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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근본주의자들을 비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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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2월호>
『미혹되지 말라. 악한 사귐은 좋은 행실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 15:33).그리스도인 "형제들," 곧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이 나를 비평하는 이유는 주로 세 가지이다. 그 중 두 가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데, 이는 필자가 이미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수도 없이 증명했으며, 또 만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나의 책들을 사서 읽고 확인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 중 첫 번째는 필자가 적어도 12회 이상 "Bible Believers' Bulletin"(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게시판)에 연재한 주제인데, 즉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의 "헬라어 원본"을 <킹제임스성경>으로 바로잡아 줄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최초의 "헬라어 원본"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고, 그들이 "헬라어 원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 자신이 선호하는 열등하고 변개된 비평원문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필자를 비평하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대환란과 모세의 율법 아래서의 구원 방법이 현재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파될 때의 구원 방법과 다르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구약과 대환란 때에는 명백하게 구원에 행위의 요소가 포함되며, 바울이 받은 복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딤후 2:8, 딤전 1:11, 갈 1:11,12). 나는 이러한 진리를 나의 요한계시록, 히브리서, 마태복음 주석서 등에서 자세하게 다루어 놓았다. 이러한 진리를 부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히브리서 3,6,10장과 요한계시록 12,14장, 마태복음 5-7,24,25장, 에스겔 18장, 신명기 30장, 시편 18편 등에서 구원에 있어서 "행위"의 요소를 말하는 본문을 왜곡하여 해석하고, "원본"을 들먹이며 로마서와 에베소서의 교리와 일치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들이 필자를 비평하는 세 번째 이유는 좀 더 심각한 것인데, "형제들"은 내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내가 입만 열면 <킹제임스성경>의 권위 있는 비평가들, 즉 "위대하고" "선하며" "경건한"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공격하고" "폄하"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럭크만 형제님, 어떻게 토레이와 브로더스와 같은 사람들을 딘 루터 위글이나 피의 메리 여왕 등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근본주의자 밥 존스 3세와 로버트 섬너를 다윈, 마르크스, 헉슬리 등과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냐는 말입니다! 당신과 의견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들을 '멍청이,' '돌대가리,' '약골,' '풋내기,' '사기꾼,' '소경' 등으로 불러도 되는 거냐구요!"
그러나 필자가 그렇게 하는 데는 확고한 이유가 있다. 먼저 <킹제임스성경> 위에 자신을 높여 성경을 비평하는 모든 근본주의자들과 필자를 분리시키기 위해서이다. 필자가 그들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로 비평하면, 필자가 죽고 난 뒤에라도 그들 중 그 누구도 필자의 책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가르침을 정당화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필자는 우리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성경을 판단하는 니콜라파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자 하는 것이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주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심판석보다는 사람에게 비평당하고 놀림당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는 정확하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과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필자가 그들을 비평하는 두 번째 목적은, 그들의 불신을 조장한 배교의 "사도적 계승"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명명백백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배교는 영지주의자들과 오리겐, 어거스틴으로 시작하여, 제롬과 교황들에게 이어지며, 변개된 신약 헬라어 원문을 만들어 내고 유통시킨 웨스트코트와 홀트에 와서 절정을 이뤄, 현대의 소위 "성경 학자들" 곧 파스타드, 하지스, 커스터, 닐, 아프만, 조디에이츠, 로버트슨, 섬너, 프라이스, 마틴, 파노시안, 브루스, 아처, 잉글리쉬 등을 낳았다. 즉 필자는 그들을 비평함으로써, 성경대로 믿고 복음을 전하여 혼들을 이겨오는 거리설교자들과 지역 교회를 세우는 목사들과 선교사들을, 그들의 모교인 <킹제임스성경>을 비평하는 배교한 신학교들과 그 배교한 교수진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다녔던 기독교 대학과 신학교의 교수진, 곧 그 학자들의 저서들의 내용을 폭로하고, 그들이 구령자도 교회를 세우는 자도 거리설교자도 아님을 밝힘으로써, 영적인 열매에 관한 한 완전히 죽은 자들로부터 선한 그리스도인들을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복음 전파자 R.A. 토레이가 성경에 대해서 가졌던 믿음을 뒤흔들고 훗날 그가 영어 개역본(RV)을 인용하도록 가르친 자들은 소위 "보수주의 신학자들"이다. 물론 토레이는 누가 언제 그에게 그렇게 가르쳤는지 밝히지 않았다. 또한 J. 프랭크 노리스에게 "원본이 어떻고 어떻고" 하는 식으로 말하는 법을 가르친 것도 루이스빌 신학교의 남침례교 신학자들, 즉 "보수주의 신학자들"이었다. 물론 노리스도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배교의 "사도적 노선"을 수십 년 동안 은닉해 왔다. 과거에 우리는 커티스 헛슨, 로버트 섬너, 더그 쿠틸렉 등에게 누가 그들에게 <킹제임스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킹제임스성경>을 수정해야 된다고 가르쳤는지 밝혀 보라고 도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추수감사절이 지난 칠면조 농장처럼 조용했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성경을 믿는 그들의 믿음을 파괴시킨 신학자나 교수의 이름을 대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정체를 일일이 밝혔다. 성경을 믿는 믿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기독교 대학들과 신학교들도 일일이 거명했다. 필자는 독자들이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학교가 성경을 믿는 믿음을 파괴시키는지 알기를 원한다. 나는 독자들이 "진짜 성경대로 믿고 구령하는 설교자들과 복음 전파자들과 선교사들과 성경 교사들이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믿음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다녔던 모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거부했기 때문"임을 알기 원한다. 더 나아가 프랭크 노리스처럼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간혹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했을 때는 이런 배교한 신학교들에서 물든 불신이 남아 있어서 그랬던 것임을 독자들이 알기 원한다.
필자가 이들을 그처럼 철저하게 비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들 중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심지어 가장 악한 자들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감정이 없다. 사실 "최종권위"의 문제가 아니면 논쟁을 하지도 않는다. 필자가 누군가를 공격할 때는 그가 먼저 감히 성경을 비평하기 때문이다. 혹자가 내가 사랑하는 <킹제임스성경>을 가지고 장난만 치지 않는다면 나도 그를 비평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자신이 <킹제임스성경>을 수정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곧 사람을 기쁘게 하길 좋아하고 사람을 따르면서 지성인인 체하는 모든 근본주의자들로부터 필자 자신을 영원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뭐라고 생각하든지, 필자에게 <킹제임스성경>은 그야말로 거룩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개인적으로 주신 책이며, 하나님께서 나의 가난하고 구원받지 못했던 혼에게 하신 그분의 입맞춤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킹제임스성경>을 비평하고 판단하는 자들의 정체를 거리에서 배회하는 소년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밝혀 냈다. 내가 죽고 하늘나라에 간 후, 그 누구도, 정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성경을 비평하는 "학자"나 "경건한 교사"라고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 "형제들," 곧 교육을 통해서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린 근본주의자들은 나를 고물상의 개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학자들은 <킹제임스성경>을 고물상 뒤뜰에 던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고물상을 지키는 사납고 으르렁거리는 잡종개가 되어, 고물상 뒤뜰에 몰래 다시 들어와 잘 믿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킹제임스성경>을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을 사정없이 물어 줄 것이다.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계 3:8). 필자는 <킹제임스성경>을 신실하게 지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기를 원한다. 이 임무를 다하기 위해 모든 힘을 남김없이 쏟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그들을 비평하고 그들이 나를 비난하는 이유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7,8).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딤전 6:1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