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송오 목사 분류
너무나 많은 무신론자 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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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2월호>
만일 우리나라 개신교 목사들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이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두 종류의 좋은 열매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첫째는 “성령의 열매”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친절, 선함, 믿음, 온유, 절제 등의 아홉 가지 성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구령의 열매”다. 구령은 잃어버린 혼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제거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주셨음을 알게 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은 천사들에게조차 맡겨지지 않았고(벧전 1:10-12), 오직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맡겨졌다.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 영예로운 일에 참여할 몫이 없다.성품이야 그럴듯하게 꾸며댈 수 있겠지만, 구령의 열매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나라의 목사들 가운데는 구령 간증이 없는 자들이 부지기수이고, “구령” (soul winning)이라는 용어 자체를 아예 모르는 자들도 많다. 그들은 전도한다며 교회로 사람들을 끌어와서 돈 내게 할 줄은 알아도, 죄 문제를 해결하여 지옥에 가지 않게 해 주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제도화된 교회들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무조건 그런 목사들에게 충성을 바친다. 교회가 무엇인지도, 목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열매 없는 목사들과 그 교인들이 그와 같은 무지를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들은 교단, 교회협의회(NCC, WCC),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단체가 지향하는 신학적 노선에 편승한다. 성경을 열어 그 신학을 입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그 단체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만다. 그들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그들의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으며 나를 향한 그들의 두려움도 사람들의 법규로 가르친 것이라』(사 29:13). 그들은 사실상 무신론자들이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경청하는 것이 하나님께 경청하는 것보다 더 옳은 일인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일들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행 4:19,20)라고 배짱 있게 말하지 못하고, 단체에서 결정된 사안이 성경과 배치될지라도 그것을 따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 10:17). 따라서 목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은, 먼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고, 그의 회중 또한 그가 믿는 성경을 믿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이 모였다 해도 그 교회는 마귀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벌이는 전쟁은 육신으로 치고받는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육신의 힘으로는 마귀의 공격을 당해 낼 수 없다(고후 10:4, 엡 6:12).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로부터 도망하리라』(약 4:7). 성경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음성을 믿고 그대로 실행한 뒤에야 우리는 마귀를 패퇴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 임할 때는 하나님의 전신갑옷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때 무기로서 갖춰야 할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며, 성경은 이것을 “성령의 칼”이라고 부른다(엡 6:17). 성경이 사람들의 눈에는 별것 아닌 책처럼 보일지라도 마귀에게는 치명적인 무기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귀는 사람들이 성경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계략을 꾸민다. 그 가운데는 개역한글판과 같은 변개된 성서들을 확산시키는 것도 있다. 그런 성서들을 가진 자들은 썩은 나무나 힘없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칼로 전쟁에 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자들은 좀처럼 사탄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진영으로 혼들을 이겨오지 못하고(골 1:13), 사탄의 계략을 분별하지도 못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늘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기에 “이건 아닌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를 되뇌면서 패배감에 젖어 살기 일쑤이다.
이 나라의 개신교 목사들은 변개된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것 이상의 문제를 갖고 있다. 바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그 개역성경조차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서들을 인용할지언정 거기에 쓰인 대로 믿지도, 그대로 실행하지도 않는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유대인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었다. 『이는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음이라』(마 23:3).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행세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돈”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의 종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누구의 종인가? 그들은 마귀에게 정복을 당한 마귀의 종들이다. 교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조차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돈 내는) 교인들 때문에 소신 있는(성경적인) 설교를 하지 못했음을 참회하는 글을 남긴 바 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는 법이다(마 6:24). 성경은 그런 자들의 해악을 지적하면서 『더러운 이익 때문에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쳐서 집들을 온통 뒤집어 놓는 그들의 입을 막아야 될 것』(딛 1:11)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마귀의 종들이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을 돈 때문에 가르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첫째로 “교회”에 대한 오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그 몸의 일부가 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한 몸에 지체는 많아도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2,13). 바로 이 우주적 유기체(organism)인 몸을 성경에서는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3).
