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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말씀보존학회 - 한글킹제임스성경 및 진리의 지식을 전파합니다 &amp;gt; 바이블마스터 &amp;gt; 지식뱅크 - 간증과 전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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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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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대한민국 해병대원,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다</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0/%EB%8C%80%ED%95%9C%EB%AF%BC%EA%B5%AD-%ED%95%B4%EB%B3%91%EB%8C%80%EC%9B%90-%EA%B7%B8%EB%A6%AC%EC%8A%A4%EB%8F%84%EC%9D%98-%EA%B5%B0%EC%82%AC%EA%B0%80-%EB%90%98%EB%8B%A4/</link>
<description><![CDATA[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를 따라 전라남도 시골에 있는 어느 교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그 교회를 몇 번 나가다 보니, 사람이 죽고 나면 다음 세상이 있는 것 같았고, 하나님께서도 정말 존재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에 관한 분명한 답은 찾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 겨울, 군 복무를 위해 해병대 부사관으로 자원하여 입대했다.<br/><br/>교회를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 분이기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믿고 있었다(롬 1:19,20). 하지만 군 생활을 하면서 나의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이 있었고, 항상 죽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막연하게나마 “하나님이 살아 계신 건 사실인 것 같은데, 그럼 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br/><br/>전역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장로교회에 다녔고, 그때 난 하나님을 알기 원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지 못한 채 그분을 찾는 나의 처지를 헤아리셨는지, 지난 2021년에 &lt;킹제임스성경&gt;을 접할 기회를 갖게 하셨다.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설교와 성경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즉시 쉽게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엡 2:8,9).<br/><br/>구원받기 전 내 인생에는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대했기 때문에 군에서의 기억이 대부분이다. 해병대의 주요 임무는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막바지에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적지에 상륙하는 것이기에 육지, 바다, 하늘을 통해 상륙 또는 기습 침투를 하는 고강도의 특수훈련을 많이 한다. 그만큼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군복무를 하는 동안 연평도에서 북한의 포격 도발과 두 차례에 걸친 연평해전이 발발하면서 다수의 해군과 해병대원들이 다치거나 전사했다. <br/><br/>국군의 날 58주년을 기념하는 고공강하 시범단에 선출되어 연습할 때는 707특임대원 두 명이 충돌하는 사고로 한 명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다른 대원은 상공에서 순직했다. 순직한 대원은 수천 번의 고공강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이 외에 특전사 특수교육 교관이 고공강하 시범 중 순직했는데, 그 역시 수천 번의 경력을 가진 전문가였다. 사고 전날까지만 해도 동료들과 몸을 부대끼며 즐겁게 족구를 했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망 사고를 접할 때마다 항상 “그는 하늘나라에 갔을까? 지옥에 갔을까? 아니면 귀신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구천을 헤매며 돌아다닐까?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이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그들이 처한 오늘이 나의 내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br/><br/>분명 죽음은 끝이 아니고 죽음 뒤에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 확실한데, 그 사후 세계는 어떨지 궁금했다. 죽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해결하고자 설교도 열심히 들어 보았다. 어떤 목사는 하늘나라에 갈지 지옥에 갈지는 죽기 전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설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은 변개된 개역성경에도 없는 것이었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고 구원받은 후에는 이토록 쉽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했고, 또 동시에 그동안 듣고 배웠던 거짓 교리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진리를 알지 못한 채 그대로 있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예수님께서 초림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에게 분노하시며 독하게 말씀하셨던 것이 백분 이해가 된다.<br/><br/>구원을 받은 후,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나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서 믿고 지역 교회에 속하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여러 가지 변화를 허락하셨다.<br/><br/>첫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과 함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다. 제도권 교회에 있을 때는 그렇지 못했는데, 그 시기에 설교를 들을 때면 똑같은 구절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여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성경은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며, 목사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 달고도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런가 보다.”라며 애써 합리화했다. 예배가 끝나면, 목사는 잘 이해했냐고 내게 종종 묻곤 했는데, 마지못해 호응해 주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없음)”이란 구절에 의문이 생기기도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br/>그 당시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릴 수밖에 없었던 나는, 말씀보존학회 직원과 상담하던 중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역 교회들을 소개받았다. 그리하여 2023년 봄부터 광주성경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침례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교제하고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해 주셨다.<br/><br/>둘째,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일례로, 광주성경침례교회에 출석한 지 두 달쯤 되어 “성경대로믿는사람들의 여름수련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 가지 유익을 얻고 믿음을 성장시키고 싶어서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수련회 일정에는 성경암송대회가 있었고, 주변 성도들로부터 그 암송대회에 참가해 보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성경은 암송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기에 뿌듯한 마음과 알 수 없는 기쁨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직업 특성상 다른 동료 직원이 대리 근무를 해 줘야 연차를 쓸 수 있었다. 이 난감한 상황에 길을 열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대신 근무를 해 줘서 여름수련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아시고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br/><br/>셋째,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거듭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어느 날, 나는 광주 송정역 근처를 걷고 있었다. 나이 많은 노숙자가 길바닥에 앉아 배고프니 먹을 것 좀 달라고 했다. 전도지가 없었지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잘됐다고 생각하며 먹을 것을 사 주고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비록 그 혼을 이겨오지는 못했지만, 그날을 계기로 언제든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지를 항상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암송대회에 참가하려고 말씀을 암송했던 일이 큰 도움이 되어, 이제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성경이나 전도지가 없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<br/><br/>구원의 기쁨을 만끽하며 지내던 중,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될지를 알기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최소한 가족들과 지인들은 지옥에 가지 않도록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나를 낳아 길러 주신 어머니를 구령하는 것이 이 땅에서 자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복음을 받아들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구주로 믿고 구원받았다. <br/><br/>가족과 지인을 구령하는 일은 경남 김해에 사는 동생에게로 이어졌다. 가던 날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동생이 일하고 있는 회사로 찾아가 잠깐 나오라고 했더니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은 채로 나와 내 차에 탔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복음을 전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것을 마음에 진심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더니, 동생이 대답했다. “쉽네요?” “그럼, 진심으로 믿느냐?” “네, 믿을게요.” “그럼, 믿겠다고 기도하자.” “네.” 동생은 영접 기도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서 두 눈을 감고 내가 먼저 기도하기를 기다렸다. 동생의 그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영접 기도를 마치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 알려 주며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가족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권유하며 전도지를 종류별로 몇 장 주었더니 아내에게 복음에 대해 말은 해 줘야겠다며 속주머니에 챙겨 갔다. <br/><br/>그 뒤로 같은 지역에 사는 형을 오랜만에 만나 복음을 전했다. 