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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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처녀들”과 “환란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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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2월호>

마태복음 25:1-12은 신약 성경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중의 하나이다.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성경 앞에서는 누구나 학생이 된다)이 이러한 난제들을 만나면 대개는 자기에게 가까이에 있는 성경 주석서를 보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모르는 사람은 누군가가 설명해 놓은 것에 신뢰를 두기 때문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여기의 기름없는 다섯 처녀를 구원을 잃어 버릴 수 있는 성도들이라고 설명해 왔고, 칼빈주의자들은 현명한 다섯 처녀들을 결신자들(Professors)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러한 주장은 권위있는(?) 교단의 학자들이 펴낸 주장이 오래전부터 교단 교리로 정착되어 왔기때문에 훗날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 나와서 그 구절을 성경으로 해석해 놨다해도 사사로운 해석이라고 일축해 버리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교단 교리가 성경 교리보다 우세한 것이 현실이며, 이런 현실의 기류를 타고 있는 한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성경을 모르게 되어 있고 죽을 때까지 성경을 모르면서 가르치게 된다.
이러한 비성경적 교단 교리를 신학교 강단에서 존경하는 선생님께 들었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커다란 악영향을 받는 것이며, 또한 평소 신뢰했던 목사님께 다시 들었다면 또 한 번의 악영향을 입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러한 편견적 해석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성경으로 이중 점검을 해놓고 있다. 비단 이 “열처녀들”의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난해 구절들도 성경적 보안이 있는데 2중, 3중, 때로는 그 이상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이단 교리들은 그들의 신학을 까다로운 성경구절로 시작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 열처녀 문제를 가장 잘 보완하고 있는 구절은 누가복음 12:35,36이다. 『너희 허리에 띠를 두르고 등불을 밝히고 있으라. 그러면 너희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으리니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올때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즉시 문을 열어 주리라.』 여기서 밝힌 대로 이 처녀들은 결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혼식을 올린 사람을 맞이하러 가는 것이다. 여기에 관련된 처녀들은 단수 처녀(Vir- gin)가 아니라 처녀들(Virgins)이다.
기름에 문제가 대두되는데 이들 열명의 처녀들 모두가 처음에는 기름을 가졌었으나 그 중 다섯 명만이 기름을 가지고 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은 기름을 잃어버린 것이다. 만일 그 기름이 성령이라면 성령을 받는데 행위가 필요하게 된다(8,9절). 먼저 우리는 이 대상이 전적으로 유대인임을 유의해야 한다. 또 인자(Son of man)와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과의 용어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인자라는 어휘를 쓰지 않았다. 인자는 유대인에게 관련되고 하나님의 아들은 교회와 관련된다. 여기의 주인공 인자는 결혼식을 올린 신랑으로 오는 것이지 신부(교회)를 데리러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지 않는다. 열왕기하 4:7에서도 기름을 파는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이것은 유대인에게 해당된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해석방법에 의해 다섯 처녀는 택함을 받고 다른 다섯 처녀는 택함을 못 받았다고 하는데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려 해도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게 되는 그런 교리도 있는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누구든지” 이다. 칼빈주의자들이든, 알미니안주의자들이든, 부처를 믿는사람들이든, 모하메트교인들이든, 여호와의 증인이든, 소경이든, 나병 환자이든, 죄수이든, 창녀이든, 사형수이든, 단 “누구든지”이다. 사람이 믿으려해도 믿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거짓 교리를,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으신 교리를 사람이 날조해서 교단의 교리로 삼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 방식으로 성경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경적 조명을 영원히 받지 못한 채 살게 될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9절에서 기름이 충분하지 못하니 가서 사오라고 했다해서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이 다 떨어져 사와야 되니 이것은 성령이 소멸되어 버린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은사주의자들은 히브리서 9:28을 예로 들어 그리스도의 몸이 나뉘어져 절반은 휴거되고 절반은 땅에 머문다고 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1. 그리스도의 신부인 처녀(Virgin)를 (고후11:1-3) 성경 어디에서도 처녀들(Virgins)이라고 부르는 곳은 없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순결한 처녀(a chaste VIRGIN)이다.
