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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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해군” - The Lord’s N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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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0월호>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 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엡 4:13).

위의 구절은 물론 해군이나 바다에 관계된 구절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나서(벧후 3:18)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됨을 말하고 있다. 내가 이 구절을 여기서 사용하는 이유는 인생은 항해와 같기 때문이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할 때 이를 가장 잘 말해 주는 말씀이 사도행전 27장이다.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은 로마로 가는 배를 타고 있다. 그 배는 폭풍을 만나 지중해를 표류하고 있다. 바울은 겨울에 항해하다가는 파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바울을 믿지 않았다. 물론 바울이 옳았고 그들은 결국 파선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멜리테 근처에서 배의 부서진 조각들에 의해서 표류하게 되었다(행 27:44). 그들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역경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인생이 이와 같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 있다. 결국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은 사도행전 27장의 배처럼 부서지게 되어 있다(고후 5:1). 그러나 주님께는 “해군”이 있고, 이 해군에 속한 배들을 탄다면 풍랑이 이는 인생의 바다를 안전하게 건너 『온전한 사람』, 곧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한 사람으로 영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배들(ships)이 없이는 자라날 수 없다. 주님의 “해군”을 구성하는 “배들”을 살펴보자. 영어로 “쉽”(-ship)이라는 접미사가 들어간 말들로 인생의 바다에서의 역경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배워 보자.

1. 그리스도의 주권(Lordship).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관장하고 계신다. 주님께서 항상 첫 자리에 앉으셔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처음 구원받으면 주님께서 그의 생각의 중심이 된다. 구원받은 죄인은 자신의 구주께서 자신의 죄들을 위해 죽으심으로써 무엇을 이루셨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성도의 생각의 중심이 구원의 경험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로, 또 성별로, 교리로, 또 잡다한 사회 문제들과 지도자들로 유리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 중 어떤 것도 첫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독자들도 필자를 잘 알겠지만 나는 건전한 교리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수호해 왔다. 그러나 교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주님보다 특정한 교리를 더 많이 강조하면 당신은 중심에서 벗어났고, 균형을 잃은 것이다. 또한 소위 영적 지도자들을 따라다니다가 주님보다 “그리스도인 유명인사들”에 더 많이 마음을 두기도 한다(고전 1:12,13을 보라). 성경은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 1:18)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은 주님께서 마땅히 당신의 삶에서 가장 으뜸의 자리를 받으셔야 한다는 뜻이며,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먼저 와서는 안 된다.

2. 주님의 주권 다음에는 제자 됨(discipleship)이 온다. 제자 됨은 쉬운 것이 아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심지어 당신 자신의 목숨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선시한다는 뜻이다(눅 14:26). 당신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당신은 자아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눅 14:27). 이런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없지만 이것이 바로 제자 됨이다. “제자”(disciple)라는 말은 원래 “훈련”(discipline)이라는 말에서 왔다. 훈련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당신이 싫어하는 것이라도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참된 인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제자가 되는 것과 구원은 다르다. 자신과 자신의 선함을 믿는 것을 버리는 것 외에(엡 2:8,9, 딛 3:5), 구원을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은 없다. 그러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르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어드린다는 뜻이다(눅 14:33).

3. 그 다음에는 고난(hardship)이다. 그것은 끌고 가기 힘든 짐을 끌고 가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이 무엇인지 모른다. 즉 중국, 인도, 수단이나, 모슬렘 또는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나라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고난을 모른다. 그런 나라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강제 수용소나 “재교육 수용소”에 갇혀서 고통을 받고 있다. 모슬렘 국가에서는 교회들을 불태우고 그리스도인들의 사지를 자르고 목을 벤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고난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다. 가끔 레스터 롤로프(Lester Roloff) 같은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사역을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하지만, 이런 일은 가뭄에 콩 나듯이 있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도달하기 원한다면 당신 또한 고난을 겪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4. 그 다음은 교제(fellowship)이다. 미국 시골 산악지대에서 사역한 설교자가 “교제”를 이렇게 정의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교제(fellowship)는 두 친구가(fellows) 한 배에서(ship) 있는 것이다”(암 3:3).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예수님과 당신이 한 배에 함께 거하는 것이다.

교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전에도 말했고 지금도 다시 말하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점을 계속 강조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교제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7).

