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주석 분류
천국의 신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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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4월호>
마태복음 13장의 일곱 가지 천국 비유들은 기본적으로 교회시대 기간 중 신비 속으로 감추어지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비유들은 시대적으로는 교회시대에 적용되나, 그 적용의 대상은 “교회”가 아니라 이 기간 중 왕국과 같은 모습을 모방하는 세계인 “기독교계”에 적용된다. 이제 이 비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13:3-9
『주께서 많은 것을 그들에게 비유로 일러 말씀하시기를 “보라, 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시더라.』
이 비유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인데, 이 비유에는 해석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18-23절에서 친히 해석해 주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뿌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4절에 있는 새들은 사탄의 종들인 마귀들이다. 또 씨앗이 떨어진 네 가지의 장소는 각각 네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비유는 교회시대에 적용하기에 적절하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기에 제시된 네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은 이 비유를 구원과 헌신에 관한 설교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비유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에서도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러한 적용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항상 “왕국”에 촛점을 둔 묘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여기서 뿌려지는 말씀의 씨앗은 “왕국의 말씀”이라는 것이다(19절). 다시 말해서 여기서 제시되는 복음은 “왕국복음”이다. 그러므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자체는 왕국복음 아래서나 은혜의 복음 아래서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비유를 이용해서 성도의 헌신에 촛점을 맞춰 설교하려면 왕국에 촛점을 맞춘 마태복음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촛점을 맞춘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 나온 것으로 설교하는 것이 더 적적할 것이다.
씨 뿌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왕국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 그 백성은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 예수님을 거부한 “이 악한 세대”(마12:45)는 성령을 모독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죄까지 범한다(마12:31,32). 그들은 투로와 시돈보다(마11:21,22), 소돔보다(11:23,24), 니느웨보다(12:41) 더 심하게 심판받을 것을 경고받고 있다.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들의 마음이 무디어졌기 때문이다.
13:14,15
『또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또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져서 그들의 귀는 듣는 데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그들이 눈으로는 보지 못하고 귀로는 듣지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개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느니라.』
이것은 이사야 6:9-10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이사야를 인용한 부분은 많은데, 그 중에서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세 군데나 된다.
그곳은 요한복음 12:40과 사도행전 28:26-27과 마태복음 13:14-15인데, 인용된 곳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부당하시는 모습과 더불어 사용된다. 요한복음 12장에서는 최후의 만찬을 가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거부당하신 다음에(요12: 37) 이 말씀을 인용하셨으며, 사도행전 28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그들이 거부하면서 이 말씀이 인용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똑같이 유대인들이 거부하는 모습을 묘사했지만 이사야 6:9,10 이후에는 대환란이 묘사되는 반면(사6:11-13), 사도행전 28에서는 이 말씀의 인용 이후에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교회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이 교회시대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사야의 이러한 예언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를 들었으나 그를 거부했고, 그 이후 이사야 6:11-13의 대환란이 있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마음이 무디어져서 주님을 거부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교회시대에 관해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었다. 베드로전서 1:10,11에는 선지자들이 이 교회시대의 구원에 대해서는 열심히 살펴보았으나 알지 못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비유들을 말씀하시면서, 백성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에게는 “천국의 신비들”이 허락되었기에(마13:11) 그들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마13:16,17), 베드로전서 1:10에서 말한 것처럼 선지자들이 보기 원하던 것을 그들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마13:17).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부가 있은 후 환란이 오기 전에 교회시대가 있게 되는데, 천국비유는 이스라엘이 왕국을 거부함으로 신비 속에 천국이 감추어진 이 교회시대 기간 중에 펼쳐질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기간 중에 “기독교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다음 비유를 보자.
13:24-30
『주께서 그들 앞에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사이에 독보리를 뿌리고 가버리니 싹이 나고 이삭이 패일 때에 독보리도 나오니라.』
이 비유 역시 36-43절에서 주님께서 친히 해석을 해 주신다. 그러나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직 천국 비유에서만 발견된다.