형은 복음을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형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던 중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복음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지인도 있었고,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에 대해 전할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전도지를 찍은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내며 복음을 전했는데, 30분 후에 구원받았다며 답장을 보내오기도 했다. 복음의 능력으로 가족과 친구들이 구원받는 것을 목도한 나는, 이내 직장에서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저 단순히 복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혼을 이겨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런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는지, 직장 동료들의 혼을 이겨올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알지 못하고, 바른 교회를 통해 바른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지금도 여전히 거짓 교리를 따르며 헛된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면서 봉사하고 교인들을 섬기며 선을 행하다가 죽으면 하늘나라에 간다고 배웠으니, 열심히 그렇게 노력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제까지는 잘 믿다가 오늘 배교하고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배웠으니, 어떻게든 지옥을 면해 보려고 노심초사하며 목사의 말에 맹종하면서 육신적인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br/><br/>이제 나는 해병대에서 받았던 고강도의 특수훈련 경험을 생각하며, 살아 있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으로 훈련받기 위해 성경을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하늘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3 Dec 2025 10:35:3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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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주님과의 첫사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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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 모두라. 이는 내가 그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더라. 이것이 노아의 내력이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창 6:5-9).<br/><br/>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덕분에 책장은 소설책으로 가득했고,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영화를 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그러나 정작 성경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성경 옆에 홈이 파진 곳들에 붙은 파란 스티커와 빨간 스티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구원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구원의 확신도 잊은 채 방황하며 살고 있었다.<br/><br/>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게 되면서 접한 이름 “노아.”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품는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하기만 할 뿐일 때, 자기 홀로 믿음을 지켰던 한 사람 “노아”의 이름이 내 마음속에 깊이 들어왔다.<br/>노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검색했다. 누나가 얼핏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올바른 성경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검색 엔진을 돌리자 최상단에 “한글킹제임스성경”과 “흠정역”이 보였다. 당시 나는 붕어빵도 팥이 들어간 붕어빵만 먹고, 식당에 가도 대표 메뉴만 먹었기 때문에 성경도 이왕이면 “오리지널” 성경을 읽고 싶었다. 흠정역이라는 말이 “원조”는 아닌 것 같아서, 다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찾고 찾다가 말씀보존학회의 온라인 서점을 통해 성경을 구입하고 “노아”의 이야기를 읽을 생각에 설레었던 그날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br/><br/>그 두꺼운 성경 속에서 나는, 노아라는 인물을 찾기 위해 첫 번째로 마태복음을 펼쳤다. 하지만 그곳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꿋꿋이 읽어 나갔지만, 여전히 노아는 찾을 수가 없었다(마태복음 24장에 노아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그때는 모른 채 지나갔다). 어느새 나는 사복음서를 모두 읽었고, 로마서와 잠언까지 읽게 되었다. 궁금했던 노아의 이야기 대신,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br/><br/>나의 일상은 점점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성경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부산성경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성경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더니 유튜브 설교를 추천해 주었다. 그때 들은 설교가 “죄와 회개”였다. 나는 잠잠히 앉아 설교를 모두 듣고는 충격에 빠져 멍하니 한참을 있었던 것 같다. 잠시 후 곧바로 일어나 냉장고에 있던 술을 모두 꺼냈다. 맥주와 먹다 남은 와인과 아직 마개조차 따지 않고 아껴 둔 와인들을 모두 꺼내 놓고 보니 참 많기도 했다. 나는 싱크대에 술을 모조리 버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회개”라는 것을 했던 것이다.<br/><br/>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주일에는 부산성경침례교회의 인터넷 생방송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씩 기도도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예배 중에 기도하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있었고, 세상과는 그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누나가 보내 준 전도지와 책자들 덕분에 직장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밤에는 산책을 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도지를 나눠 주기도 하고, 몇 명의 혼이 구원받는 것을 목도하기도 했다. 나는 또한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외로움과 공허함만 가득했던 내 혼은 어느새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바로 내가 주님께 느낀 “첫사랑”이었다. <br/><br/>어느 순간부턴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던 차, 누나는 서울에서의 일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조언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인터넷 설교를 듣다가 마침 짐 엘리엇에 관한 예화를 듣게 되었다. <br/>“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 짐 엘리엇<br/>나는 노아를 발견했을 때와 같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곧바로 사표를 내고, 짐을 싸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br/><br/>부산성경침례교회에 방문하여 맨 뒷자리에 앉아 설교를 듣게 된 첫날, 설교의 주제는 “십자가”였다. 설교를 듣던 도중, 나는 이제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도 될 “마지막 영접 기도”를 드렸다. 그리하여 21년 동안 불안정하기만 했던 구원의 확신을 비로소 갖게 되었다. 이를 위해 누나가 오랫동안 눈물로 기도해 주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누나가 무릎 꿇고 드린 중보기도의 힘이 나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설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br/><br/>나는 “죄인”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 “죄인”이라는 단어는 마치 내 이름처럼 자연스러워 어떤 위화감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가셨고, 자신의 이름으로 삼으시더니 나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주셨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br/><br/>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베풀어 주신 자비와 은혜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그리고 사랑의 빚을 진 누나에게도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이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통해 얻은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br/>“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다.”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은 나에게 삶의 의미를 알게 해 준 책이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성경은 내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이 한 권의 책이 없었다면 나는 비참했을 것이고, 내 인생은 매우 불행했을 것이다. 또 외롭고 공허했을 것이다. <br/>이제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주님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 또 내가 살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귀한 선물을 당신도 받지 않겠는가!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5 Nov 2025 01:34: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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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비로소 갖게 된 “진리 안의 평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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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초등학교 2학년이 막 됐을 무렵, 아버지가 직장에서 동남아로 파견되시면서 온 가족이 말레이시아에서 지내게 되었다. 거기서 주중에는 미국 국제학교에 다니며 미국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 따라 공부했고, 토요일에는 한인 학교에서 한국 교육 과정에 따라 공부했다. 한인 학교 수업이 끝날 때면, 한인 교회로 아이들을 태워 가려고 학교 앞에 버스가 서 있곤 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나와 남동생에게 수업을 마치고 한인 교회에도 다녀오라고 하셔서 난생처음 교회에 가 보았지만, 내가 받은 첫인상은 “밥이 맛없고, 재미없다.” 