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학생 칼럼 분류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10월호>

지난 2023년 5월 미국 FDA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자회사인 “뉴럴링크”가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BCI)에 대해 임상 시험을 하도록 승인했다. “PRIME Study”라 불리는 이 시험은 뇌 신호를 읽어 컴퓨터를 조작하고, 향후 인간의 기억과 경험, 인격과 의식 전체를 컴퓨터로 복제·이동시켜 새로운 육체를 통해 영원히 살고자 하는 시도다. 과연 이 기술이 완성되면 그들이 품는 영생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인가? 성경은 『세상에 있는 인간에게는 정해진 시간이 있지 아니하냐? 그의 날들이 또한 품꾼의 날들과 같지 아니하냐?』(욥 7:1)라고 말씀한다. 바람처럼 지나가고 안개처럼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은 헛된 인생을 사는 인간이 가져야 할 소망은 복제를 통한 영생이 아니다. 지옥의 불 속으로 오물과 쓰레기처럼 버려질 죄인들이 가져야 할 진짜 소망은 인간의 기술을 통한 육체의 생명 연장이 아닌 오직 “혼의 구원”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미 혼의 구원을 보장받은 그리스도인이 이 죄악 가득한 세상에서 가져야 할 소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죄로 인해 낡고 썩어가는 몸의 구속,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듭난 자녀들에게 주신 살아 있는 소망인 “휴거”를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의 공중 재림으로 이뤄질 이 소망은 매 1분 1초가 세상이 아닌 하늘에 있는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성경학자 존 넬슨 다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켜서, 미래의 단순한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삶에 힘과 기운과 소망의 원천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오신다면 당신은 주님과 함께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처소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성도의 모든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되어 있다면 성경대로 잘 믿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의 믿음과 행위는 우상 숭배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은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믿음의 본질이다.


A.D. 62년에 사도 바울은 그로부터 약 2천 년 후 교회 시대의 마지막을 보내게 될 우리에게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경고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때를 아노니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로다. 이는 지금이 우리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롬 13:11). 사도 바울은 밤이 다 지나고 낮이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잠든 파수꾼들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심정으로 이 말씀을 썼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있지 못하다가 울부짖는 사자와 같은 마귀에게 삼켜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때가 가까웠으니 제발 일어나라”는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이 교회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직전, 우리의 몸의 구속이 더욱 가까워진 바로 지금이다!
유두고는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깊은 잠에 빠져 3층 창가에서 떨어져 죽었다(행 20:9). 이 모습은 마치 주님의 다시 오심 앞에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든 성도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베드로 역시 단 한 시간을 깨어 있지 못해서 마귀에게 키질을 당하고 결국 주님을 부인하며 실족하고 말았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 26:40)라고 물으신다. 영적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마귀에게 속절없이 삼켜지게 된다.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엡 5:14).

지역 교회에는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한다고 하면서도 재림에는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다. 성경침례교회가 지난 34년간 주님을 섬기는 동안 수많은 일꾼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왜 사라졌는가? 성경을 공부하지 않았거나 헌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보다 자신의 일 자체를 중요시했고, 휴거를 소망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귀의 공격을 잘 알고 있는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벧전 5:8)라고 경고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진 지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당신이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다. 마귀의 미혹은 그만큼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두고처럼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 정신을 차려야 한다(살전 5:6, 마 24:42).

세상 사람들이야 밤에 속해 있으니 빛보다 어두움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도 얼마든지 밤에 속한 자들처럼 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욕은 어두움의 행위를 위한 연료와 같고, 현실에서 정욕을 버리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성령께서는 육신의 정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롬 13:13,14).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육신을 그 욕정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다(갈 5:24). 영적 할례를 통해 옛 사람을 벗어 버렸음에도(골 2:11)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둠의 행위를 벗어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혼이 죄의 몸을 벗었다는 사실에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은 육신에서 솟구치는 정욕에 끊임없이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는 그러한 육신과 반목하심으로써 육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게 하시는데(갈 5:16,17), 정작 성도 자신은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

많은 성도들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일을 외면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건강을 자기 정욕을 위해 낭비한다. 정보를 얻는다는 구실로 인터넷과 유튜브라는 우상 숭배와 음행에 빠져 자신의 육신에 썩은 것을 심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지혜는 땅에 속한 것이요,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다(약 3:15). 교회 내에서 형제자매들과 갈등을 겪는 것 역시 자신의 지체 속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정욕(약 4:1) 때문임을 그들은 모른다. 밥 존스 시니어 목사는 “젊은 시절의 방탕함은 노년에 지불해야 할 어음으로 돌아온다.”라고 했고, 피터 럭크만 목사는 자신이 방종했던 젊은 날의 황폐함을 후회한다고 했다. 나폴레옹도 “어느 날 마주칠 불행은 지난날 우리가 소홀히 보냈던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 5:10).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겼던 시간들, 육신의 정욕을 따랐던 시간들, 진리를 공부하고 전파하는 데 게을렀던 모든 시간들에 대해 주님께서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사리분별 없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하는데, 이는 계절을 모른다는 의미의 “절부지”(節不知)에서 유래했다. 사람은 때와 장소에 맞고, 또 철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의 군사로 싸우기 위해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명령하신다.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 낮이 가까워진 지금 성도는 잠옷이 아닌 빛의 갑옷을 입고 싸워야 한다.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어야 한다(엡 6:10,11). 하나님의 전신갑옷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마귀와 싸울 수도, 교회를 지킬 수도, 성도 자신을 지킬 수도 없다. 물론 갓 태어난 영적 어린아기가 바로 싸울 수는 없다.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거듭난 뒤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 안에서 새롭게 된 새 사람을 입었으니』(골 3:10)라는 말씀처럼 새 사람의 새 성품을 입고 양육을 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엡 4:13).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육신과 마귀와 세상이 가로막기 때문에 출산의 고통과 같은 산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갈 4:19).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는 지금도 우리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보고 계신다. 누군가는 빛의 갑옷을 입고 있지만, 누군가는 벌거벗은 채로 있을 수도 있다(고후 5:3). 당신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기에 합당한 옷을 입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으면 거듭난 자녀답게 의와 참된 거룩함 안에서 새 사람을 입고서(엡 4:23,24) 언제 어디서나 빛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현상은 분별하면서도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는 위선자들을 책망하셨다(마 16:3). 내일이면 당연히 태양이 뜰 테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날이 오고 있다. 즉 결코 지지 않는 『의의 태양』(말 4:2)께서 오시는 것이다.
성도여! 바로 오늘 주님을 맞이할 자세로 하루를 살아 내라.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열망하며 모든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있어 모든 성도들의 모범이 돼라(벧후 3:11).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 점을 위해 기도하고 믿음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 우리는 참 소망을 가진 빛의 자녀들이다.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뜻을 온전히 수행하다 들림받아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BB

전체 317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