리야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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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1월호>
성경 속의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위대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를 비롯한 구약 선지자들은 어떤가? 또한 신약 사도들, 즉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열두 사도들은 어떠하며, 신약성경을 14권이나 기록한 사도 바울은 어떤가? 주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신약 교회를 계시하셨다(엡 3:5-8).위에 나열했던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이나 보존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님의 종 엘리야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의 위대함은 다른 데 있었다. 엘리야에게는 말씀에 관한 임무 대신 다른 것이 맡겨졌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가장 사악한 왕 중의 하나인 아합과, 바알을 섬겼던 그의 아내 이세벨을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는 칼멜 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살해하고 승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도하면 비를 내리게도 하시고 멈추게도 하시면서 도우셨다.
엘리야는 B.C. 895년의 어느 날 요단 강변에서 엘리사와 선지자들의 아들들, 곧 “신학생” 5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라갔다(왕하 2:11). 이런 휴거는 B.C. 2865년경 365세가 된 에녹이 들림받은 후(창 5:24) 두 번째로 일어난 것이었다.
엘리야가 다시 나타난 것은 A.D. 29년 변형산에서였다. 그때 그는 모세와 함께 변형산에 내려와서 예수님과 담소했으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의 옷은 빛처럼 희어지더라. 그런데,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주와 함께 이야기하더라』(마 17:2,3). 이때 주님께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나누셨던 대화의 주제는 주님의 죽으심에 관한 것이었다(눅 9:31). 그것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는 최후의 표적이기도 했다(마 12:39,40).
요한계시록 11장에는 “두 증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정체는 마태복음 17장의 변형산에서 나타나 주님과 함께 있었던 모세와 엘리야이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러면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하더라. 이들은 땅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촛대니라.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의 원수를 삼키리니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게 되리라. 이들에게는 하늘을 닫는 권세가 있어서 그들이 예언하는 날 동안 비를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도 있어 원하는 때면 언제든지 온갖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3-6).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는 3년 6개월 동안 “하늘을 닫는 권세”를(약 5:17), 모세에게는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를 주신 적이 있었다는(출 7:20) 점을 떠올려 보라. 두 증인은 바로 모세와 엘리야이다.
변형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은 둘 다 지상에 몸이 없다는 것이었다. 엘리야는 휴거되었으니 그렇다 하겠지만, 모세의 몸이 그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모세의 묘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말씀을 보라(신 34:5,6). B.C. 1450년경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고 벧프올 맞은편 골짜기에 장사되었다. 그런데 약 2백만 명의 백성들을 이끌었고 여수룬의 왕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는 모세가 죽었지만 무덤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활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성경은 이때 “모세의 몸”을 두고 천사장 미카엘과 마귀가 논쟁을 벌였다는 추가적인 정보도 제시하고 있다(유 1:9).
성경에 의하면 모세와 엘리야는 대환란 기간에 땅에 내려와 1,260일을 예언한다. 이 기간은 다니엘이 말했던 삼 년 반의 기간(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과 일치하며(단 7:25), 칠 년(한 주)의 중간에 적그리스도가 돌변할 것이라고 했던 예언에도 부합한다(단 9:27). 요한계시록 11:3-11에는 이 두 선지자가 목 베임을 당한 후 예루살렘 시내에 3일간 방치되었다가 성령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으시니 살아나서 승천할 것이라는 상세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덧붙이자면 그날은 크리스마스일 것이며(계 11:10), 그때의 예루살렘은 소돔과 이집트라고 불릴 것이다(계 11:8).
엘리야는 성경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구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장을 장식했다. 『보라, 내가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말 4:5,6). 이 말씀은 엘리야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선두주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뜻이며, 누가복음 1:17에서 약간 변형되어 인용된다. 『그는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불순종한 자들을 의인들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백성을 예비시키리라.”고 하더라.』 이 말은 천사 가브리엘이 침례인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요한의 아버지 사카랴에게 전해 준 것이었다.
말라키 4장 말씀보다 한 장 앞에 있는 말라키 3:1에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마가는 이 말씀을 이사야 40:3의 내용과 함께 인용하여 『선지서들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 “보라, 내가 네 면전에 나의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네 앞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들을 곧게 하라.’고 하는도다.” 하였더라.』(막 1:2,3)라고 기록했다. 그러고 나서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사역을 시작했던 침례인 요한을 소개했다(막 1:4-9).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에는 이 부분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로 잘못 번역되어 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보내실 사자에 대한 내용이 이사야서에는 없는데도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은 무려 36,000군데가 넘게 틀린 엉터리 성경인데, 이 나라의 목사들은 그런 가짜 성경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거짓되이 가르치고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보내실 사자에 대한 예언은 말라키 3:1에 나온다. 하지만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은 그 예언이 마치 이사야서에 있는 것처럼 마가복음 1:2을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로 잘못 번역했다.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은 무려 36,000군데가 넘게 틀린 엉터리 성경인데도, 이 나라의 목사들은 그런 것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거짓되이 가르치며 설교하고 있다.)
