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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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는 두 권위를 추천하는 알렉산드리아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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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11월호>

성경의 주된 주제는 “왕국”(KINGDOM)과 “보좌”(THRONE)이며, 이 기념비적이고 영원한 주제에 비하면 개인의 구원은 하나님께 부차적인 것이다. 오해하지 말라. 필자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가 왕국의 복에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우리가 그 “보좌”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도 감사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그리고 성경의 관점에서) 문제의 핵심은 “권위”(AUTHORITY)이다(창 3:1-4).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혹은 무엇을 말씀하지 않으셨는지에 달려 있지 않은 문제나 교리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예레미야 23장 전체를 읽되, 다음의 구절을 먼저 읽어 보라. 『내가 이 선지자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음에도 그들이 달리며 내가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는데도 그들이 예언하였도다』(렘 23:21). 『주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부수어 조각내는 큰 망치 같지 아니하냐?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각기 자기 이웃으로부터 내 말들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렘 23:29,30). 『너희는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신의 무거운 짐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질시켰음이라』(렘 23:36). 아주 냉정하게 말해서,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믿음의 근본 사항들”이 근거를 둔 성경 자체가 오류투성이라면, 그 근본 사항들 가운데 이교도의 미신 이상의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칭송받는 학자들인 R.D. 윌슨과 A.T. 로버트슨이 믿었던 “근본 사항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전 로마, 그리스, 인도, 중국, 바빌론의 신비 종교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히슬롭의 참조). 가짜 성경이나 오류투성이 성경을 가진 근본주의자는 톰 페인이나 밥 잉거솔보다 더 큰 바보이다. 일주일에 수백 달러를 받고 그리스도인 젊은 남녀들을 불신자로 만드는 성경 교사는 미혹된 천치일 뿐이다. 로버트 잉거솔과 매덜린 머레이 오헤어는 똑같은 일을 하면서 하룻밤에 그보다 더 많이 벌었다.

우주의 최종권위는, 몇몇 사람이 <킹제임스성경> 이슈에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그 가치를 폄하하는 “취미거리”도 아니고 “없어도 그만인” 근본 사항도 아니다. 최종권위가 구령과 기념비 세우기에 밀려 “뒷전”이 되는 순간 배교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현대주의자들이 썼든 근본주의자들이 썼든) 역사책 어디에서도 배교자들의 “근원과 기원”을 다루는 말을 단 한마디도 찾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 지구상 모든 나라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어 온 것은 “최종권위”였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실험실에서도, 육군과 해군에서도, 정부에서도, 그리고 뉴스 방송에서도 그러했다. 모든 믿음의 근본 사항은 최종권위인 성경보다 부차적이다. 근본 사항들은 바로 그 권위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서로 모순되는 두 권위를 함께 추천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필자는 “판본들” 사이의 “차이”를 말한 것이 아니다. 철자를 현대식으로 고치면서 생긴 “단어 변경”을 말한 것도 아니다. 필자가 말한 것은 “서로 모순되는 두 권위가 함께 추천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이다.)
만일 이단에 속한 자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는 즉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권위를 인정받은 1611년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의심을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계속 심으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위의 말이 나오자마자 알렉산드리아 이단에 속한 자들은 “표준원문”이나 권위 역본(AV)인 <킹제임스성경>의 판본들 사이에 “차이”(VARIATIONS)가 있다면 그것들은 “서로 충돌하는 권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온갖 애를 쓸 것이다. 우리는 이 교묘하고 사탄적인 『속임수』(엡 4:14)를 앞으로 이어질 연구에서 아주 철저하게 다룰 것이다.

이제 서로 충돌하는 두 권위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추천하면(혹은 그저 “용인”되기만 해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1. 교회 “교부들”의 전통 대 신약 성경
2. 교회 공회들 대 신약 성경
3. 교황들의 “성좌선언”(ex cathedra) 대 신약 성경

그런데 왜 여기서 멈추는가? 이것은 사도행전 이후에 배교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결국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을 암흑시대로 끌고 들어갔는지를 설명해 줄 뿐이다. 모든 것은 창세기 3:1에 달려 있었다.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셨다면 그것이 최종권위였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다른 어떤 권위를 찾아야만 했다. 간단하지 않은가? 아무도 보거나 읽거나 듣거나 가르칠 수 없는 무언가의 “축자 영감”을 부인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배교는 없다. 모든 배교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거나 그보다 우월한 두 번째 권위를 세움으로써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 다른 예를 들어 보도록 하자.
1.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원문 이론 대 신약 성경
2. 아스트룩과 쿠에넨의 원문 이론 대 구약 성경
어떻게 되는지 알겠는가? “똑같이 신뢰할 만한” 것으로 시작한 것이 결국 “더 우월한 비평가”로 끝난다.
여기서 멈출 필요가 있겠는가?
1. 몰몬교도들에게는 조셉 스미스의 책 대 신약 성경이 있다.
2. 유대인들에게는 탈무드 대 구약 성경이 있다.
3. 은사주의자들에게는 “개인적 체험” 대 신약 성경이 있다.