정도였다. 한마디로 시시했다. 어릴 적 교회에 대한 기억은 그것이 전부이다.<br/><br/>말레이시아에서 5년을 보낸 뒤 온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교회에 또다시 발을 들인 것은 대학생 때였다. 대학 입시 때 알게 된 친구가 “외국인이 많이 오는 영어 예배”에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관심이 생겨서 따라간 곳은 서울 이촌에 있는 온누리교회였는데, 영어 예배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던 터라 어릴 적 외국에서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영어 예배 찬양 팀에 참여했고 점차 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성경 공부 모임”의 그룹장도 하게 되었다. 성경적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에도 교회 생활에 빠져드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br/><br/>이후 첫 직장에서 입사 카드의 “종교란”에 얼떨결에 “기독교”라고 적었다가 신우회 총무라는 직책까지 맡으면서,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크리스천”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다. 강남 지역의 직장인 선교회에도 합류하면서 “진정한 크리스천에게는 직장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가는 곳이므로, 직장 동료들에게 전도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에 따라 “사영리 전도지”를 가지고 나름대로 열성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br/><br/>“연민아와 점심 약속을 잡으면 전도를 당한다.”라는 소문이 떠돌 정도로 겁도 없이(?) 잘못된 사영리로 복음을 전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그때 내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치러 주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경기도 안양에 있는 한 작은 침례교회 목사와 성경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전에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색다른 내용을 배웠다. 그의 가르침을 더 배우고 싶어서 온누리교회를 충동적으로 떠나 그 침례교회로 교적을 옮겼다. 그동안 영어표준역(ESV)과 신국제역(NIV) 같은 영어 성경으로 공부해 온 터라 한국어 성경으로 공부하는 일에 남다른 재미를 느꼈다. 그 목사도 멀리서 오는 나를 예뻐해 주었고, 더 깊은 진리가 있을 것 같아서 자그마치 8년이나 그곳에 출석했다.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목사는 침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행위 구원론자였다. 그의 잘못된 구원관을 처음 접했을 때는 너무나 생소했던 탓에 두려움마저 일었다. 당시에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는” 법을 전혀 몰랐기에 나름대로 밤낮 성경을 뒤지고 파헤치며 그 근거를 찾으려 했는데, 그러다 사도행전, 사복음서,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침례”와 관련된 구절들을 읽으면서 결국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br/><br/>안양의 교회에 다니면서 빠진 큰 딜레마는 “전도”였다. 전에는 사영리로 예수님을 전한 후에 상대가 영접 기도를 하면 그나마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라도 가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침례까지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아무리 봐도 담임목사나 전도사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대신 외부에서 누군가가 관심을 보이면 일단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배운 거짓 교리로 인해 복음 전하기를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라는 잘못된 가르침까지 더해지면서, 신약 시대를 사는 나도 사도 바울의 신약 교리보다는 율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믿게 되어 구약에 얽매이는 신앙관을 갖게 되었다.<br/><br/>그 침례교회는 방언 기도, 방언 통변, 성경 공부, 경배와 찬양, 예언, 치유, 은사, “영안 열기” 등의 “신령한” 신앙생활을 복음 전파보다 더 강조했다. 방언으로 하루에 길게는 3,4시간까지 기도하고, 마귀가 보여 주는 신기한 “영계”를 보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사람의 속과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 훈련도 받았다. 찬양대 속에 서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경배”의 “통로” 역할도 8년 이상을 했다. 1년에 3번씩 그 교회에 방문하는 미국 은사주의 목사의 영어 설교를 한국어로 통역했고, 그 목사가 다른 “여자 목사”에게 안수해서 그녀를 방 건너편으로 “날려 보내는” 광경도 부지기수로 목격했다. 일단 “신령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성령님의 역사로 착각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br/><br/>불행 중 다행으로 그곳에 출석하는 내내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참된 진리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나는 그 교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는데, 특히 『그분은 성령으로 또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마 3:11)와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노라.』(고전 1:17)와 같이 서로 충돌하는 구절들은 나를 더욱 깊은 고뇌에 빠뜨렸다. <br/><br/>나는 견디다 못해 구원에 관한 진리를 알게 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을 계기로 담임목사와 전도사들의 실체를 보게 되었고, 그 후로도 여러 일이 터지면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짜 목사에게 속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움직이긴 했지만, 진리의 지식이 없었기에 또다시 은사주의와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동네 교회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한국의 제도권 교회가 모두 배교했음을 알았고, 그 배교의 진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국 교계가 썩어 빠졌음을 낱낱이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는 그 동네 교회마저도 다닐 수가 없었다. <br/><br/>그 뒤로 교회 활동을 모두 접고, 알고 지내던 교인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주일이면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유튜브로 여러 설교를 들었으나, 평소 궁금하던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지,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지, 선택받은 소수의 ‘성화된’ 사람만 휴거되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그것들을 깨닫게 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행위 구원이 마음에 이미 깊게 뿌리내린 터라 유튜브에서 간간이 추천하는 세대주의적 설교들은 모조리 무시했다. 일례로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OSAS”(Once Saved, Always Saved)라는 제목이 붙은 설교는 마치 하나님의 구원을 장난으로 여기는 것만 같았다. “구원을 너무 쉽게 얻으려는 거 아닌가? 구원이 우스워 보이나? 사람이 죄를 짓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구원을 영원한 것으로 가르치다니!” 이처럼 나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에 코웃음을 쳤다. <br/><br/>하루는 “한 번 받은 구원은 절대로 잃을 수 없다.”라는 제목의 영미권 설교가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추천되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실없는 내용인지 확인해 보려고 설교들을 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설교자가 세대주의에 따라 구원에 관해 가르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또 성경적으로 더 없이 옳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각 세대를 향해 갖고 계신 하나님의 경영 방침이 다르다는 것과, 사도행전과 같은 과도기적인 책을 잘못 해석했다가는 이단 교리에 이른다는 점도 일목요연하게 알려 주었다. 관련된 근거 구절들은 내 안에 깊숙이 박혀 있던 행위 구원론을 뿌리째 흔들고도 남았다. 게다가 나는 왜 &lt;킹제임스성경&gt;만이 올바른 성경인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br/><br/>그로부터 몇 달 동안, 나는 미국 목사들이 전하는 세대주의 설교만을 들었다. 그러면서 “피터 럭크만 목사”의 이름도 셀 수 없이 접했다. 나는 그토록 많은 시간을 성경 공부에 쏟았지만, 단 한 번도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한(딤후 2:15) 적이 없었다. 다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영적으로 적용하는, 그릇된 행위 구원 교리로 자신을 수년간 옭아맸을 뿐이다. 하지만 세대적 진리를 알게 되자 죄를 지을 때마다 구원을 잃어버렸을까 봐 벌벌 떨며 지냈던 세월이 실로 헛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렇게 깨닫고도 성경침례교회에 곧바로 출석하지는 않았다. 혼자 주일을 보내 온 시간이 1년 반을 넘기면서 나름의 안락함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는 내가 설교를 들을 때마다 “지역 교회에 나가라”는 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이미 여러 종파의 교회에 출석하며 겪은 고통을 다시 반복하게 될까 싶어서 지역 교회에 속하는 것이 두렵기만 했다. <br/><br/>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에게 지역 교회에 출석하는 일에 관해 꾸준히 찔림을 주셨다. 게다가 그토록 찾던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는 교회가 있음을 알게 된 이상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주일에 굳게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당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탓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교회에 갔다. 그때까지 내가 다녔던 교회는 온누리교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인터넷에 “이단”으로 분류된 성경침례교회도 작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건물이 커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 안에서 예배드리는 300명 정도의 성도들을 보고서 한 번 더 놀라게 되었다. 진리를 찾아서 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면서도, 더 일찍 찾아오지 않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br/><br/>그날 박승용 목사는 죄를 책망하는 말씀을 강력하게 선포했는데, 한동안 홀로 신앙생활을 하며 죄에 대해 느슨해져 있던 내 양심은 마치 뿌려진 소금에 고통스러워하는 미꾸라지처럼 꿈틀댔다. 행위 구원론에 속았던 나는 자기 행위로 의로움의 제단을 쌓아 죄를 상쇄시키려 한 카인과 같은 죄를 늘려 왔던 것이다. 