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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 호세아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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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0월호>
1 나팔을 네 입에 두라. 그가 주의 집을 대적하여 독수리처럼 오리니, 이는 그들이 나의 언약을 어겼고, 나의 율법을 범하였음이니라.2 이스라엘이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 우리가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3 이스라엘은 선한 것을 내버렸으니, 그 원수가 그를 쫓으리라.
4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고관들을 세웠으나, 나는 모르는 바며, 그들이 그들의 은과 금으로 그들에게 우상들을 만들었으니, 그들이 멸망하게 되리라.
1. 불의한 이스라엘
• 독수리처럼 오리니...(1절)
예루살렘을 침공한 느부캇넷살은 적그리스도의 대표적인 유형인 “독수리”로 나타난다(겔 17:1-10). 그래서 앗시리아인(사 10:5-12)도 “독수리”(호 8:1)여야 한다. 앗시리아인과 느부캇넷살은 모두 사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렘 50:17). 리빙 바이블, NEB, RSV는 독수리란 말을 “eagle” 대신 “vulture”(콘돌, 대머리수리)로 대체시켰다. 이 변개된 성서들은 에스겔 1:10, 10:14에서는 같은 단어를 독수리로 번역해 놓고서는 이곳에서는 다르게 번역했다. 그들은 일관성 없는 번역을 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에서 사탄과 관련된 구절을 파괴시킴으로 그 사실을 찾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호세아 5:8에서처럼, 독수리는 오고 있다(렘 4:13, 합 1:6- 8). 처음에는 말들을 타고 오지만 두 번째는 문자적으로 날아온다(계 12:4).『주의 집을 대적하여』(1절), 이 예언은 포로로 잡혀가는 이스라엘 위에 심판으로 임하고, 유다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52장에서 성취되었다.
• 이스라엘이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 우리가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2절)
이 구절은 독수리가 “두 번째” 올 때 를 언급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은 히브리서 8:8-12의 때가 될 때까지는, 즉 재림 때까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배교한 70인역에는 빠져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개인적인 이스라엘인들이라고 말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나는 모르는 바며...(4절)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빈정거리시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행한 일들을 모르실 리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대상 28:9), 모든 사람을 아신다(시 139편, 마 12:36).
그러나 신명기 7:6에서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알았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개인적이며, 친밀한 관계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여기의 “나는 모르는 바며”라는 말은 “너는 그것을 나와 상의하지 않고 행하였고”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왕들, 곧 시므리, 오므리, 살룸, 므나헴, 페카 등은 모두 사람이 선출한 왕들이다. 그들은 암살과 정치적인 모반에 의해 왕위를 차지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왕권의 홀은 유다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창 49장), 이들 아합부터 페카까지의 모든 이스라엘 왕들은 가짜인 것이다(신 17:15).
5 오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가 너를 버렸느니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무죄하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리겠느냐?
6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로부터 나온 것이요, 장인이 만든 것이라.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니라. 그러나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이 부서지리라.···
9 그들은 혼자 있는 들나귀인 앗시리아로 갔고, 에프라임은 연애하는 자들을 고용하였도다.
10 정녕, 그들이 민족들 가운데서 고용하였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고관들의 왕이 지워 준 짐으로 인하여 다소 슬퍼하리라.
11 에프라임이 많은 제단을 만들어 죄를 지었으니, 제단들이 그를 범죄하게 하리라.
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의 많은 것들을 기록하였으나, 그것들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도다.
13 그들이 내 제물의 희생제들을 위하여 고기로 희생제를 드리고, 그것을 먹으나, 주는 그것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제 그가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들을 감찰하리니, 그들이 이집트로 돌아가리라.
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잊어버리고, 신전들을 짓고, 유다는 견고한 성읍들을 많이 세웠으나, 내가 그의 성읍들 위에 불을 보내리니, 불이 그 궁전들을 삼키리라.
2. 하나님의 진노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벧엘에 있다(왕상 12:28,29). 이스라엘은 금송아지에 기댔고 자신들을 도와 줄 것이라고 신뢰했기 때문에(사 31:1, 삼상 4:3) 결국 금송아지는 이스라엘 민족을 버린 것이 되었다. 금송아지를 처음 만들었을 때에도(출 32장 주석 참조) 이스라엘 민족 3,000명을 죽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숫자의 열배가 넘는다.
•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니라.(6절)
제사장들이 송아지를 기뻐한 후에 백성들이 그 송아지를 슬퍼해도(호 10:5)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어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이런 인생 문제에 있어서의 해답을 이웃을 사랑하라는 휴머니즘에서 찾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변화”가 될 수 있겠고 “성장”, “배움”도 그 해답이 될 수 있겠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해답으로 “적응”, “발전”하는 것일 수 있겠고, “황금률”이라고 단정하거나 윤리를 근간으로 하는 영적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가 우상들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나 전이나 개인적인 구주, 그분만이 인류의 문제의 해답이시다. 아마도 그 해답을 그분의 “교회”에서, 그분의 “성사”에서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해답은 그분 자신께 있다(마 1:21).
