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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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낯부끄러운 “돈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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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5월호>

종교 개혁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설명하자면 아마 십수 가지도 넘게 그 요인들을 나열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서사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요인은 단연 “돈 문제”일 것이다. 당시 로마카톨릭은 초호화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대대적인 모금 활동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독일 지역의 면죄부 판매 총책이었던 요한 테첼은 이런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헌금함에 동전이 떨어져 짤랑이는 순간, (고통받고 있는 여러분의 가족들의) 영혼은 연옥으로부터 솟구쳐 위로 올라간다.” 종교 개혁자들은 돈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행 8:20) 그 가증스런 작태에 대항하여 “오직 성경으로!”를 외쳤던 사람들이었다. 로마카톨릭은 성경과 성경적 지식을 통제함으로써 면죄부 판매가 하나님의 뜻인 양 사람들을 속이려 들었으나, 종교 개혁자들이 이단 정죄나 순교를 불사하고 성경을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보급함으로써 로마카톨릭의 미혹을 깨부쉈던 것이었다.

“개신교회”는 그렇게 탄생했건만,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회들은 마틴 루터보다는 요한 테첼의 모습에 훨씬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인들의 돈을 갈취하고,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면 교권으로 찍어 누르거나, 교회를 분열시킨다며 적반하장식으로 정죄하고 나서는 꼴을 보노라면, 로마카톨릭이 주름잡던 중세 암흑시대가 절로 떠오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그들의 “돈 문제”를 들춰내시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여기에는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으니, 버리고 떠나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라는 사실을 알려 주려고 보내시는 일종의 경보인지도 모른다.

지난날 발생했던 “돈 문제”의 실상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테니, 최근 발생한 사례 하나를 제시하는 것으로 그것을 갈음하려 한다. 지난 4월, 뉴스앤조이는 「재정 공개 요구했다고...대형 로펌까지 선임해 교인 재판한 도림교회」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사건의 당사자는 10년 넘게 해당 교회에 다녔던 집사로, 교회에 여러 가지 “돈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순진(?)하게도 이 사안의 정상화를 위해 담임목사를 직접 만나 편지를 전달했다. 헌금 집행 내역을 공개해 줄 것과, 어째서 기존에 250억 원으로 책정되었던 예배당 건축 공사비가 두 배 가까이 불어났는지를 설명해 달라는 것이 그 골자였다. 담임목사인 정명철 목사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에 그 편지는 모종의 경위로 교회 장로 10여 명에게 전달됐고, 교회의 “어르신들”(은퇴장로들)은 그를 허위 사실 유포, 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당회에 기소했다. 그가 날조된 사실을 유포하는 편지를 뿌렸다는 것이었다. 도림교회는 심지어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에까지 이 사건을 의뢰하여 해당 집사를 압박했다.

