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분류
비로소 갖게 된 “진리 안의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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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0월호>
초등학교 2학년이 막 됐을 무렵, 아버지가 직장에서 동남아로 파견되시면서 온 가족이 말레이시아에서 지내게 되었다. 거기서 주중에는 미국 국제학교에 다니며 미국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 따라 공부했고, 토요일에는 한인 학교에서 한국 교육 과정에 따라 공부했다. 한인 학교 수업이 끝날 때면, 한인 교회로 아이들을 태워 가려고 학교 앞에 버스가 서 있곤 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나와 남동생에게 수업을 마치고 한인 교회에도 다녀오라고 하셔서 난생처음 교회에 가 보았지만, 내가 받은 첫인상은 “밥이 맛없고, 재미없다.” 정도였다. 한마디로 시시했다. 어릴 적 교회에 대한 기억은 그것이 전부이다.말레이시아에서 5년을 보낸 뒤 온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교회에 또다시 발을 들인 것은 대학생 때였다. 대학 입시 때 알게 된 친구가 “외국인이 많이 오는 영어 예배”에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관심이 생겨서 따라간 곳은 서울 이촌에 있는 온누리교회였는데, 영어 예배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던 터라 어릴 적 외국에서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영어 예배 찬양 팀에 참여했고 점차 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성경 공부 모임”의 그룹장도 하게 되었다. 성경적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에도 교회 생활에 빠져드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후 첫 직장에서 입사 카드의 “종교란”에 얼떨결에 “기독교”라고 적었다가 신우회 총무라는 직책까지 맡으면서,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크리스천”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다. 강남 지역의 직장인 선교회에도 합류하면서 “진정한 크리스천에게는 직장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가는 곳이므로, 직장 동료들에게 전도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에 따라 “사영리 전도지”를 가지고 나름대로 열성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연민아와 점심 약속을 잡으면 전도를 당한다.”라는 소문이 떠돌 정도로 겁도 없이(?) 잘못된 사영리로 복음을 전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그때 내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치러 주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경기도 안양에 있는 한 작은 침례교회 목사와 성경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전에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색다른 내용을 배웠다. 그의 가르침을 더 배우고 싶어서 온누리교회를 충동적으로 떠나 그 침례교회로 교적을 옮겼다. 그동안 영어표준역(ESV)과 신국제역(NIV) 같은 영어 성경으로 공부해 온 터라 한국어 성경으로 공부하는 일에 남다른 재미를 느꼈다. 그 목사도 멀리서 오는 나를 예뻐해 주었고, 더 깊은 진리가 있을 것 같아서 자그마치 8년이나 그곳에 출석했다.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목사는 침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행위 구원론자였다. 그의 잘못된 구원관을 처음 접했을 때는 너무나 생소했던 탓에 두려움마저 일었다. 당시에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는” 법을 전혀 몰랐기에 나름대로 밤낮 성경을 뒤지고 파헤치며 그 근거를 찾으려 했는데, 그러다 사도행전, 사복음서,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침례”와 관련된 구절들을 읽으면서 결국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양의 교회에 다니면서 빠진 큰 딜레마는 “전도”였다. 전에는 사영리로 예수님을 전한 후에 상대가 영접 기도를 하면 그나마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라도 가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침례까지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아무리 봐도 담임목사나 전도사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대신 외부에서 누군가가 관심을 보이면 일단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배운 거짓 교리로 인해 복음 전하기를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라는 잘못된 가르침까지 더해지면서, 신약 시대를 사는 나도 사도 바울의 신약 교리보다는 율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믿게 되어 구약에 얽매이는 신앙관을 갖게 되었다.
그 침례교회는 방언 기도, 방언 통변, 성경 공부, 경배와 찬양, 예언, 치유, 은사, “영안 열기” 등의 “신령한” 신앙생활을 복음 전파보다 더 강조했다. 방언으로 하루에 길게는 3,4시간까지 기도하고, 마귀가 보여 주는 신기한 “영계”를 보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사람의 속과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 훈련도 받았다. 찬양대 속에 서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경배”의 “통로” 역할도 8년 이상을 했다. 1년에 3번씩 그 교회에 방문하는 미국 은사주의 목사의 영어 설교를 한국어로 통역했고, 그 목사가 다른 “여자 목사”에게 안수해서 그녀를 방 건너편으로 “날려 보내는” 광경도 부지기수로 목격했다. 일단 “신령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성령님의 역사로 착각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곳에 출석하는 내내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참된 진리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나는 그 교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는데, 특히 『그분은 성령으로 또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마 3:11)와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노라.』(고전 1:17)와 같이 서로 충돌하는 구절들은 나를 더욱 깊은 고뇌에 빠뜨렸다.