설교를 들을수록 마음이 찔려서 괴로웠지만, 바른 말씀의 자리로 나온 것이 참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거듭 생각했다. 이송오 목사가 하늘나라로 가신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더 일찍 오지 않은 것을 더욱더 후회했다.<br/><br/>성경침례교회에 다니면서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평안”이다. 지금은 전에 가져 본 적이 없는 “진리 안에 거하는 평안”을 누리고 있다. 설교를 듣다 보니 바른 진리 위에 서 있는 성도만이 갖는 확신도 생겼다. 성경침례교회의 설교는 “이 말씀은 이런 뜻일 겁니다,” “그 말씀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와 같은 뜬구름 잡는 설교가 아니라, “이 말씀은 이 뜻이고, 그것은 교회가 아닌 유대인에게 적용됩니다,” “그 말씀은 교회에게 적용됩니다”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 전하기 때문이다. <br/><br/>이전에 보던 변개된 성경에는 믿음과 행위를 오가는 모순이 가득했다면, 지금 내 손에 들린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에는 한 구절 한 구절이 하나님께서 각 시대와 대상에 따라 주신, “손에 잡히는” 명확한 말씀들뿐이다. 성경침례교회는 바른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행하는 교회이기에, 그야말로 구령에 목숨을 건다. 이런 교회에서 배우고 성장하다 보니 나 역시나 구령의 열정을 갖게 되었다. 비진리에 사로잡혀 소위 “신령한 은사”를 개발하는 데만 치중하는 교회들과 달리, 하나님의 뜻을 성경대로 실행하는 성경침례교회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구령”에 두기에 복음 전파에 집중한다. 미혹되어 긴 시간을 허송하며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던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신 하나님, 그래서 바른 말씀과 바른 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24 Sep 2025 11:43: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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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부침개 전도”에서 “구령”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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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당신이 보는 성경은 사탄이 변개시킨 성경이야, 사탄의 경전이라고!” 이것은 남편이 성경침례교회에 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제도권 교회에 남아 있던 나에게, 내가 보던 개역성경에 관해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자그마치 20년이 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이라고 철석같이 믿고서 보아 왔던 개역성경을 사탄의 성경이라고 모독(?)하는 말을 들으니, 게다가 내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가 “성경침례교회는 100% 이단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이 교회 저 교회 쫓아다니던 이 형제가 결국은 이단에 빠졌구나.” 하는 생각에, 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 버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br/><br/>그때부터 3년 동안 우리 집에서는 처절한 영적 전쟁이 계속되었다. 낮에는 각자가 떨어져서 일했지만,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오면 새벽까지 언쟁이 그치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몸싸움까지 하곤 했다. 아이가 깨어 있을 때는 잠잠하다가, 잠이 들면 방문을 잠그고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언쟁을 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내 몸은 점점 지쳐 갔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옥 같은 집안 분위기에 눈물도 퍽 많이 흘렸다. 그러다가 교회에 가면 이단에 빠진 남편을 위해서 교인들과 합심기도를 하였고,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모두들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br/><br/>하지만 남편은 너무도 완강했다. 핸드폰으로 내가 다니는 교회와 담임목사에 대해 비판하는 문자를 이틀이 멀다 하고 보내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교회의 목사 말에만 귀를 계속해서 내준 상태에서, 당연히 남편이 보내온 문자는 감정의 골만 더욱 깊게 만들 뿐이었다. 당시 나의 영적 상태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딤후 4:3)라는 말씀 그대로였다.<br/><br/>그렇게 2년 정도 남편과의 치열한 싸움으로 지쳐 갔지만, 한편으로는 성경침례교회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일 나가고 없는 사이에 책장에 놓여 있던 전도지를 살펴보았다. 학창시절에 네비게이토에서 복음 비슷한 내용을 들은 기억이 나서, 복음의 내용만큼은 이단이 아닌 걸 알고는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남편이 언제부턴가 온라인으로 신학을 공부하였는데, 신학 강의를 들을 때 일부러 나 들으라고 소리를 크게 틀어 놓았기에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었는데, 기왕 듣는 거 무엇이 틀렸는지 꼬투리를 잡으려고 귀 기울여 보았지만, 잘못은 찾지도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다. <br/><br/>내가 다니던 교회는 토요일마다 교회 앞에서 부침개를 부쳐 주고 주보도 나눠 주며 전도를 하곤 했다. 이를 위해 버스를 타고서 교회로 가다 보면 신도시 사거리가 있는데, 남편은 그곳에 서서 매주 토요일마다 마이크를 잡고 설교를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차 안에서 바라보며, 가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부침개를 부쳐 주며 교회에 나와 보라고만 하는데, 형제는 전도지를 나눠 주며 구원을 받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왠지 부끄러움이 밀려 왔다. 남편이 토요일이면 빠짐없이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이단에 빠졌다는 생각이 차츰차츰 옅어져 갔고, 남편에 대한 신뢰 또한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br/><br/>그 즈음에 한번은 “이단연구소”란 곳에 전화를 걸어 성경침례교회가 왜 이단이냐고 물었더니, 교단에서 그렇게 이단으로 분류해서 이단이라고 하긴 하지만 자기들도 뚜렷한 이유를 모르겠고, 아직까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아 지켜보고 있다면서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출석하는 교회에 대한 반감이 사라졌고, 나도 한번 출석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뚜렷한 명분을 찾지 못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나를 부르더니, “그렇게 계속해서 나하고 평행선을 달릴 거라면 차라리 이혼합시다.”라고 폭탄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나는 다니던 교회에서 나올 계기를 찾지 못해서 망설이던 터였고, 더 이상 미루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나도 진작부터 나오려고 했었는데 명분이 없었어요. 당신 말을 듣고 그 교회에서 나올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결단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br/><br/>남편과 함께 성별한 아들과 셋이서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성경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첫날, 내 눈에 들어온 모습들이 기존 교회들과 너무나 달랐다. 이송오 목사는 가운도 입지 않은 채 평범한 장의자에 앉아 있었고, 찬양대원들도 가운을 입지 않았으며, 강대상 주위에서 늘 보았던 꽃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 규모의 교회라면 헌금 봉투의 종류가 적어도 10가지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고작 한 종류만 있어서 신기했다. 예배 시간에 울려 퍼지던 성도들의 찬양 소리도 기존 교회와는 너무도 다르게 힘 있고 우렁찼다. 무엇보다 오후 예배 때 구령일지를 읽으며 구령 보고를 하는 시간은 그동안 다녀 보았던 어떤 교회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부흥회 기간 내내 부흥사가 헌금 봉투를 양손 가득 쥔 채 일일이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 제목을 읊어 대는 모습만 보아 오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성경침례교회에서는 복음을 전하여 혼들을 이겨온 결과를 보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br/><br/>무엇보다 성경침례교회는 교단 교회들과 다르게 가르치는 점들이 너무나 많았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기존 교회들에서는 성경 공부 교재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 전부인데, 성경침례교회는 성경을 직접 펼쳐서 말씀 한 절 한 절을 가르치고 있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성경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성경 공부도 하고 싶어졌다. 요한계시록은 그동안 너무 어렵다고만 알아 왔고, 또 함부로 읽으면 안 된다고 배워 왔기에 읽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는데, 말씀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실제로 믿게 되었고, 또 영원에 대한 소망도 갖게 되었다. <br/>남편과 함께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순회설교를 하면서 구령의 첫 열매를 거두었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첫 열매가 복스럽게도 “쌍둥이”였기 때문이다! <br/><br/>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개역성경을 바른 성경으로 굳게 믿고 있던 때에, 남편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바른 성경이라고 주장하자 성경침례교회는 돈을 벌려고 성경을 펴낸 것이라고 반박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성경침례교회에 출석하여 이송오 목사의 설교와 성경 공부 강의를 듣고 또 성경을 읽다 보니, 오히려 정반대로 교단 교회 관계자들이 돈에 눈이 멀어 이 성경 저 성경을 펴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br/><br/>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통하여 구속받고(엡 1:7, 골 1:14),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로 가르치는 신실한 목자가 있는 바른 신약 교회에서, 신실한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린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8 Aug 2025 16:30:1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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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코로나로 인해 만난 진리의 말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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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지난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이전에 다니던 성결교회에서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늘 듣던 식상한 설교가 전혀 은혜롭지 않았다. 