따라서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눈 또는 손과 발이 잘려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장애인이 되실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요 10:28). 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하여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 지체들이 자신의 구주께 감사하여 경배와 교제와 섬김을 위해 지상에 만든 모임(organization)이 바로 “지역 교회”(local church)인 것이다. 자, 이 진리에 입각해서 볼 때 이 나라의 교회들은 얼마나 엉망인가? 그들의 회중 가운데는 구원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새로운 사람이 방문해도 구원받았는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교적부에 이름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그들은 지역 교회가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진리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하여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 지체들이 자신의 구주께 감사하여 경배와 교제와 섬김을 위해 지상에만든 모임(organization)이 바로 지역 교회(local church)다. 이 진리에 입각해서 볼 때 이 나라의교회들은 얼마나 엉망인가? 그들의 회중 가운데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 새로운 사람이 방문해도 구원받았는지를확인하지도 않고 교적부에 이름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게다가 그들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지도 않는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알미니안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말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믿는 자는 끝까지 견디게 되어 있다.”라고 결론을 낸다(성도의 견인). 그러면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올 때 “혹시 내가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면서 괴로워하게 되고, 자신이 지옥에 갈지, 하늘나라에 갈지의 여부는 끝까지 가 봐야 안다고 여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끝까지 견디는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는 알미니안주의와 대동소이해지는 것이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어느 쪽이든지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교리인 것이다. 이 나라의 주요 교단들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중 하나를 채택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단에 속한 교회들 가운데 실상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없다 하겠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주이신지 아닌지 확신하지도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참된 찬양을 올려드린단 말인가?(엡 1:6,7)
둘째로 “반(反)세대주의적 신학”이 그들이 가르쳐서는 안 됨에도 설파해 온 대표적 가르침이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라고 명령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근거하여 시대와 대상을 나누어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과 교회 시대, 환란 시대, 천년왕국 시대, 영원 시대의 교리를 섞어 버리면 성경을 알 수 없게 되거나 성경을 믿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셨고,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모든 복들은 교회에게로 옮겨졌다.”는 주장(대체 신학)을 펴는 자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이후에 살았던 신약 성도들뿐 아니라, 그 이전에 살았던 구약 성도들까지도 모두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다는 주장(언약 신학)을 펴는 자들이 바로 그런 부류이다.
성경은 신명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스카랴 등에 있는 200구절 이상의 말씀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교황들은 이스라엘이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이집트, 북아프리카, 프랑스, 독일,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박해받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취소하시고 그 복들을 교회에모두 주셨다고 주장했다. 성경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실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주장을 이렇게 일축한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
또한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구약 성도들이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일례로 히브리서 11장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을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말씀하지만, 이들의 믿음은 갈보리 십자가의 대속 사역에 대한 믿음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여자들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히 11:33,35).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이런저런 일을 실행하면 최후의 심판 때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 “때가 되어” 복음 전파를 통해 나타내신 말씀을 믿은 사람은 없었다(딛 1:3). 즉 십자가 이후에 전파된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롬 4:5)라는 믿음이 그때에는 명확히 계시되지 않았기에, 그런 믿음을 가질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갈 3:23)
성경을 나누어 볼 줄 모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현 세상으로부터 우리들을 데려가시려고 공중에 오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성도들의 믿음의 핵심인 휴거, 대환란, 아마겟돈 전쟁,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지상에 그들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한다. 그들은 영원 세계의 새 예루살렘에서 펼쳐질 진정한 유토피아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으면서, 인간이 기독교를 통해 얼마나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떠든다. 이것이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 종말론자들의 신앙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흰 말을 타고 재림하시어 2억 명의 UN 군대를 일시에 이스라엘 므깃도에서 살해하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 피가 말고삐 높이까지 닿고, 약 280km에 걸쳐 흐를 것이라고 예언하시지 않던가?(계 9:16; 14:14-20) 그런데도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야말로 “무신론자”가 아니겠는가?
지면 관계상 더 길게 쓸 수 없지만, 방언이 성령을 받은 표라고 가르치는 은사주의자들, 마리아가 죄 없이 태어나 죄 없이 살았다는 로마카톨릭, 사도행전 2:38이 구원 계획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 마귀가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안식교, 지옥을 무덤이라고 믿는 여호와의 증인들, 교회를 많이 세우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라는 개신교회들,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는 현대의 배교자들, 이들은 모두 성경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야말로 우리는, 성경을 믿지 않고 교회만 다니는 종교인으로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착각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들과 동류에 속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의 의견이 아닌 “성경”을 배워야 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하나님께서 한 자 한 자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그 책을 가지고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행 17:11). 그저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인정을 받는 어떤 자가 이야기했다고 해서 확인해 보지도 않고 덥석 받아들였다가는 낭패를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조롱하는 자들”이 활동할 것이라고 성경이 경고하고 있기에(벧후 3:3,4) 우리는 더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많은 약속들이 있지만, 휴거와 재림은 성도의 믿음의 절정이다. 특히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장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계 22:12).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계 22:20)라는 약속이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재림을 확신하지 않은 채 교회만 다니고 있다면 당신은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신론”이다. 당신은 성경을 믿지 않는 무신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는 “무신론자 목사들”로부터도 떠나야 한다. 성경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에게서 진리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