나는 견디다 못해 구원에 관한 진리를 알게 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을 계기로 담임목사와 전도사들의 실체를 보게 되었고, 그 후로도 여러 일이 터지면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짜 목사에게 속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움직이긴 했지만, 진리의 지식이 없었기에 또다시 은사주의와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동네 교회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한국의 제도권 교회가 모두 배교했음을 알았고, 그 배교의 진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국 교계가 썩어 빠졌음을 낱낱이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는 그 동네 교회마저도 다닐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교회 활동을 모두 접고, 알고 지내던 교인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주일이면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유튜브로 여러 설교를 들었으나, 평소 궁금하던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지,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지, 선택받은 소수의 ‘성화된’ 사람만 휴거되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그것들을 깨닫게 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행위 구원이 마음에 이미 깊게 뿌리내린 터라 유튜브에서 간간이 추천하는 세대주의적 설교들은 모조리 무시했다. 일례로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OSAS”(Once Saved, Always Saved)라는 제목이 붙은 설교는 마치 하나님의 구원을 장난으로 여기는 것만 같았다. “구원을 너무 쉽게 얻으려는 거 아닌가? 구원이 우스워 보이나? 사람이 죄를 짓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구원을 영원한 것으로 가르치다니!” 이처럼 나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에 코웃음을 쳤다.
하루는 “한 번 받은 구원은 절대로 잃을 수 없다.”라는 제목의 영미권 설교가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추천되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실없는 내용인지 확인해 보려고 설교들을 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설교자가 세대주의에 따라 구원에 관해 가르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또 성경적으로 더 없이 옳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각 세대를 향해 갖고 계신 하나님의 경영 방침이 다르다는 것과, 사도행전과 같은 과도기적인 책을 잘못 해석했다가는 이단 교리에 이른다는 점도 일목요연하게 알려 주었다. 관련된 근거 구절들은 내 안에 깊숙이 박혀 있던 행위 구원론을 뿌리째 흔들고도 남았다. 게다가 나는 왜 <킹제임스성경>만이 올바른 성경인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나는 미국 목사들이 전하는 세대주의 설교만을 들었다. 그러면서 “피터 럭크만 목사”의 이름도 셀 수 없이 접했다. 나는 그토록 많은 시간을 성경 공부에 쏟았지만, 단 한 번도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한(딤후 2:15) 적이 없었다. 다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영적으로 적용하는, 그릇된 행위 구원 교리로 자신을 수년간 옭아맸을 뿐이다. 하지만 세대적 진리를 알게 되자 죄를 지을 때마다 구원을 잃어버렸을까 봐 벌벌 떨며 지냈던 세월이 실로 헛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렇게 깨닫고도 성경침례교회에 곧바로 출석하지는 않았다. 혼자 주일을 보내 온 시간이 1년 반을 넘기면서 나름의 안락함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는 내가 설교를 들을 때마다 “지역 교회에 나가라”는 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이미 여러 종파의 교회에 출석하며 겪은 고통을 다시 반복하게 될까 싶어서 지역 교회에 속하는 것이 두렵기만 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에게 지역 교회에 출석하는 일에 관해 꾸준히 찔림을 주셨다. 게다가 그토록 찾던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는 교회가 있음을 알게 된 이상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주일에 굳게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당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탓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교회에 갔다. 그때까지 내가 다녔던 교회는 온누리교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인터넷에 “이단”으로 분류된 성경침례교회도 작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건물이 커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 안에서 예배드리는 300명 정도의 성도들을 보고서 한 번 더 놀라게 되었다. 진리를 찾아서 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면서도, 더 일찍 찾아오지 않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날 박승용 목사는 죄를 책망하는 말씀을 강력하게 선포했는데, 한동안 홀로 신앙생활을 하며 죄에 대해 느슨해져 있던 내 양심은 마치 뿌려진 소금에 고통스러워하는 미꾸라지처럼 꿈틀댔다. 행위 구원론에 속았던 나는 자기 행위로 의로움의 제단을 쌓아 죄를 상쇄시키려 한 카인과 같은 죄를 늘려 왔던 것이다. 설교를 들을수록 마음이 찔려서 괴로웠지만, 바른 말씀의 자리로 나온 것이 참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거듭 생각했다. 이송오 목사가 하늘나라로 가신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더 일찍 오지 않은 것을 더욱더 후회했다.
성경침례교회에 다니면서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평안”이다. 지금은 전에 가져 본 적이 없는 “진리 안에 거하는 평안”을 누리고 있다. 설교를 듣다 보니 바른 진리 위에 서 있는 성도만이 갖는 확신도 생겼다. 성경침례교회의 설교는 “이 말씀은 이런 뜻일 겁니다,” “그 말씀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와 같은 뜬구름 잡는 설교가 아니라, “이 말씀은 이 뜻이고, 그것은 교회가 아닌 유대인에게 적용됩니다,” “그 말씀은 교회에게 적용됩니다”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보던 변개된 성경에는 믿음과 행위를 오가는 모순이 가득했다면, 지금 내 손에 들린 <한글킹제임스성경>에는 한 구절 한 구절이 하나님께서 각 시대와 대상에 따라 주신, “손에 잡히는” 명확한 말씀들뿐이다. 성경침례교회는 바른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행하는 교회이기에, 그야말로 구령에 목숨을 건다. 이런 교회에서 배우고 성장하다 보니 나 역시나 구령의 열정을 갖게 되었다. 비진리에 사로잡혀 소위 “신령한 은사”를 개발하는 데만 치중하는 교회들과 달리, 하나님의 뜻을 성경대로 실행하는 성경침례교회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구령”에 두기에 복음 전파에 집중한다. 미혹되어 긴 시간을 허송하며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던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신 하나님, 그래서 바른 말씀과 바른 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