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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들”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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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1월호>
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완전히 성별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복음을 믿고 거듭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성별해야 한다(요 15:19). 다음으로는 성경을 믿고 가르치며 실행하는 지역 교회를 찾아가 그곳에 소속됨으로써 “두 번째 성별”을 해야 한다.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지역 교회를 만나는 일은 어쩌면 마음에 꼭 드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는 신중하면서도 교회를 선택하는 일에는 그렇지 않다. 아무나 가까운 사람을 붙잡고 결혼하자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데나 가까운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많은 것이다. 그런 교인들의 영원은 그들의 선택만큼이나 가벼운 것이 되고 만다(고후 4:17).교회를 이토록 가볍게 결정하도록 만든 것이 누구인가? 로마카톨릭이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로, 로마카톨릭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무슨 짓이든” 했다. 무차별적으로 교세를 확장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도 모르는 이교도들을 데려와서 물을 뿌려 주고는 교인으로 받아주었다. 그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저항하는 이들을 추방하거나 죽였고, 나중에는 아예 성경을 읽거나 소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잘못된 영적 상태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게 로마카톨릭에 속한 교회들은 모두 진리가 없는 곳으로 하향평준화했고, 어딜 가나 별 차이가 없어졌기에 교인들은 그저 자기가 속한 “교구”에 있는 교회에 나가면 그만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가리켜 “창녀 교회”라고 부르셨다(계 17:3-7). 사도 요한도 이 “어머니 교회”라는 자들이 성도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크게 의아해 하며 놀랐다고 적고 있다(계 17:6).
종교 개혁자들이 성도들에게 성경을 되돌려 줌에 따라 영적 판도가 뒤집히는가 싶었지만, 결국 그 후예들이 로마카톨릭의 누룩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실패하고 성경이 아닌 교단 교리를 따름으로써 결과적으로 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루터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 감리교회 등의 개신교회들에서는 오직 성경만을 존중하며 성경으로 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 실행들을 바로잡겠다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점차 사라져 갔고, 교단에 소속된 교회들을 더 많이 늘리겠다는 야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복음을 전해서 혼들을 주님께 이겨오고,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달아 선한 일에 진력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예배 절차나 전통을 따르는 “루터교인,” “장로교인,” “회중교인,” “감리교인”을 양산하는 데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개신교회들도 로마카톨릭과 똑같은 상태로 전락했다. “제도권” 안에 있는 교회라면 어디든 좋다는 인식을 심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에 무관심해지게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듭난 성도들의 영적 양식인 것을 모르는 교인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제도화된 교회들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대부분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지 않는다. 사람은 육신의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 하루 세 끼를 먹는데, 며칠씩 굶는다거나 형식적으로 음식을 먹는다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거듭난 후 성도가 영적 양식을 안 먹으면 말씀을 이해하고 믿는 강도가 약해져서 육신의 욕구가 영적 능력을 압도한다. 그렇게 되면 죄의 유혹과 세상을 사랑함이 더욱 강해져서 성경도 하나님도 필요 없는 사람으로 변모되어 간다. 그런 일들이 오래 지속되면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는지조차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그런다고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 생활은 완전히 파탄 나고 만다.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되지 못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또한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 4:6). 교회에 다닌 연수, 학벌, 지위, 경력, 교회에서 맡은 제직, 심지어 목사, 신학교 교수의 경력 등은 신뢰할 것이 못 된다. 이 나라 설교자들 가운데 95% 이상은 성경을 읽지 않거나, 읽는다고 해도 믿지 않거나, 혹 믿는다고 해도 제 입맛에 맞는 부분만 믿는다. 특히 교단의 목사들과 교사들은 더욱 그렇다. 그들은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13구절이나 “없음”이라고 표기된 성서들을 사용하는 자들이다.
변개된 성서들을 옹호하는 자들이 강단을 차지하고 있는 제도화된 교회에 출석하면 적그리스도의 길에 동참하게 된다. 그들 가운데 필자에게 적그리스도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은 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와 “적그리스도들”(antichrists)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기야 “마귀”(the Devil)와 “마귀들”(devils)조차 구별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그 둘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장차 올 적그리스도는 성경에서 짐승(beast)으로 묘사된다. 다니엘과 요한이 이 짐승에 대해 묘사하는 것을 종합하면(단 7:7,8, 계 13:1,2),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는 일곱 머리를 가진, 또 열 개의 왕관이 있는 열 뿔을 가진 바다(지중해)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며, 표범, 곰, 사자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형태로 그려진다. 성경은 이 짐승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와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계 17:8).