13:37-39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좋은 씨를 뿌리는자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며 좋은 씨는 왕국의 자녀들이니라. 그러나 독보리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요 독보리를 뿌린 그 원수는 마귀이며, 추수는 세상의 종말이요, 추수꾼들은 천사들이니라.』
<개역 한글판 성경>에는 “독보리”가 “가라지”로 되어있다. 이 비유는 독보리가 알곡과 아주 비슷하게 생겨서 독보리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염려가 있기에 독보리를 놓아 두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농촌에서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가라지는 곡식과 너무나 틀리게 생겨서 어린 아이라도 곡식을 해치지 않고 가라지를 뽑을 수 있다. 개역 한글판 성경은 가끔 이렇게 상식에서 벗어난 오류가 나타나 있다.
더욱 우스운 것은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교회에다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교회에는 100% 거듭난 사람만 모여 있을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자기들의 교회가 순수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합리화시키곤 한다.
그러나 성경은 『밭은 세상이며』(38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밭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다. 이 세상에는 곡식과 독보리가 함께 존재한다. 이것은 주님이 오셔서 심판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비유는 독보리를 함께 모아서 불에 태울 때까지 이 세상은 악할 뿐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무용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반면에 교회는 순결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신부이기 때문에 모두 거듭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지역교회에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빨리 구령해서 그 지역교회도 순수한 주님의 몸이 되어야 한다.
13:31-32
『주께서 그들 앞에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어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그것은 참으로 모든 씨보다도 작지만 자라나면 푸성귀 중에서 가장 커지고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보금자리를 만드느니라.”고 하시며』
이 비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서 오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천국의 확장”이라고 해석한다. 즉 겨자씨만큼 작은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이 전파되면서 확장되어 전 세계에 이르게 되며, 주위의 사람들(새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사회의 모든 구석구석까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게 된다고 가르치며 개인적으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자라서 장
성한 그리스도인이 되며 그때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고 가르친다. 특히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 확장되는 “겨자나무”를 자기들의 교회라고 가르쳐, 로마 카톨릭 교회라는 “천국”의 세력이 전 세계에 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비유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겨자씨가 자라면 원래 푸성귀 같은 나물이 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겨자씨는 나무가 되었다. 비정상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공중의 새들은 4절과 19절에 따라서 마귀의 세력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이상한 나무에 마귀의 세력들이 보금자리를 튼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신비적인 형태의 천국, 즉 천국이 숨어들어간 “기독교계”에는 순수한 그리스도의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도 함께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보는 것처럼 이 교계에는 많은 거짓 교사들이 있고, 사탄의 세력들이 교권을 잡고 있으며, WCC라든가 교단들, 특히 로마 카톨릭이 주도하는 교회일치
운동 등에 마귀의 자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13:33
『
또 다른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어떤 여인이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에 숨겨넣어 전체를 부풀게 한 것과 같으니라.”고 하시더라.』
이 비유 역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용되고 있는 비유이다. 누룩이 부푸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이 부풀어서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다는 사람들의 해석은 앞의 겨자씨 비유처럼 로마 카톨릭의 세력확장을 위해서 좋은 교리가 될 뿐이며, 후천년주의자들의 주장을 변호하게 될 뿐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은 흔히 “누룩”은 복음이고 “여인”은 교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누룩”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 적이 없다. 구약에서 누룩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빵에 쓰여서는 안될 불순물이다(출34:25, 레2:11; 10:12; 23: 6). 신약에서 누룩은 거짓 교사가 가르치는 “거짓 교리”를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즉 그들의 교리를 조심하라고 하셨다(마16:6,12). 그러므로 이 비유는 어떤 “여인”이 이 “기독교계”에 거짓 교리를 집어넣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누룩이 전체를 부풀게 하듯이 이 세상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더욱 악해질 뿐 선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교계”란 입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이 중에는 진정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으나, 입으로만 고백하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거짓 교사가 되어 교회에 침투해 거짓 교리를 전파하는데, 대표적인 교회가 로마 카톨릭 교회이며, 로마 교회와 연합하는 모든 교회도 이에 해당한다. 만약 여기의 “여인”이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아니라 “창녀”교회일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비유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들은 하나님의 사람과 마귀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기독교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된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적용된다.