그래서 진리에 갈급했던 나는 유튜브 설교를 찾다가 미국의 모 교회 목사의 설교 영상을 듣게 되었는데, 구원받는 방법이 시대마다 다르다는 내용의 설교가 새롭게 와 닿았다. 그렇게 몇 번의 설교를 듣던 중 머리가 하얗고 체격이 좋은 목사의 설교가 계속 올라와서 한번 들어볼까 하며 듣게 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이송오 목사였다. 나는 이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바른 성경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광주에 살고 있는 오빠와 여동생에게 복음을 전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광주성경침례교회의 김인섭 목사의 설교를 듣고서 그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당시 여동생은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감사하게도 김인섭 목사가 직접 방문해서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복음을 전했고, 두 사람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받았다. 그 후 나는 김 목사의 소개로 2021년 1월 3일 처음으로 원주성경침례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이전의 성결교회에서 성별하지 않은 상태였다. <br/><br/>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5월 즈음, 원주성경침례교회의 서경일 목사가 성경 공부를 제안했는데, 마침 바른 성경을 알고 서 목사와 교제하고 있던 최상진 형제, 이명숙 자매 내외와 함께 6개월 동안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교회 시대에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엡 2:8,9)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오늘날의 교단 교회들이 친카톨릭 교회들이며 배교했다는 것과 한글개역성경이 36,000군데나 변개되고 신약에서만 2,200단어 이상이 삭제된 가짜 성경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바른 성경적 교리를 통해서 새롭게 다가오는 진리의 지식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그동안 잘못된 교리에 속아 무지와 어리석음 속에 소중한 시간과 힘을 허비해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하기만 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교회로 옮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나의 성별을 위한 원주성경침례교회 성도들의 기도가 계속되었다. <br/><br/>하지만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내가 이상한 이단 교회에 빠졌다며 가족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남편과 아들, 두 딸과 사위의 반대가 있자 집안 분위기는 냉랭해졌고, 나를 둘러싼 영적 전쟁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가족을 통해 나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공격에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항상 기도로 위로와 힘을 갖게 해 준 원주성경침례교회의 지체들이 무척이나 고맙다. 덕분에 어려움을 잘 이겨 내었고, 이제는 기쁨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원주 지역에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지역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최종권위로 믿기 전에는 나만 잘 믿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었다. 가족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간절한 마음이 없다 보니 남편과 자녀들에게 육신적으로 대하기 일쑤였고, 내가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는 은근히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했다. 나는 열정이 없는 이들과 가족을 속으로 정죄하며 모든 것을 내 기준대로 하기를 원했다. 돈을 사랑했기에 물질에 자유롭지 못했으며, 노후가 걱정되다 보니 나보다 더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나 정도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br/><br/>그러나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믿은 후 바른 성경과 진리의 지식에 내 모습을 비추어 보니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자기 의가 얼마나 강했는지, 또 얼마나 믿음이 작은 자인지를 알게 되어 한없이 부끄럽기 시작했다. 자백할 죄들이 많았던 나에게 말씀을 통해 무지를 일깨워 주신 주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혼들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하셔서 가방마다, 주머니마다 전도지를 가지고 다니며 기회가 될 때 미용실과 슈퍼마켓에서는 물론, 정수기 필터 교체 기사, 택배 기사, 전자 제품 설치 기사 등 집으로 찾아오는 모든 잃어버린 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심에도 감사를 드린다. 진리에 눈을 뜬 뒤로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며 구령하는 삶이 내게 찾아온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한 혼이라도 더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기억하며 복음을 전한다. 구령을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속상하기도 했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전도지를 나눠 주는 일을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강단의 설교에 위로를 받았다. <br/><br/>아침에 눈뜨면 주님과 교제하고 찬송을 부른다. 마음에 와 닿는 가사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평강과 기쁨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라남도 나주에 계시는 친정 엄마에게는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매일 3장씩 전화로 읽어 드리고 있으며, 남편과 자녀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불쌍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의 때에 성별케 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물질과 돈을 대하는 태도도 변화되어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며,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함으로써 염려와 걱정 대신 평안과 은혜를 누리고 있다. 과거에 지녔던 썩어 없어져 버릴 이 땅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것들에 소망과 가치를 두며 남은 생을 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br/><br/>『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 또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고전 15:10). 이 말씀 그대로 지금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으로 인도해 주시고 진리에 눈을 뜨게 해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른 성경과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지역 교회를 몰랐으면 어쩔 뻔했나 싶고, 마귀에게 여전히 속고 살았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말씀을 공부하는 시간이 즐겁고, 진리의 지식을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이 날로 더해 감에 신이 난다. 주님께서 부르실 그날까지 복음을 전하며 구령하는 일에 나의 몸을 드리고 싶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허락하실 면류관과 상을 기대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승리로 마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무장하고 주님께 더욱 밀착하여 늘 깨어 기도할 것이다. 더불어서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가운데, 곧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될 날을 간절히 고대할 것이다.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3,14).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8 Jul 2025 14:57: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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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게임 중독자에게 찾아온 두 번의 입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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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용률이 놀라운 증가 추세를 보이던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한번은 일곱 살 즈음 게임을 많이 해서 아버지가 화를 내시며 게임 CD를 부러뜨려 버린 기억이 있다. 게임 중독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나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운동하는 것보다 게임이 더 좋았다. 총게임, 액션게임, 레이싱게임, 시뮬레이션게임, 스포츠게임 등 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한 온라인 게임들을 즐겼다. 내성적인 성격에 게임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 속 친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곤 했다. 학창 시절 필자는 인간관계가 넓지 못했고, 몇 안 되는 친구들마저도 모두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뿐이었다.<br/><br/>게임 중독은 중고등학생 시절을 거치면서 더욱 심해졌다. 게임 외에는 모두 따분하게 느껴졌다. 수업 시간에는 졸거나 게임만 생각하기 일쑤였고, 쉬는 시간에는 휴대폰으로 게임을 즐겼다. 게임은 나에게 “재미, 명예, 부”라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들뿐인 인생과 다르게 게임은 너무도 흥미롭고 재밌었다. 나는 게임 속에서 꽤나 유명했고, 100명이 넘는 유명한 클랜(온라인상의 모임)을 운영하기도 했다. 1,500명이 접속하는 게임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게임 속의 레벨(캐릭터가 강한 정도)이 높아서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보고 존경했다. 게임 속에서는 원하는 것도 어느 정도 마음껏 살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채울 수 없는 욕구를 비록 가상의 공간이지만 채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의 전부였다.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내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현실의 나는 더욱 비참했다. 사회성도 학교 성적도 점점 더 바닥으로 가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나름 공부를 시켜 보려고 비싼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내시기도 했지만,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렇게 학창시절의 모든 것을 온라인 게임에 바치면서 살다가 졸업하게 되었다. 