침례인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태어나서,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맨 채 꿀과 메뚜기를 먹으며 광야에서 지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율법사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은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에 관해 몹시 궁금해했다. 그들은 메시아와, 그 앞서 등장할 엘리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요한에게 정체를 물었을 때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아니며, 다만 자신은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라고 대답했다(요 1:19-23).
요한의 대답과는 다르게 주님께서는 그가 엘리야라고 말씀하셨다. 『주의 제자들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 마음대로 대하였도다. 이와 같이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하시더라. 그때서야 제자들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침례인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임을 깨닫더라』(마 17:10-13).
그렇다면 침례인 요한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들어 보라. 『침례인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폭력을 겪고, 폭력을 쓰는 자들이 힘으로 그것을 차지하느니라. 모든 선지서와 율법은 요한까지 예언한 것이라. 만일 너희가 그것을 받을 의향만 있다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가 바로 그 사람이니라』(마 11:12-14). 요한은 엘리야로서 왔으나, 유대인들이 “받을 의향”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침례인 요한이 전파했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같았다. 즉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다(마 3:2; 4:17).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그처럼 고대했던 그 왕국을 가져오실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했다.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소리 질렀고,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라고까지 말하면서 우격다짐으로 빌라도에게 자신들의 왕이신 예수님을 죽이도록 했다. 그리하여 천국은 도래하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위에 앉아 보지도 못한 채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으며,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승천하셨다. 누가복음에서 주어진 이 예언을 성취하지 못하신 채로 말이다. 『보라, 네가 너의 태 안에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하게 될 것이며,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또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고 하니라』(눅 1:31-33).
그렇게 천국을 가져오시려는 주님의 계획은 일시적이지만 무산되었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왕국복음도 사라졌다. 그 대신 교회 시대가 도래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다. 이 나라는 천국처럼 물리적인 왕국이 아니라 영적인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롬 14:17). 이스라엘이 왕을 거부했기에 이제 물리적인 왕국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침례인 요한도 엘리야가 될 수 없었다. 그가 수행했던 왕의 선두주자, 곧 엘리야로서의 사역은 불완전하게 끝났기에, 그것에 대한 주님의 약속은 미래를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다윗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셔야 한다는 성경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왕을 거부함에 따라 잠시 유예되었지만,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왕국을 세우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기 직전에, 왕의 선두주자인 엘리야도 올 것이다. 엘리야가 대환란 때 두 증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않은 유대인들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 신약성경을 기록하셨으며, 구원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 구약성경을 기록하셨다. 성경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그것을 믿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성경을 읽고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유대교에서는 완고하게 신약성경을 거부하면서, 메시아는 아직 오지 않았고 미래에 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진리가,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에 꼭 들어맞는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빈틈없이 입증하는데도 말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상고하지도 믿지도 않으며(요 5:39,46), 오히려 자신들의 전통을 앞세워 폐기하기에 예수님의 명백한 메시아로서의 행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성경에 없는 것들을 제멋대로 지키고, 반대로 성경에 있는 것은 제대로 행하지 않는다(마 15:1-9). 그러면서도 유대교를 자랑스러워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은 왕국에 합당한 영적 상태, 곧 하나님의 나라(마 6:33)를 거부하면서도 지상의 왕국만을 구한다. 그 결과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착각한 채 따름으로써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는도다.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하리라』(요 5:43).
반대로 로마카톨릭과 개신교에서는 구약성경을 거부한다. 그들은 선지서들에 기록된 이스라엘 관련 예언들을 결코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물리적인” 씨에게 주어졌던 왕국에 관한 모든 약속이 아브라함의 “영적” 씨인 자신들에게로 모두 옮겨졌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성경이 말씀하시는 대환란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초자연적으로 부양하시는 일과 이방 민족들을 멸망시키시는 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회복시키시고 그들을 중심으로 물리적인 왕국을 세우시는 일 등을 모두 사실 그대로 믿지 않고 비유적으로 해석해 버린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교세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곧 이 땅에서 왕국을 확장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윗의 보좌,” 곧 유대인들에게 주신 물리적 왕국에 대한 약속은 철회된 적이 없다. 유대인들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로마서 11장에서 말씀하시지 않던가?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심이니라』(롬 11:1,26,27,29).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약속을 제멋대로 탈취하려는 자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계 2:9; 3:9 참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독을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다.
초림과 재림은 분명 서로 다른 사건이다. 그러나 성경을 거부하는 유대교, 로마카톨릭, 개신교 등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헛소리를 하면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낸다. 그런 바보들은 침례인 요한이 엘리야인지 아닌지를 묻는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도 없다. 그들은 초림 때 물리적 왕국인 천국이 소개되고, 거부되고, 결국 연기되었지만, 마침내 재림 때 세워질 것임에 대해 말씀하시는 성경의 내용을 보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성경은 그것을 올바로 나누지 못하면 바르게 믿을 수가 없는 책이다. 나누지 못하면 마치 여기서는 이 말을, 저기서는 저 말을 하는 모순적인 책처럼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그저 무슨 교훈을 담고 있는 교양서적처럼 취급하거나, 제멋대로 취사선택해서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인정하시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주제는 왕국이요, 그 주인공은 왕국에서 통치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따라서 왕국에 관해서도, 예수님의 통치에 관해서도 까막눈인 그들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리가 없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도록 하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