위의 짐승이 “전에 있었다”는 점과 지금은 지상에 없고 “끝없이 깊은 구렁”에 있다는 점을 보면 그 정체를 알아챌 수 있다. 그는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죽으면 “끝없이 깊은 구렁”이 아니라 “지옥”으로 간다. 그러나 유다 이스카리옷은 죽어서 “그 자신의 거처”로 갔다(행 1:25). 이상하지 않은가? 그에게는 지옥이 아니라 자신에게 할당된 특별한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끝없이 깊은 구렁이다. 게다가 유다 이스카리옷이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리는데(요 17:12), 똑같은 표현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말씀하는 구절에서 등장한다(살후 2:3). 적그리스도의 정체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했던 유다 이스카리옷인 것이다.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장차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올 자는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유다는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리는데(요 17:12), 이와 똑같은 표현이 적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된다(살후 2:3). 적그리스도의 정체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했던 유다 이스카리옷인 것이다. 초림 때 마귀(a devil, 요 6:70)라고 불렸던 그는 앞으로 대환란 때에 사탄(the Devil)이 육화한 존재로서 등장할 것이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일 뿐 아니라 마귀(a devil)이기도 했고(요 6:70), 앞으로 펼쳐질 대환란 때는 사탄(the Devil)이 육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육신, 곧 “경견의 신비”를 모방한 것으로(딤전 3:16), “불법의 신비”(살후 2:7)라고 불린다. 사탄은 최초의 반역 이래로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라는 욕망을 단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다(사 14:14).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말씀(아들)과 성령의 삼위일체(요일 5:7)를 흉내 내려고 한다. 『또 내가 보니,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데』(계 16:13). 용(아버지에 대응됨), 짐승(아들에 대응됨), 거짓 선지자(성령에 대응됨), 이것이 사탄의 삼위일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위임받아(마 28:18) 그분의 일을 수행하셨듯이, 짐승이자 적그리스도인 유다 이스카리옷도 사탄으로부터 초자연적인 권세를 위임받아(계 13:2) 사탄의 일을 수행할 것이다. 말하자면 온 세상을 미혹하여 자신을 따르게 하고, 결과적으로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즉 구원받은 성도들이 휴거되기까지 유다 이스카리옷은 “그 자신의 거처”에 있을 것이기에, 현재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는 이 땅에 없다. 그럼에도 “적그리스도들”(antichrists)이 활동 중인데, 성경은 이들의 실체를 드러낸다. 『어린 자녀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고 너희가 들었던 대로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many antichrists]가 일어났으니, 이로써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느니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분명히 우리와 계속 함께하였을 것이나 그들이 나감으로 그들 모두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외에 누가 거짓말쟁이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니라』(요일 2:18,19,22).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을 당시(A.D. 96), 말씀 하나님께서 처녀의 태를 통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애당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을 대적했던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이 말하는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하다가 떨어져 나간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면서도 경건의 신비를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자들이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딤전 3:16)라는 경건의 신비와 관련된 말씀을 <개역한글판>이나 <개역개정판>과 같이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라고 바꿔 버린 학자들, 그리고 그런 성서를 추천하고 사용하는 목사들이 그들이다. “그가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인간 예수,” “역사적 예수”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 내용은 성경을 읽지 않아도 다들 알지 않는가? 성경이 고작 그런 시시한 말씀을 전하려고 기록되었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을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으로 믿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받고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성정에 속한 인간에 불과하셨다면, 어떻게 우리의 죄들을 용서해 주실 수 있겠는가?(마 9:2-6)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의 신성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 있다. 『그 내시가 빌립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당신께 부탁하노니 선지자의 이 말은 누구에 관한 것이뇨? 자신이뇨, 아니면 다른 사람이뇨?” 하니 빌립이 입을 열어 이 성경에서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를 전하니라. 그리하여 그들이 길을 따라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라고 하니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서 그가 마차를 세우라고 명한 다음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로 내려가서 빌립이 그에게 침례를 주니라』(행 8:34-38).
빌립은 얼마 전까지 이 땅에 계셨던 한 “인간”인 “예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통해 그분을 설명했기에, 내시는 그분께서 구약성경에 예언되셨던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그의 입에서 나온 신앙고백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하나님의 아들“들”과는 다르다) 신성을 나타내기에(요 5:18; 10:30-36), 내시의 신앙고백은 100점짜리였다. 그래서 빌립은 그에게 침례를 주는 것을 합당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같은 변개된 성서들에는 그 신앙고백이 있어야 할 37절의 자리가 “없음”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일들이 단순한 실수로부터 비롯되었겠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려는, 그리고 믿음의 고백이 없어도 물을 뿌려 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불경한 손길이 개입한 것이겠는가? 그들의 성서들에는 심지어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가장 확실한 구절인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요일 5:7)라는 말씀도 삭제되고 없다. 그래도 계속 발뺌하려는가?
스스로 알든지 모르든지 사탄의 사주를 받고 있는 적그리스도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 그들은 사탄의 종들에 의해 변개된 성서를 사용하며, 사탄에 의해 제도화된 교단들에서 한 자리씩 꿰차고는 장차 올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있다. 그들의 배후에 있는 사탄은 “이 세상의 신”이기에(고후 4:4), 그들이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도록 밀어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쓰레기같이 되기 일쑤지만(고전 4:13),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크게 높임을 받는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였으므로 세상에 관한 말을 하나니,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느니라. 이로써 우리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아느니라』(요일 4:5,6).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선 자들이 성경을 존중하지도 않고 구원받지도 않은 대통령과 함께 조찬기도회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약자를 돕는답시고 권위를 대적하여 폭력시위를 일으키는 데모 세력을 지지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왜 그들은 여야 진영의 정치판에 기웃거리고 “기독교인들”을 규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하는가? 그들의 신이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라는 것 외에 설명할 방법이 있겠는가? 그런 자들의 교회는 대부분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휴거되지 못하고 대환란을 통과하게 된다. 그러면 그 강단을 차지한 “적그리스도들”은 “적그리스도”에게 자신들의 교회를 고스란히 바칠 것이다. 그들이 한데 모은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은 고스란히 적그리스도의 권력이 된다. 그 교인들은 적그리스도를 지지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알았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살후 1:7-9)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아직 기회가 있는 지금, 그런 적그리스도들의 교회로부터 성별해야 하는 것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