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들에게 고함 분류
설교자, 성경에 능숙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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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9월호>
1. 설교자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설교자는 자기가 설교하는 성경을 잘 알아 그에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이는 수학을 가르치려면 당연히 수학을 잘 알아야 함과 같다. 당신은 음악을 모르는 음악 교사, 영어를 모르는 영어 교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경을 설교하라고 부름받은 사람은 성경을 공부하라고도 부름받은 사람이다. 한쪽이 없이는 다른 쪽이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전자를 위해서 후자가 필요한 것이다. 설교자는 다윗처럼 『오, 내가 얼마나 주의 법을 사랑하는지요!』(시 119:97)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전체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밖에 없다. 1분에 250자를 읽어 낸다면, 54시간 만에 성경 전체를 읽을 수 있다. 아침에 구약성경 3장을, 저녁에 신약성경 2장을 읽는다면, 1년에 구약은 1번, 신약은 2번을 읽게 된다. 책 중의 책에서 실제적인 지식을 얻는 데 치르는 값치고는 전혀 과하지 않다. 무엇보다 설교자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시간을 내고 시간을 들여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밭을 일구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자기 밭은 버려두기 쉽고, 다른 이들을 먹이는 일에 열중하다 보니 스스로는 영양 결핍에 이르고 만다.
성경 읽기에는 성경을 살펴보는 사람과 성경이 자신을 살펴보도록 하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이와 연관해서 미물인 젖소가 가치 있는 교훈을 준다. 젖소는 누군가에게 우유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이 푸르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다. 즉 제 식욕을 만족시키고자 풀을 먹는 것이다. 원하는 만큼 먹고 나면 흡족해하며 누워서 먹었던 풀을 게워내어 되새김질한다. 그 결과로 나오는 기름진 우유와 크림이 젖소에게 있어서는 순전히 부산물이다. 자신의 욕구가 넉넉하게 채워지자 자연스레 따라온 결과일 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혼의 원기를 북돋우고 영적 식욕을 채우고자 성경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묵상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순수한 말씀의 젖』(벧전 2:2)을 풍성하게 줄 수 있게 된다.
2. 설교자는 성경을 기억해서 인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을 기억하려면 구절과 단락을 외워야 한다. 그러면 성경이 설교자의 최고 권위가 되기에 청중을 마주했을 때 크게 도움을 받게 된다. 히브리서 1:1-3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를 통하여 그분께서 세상들을 지으셨느니라.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히 1:1-3). 설교자가 정확하고 인상 깊게 성경을 인용하면 그것이 청중의 마음에 새겨져서 메시지에 실린 하나님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게 한다. 성경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 좋고 도톰한 종이를 명함 크기로 잘라서 한쪽에는 장절을, 반대쪽에는 해당 구절 전체를 써서 외우기를 반복하는 것인데, 그러면 빈틈없이 외울 수가 있다. 하루에 카드 하나씩을 더해 가고, 가능한 한 자주 복습해야 한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 카드 365개가 쌓일 테고, 그 기억은 값을 따질 수 없는 보고가 된다. 전차나 기차로 이동할 경우 카드 몇 장을 가지고 타서 장절이든 구절이든 정확하게 외울 때까지 계속 되풀이해 보라. 카드를 사용하면 할수록 유용한 암기 기법에 더욱 능숙해질 것이다.
3. 설교자는 성경 공부에 전력해야 한다.
지식을 얻는 데 있어서 쉬운 길이란 없다. 끈질기게 힘들여 공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누군가가 공부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것은 “주제를 완벽하게 익히기까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힘을 쏟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줄곧 앉아 있으려면 자기를 부인하는 진지한 투지가 필요하다. 공부에 관해서 읽거나 듣거나 말하는 것은 공부를 직접 “하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게다가 “지속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공부의 주제를 숙달하는 데는 이 “지속하기”의 방법만 한 것이 없다.
어느 아일랜드인 아버지가 미국행 배에 오르는 아들을 배웅하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아들아, 세 가지 뼈를 잘 활용하도록 하거라.” 그때 옆 사람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음 세 가지 뼈를 제대로 사용하느냐에 성공이 달려 있답니다. 첫째는 위시본(wishbone, 가금류에 있는 V자형 뼈. 이것의 양 끝을 두 사람이 잡고 서로 잡아당겨 긴 쪽을 갖게 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에요. 위시본을 쓰면 성공을 계속 열망하게 되죠. 둘째는 아래턱뼈인데, 이 뼈를 사용하면 현인들에게 성공하는 최상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등뼈입니다. 이 등뼈를 동원하면 바라던 성공을 얻을 때까지 중단 없이 분투할 수 있답니다.”
누군가가 천재성을 가리켜 “노고를 감내하는 무한한 능력”이라고 적절하게 정의했다. 공부는 지식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고, 설교자라면 그 값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복음을 전하거나 성경을 가르치는 데 결코 유용하게 되지 못한다. 설교자는 성경을 조언자로 삼아야 하고, 성경을 성경으로, 즉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부지런히 비교함으로써 책 중의 책인 성경 전반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인간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비교하여 말하느니라』(고전 2:13).
설교자는 성경을 다음과 같이 공부해야 한다.
1) 부지런히 : 이것은 대담한 조치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어떤 방해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룩한 투지가 요구된다. 아침에 30분 일찍 일어나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투자가 좋은 결과를 낸다.
2) 묵상하며 : 성경이 설교자 자신의 마음에 말씀하시는 바를 받아들이고 다른 이를 돌보기 전에 본인의 영적 필요부터 채워야 한다.
3) 분별하며 : 설교자는 차이를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희가 가장 좋은 것들을 분별하며 또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수하고 흠 없게 되기를 바라며』(빌 1:10). 또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면서(딤후 2:15) 공부해야 한다. 어떤 주제에 관해 올바른 결론을 내리려면 관련된 성경 모두를 찾아봐야 한다. 그렇기에 이 구절에서 말씀하는 것과 다른 구절에서 단언하는 바를 꼭 비교해야 한다.
4) 교리에 집중하며 : 설교자는 위대한 교리들을 이해해야 한다. 건전한 교리가 더해진 건전한 말씀이 건전한 성도를 만들고, 건전한 설교자의 건전한 설교로 청중이 믿음 안에서 건전해진다. 디모데전서 1:10과 디모데후서 1:13; 4:3, 디도서 1:9,13, 골로새서 2:7을 읽어 보기 바란다.
5) 세대주의에 따라 : 설교자는 하나님의 현재 계획과 관련해서 자기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의도하신 뜻에 자신이 어긋나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바르게 이해했다고 확신해도 좋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 맞다. 그러나 그것은 원대한 일이며, 최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한 일이다. 이와 연관해서 다음과 같은 다윗의 고백을 숙고해 보라. 『내가 값을 치르지 않고는 주 나의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리라』(삼하 24:24).
어떤 부인이 노스클리프 경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아침 눈을 떠 보니 새커리 자신이 유명해져 있더라.’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그러자 노스클리프 경이 대답했다. “그 아침이 밝던 날, 새커리는 하루 8시간씩 15년간 글을 써 오고 있었답니다. 일어나 보니 자기가 유명인이 되어 있더라고 말한 장본인은, 사실 잠을 자고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