이 사건은 그렇게 영등포노회로 넘어갔고, 노회는 “증거가 불충분한 의혹을 바탕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위임목사 명예를 훼손했고 장로 및 교인들을 선동·협박한 혐의가 인정된다.”면서 해당 집사를 노회 재판국에 회부했다. 피의자는 자신이 해외 출장 중이었기에 편지의 유포자가 될 수 없을뿐더러,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편지를 보낸 것이 징계 사유가 되느냐며 억울함을 토해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노회는 도림교회의 수뇌부와 한통속이었던 것이다. 정명철 목사는 도림교회 장로들이 한술 더 떠 그 집사를 세상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아우성이라고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그는 설교단에서 건축비를 둘러싼 모든 잡음은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마귀의 거짓말이라면서, “(마귀는) 목사와 교인을, 교인과 교인을 이간질한다. 많은 한국 교회가 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와 같이 교계 전체가 이파리부터 뿌리까지 “돈 문제”에 있어 낯부끄러운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인들의 수와 헌금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수많은 교회들이 “폐업”에 이른 것은 필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그 인과관계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2026년 1월 발표한 “한국 교회 헌금 실태와 인식 조사”에서 교인들에게 헌금 감소의 이유를 물었을 때 응답자 중 14%가 헌금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 감소, 헌금 사용의 불투명성, 교회 및 목회자에 대한 실망(비도덕성, 교회 분쟁 등)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런 문제로 아예 교회를 이탈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임을 감안한다면 액면 그대로보다 훨씬 큰 숫자를 상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에게 질문했을 때 위와 같은 원인을 지목한 비율은 3.7%에 불과했다. 그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교인들의 열성이 식었거나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탓에 헌금이 적게 걷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현실 속에 교인들의 헌금에 대한 인식은 점차 “탈교회화”되고 있다. 교인들에게 헌금을 어디에 드려야 할지에 대해 물었을 때, “헌금은 반드시 출석 교회에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2.1%에 불과했으며, 거기에 거의 필적하는 43.7%가 “선한 일에 사용한다면 교회 밖 단체에 해도 무방하다”고 답했다. 이는 한국 교계의 씁쓸한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교인들은 도대체 헌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종교심의 발로로 돈을 내는 한편, 교회들은 진리를 모르는 종교인들에게조차 그 매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헌금 문제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을 그들의 도덕적 부패에서 찾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뉴스앤조이에 글을 연재하는 어떤 작은 감리교회 목사는, 자신의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돈을 내라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명목 헌금과 절기 헌금을 폐지했다면서 그 “청렴성”을 뽐냈다. 그럼에도 그 교회는 딱 하나, “기후 위기 시대에 상징성이 있는 ‘탄소 헌금’은 별도로 구별”한다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그 목사는 “헌금하느니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필자는 그를 포함한 이 나라 목사들에게 묻고 싶다. 교회들이 헌금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데 어떻게 교인들이 “선한 일에 사용한다면 교회 밖 단체에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 종교 개혁자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자들이여, “오직 성경으로!”라는 구호로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성경은 교회가 『외부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아야』(딤전 3:7) 한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는 더더욱 아무에게도 비난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후 8:20,21). 그러려면 당연히 교회의 재정은 “빛 가운데” 있어야 한다(요 3:19-21, 엡 5:11-13). “암묵적인 규칙” 따위에 강요받는 일 없이 오직 자원함으로만 헌금이 드려져야 하며(고후 9:7), 그렇게 걷힌 돈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교회 정관에 “교인 3분의 2의 동의가 있어야 장부를 열람할 수 있다.”와 같은 문구를 집어넣어 (제도권 교회들은 “등록 교인”과 “출석 교인” 수가 현저히 차이나기에 교인 3분의 2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장부를 영원히 “어두움” 속으로 숨기려는 이 나라의 수많은 대형 교회들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헌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매주 첫날, 곧 예배를 드릴 때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지역 교회에 내는 것이 원칙이다(고전 16:1-3). 헌금은 그 사용처가 사역자들의 생계비(고전 9:11,14),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금(행 6:1) 등으로 정해져 있는 돈이기에 자선 단체에 내는 돈, 심지어는 기독교 단체에 내는 돈과도 성격이 아예 다른 돈이다. 헌금이 지역 교회의 사역과 무관하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사용된 사례는 성경에 단 한 건도 나오지 않는다. 사도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된다』(갈 2:10)고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에게 한정되는 말이었다.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집단이기에(요 15:19) 세상에 줄 것이라고는 “책망”밖에 없다(요 16:8). 주님께서는 세상을 위해서는 기도조차 하지 않으셨으므로(요 17:9), 스스로 그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본을 따라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소속된 지역 교회가 도저히 헌금을 낼만한 곳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교회 밖 단체에 헌금을 낼 게 아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

“돈 문제”는 그리스도인에게 기본 중에 기본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면 다른 건 몰라도 그것으로부터는 자유로워야 한다(마 6:24). 육신적인 교회였던 고린도 교회 외에는 사도 바울로부터 그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받은 교회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 “쉬운” 문제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잘 했던 것이다! 이 나라의 개신교회들이 돈 문제로 골머리를 썩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그들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롬 4:3)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었기 때문인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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