구약에서 누룩이 사용되는 예는 레위기 23:17에 단 한 번 나오는데, 이것은 오순절에 주께 드리는 첫열매로 제시된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오순절은 교회와 관련된 절기로서(행 2장), 교회 안에는 비록 거듭났을지라도 영적으로 어린 아이도 있고, 타락하거나 잘못된 교리에 물들어 거짓교리를 전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구원은 받겠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책망받을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8장에서 구원받은 사람도 죄에 사로잡혀 죄의 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마귀(공중의 새)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지 않으면 거짓 교리인 누룩에 부풀리게 된다.
13:44
『또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으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찾으면 다시 숨겨두고 그 기쁨으로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시고, 밭은 세상이다(38절). 그리고 “보물”은 이스라엘이다(출19:5, 시135:4). 『이는 주께서 야곱을 자신의 것으로 택하셨고 이스라엘을 소중한 보물로 택하셨음이라』(시135:4).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을 사셨기에 계시록 11:15 이후에는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된다.
그 때가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메시야를 거부한 결과로 세상에 버려지게 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며(신31:17, 사54:8) 그들은 세상에서 박해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밭인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때 그 “보물”인 이스라엘은 구원받게 된다. 이 비유는 그 때까지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비유이다.
13:45,46
『또 천국은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으니 그가 매우 값진 진주 하나를 찾으면,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것을 사느니라.』
여기의 상인도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진주는 교회이다. 진주라는 보석은 다른 모든 보석과 다르게 유기물이다. 그래서 다른 보석과는 달리 자르면 망가지게 된다. 성경에 묘사된 여러 집단 중 유일하게 유기체라고 불리는 것은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결코 잘려 질 수 없다.
45, 46절에 나오는 상인은 밭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산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사람 모두를 사랑하셨으나 특별히 교회를 더 사랑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이며(엡5:25),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값은 하나님의 피이다(행20:28, 벧전1:18,19).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역 한글판 성경 및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모든 성경들은 골로새서 1:14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삭제했다.)
13:47-50
『또 천국은 갖가지 종류의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바다에 던져놓은 그물과 같으니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룻에 담고 나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세상의 끝에도 그러하리라. 천사들이 나아와서 악인들을 의인으로부터 가려내어 그들을 불타는 큰 용광로 속으로 던지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고 하시더라.』
마지막 천국 비유는 “그물”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있을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각각 “의인”과 “악인”을 말한다. 그리고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일은 천사들이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이 상황은 성도의 휴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상황은 두번째 비유에서 천사들이 추수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30절), 이것은 계시록 14:15-20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면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이다.
우리가 이 비유들을 대할 때 주의해야 할 또 하나는 이 비유들이 비록 교회시대에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천국”의 상황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분명히 “천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비유들은 비록 실제적인 천국의 모습이 아니라 신비적인 형태의 왕국을 말할지라도 실제적인 천국의 연속선상에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비유들은 왕국이 임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국이 임할 때 악인들이 어떻게 되며, 의인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이 비유는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비유의 결론은 왕국(천국)의 회복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에게 천국에 관한 교훈을 맡기시는 것이다(52절).
13:53-57
『예수께서 이러한 비유들을 다 마치시고 그 곳을 떠나 자기 고향으로 오셔서 사람들을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주를 배척하더라.』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하므로 예수님께서는 심판하실 그 날까지 천국을 이 땅에서 숨겨버리시겠다고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주님을 거부한다. 그것은 십자가 사건 이후 사도행전 28장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악한 세대는 마음까지 무디어져 버린 것이다(13:15).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