졸업하고 나서는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고, 일단 군대부터 가야겠다는 생각에 지원해서, 스무 살이 되던 해 5월에 입대했다. 이것이 내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입대였다. 군대에서는 물리적으로 게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게임으로부터 멀어졌다.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대장이 같은 생활관에 있는 선임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 너무 말랐는데 운동 좀 시켜라.” 나는 그때부터 헬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선임이 시키는 대로 꾸준히 하다 보니 몸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몸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고, 헬스가 점점 재밌어졌다. 선임이 전역한 뒤에도 꾸준히 운동을 했다. <br/><br/>시간이 흘러 23살이 되었다. 필자는 한창 몸 만드는 운동에 매료되어 있었고, 자연스럽게 보디빌더와 헬스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다. 그래서 운동 자격증을 따는 학원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 학원에서 만난 형으로부터 공짜로 헬스를 가르쳐 준다는 체육관 관장을 소개받았다. 전문적으로 헬스를 배워 본 적이 없던 탓에 귀가 솔깃했고, 꽤 먼 거리였지만 찾아가서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돈을 전혀 받지 않고 열심히 가르쳐 주었으며, 보디빌딩 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관장은 운동이 끝난 뒤에 종교 이야기를 하곤 했다.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본 적 있느냐?”라든지, “하나님을 믿느냐?”와 같은 질문을 했고,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나는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친구한테는 “종교는 나약해서 믿는 거고,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거야.”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심이 담긴 관장의 말에 믿음이 갔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관장은 “성경을 가르쳐 줄 사람을 소개해 줄 테니 성경 공부를 해 볼 생각이 있느냐?”라고 권유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br/><br/>성경 공부는 판교에 있는 한 교회에서 진행되었다. 한 명의 성경 교사 밑에서 학원에서 만난 형과 함께 매주 한 시간 정도 성경을 공부했다. 내가 배운 것은, 성경은 문자 그대로 보아서는 안 되고, 비유를 풀어냄으로써 그 안에 담긴 뜻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성경 교사는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으며, 비유를 들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시더라.』(마 13:34)라는 구절을 근거로 내세워 성경을 보는 관점에 대해 알려 주었다.<br/><br/>예를 들어 베드로가 바다에서 낚은 물고기는 문자 그대로의 물고기가 아니라고 했다. 실제 물고기의 입에서 동전이 나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는 실제 열매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빵 일곱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약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고, 이 빵은 먹는 빵이 아닌 영적인 말씀의 빵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 외에도 태양이 멈춘 사건, 홍해가 갈라진 사건, 몸의 부활 등 성경 곳곳에서 일어난 기적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과학적으로나 이치로 보아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지니고 있는 비유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 공부의 핵심이었다. 나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가기 시작했다.<br/><br/>그들의 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가 2018년 1월이었다. 당시 어떤 여자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별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사람들은 착해 보였고, 목사가 전하는 말씀 또한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목사가 와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목사는 한때 성범죄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명석 교주였기 때문이다. 그는 2018년 2월 중순에 10년간의 복역을 모두 마치고 나왔다. 나는 그해 1월부터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교회도 그 즈음에 다니기 시작했기에, 그 교회의 지도자가 정명석인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 그 어떤 사람도 정명석에 관해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br/><br/>그 후로 인터넷상에 떠도는 수많은 기사를 보긴 했지만 나는 그가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가 전한 말씀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곳 사람들도 순진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도 내가 다니는 교회가 정명석의 교회인 것을 아시고 몇 차례 말리셨지만, 나는 그때마다 선생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면서 어머니의 권고를 뿌리쳤다. 어느새 나는 매 주일 교회에 빠지지 않고, 각종 행사에도 빠지지 않는 종교인이 되어 있었다.<br/><br/>그렇게 JMS에 다닌 지 1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의 일이다. 새해가 되면 다들 무언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2주도 채 되지 않아 사고가 터졌다. 나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작은 중고 피아노 가게를 운영하신다. 때때로 아버지와 함께 피아노를 운반하는 일을 하곤 했고,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피아노를 운반하고 있었다. 트럭에 피아노를 싣기에 앞서서 손수레 위에 잠깐 세워 두었는데, 갑자기 피아노가 넘어지고 말았다. 잠시 한눈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피아노가 발가락을 내리찍기까지 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220kg이나 나가는 피아노는 나의 엄지발가락 정중앙을 내리찍었다. 그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병원에서 거의 두 달 정도를 지내게 되었다. <br/><br/>병원에 있으면서 인생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내가 다니는 교회와 정명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인터넷을 뒤져 가며 그가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 샅샅이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와 그의 교회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고, 이제 그만 그곳에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여전히 교리적으로 풀리지 않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 그 부분에 관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도 도움을 줄 만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JMS 탈퇴자들이 만든 카페”에 접속하여 질문과 함께 글을 올렸다. <br/><br/>그러자 어떤 사람이 글을 보고서 연락을 해 왔다. 인천 구치소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정명석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기본적인 전제로 깔면서, 성경의 권위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직접 성경을 펼쳐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발가락이 온전히 낫지 않았던 터라 그가 나의 집 가까이에 있는 카페까지 와 주었다. 그는 먼저 꿈이나 계시 등의 신비주의 신앙의 문제점부터 시작하여 과학과 철학적인 것들, “비유론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며 성경을 근거로 JMS의 오류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그런 다음 데살로니가후서 2:9-12을 보여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죄인들의 참혹한 결과와 복음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롬 3:10)라는 말씀을 제시했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말씀을 보는 순간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그는 심판과 지옥에 관해,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설명했다. 그 순간 나는 그 모든 사실을 마음으로 믿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겠느냐는 말에 바로 그 자리에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겠다고 입으로 고백했다. <br/><br/>그는 변개된 성경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구절들과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구절(벧전 3:18), 과학에 대한 경고를 없애 버린 구절(딤전 6:20) 등을 내가 가진 성경과 비교하며 설명해 주었는데, 그때 내가 가진 개역성경이 변개된 것이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진짜 성경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른 성경을 믿고 실행하는 교회에 빨리 가고 싶었지만, 발가락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곧바로 출석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 기간에는 그 형제가 몇 차례 직접 찾아와서 성경을 가르쳐 주었고, 진리의 서적들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3월이 되었고, 발가락도 모두 나았기에 성경침례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인생에 찾아온 두 번째 입대였다.<br/><br/>교회에 다니다 보니, 교회에서 전임사역자로 일하면서 주님을 섬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교회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교회에서 일을 할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그리고 그해 9월 하나님께서는 바른 성경과 진리의 서적을 보급하는 말씀보존학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다음 해에는 강화도에 있는 크리스천 홈타운에 거주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다음 해에는 청년부에서 만난 자매와 결혼을 했다. 1년 뒤에는 아들을 주셨으며, 또한 둘째 아들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게임 중독자로 방탕하게 살았던 나를 부르고 쓰시는 것을 보면, 누구나 들어 쓰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그 사람이 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할 뿐이다(고후 8:12).