배교는 항상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구주와의 교제를 잃어버릴 때 일어난다. 거대한 사역을 한다는 사람들이 사역이 망가질 때, 그 이유는 그 지도자가 주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주와 구주되신 예수님보다 사역에 더 많은 시간을 쓴 것이다. 그래서 신학교에 다닌다는 사람도 타락할 수 있는 것이다. 사역, 가족, 연구 등으로 주님과 개인적인 교제의 시간이 없어지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문제에 봉착하는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시간을 내고 떼어놓아서 주님과의 교제를 가져야 한다. 주님을 앞서가거나 주님으로부터 뒤처지지도 말라. 함께 보조를 맞춰 주님과 동행하라.

5. 교제 다음에 오는 것이 우정(friendship)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들이라 부르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희를 친구들이라고 불렀으니』(요 15:15). 독자들에게 질문 하나를 하겠다. 당신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예전부터 성경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친구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 가족을 포함해서 말이다. 성경은 『악한 사귐은 좋은 행실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 15:33)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당신이 사귀는 사람들, 곧 당신의 친구들이 주님을 섬기려는 당신의 선한 행실을 부패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 4:4). 당신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성경을 싫어하는 사람의 친구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과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그들의 인격인가? ‘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당신을 기분 좋게 하는가’인가?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인이 친구를 사귀는 기준이 아니다. 당신이 사귀려고 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혼들을 이겨오는 사람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인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당신이 사귀어야 하는 친구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친구로 주시길 원하시는 사람이어야 한다. 곧 성경의 진리의 말씀들을 믿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6. 그 다음은, 당신이 하나님의 작품(workmanship)답게 사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엡 2:10)고 말한다. 당신은 행위들로 구원받지 않았다(엡 2:8,9). 그러나 행하도록 구원을 받았고, 당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이 선한 행위들을 실행하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으로 어떤 작품을 만드셨는가? 당신에게는 하나님께서 손을 댄 그런 끌 자국이 있는가? 당신에게서 불필요한 뭔가를 떼어내려고 망치로 때린 자국이 있는가? 당신은 토기장이의 물레 위에서 주님의 손으로 빚어진 적이 있는가? 당신은 주님의 『작품』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놓고 작품을 만들고 계시다는 어떤 표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또한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디도서 2:14은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으로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당신은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7. 마지막으로 청지기직(stewardship)이 있다. 옛날에 대양을 건너는 여객선에는 남자 승무원, 곧 “스튜어드”(steward)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당신이 배에 타면 당신은 당신의 귀중품들을 이 “스튜어드”에게 맡기고 그는 항해를 마칠 때까지 그것을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전 4:2). 당신이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스튜어드,” 곧 “청지기”로 삼으셨다. 청지기로서 당신에게 맡기신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신비들』이다(고전 4:1). 또한 당신이 청지기로서 맡은 것이 또 있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고후 4:6,7).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당신에게 청지기로서 위탁하신 것이다. 곧 청지기로서 당신의 책임은 “그리스도 예수가 주이심을 전파하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고후 4:4,5).

당신은 누가복음 19:11-27의 므나의 비유에서 므나를 받은 종들과 같다. 당신은 주인께서 오실 때까지 『장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눅 19:13). 혼들을 이겨와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에게 복음을 전했는가? 주인의 므나를 수건에 싸서 사용하지 않고 주인에게 이윤을 돌려드리지 않은 종을 주님께서는 『악한 종』이라고 하셨다(눅 19:20-23).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으로 혼들을 이겨오지도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은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날 일이다. 죄인들이 직면한 위험을 알고 있고 그들을 구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도 알면서도, 그들에게 경고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전혀 선한 청지기가 할 일이 아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그 배에는 존 하퍼(John Harper)라는 침례교 목사가 있었다. 그는 차가운 북대서양의 물에서 죽어가면서도 난파당해 표류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혼들을 이겨 왔다. 선한 청지기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인생의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가는 일곱 가지 열쇠는 다음과 같다. 주님의 주권(Lordship), 제자 됨(discipleship), 고난(hardship), 교제(fellowship), 우정(friendship), 작품답게 사는 것(workmanship), 마지막으로 신실한 청지기(stewardship)로 사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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