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묵상 분류
악인의 말과 순수한 말씀 (시편 12편)
컨텐츠 정보
- 689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0월호>
시편 12편은 “스미닛으로 악장에게,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스미닛은 “여덟 번째”를 의미하며, “여덟 번째 음조를 위한 악기” 또는 “낮은 옥타브”와 관련이 있다. 악인들의 채찍과 같은 말에 초점을 맞추어 시작하고,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의 보존에 관한 기대와 인내를 암시하며 끝을 맺는 시편 12편은 ① 경건한 자가 사라지는 현실에 대한 비탄(1절) ② 악인들의 말에 대한 묘사(2절) ③ 하나님의 개입을 간구하는 기도(3,4절) ④ 구원에 대한 약속(5절) ⑤ 하나님의 말씀 보존(6,7절) ⑥ 지속되는 악인들의 횡행을 상기함(8절)으로 구성되어 있다.『주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신실한 자도 사람의 자손 중에서 사라지나이다』(1절). 다윗은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아서는 것을 보며 고독과 위기를 느낀다. 경건한 자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악인들이 들어선다. 그들의 말은 경건한 자들의 말과 달리 헛된 것과 아첨과 교만으로 가득하다(2,3절). 경건한 성도가 사라지고 진리를 실행할 자리가 좁아지는 것을 보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다. 다윗은 이 일에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성도는 주님께 기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합당한 교제권을 찾아 교제의 영역을 형성해야 한다.
엘리야는 그렇지 못했다. 그가 믿음을 잃고 이세벨로부터 달아나 호렙 산에 숨어 있을 때, 주님은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하느냐?』(왕상 19:13)라고 하셨다. 그때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주 하나님으로 인하여 심히 질투하였사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음이니이다. 나, 오직 나만이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도 앗아가려고 찾고 있나이다.』(왕상 19:14)라고 했다. 이에 주님은 “그래, 너 하나만 남았구나.”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내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에 아직 칠천 명을 남겨 두었나니, 곧 바알에게 꿇지 아니한 모든 무릎과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모든 입이라.』(왕상 19:18)고 하셨다. 시대의 영적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 보여도 주님은 상황을 통제하셨고 남은 자들을 보존하셨다. 세상 죄인들은 물질 부족, 사업거래 감소, 자연재해, 질병, 전쟁의 위협 등을 고통스럽게 여기지만, 성도는 진리 안에서 교제할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고통스럽다. 주님께 구하라. 주님께서 이 시대에 섭리적으로 남겨 놓으신 남은 자들을 찾아 성경적인 교제권을 형성하라.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자는 찾을 것이요, 또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이라』(눅 11:10).
『그들이 각자 자기 이웃에게 헛된 것을 말하며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나이다』(2절). 여기 2절에 경건한 성도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가 구체적으로 명시된다. 그것은 악인들이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이다. 경건한 자들의 자리에 들어선 악인들은 진리가 아닌 헛된 것을 말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아첨하며, 겉과 속이 다른 말들로 이득을 취한다. 이 악한 현 세상은 그런 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찰스 스펄전은 “아첨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의 틈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자들 가운데서 사는 것이 낫다.”라고 했다. 아첨은 그 안에 상대방에 대한 시기와 속임수가 들어있기에 혐오스럽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다. 입으로는 꿀처럼 달게 말하지만 뱃속에 칼을 품고 있다. 듣는 자를 교만에 빠지게 하여 그 역시 멸망과 몰락의 길을 걷게 한다(잠 16:18). 누군가가 나를 면전에서 쓸데없이 추켜세운다면, 그는 나에게 마음의 한 면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다른 면은 나를 향한 시샘과 경멸이 검은 흙탕물처럼 흐르고 있을 수 있다. 아첨은 두 마음이다. 미소 가면을 쓴 배신이며, 아첨하는 자의 이득만을 목적으로 한다.
『주께서는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교만한 것들을 말하는 혀를 끊으시리라』(3절). 다윗은 혀로 속이며 성도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주님께서 끊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첨하는 입술”과 “교만한 것들을 말하는 혀”가 그것의 소유자들과 동일시된다. 말은 말하는 그 사람의 실체이다. 『오 독사들의 세대야, 악한 너희가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하기 때문이라』(마 12:34).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자 실체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므로 말과 그 사람을 분리시킬 수 없다. 말은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최적의 잣대이다. 성경은 권면한다.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 하라. 이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권세가 영원무궁토록 있느니라』(벧전 4:11).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처럼 거짓 없이 진실하고 거룩하게 말해야 할 이유는, 그래야만 그리스도인다운 인격이 드러나 주님께 영광이 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독한 시기와 다툼의 말을 내뱉고, 상대의 신경을 곤두서게 할 날카롭고 표독스런 표현을 쓰고, 세상 죄인들이 즐겨 쓰는 비속어와 TV 유행어를 쓴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말로 주님의 영광을 가린 죄를 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손이 아닌 “말씀”으로 지으셨다. 주님 자신을 나타내실 때도 말씀으로 나타내셨고(삼상 3:21), 세상에 자신을 보이셨을 때는 『생명의 말씀』(요일 1:1)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셨다.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크게 하셨다고까지 하셨다(시 138:2).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을 때 그에게 언어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처럼 말하는 능력이 주어졌다. 인간의 말은 결코 아무렇게나 사용될 수 없는 가치와 무게를 지닌다. 그래서 주님은 어떠한 빈말도 허용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말하는 어떠한 빈말이라도 심판 날에는 그에 관하여 설명하게 되리라』(마 12:36).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의 혀로 이길 것이요,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것이니 누가 우리를 주관하는 주가 되리요?” 하였으니』(4절). 4절에서는 자신의 혀와 입술로 이길 것이라고 말하는 죄인들이 보인다. 그들은 “내 입 가지고 내가 말하는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는 자들과 같다. 이 얼마나 교만하며 오만한 태도인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얼마나 완고하고 이기적이며, 얼마나 아집에 싸여 있고 배려가 없으며, 또 비수와 같은 자기 혀로 스스로를 찌르고 더럽혀 지옥에서 불태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혀는 불이요, 죄악의 세상이라. 그처럼 혀는 우리 지체들 가운데 있으면서 온몸을 더럽히며, 또 일생을 불태우나니, 곧 지옥의 불에서 태우느니라』(약 3:6).