2. 처녀들(Virgins)은 교회시대가 아닌 환란시대에 등장한다(계14:1-6). 이 환란때의 처녀들은 신부를 따라 가는데(시45:13,14) 이들은 환란 끝에 따라간다(마24:29-31, 시50:3-5). 즉 환란 성도들의 휴거를 말한다.
3. 환란시대에 구원을 받는 것은 지금처럼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행위가 따라야 한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24:13).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에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마24:16) 하시는 말씀이다. 환란때인 다니엘의 70째 주는 오늘날과 같지 않다. 그리스도의 몸은 휴거되어 지상에 없기에, 이제는 믿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속에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게 된다. 행위로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교회가 지상에서 사라지면 구약의 율법시대가 다시 도래하여 율법과 그에 연관된 것을 지켜야 한다. 로마서10:5에 『모세도 율법에서 난 의에 대해 기록하기를 ‘율법에서 난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느니라』는 이것을 의미한다. 다윗도 시편 51:11에서 성령을 잃게 되는 것이 행위와 연관된 것을 알고 있었다.
4. 그리스도의 신부는 휴거때 들림받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받으며, 심판받은 후 환란 끝날 무렵에 그리스도와 혼인한다. 천년의 신혼여행을 하기전에 하늘로 들림받는 환란성도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이 처녀들이다. 신부를 따라가는 신부의 친구들이다(시 45:14). 기름을 잃어버린 처녀들은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지상에 남게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환란 성도의 휴거는 첫 번째 부활에 해당된다(계20:5, 고전15:23). 계시록 6:9을 보면, 『제단 아래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때문에 순교당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7:9, 14에서 셋째 하늘에 올라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7장에서 지상에 있던 144,000명은 계시록 14장에서 셋째 하늘에 올라가 있다. 잘못 알고 있는 성경 주석가들은 이것을 교회의 환란 후 휴거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교회의 휴거가 아니다. 환란때 교회가 지상에 남아서 야곱의 환란(이스라엘의 환란)을 겪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첫 번째 부활은 구약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때 들림 받은 것(마27:52, 53)과 신약 성도들의 휴거(고전15:51-53)와 환란 성도들이 환란끝, 즉 재림 직전에 들림 받는 것(계7:9-14)이 포함된다. 환란 마지막에 있을 환란 성도의 휴거는 저명한 전쳔년주의 신학자들 중에서 라킨(Larkin)과 펨버(Pember)와 럭크만(Ruckman)만이 알았을 뿐 스코필드(Scofield)나 개버레인(Gaeberlein)도 알지 못했던 부분이다.
마태복음 25장은 역사적으로 적용하면 사도행전 7장이전의 이스라엘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 그때 이스라엘에게 전했던 복음은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천국복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써 통치하실 팔레스타인에 세워지게 될 다윗의 왕국을 말한다. 이 천국복음에는 영으로 거듭나지 않아도 이스라엘인이면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다른 것이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설명하신 것은 천국이 아니라 영으로 거듭나서 들어가는 영적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모든 신학교는 “천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가 같다고 가르친다. 영어 단어 Heaven(하늘)과 God(하나님)이 같다는 말인데 창세기 1장 1절을 그들의 주장대로 하면 『태초에 하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가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천국복음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게 거국적으로 전했던 스테판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만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드렸더라면 휴거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때 스테판이 본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지 않으시고 서 계셨던 것이다!(행7:56)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가? 이방인들에게로 복음이 넘어갔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시대에서 천국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다. 천국복음은 교회와는 관계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에서 열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명령하시기를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다. 『가서 전할때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하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문둥병자들을 깨끗케 하며, 죽은 자들을 살리고, 귀신들을 쫓아내며 너희가 거저받았으니 거져주어라』하셨다(마10:5, 6)
많은 개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 천국복음을 은혜의 복음인 것처럼 전하고 있는데 유대인의 왕국복음을 이 시대의 구원 계획이라고 전하는 것은 성경을 잘 모르므로 해서 비성경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늘 성경을 보지 않고 교단 신학교의 교과서만 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참 일꾼으로서의 자격이 결여되어 있다.
지금도 천국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거나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며 병고치는 것을 사역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1:8, 9에 의해서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변질시켜 하나님의 피값을 헛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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