<br/><br/>하나님께서는 내가 게임을 했던 이유인 “재미, 명예, 부”를 다른 차원에서 누리게 해 주고 계신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하다!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정녕,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살다 보면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을 겪게 되지만, 성경을 읽으면 그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정말이지 모든 상황, 모든 마음 상태, 모든 환경에 따른 적절한 성경 말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럴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성경 안에 다 있구나!” 『지혜가 루비보다 나으니 원하는 모든 것들이 그것에 비교될 수 없느니라』(잠 8:11). <br/><br/>게임의 재미와 말씀의 재미가 비교가 되겠는가? 게임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있고, 사람들은 그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즐긴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넘어서 천년왕국, 영원 시대에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에 비할 수 있을까? 또한 하나님을 섬김으로 얻게 되는 명예가 있다. 이 명예는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복음을 전해서 죄인들이 회개할 때 하늘나라에 있는 수많은 천사들이 기뻐한다고 말씀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의 면전에 기쁨이 있느니라』(눅 15:10). 하늘에 있는 수많은 천사들이, 회개하는 죄인과 그 죄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나를 응원한다! 이보다 더 큰 명예가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게임 속의 유명한 사람들 이름이나 아이돌, 영화배우, 학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 이름은 기억하신다. 심지어 내 이름은 하늘에 있는 생명의 책에 기록이 되어 있다(빌 4:3). 이 명예보다 값진 명예가 있을까? 또한 복음을 전하면 은을 쌓을 수 있고, 구령을 하면 보석을, 경배를 드리면 금을 쌓을 수 있다! 나는 정말이지 이 땅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내 부는 하늘에 쌓인다. 이보다 더 큰 부가 있을까? <br/><br/>하나님께서는 내 삶의 여정을 선하게 인도해 주셨다. 비록 사이비지만 JMS라는 “종교”를 접하게 해 주셨고, 그것을 계기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될 수 있게 인도하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 부름을 받았다(딤후 2:3). 내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른 성경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그 청년이 올바른 진리를 알 수 있었을까? 자신도 모르는 진리로 JMS를 바로잡고, 또 진리로 인도될 수 있었을까? JMS에서 나왔어도 주님을 얼마나 바르게 섬길 수 있었을까? 내가 누리고 있는 영적인 기쁨들이 과연 있었을까? 내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주님의 섭리에는 바른 성경을 통해 역사하시는 말씀의 능력이 있었다.<br/><br/>나의 왼쪽 엄지발가락에는 여전히 수술 자국이 남아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못생긴 흉터는 이따금 구원받기 이전의 내 모습을 기억나게 해 준다.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더러운 죄인이었으며, 방탕한 게임 중독자였는지, 또한 그런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의 생애에서 일으키신 사건들이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는지를 말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7 Jun 2025 10:23:2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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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진리를 알게 된 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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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내가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된 것은 바른 진리를 알게 된 후 느꼈던 충격들 때문이었다. 나는 1988년 1월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권신찬 목사 전도 집회 테이프를 듣고서 구원받았다고 여겼는데,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으로 그의 사위 유병언이 피의자 신분으로 도망 다니다가 야산에서 15억 원이 든 돈 가방과 함께 벌레 먹은 시체로 발견된 후로 구원파에서 나올 때까지 25년이나 헛된 종교 생활을 했다. 2012년 여름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처음 접하고서 유튜브와 럭크만 주석서를 통해 혼자 공부하다가 2014년 말경 성경침례교회에 정식으로 출석하여 온라인으로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 입학했던 내가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기까지 충격을 받았던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br/><br/>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복음을 전해서 구령하고 싶었다<br/><br/>2012년,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구령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마침 클라렌스 라킨 목사의 &lt;세대적 진리&gt;를 보던 중 마지막 페이지에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서적들이 소개된 것을 접하게 되었다. &lt;한글킹제임스성경&gt;, &lt;하나님의 나라와 천국&gt;, 피터 럭크만 목사의 주석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차츰 진리를 알게 되어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서 정식으로 성경을 공부했다. 공부하는 중에 그간 보아 왔던 성경들이 변개되어 고린도전서 15:2-4에서 복음이 삭제된 사실을 처음 알았다. <br/><br/>구원파에서는 일주일 집회 기간 동안 말씀을 깨달아야 믿을 수 있는데 못 깨달을 시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반면에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에는 복음이 너무나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로마서 10:9,10 말씀대로 마음으로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너무 쉽고 간단하게 구원받는다는 사실에 실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구원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수고를 들여 어렵고 힘들게 받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단번에 아주 쉽고 간단하게 구원을 받는다. 나는 이런 진리를 알고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거리설교와 구령을 하기 시작했고, 단 한 명의 혼을 놓고 기도했는데도 주님께서는 그보다 2,000배 이상이나 많은 혼들을 이겨오게 하셨다.<br/><br/>내가 알고 있던 예수님은 성경적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br/><br/>『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사 14:12) 나는 바른 성경에서 『루시퍼』라 불리는 사탄이 개역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뜻하는 계명성(morning star)으로 대체된 사실을 보고서 충격을 받았다. 요한계시록 22:16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새벽별』(morning star)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계신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멸망할 마귀의 이름으로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마귀의 자식들이 이렇게 성경을 변개시켜, 신약에서만 2,200단어가 삭제되고 성경 전체에서 36,000군데나 틀린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점을 알았을 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정말 진리가 없는 성경으로는 사탄의 정체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바른 성경으로 복음을 정확히 알고 난 후에 성경대로 영접 기도를 하고 침례도 다시 받았다. 예수님을 똑바로 알게 되자 과거에 받았던 침례마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나는 변개된 성경이 내 곁에 있는 것조차 혐오스러워 비교용으로 한 권만 남기고 10여 권 이상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br/><br/>영, 혼, 몸의 명확한 구분을 알게 되었다<br/><br/>변개된 성경들은 사람을 “영혼”과 “몸,” 즉 이분법으로 구분해 놓는다. 그래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영혼이 구원받는 것으로 안다. 창세기 2:7만 보더라도, 바른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몸(흙), 영(호흡), 혼의 3중 구조로 명확히 표현하고 있는데, 변개된 성경은 몸(흙), 영(생기), 영(생령)의 2중 구조로 표현하고 있다. 즉 영, 혼, 몸의 개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이 거듭나고 혼이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받고, 몸은 장차 예수님께서 공중재림하실 때 구속된다는 진리를 알았을 때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고 가슴이 뻥 뚫렸다.<br/><br/>자발적으로 거리설교와 구령을 하는 그리스도인들<br/><br/>구원파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일이라고 잘못 배운 것들을 쫓아다니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영적인 것들을 낭비했던지 진리를 알게 되자 정말 억울하고 분하고 미칠 것 같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구원파에서 거리설교 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바른 성경을 알고 바른 교회에 출석하자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거리설교와 구령을 하는 지체들을 보고 동참하면서 깨닫게 되었고, 지금의 나 역시 그들을 따라서 거리설교자이자 구령자가 되었다. <br/><br/>헌금을 공개하는 투명한 교회<br/><br/>성경대로 믿는 바른 교회에 와서 충격을 받은 또 한 가지 사실은 성경침례교회가 매월 초에 헌금 사용 내역을 교회 게시판에 공지한다는 사실이었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정말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교회들은 가짜 목사들을 통해 헌금을 거둬서 정직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비난이 두려워 공개할 수 없는 것이다. <br/>이전에 다녔던 구원파도 헌금을 걷지만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었다. 유기농 땅 사는 일에 교인들이 작정 헌금을 내고, 그 돈으로 땅을 사서 일부는 청초밭 영농조합 등의 조합명의로 하기도 했지만, 유병언이 설교에서 어떤 땅은 자기 자식들의 명의로 했다고 대놓고 얘기한 적도 있다. 