말에는 힘과 위력이 있다. 인류가 거쳐 온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는 늘 말이 있었고, 갈등과 분열의 회오리 속에서 사람들을 움직였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로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평등 세상을 역설한 마틴 루터 킹,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무”임을 천명한 마하트마 간디의 말은 죄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리 데려가는 힘이 있었다. 그 말이 성도를 대적하는 무기로 사용될 때 그것은 총칼보다도 위력 있는 무기가 된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니, 내 눈물이 밤낮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시 42:3).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는 그의 혀를 비수처럼 놀려 하나님을 모독하고 환란 성도들을 박해할 것이다. 『그 짐승이 큰 일들과 모독하는 말들을 하는 입을 받았으며 또 마흔두 달 동안 활동할 권세를 받았더라. 그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대적하여 모독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그가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으며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더라』(계 13:5-7). 환란 성도들은 무엇을 바라며 이 고난을 견뎌낼 것인가? 그들은 하늘로부터 오실 주님을 이제나 저제나 바라며 견뎌 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히 9:28). 그리하면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게 될 것이며 멸망이 닥칠 때에도 그것을 무서워하지 아니하리라.』(욥 5:21)는 말씀 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시편 12:5에서 바로 이 점을 약속하신다! 『주가 말하노라.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 때문에 이제 내가 일어서리라. 내가 그를 비웃는 자로부터 그를 안전한 곳에 두리라.』 주님께서 셋째 하늘에서 일어서시는 것은 재림이다. 대환란 때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 가난하게 사는 환란 성도들이며, 그들을 『비웃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다. 적그리스도의 혀의 채찍에 고통당하며 주님을 바랄 때,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휴거시키실 것이다. 신약 성도인 우리 역시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악한 말들의 홍수로 하늘의 본향을 간절히 사모할 수 있다. 날마다 밀려드는 신성모독적인 말들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안전한 품을 더 간절히 사모할 수 있다.
주님께서 『주가 말하노라.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 때문에 이제 내가 일어서리라. 내가 그를 비웃는 자로부터 그를 안전한 곳에 두리라.』(5절)고 구원을 약속하시자, 다윗은 화답한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다윗은 그를 안전한 곳에 두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곧바로 표명한다. 주의 말씀은 찌꺼기가 완전히 제거된 순수한 은처럼 순수하며, 그 말씀들은 온전히 보존되어 그대로 성취될 것이기에 그 순수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의 확실성과 거룩함과 신실함에 있어서 잘 정련된 은처럼 순수하다.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고 흔들림 없는 본성이 그 말씀의 순수성 보존의 이면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된 것이 하나도 없고, 인간에게 아첨하거나 교만한 말이 없으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영원에 우뚝 솟아 계신 분의 권위를 지닌다. 성경은 두 마음이 아닌, 주님의 한 마음으로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악인들의 말과 달리 거짓과 아첨과 속임수와 왜곡이 없다.
순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것에 끌린다. 『주의 말씀이 매우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그것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40). 그러나 순수한 말씀에 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도는 순수한 말씀으로 순수하게 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일은 일곱 번 정화된 은처럼 정련된 순수한 말씀으로만 가능하며, 부패한 성경들은 이 일을 결코 할 수가 없다. 주님은 『정련하는 자의 불』(말 3:2)과 같은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은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과 같다(시 12:6). 정련하는 자의 불과 같은 주님께서 일곱 번 정화된 은과 같은 말씀으로 성도 각인을 정련시키신다. 주님은 그 말씀으로 우리를 경건하고 신실한 성도들로 변모시키신다. 순은처럼 깨끗게 하셔서 하나님의 순수한 사람들이 되게 하신다.
경건한 자가 사라져 가는 이 마지막 때에 경건한 자로 남을 이들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으로 정련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뿐이다.
시편 12편은 7절의 말씀 보존에 대한 말씀으로 끝나지 않고 8절에서 끝난다. 확실한 구원의 약속(5절)과, 말씀 보존에 관한 견고한 신뢰(6,7절)와는 달리, 8절은 여전히 암울한 현실이다. 『지극히 비열한 사람들이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도처에서 횡행하는도다』(8절). 주님의 구원의 약속이 주어졌어도 세상은 여전히 악하다. 세상은 금세 뒤집어지지 않는다. 순수한 말씀을 믿는 성도에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과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되는 것이다! 대중매체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비열한 죄인들이 악한 것들을 말하며 높임을 받고 있을 때에,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모든 부도덕과 폭력과 잔인과 음란과 살인과 거짓과 술 취함과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사랑과 속임수로 스스로를 파멸시킬 때, 성도는 단련된 주의 말씀을 방패삼아 스스로를 보호하고(시 18:30), 그 순수한 말씀으로 지속적으로 정화되어 온전한 성화에 이르러야 한다. 보존된 순수한 말씀을 믿고 행하는 성도의 자세는 그러해야 하며, 그 순수한 말씀으로 온전히 성화된 모습으로 주님을 만날 때, 그보다 기쁘고 복된 일도 없을 것이다. 『화평의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살전 5:23).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