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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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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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5월호>

본 코너는 솔로몬성경연수원 교재들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 주신 지식의 보화들을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설교”를 하신 것은 앞으로 임하게 될 왕국의 핵심적인 규범인 “왕국의 헌법”을 제시하시기 위함이었고, 마태복음 8,9장에서 “왕의 표적들”을 보여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왕국의 왕으로 오신 분이심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제자들에게 마귀들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는 권세를 주시고 “천국 복음”을 위임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거부하자, 마태복음 11장 후반부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개인”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며 말씀을 전파하신다.

『그러나 내가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까?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자기 친구들을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아니하며, 우리가 너희를 향해 애통하여도 너희가 통곡하지 아니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마 11:16,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림 당시의 세대를 장터에서 노는 어린아이들에 비유하셨다. 주님께서 보실 때 그 세대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자기 친구들을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아니하며, 우리가 너희를 향해 애통하여도 너희가 통곡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는 것과 같았다. 비유에서 피리를 불었던 자들과 애통했던 자들은 “초림 당시의 악한 세대”이며, 그들이 분 피리 장단에 맞춰 춤추지 않았던 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침례인 요한”이고, 그들이 애통하여도 통곡하지 않고 먹고 마시던 자는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초림 당시의 유대인들은 요한이 와서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므로 마귀들렸다고 했고,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와서 먹고 마시니 그분에 대해서는 “보라, 탐식하는 자요, 술을 즐기는 자며,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다.”라고 비방했다. 요한은 금욕적인 거룩함을 엄격히 강조하던 설교자였는데, 그런 그를 유대인들은 “마귀들렸다”고 비난했다. 한편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대중적인 설교자를 보내시자, 유대인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세리들과 죄인들을 친구삼아 탐식하고 술 마시는 자라고 비난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탐식하지도 않으셨고, 술을 마시지도 않으셨다. 이것은 그들의 모함일 뿐이었다.

『그후 주께서는 자기가 능력 있는 일들을 가장 많이 행하신 성읍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책망하기 시작하시더라. “코라신아, 너에게 화 있으리라! 벳새다야, 너에게 화 있으리라!... 카퍼나움아, 하늘까지 높아진 너는 지옥까지 낮아지리라. 네 가운데서 행하였던 능력 있는 일들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읍이 오늘까지 남아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고 하시더라』(마 11:20,21,23,24).

이스라엘 성읍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 있는 일들을 가장 많이 행하신 갈릴리 북쪽 성읍들이 회개하지 않자, 주님께서는 코라신과 벳새다에서 행하신 기적들을 투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 이방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했을 것이라고 책망하셨다. 특히 카퍼나움에 대해서는 그들이 하늘까지 높아져 주님의 기적을 거부했다고 하셨는데, 그런 그들이 지옥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면서 만일 소돔에서 그런 기적을 행했다면 그 성읍이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투로와 시돈(바알 숭배자들), 소돔(동성연애자들)이 심판 날에 코라신과 벳새다, 카퍼나움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지옥에서의 죄의 형벌에도 등급이 있음을 계시하신 것이다(마 11:22,24, cf. 마 23:14, 눅 12:47,48, 신 32:22). 메시아 왕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죄는 투로와 시돈의 우상 숭배의 죄보다 더 가증하고, 소돔의 성적인 타락보다 더 사악하다. 그런 그들에게 임할 “심판 날”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심판인 큰 백보좌 심판을 가리킨다(계 20:13-15, 벧후 2:9; 3:7, 단 7:9-13).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시여, 이런 일들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기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나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또 아들과, 누구라도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하고자 하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이다』(마 11:25,27).

동일한 문맥인 누가복음 10:21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기뻐하시며』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셨다는 표현은 사복음서에서 단 한 번 나오는데 바로 이 부분이다. 주님께서 기뻐하신 것은 자신을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숨기시고 어린 아기처럼 순수하게 믿는 갈릴리 어부와 같은 이들에게는 진리를 깨닫게 하신 일이었다(눅 10:17, 마 21:16, 벧전 2:1-3).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고, 그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버지를 계시해 주시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마 11:28-30).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주님의 왕 되심을 민족적으로 거부하자, 이제는 “개인”에게 관심을 돌리시면서 개인적으로 주님께 나아오라고 초청하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서 거부당하셨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방향을 바꾸시어 모든 믿는 자들의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제시하시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28절)라는 말씀은 민족적 구원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경고이며, “구원은 개인적 문제”라는 진리를 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짐을 지고 허덕이는 자들에게, 곧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자들에게 주님 자신께로 오라고 초청하신다. 주님과 멍에를 함께 메면서 배울 것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는 특히 주님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배우면 혼의 쉼에 이를 수 있다. 인생의 많은 문제와 그에 따른 심적 고통이 온유와 겸손의 부족으로 발생하며, 이 둘은 인생의 다양한 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인격적 능력이 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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