좋다. 이것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한 서로 대립관계라고 할 수 없겠지만, 실제로는 결국 그렇게 된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느냐?”(창 3:1)로 시작한 것이 “아니,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 내 말을 들어!”로 끝난다는 진리를 잘 기억하고 있다(창 3:1-4).
그렇다면 하나 이상의 권위를 추천하거나 용인하는 근본주의자의 동기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 그는 당신이 자기 말을 듣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희생시켜서라도 말이다.
오리겐부터 밥 존스 2세에 이르기까지 알렉산드리아 이단에 속한 자는 모두 그런 식으로 추론한다. 그래서 이 이단에 속한 자들은 하나같이 성경을 믿는 성도들을 “사람을 따른다”고 비난한다. 사실 그들은 당신이 그들을 따르기를 원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배교한 근본주의자가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사람을 “우상 숭배자”라고 비난하는 이유도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보다 학교라는 기관을 앞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는 믿음을 “우상 숭배”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성경이 그의 기관(즉 그가 밥벌이하는 곳)보다 위에 놓이면, 성경을 그 자리에 둔 사람의 눈에는 성경이 “신”이 된 것이 분명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모든 배교한 근본주의 기독교 교육자들의 “병든 사고방식”이다.

두 권위를 함께 추천하는 목적은 최종권위를 뒤엎는 데 있다.

배교한 모든 근본주의자는 (배교한 자유주의자가 되기 전에) 정확히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그는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성경과 동등한 권위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그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성경과 충돌하자 바로 그 지점에서 성경을 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미국에서 인정받는 모든 기독교 대학이 <킹제임스성경>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선호하여” “사용”하면서, <킹제임스성경>의 본문과 36,000군데에서 충돌하는 다른 역본을 반드시 “용인하거나 장려”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충돌하는 역본은 1901년의 ASV, 1959년의 NASV, 그리고 1978년의 NIV이다. 이런 역본들을 추천(혹은 용인)하는 동기는 이 배교한 변개본들이 권위를 인정받은 <킹제임스성경>의 본문과 충돌하는 곳에서 학자나 학교가 최종권위가 되게 하려는 데 있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그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의 근본주의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배교의 첫걸음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하고, 실천하며, 자기와 함께 그 걸음을 내딛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한다. 한 권의 성경을 최종권위로 가진 사람이 자유주의자가 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신복음주의자가 아니었던 자가 신복음주의자가 된 것도,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원본이 아닌,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성경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어난 일인 것이다.

요컨대, “정통 신앙의 보루”로 여겨지는 어떤 인물이 자유주의자나 신복음주의자를 공격하더라도, 그가 그들이 어떻게 그 엉망진창인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지 않는다면 그 공격은 정직하지도, 건전하지도, 안전하지도, 신뢰할 만하지도, 성경적이지도 않다. 하일스-앤더슨대학, 밥존스대학, 달라스신학교, 무디성경신학원의 교수진이 이 주제를 결코 다루지 않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이미 그 방향으로 첫 두 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1. 서로 충돌하는 동등한 권위들을 세워서 최종권위에 관해 혼란, 우유부단, 불신, 불확실성을 가져온다.
2. 성경의 문서화된 증거에 관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역자 주 - 본지 414호 「해외 기사」에 실린, 이 이단에 속한 자들이 사용하는 일곱 가지 거짓말을 보라).
<킹제임스성경>은 『또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말한다(마 23:9).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선호하는,” 똑같이 “신뢰할 만한” 역본은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말한다.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 2:5)라고 말씀하지만, “근본 사항에 대한 의심할 여지없는 충성”을 “인정받은” 또 다른 “경건한” 권위는 “‘복되신 마리아여, 복되신 요셉이여, 복되신 침례인 요한이여’ 하고 기도해도 된다”고 말한다.
<킹제임스성경>은 신약의 구속과 죄들의 용서함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골 1:14). 그런데 많은 “경건하고 헌신된 학자들”이 추천하는, 똑같이 신뢰할 만하다는 “권위”는 “구속”(redemption)이 “죄 사함”(remis- sion)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ASV나 NASV, NIV 같은 신성모독적인 “성경” 중 아무것이나 보라).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딤전 3:16)라고 말씀하지만, 소위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하는 “신뢰할 만한” 번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신성을 말씀하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을 내쫓아 버렸다.

두 권위가 충돌할 때 결정을 내리는 권위는 “제3의 권위”이다. 명확하게 이해했는가? 이 말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이 진리는 당신의 나이, 인종, 성별, 학력, 거주지, 지위, 구원이나 멸망, 정치 성향, 신조, 학교, 교회, 믿음이나 불신 등과 상관없이 진리이다. 이는 또한 1년 365일 매일 법정에서 증명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이다. 서로 충돌하는 두 권위가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숨김없이” 말하겠다고 맹세한 법정에서는 “제3의 권위”가 최종권위가 된다. 그리고 그 “제3의 권위”를 “판사”(재판관)라고 부른다. [추가 설명 : 즉 유명 목사들과 교수들과 학자들이 두 개의 상충하는 성경들을 추천하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판단자와 권위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최종권위의 문제에 있어서는 “선하고 경건하며 헌신된 구령자들”이라고 하는 목사들이나 학자들이 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더라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똑똑히 기억해 두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하나 이상의 최종권위, 하나 이상의 성경을 추천한다면, 그에게는 그렇게 하는동기가 있다. 그리고 신약교회사에 따르면, 그 동기에는 “선하거나” “경건한” 것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라』(마 7:2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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