알려진 문제이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제이든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스리시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 가운데 이런 답을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인생 문제의 최종 해답을 찾는데 있어서 성경을 무시하는 학자들의 의견은 초등학문으로 취급해 버리면 간단하다.
• 그들은 혼자 있는 들나귀인 앗시리아로 갔고, 에프라임은 연애하는 자들을 고용하였도다. (9절)
호세아 7:11의 설명을 보고 에스겔 16:33과 비교해 보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들나귀”라고 불렀다(렘 2:24). 그러므로 본문은 이스라엘이 “연애하는 자들”을 찾기 위해 이집트와 앗시리아로 달려가는 것을 말한다(렘 2:14,18). “들나귀”는 거듭나지 못한 죄인을 묘사한다(출 13:13 주석과 마 21:5-8 주석 참조). “연애하는 자들”을 찾는 것 대신에 에프라임은 아무 친구도 없는 산에 홀로 있을 것이다(9절).
• 정녕, 그들이 민족들 가운데서 고용하였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10절)
유다의 적들과 싸우기 위해 민족들이 고용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보존하시기 위해 그들을 모으신다(사 7:1-6, 왕하 16:5-15을 보라).『그들은 고관들의 왕이 지워 준 짐으로 인하여 다소 슬퍼하리라』(10절).
1. 이스라엘은 친구들을 고용하려고 했던 것에 대해 슬퍼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익한 사람들로부터 “친구”를 고용하지 않는다.
2. 이스라엘은 민족들이 단합할 때 민족들로부터 나와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예언은 이사야 11:1과 신명기 32:36로 넘어 간다.
3. “고관들의 왕이 지워준 짐”(10절)은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에게 거둬들인 세금일 수도 있다(사 10:5-13). “고관들의 왕”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관들의 왕”은 이 민족에게 “슬픔”을 가져온다. 그의 “짐”과 관련되기 때문이다(슼 12:10). “다소” (little)라는 말은 “강도”(intensity)보다는 시간의 어떤 기간을 언급하는 것 같다. 이 사실을 적용해 볼 때 “이스라엘을 모으는 것”(10절)은 대환란까지는(겔 20:23; 34:13, 미 2:12, 슾 3:19, 사 43:5 등)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마 24:31) 알 수 있다.
•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의 많은 것들을 기록하였으나, 그것들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도다. (12절)
여기에서 율법이 구약 전체를 말하는 것이라면(요 15:25; 10:34 참조)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500여 가지의 사실이 계시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계시를 이해할 수 없다.『그것들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도다』(12절). 학자들은 성경을 이해할 수 없을 때마다 항상 “비유적”인 것, “불분명한” 것, “묵시적인” 것으로 처리해 버린다.
자유주의자들은 율법이 비도덕적인 것(민 31:17)과 잔인한 것(민 25:4)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무천년주의자들(로버트슨, 메이첸, 와필드, 핫지)은 신명기에 언급된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들은 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후천년주의자들(매튜 헨리, 아담 클라크, 어거스틴)은 창세기 1:1에서부터 말라키 4장까지의 모든 경륜이 배교로 끝난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로마 카톨릭은 십계명을 왜곡시켜 천년왕국에서 드려지는 예물을 바알숭배하는 자기들의 제사장들에게 바치게 한다. 보수주의 학자들도 마귀를 위해 사탄을 “악어”라고 부른다(욥 41:1과 주석 참조). 대단한 사람들이다. “선하고 경건하고 헌신된” 이들에게 농락당하지 말기를 바란다.
• 그들이 내 제물의 희생제들을 위하여 고기로 희생제를 드리고, 그것을 먹으나, 주는 그것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는도다. (13절)
이사야 1:11-13, 잠언 1:26은 예레미야 14:10,11과 함께 이 구절을 설명한다. 그들은 일시적인 제사를 계속 지낸다. 그러나 이 제사는 카톨릭 교도들이 장난삼아 드리는 성사와는 비교할 수 없다.『...그들의 죄들을 감찰하리니』(13절).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반문하여(혹은 어떤 민족) 하나님께 행하였던 것들을 되갚아 주신다(사 10:3, 렘 50:27, 미 7:4 참조).
『...그들이 이집트로 돌아가리라』(13절, 호 9:6, 신 28:68 참조).
•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잊어버리고, 신전들을 짓고, 유다는 견고한 성읍들을 많이 세웠으나, 내가 그의 성읍들 위에 불을 보내리니, 불이 그 궁전들을 삼키리라. (14절)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성전에 대한 양식을 주셨는데도(대상 28:12), 이스라엘은 유다와 마찬가지로 곳곳에 작은 “신전들”을 세웠다(렘 7:4). 헛간을 지어놓고 “성전”이라고 부르거나(렘 7:4)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다(암 7:13 주석 참조). 하나님께서 교회 건물 위에 “이카봇”(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이라고 쓰셨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강도들의 소굴”(마 21:13)인 것이다.
그래서 유다와 이스라엘은 둘 다 불로 내리는 심판에 처하게 된다. 그것은 궁들과 “신전들”을 태우는 문자적인 불이다(대하 36:19, 렘 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