그러나 전체 헌금 액수가 얼마인지, 또 그 헌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유병언 측근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성경대로 투명하고 정직하게 십일조와 자발적 헌금만 걷는 교회, 이것이 거짓 교회와 바른 교회의 차이이다. 성경침례교회는 십일조와 자발적 헌금 외에 작정 헌금이라든지, 건축 헌금, 기타 이상한 명칭의 헌금을 성도들로부터 걷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br/><br/>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적 스승들<br/><br/>이송오 목사와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 땅에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적 스승들이다. 바른 성경도 없고, 바른 교회도 없던 이 나라에 이송오 목사를 통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번역하게 하시고, 사도 바울 이래로 가장 향상된 성경적 계시를 담고 있는 피터 럭크만 목사의 주석서와 진리의 서적들을 그 바른 성경을 통해 번역하여 이 땅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두 분의 만남은 이 나라 교회사의 큰 분수령이자,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탄생케 한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지금은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그분들이 남긴 사역은 지금도 계속되면서 열매를 맺고 있다. <br/><br/>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 킹제임스성경신학교<br/><br/>성경침례교회에는 바른 복음이 있고,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일꾼들을 진리로 양육하는 교육 시스템이 존재한다. 바로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와 킹제임스성경신학교이다. 나는 두 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냐”고 의견을 물었고 둘 다 동의해서 큰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에, 작은 아들은 중학교 2학년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나는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 입학했다. <br/><br/>내가 25년 동안 세상 직장 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한 직장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을 다해 단 한 명의 혼이라도 주님께 이겨오는 것만이 직장을 다니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교육시키는 세상 학교가 아닌, 바른 교회 안에 바른 진리로 양육하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성경침례교회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은 두 아들을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킨 일이었다. <br/><br/>재림에 대한 확실한 소망<br/><br/>구원파에 다닐 때에는 내가 휴거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정말 막연했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이를 알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고 나서 진리를 공부하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시리라』(빌 3:21).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즉 우리의 몸이 썩지 않을 몸,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과 똑같은 몸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사복음서에 나오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는 벽을 통과하기도 하시고 음식을 먹기도 하시고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하셨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영원히 죽지 않고, 늙거나 병들지 않으며,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영원히 행복만 가득한 삶을 영위하는 몸으로 변모된다니,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br/><br/>솔로몬의 노래 2:10-12을 보면 휴거에 대한 표현이 나오는데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쳐 사라졌으며, 땅에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에 주님께서 공중에 오신다는 것이다. 늦봄이나 초여름쯤 주님께서 오시지 않을까. 이런 분명하고 확실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할 수 있도록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는 교회가 이 땅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br/><br/>하나님께서 바른 성경에 조명을 주셨기에 위와 같은 진리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5월이 되면 더욱 가슴이 설레고 하늘을 한 번 더 쳐다본다. 정말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장소에서 발견되어 들려 올라갈 수 있기를 항상 소망하면서 살게 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30 Apr 2025 15:47:4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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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나는 또 다른 “사울”이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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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나는 교회 시대의 또 다른 “사울”이었다.<br/>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아주 열심히 교회에 다녔고 청년이 되어서도 교회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하는 인정받는 젊은이였다. 시골 교회에서는 젊은이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더욱 빛이 났었다. 하지만 교회 밖에서의 생활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전혀 없는 방탕한 삶 그 자체였다. 술과 담배, 문란한 생활에 깡패들과 어울리기까지 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나의 모순된 삶을 지켜보셨던 부모님은 오랫동안 기도해 오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내 양심을 일깨워 주셨다.<br/><br/>위선으로 점철된 삶에서 돌이킨 후 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청년 집사로서 교회에서 인정받는 일꾼이 되었고, 주의 일을 넘치게 하고 싶은 열정에 통신으로 신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결혼 적령기가 훨씬 지났던 나는 결혼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아내를 만났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는 신앙심도 없는 아내와 결혼하겠다는 나를 말렸지만, 나는 오직 사랑이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결혼을 서둘렀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아내는 신앙심이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더구나 첫 아이를 낳고는 산후 우울증까지 생겨서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신앙생활에 안정이 없이 여기저기 다른 교회들을 기웃거리는 아내의 모습은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정신 나간 사람임과 동시에 영적 간음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br/><br/>그 당시 구원파의 회원이었던 나의 누나는 간혹 집에 들러 구원과 믿음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고 갔다. 구원파가 한국 교회를 망치는 이단임을 알았기에 귀를 내주지 않았던 필자와 달리, 아내는 귀를 내주더니 마음까지 내어주었다. 급기야 함께 다니는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며 구원파 교회로 어린 세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내를 타일러 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마음을 돌려 보려 했으나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주일 아침이면 세 아이들을 이끌고 집을 나서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 울분이 올라왔다. 급기야 나는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입에 대기 시작했고, 술은 술을 불러들였으며, 담배 역시 하루 한 갑 이상을 피우는 골초로 순식간에 돌아가 버렸다. <br/><br/>아내와의 긴 전쟁은 8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아내는 구원파에 파묻혀 지낸 기나긴 시간 동안 구원의 확신조차 갖지 못했다. 아내는 지옥에 갈 것 같은 두려움으로 괴로워했지만, 그러면서도 진리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복도 잠깐, 아내의 방황은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은 하나님을 꼭 만나겠노라며 어느 선교회에 들어가더니 해외 선교를 명목으로 먼 타국 땅을 밟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교지에서조차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못한 것 같다며 아내는 많이 실망스러워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겠다던, 주님을 향한 나의 헌신은 아내와의 신앙 문제로 점점 희미해져 갔다.<br/><br/>그러던 중 2018년 가을 즈음의 일이다. 아내는 잘 다니던 교회를 또다시 나가지 않더니 이제는 아예 기차를 타고 광주까지 가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 교회는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광주성경침례교회였다.) 아내는 “그동안 우리가 읽어 온 성경은 변개된 잘못된 성경이다.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것이기에 잃어버리지 않는다. 복음은 쉽다.”라는 둥, 이해하지 못할 말을 했다. 교단 교리와 습관화된 종교적 전통들을 앵무새처럼 주장해 오던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br/>신앙, 그리고 성경에 대한 아내와의 갈등은 해결점이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던 나는 결국 아내가 다니는 광주성경침례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강단에서는 진리가 선포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돌짝밭이었고 어떠한 말씀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한글을 쓰는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 삶의 최종권위입니다.”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변개된 성경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잘못된 성경으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는 잘못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br/>강단에서 선포되는 이 말씀들은 결국 그동안 내가 열심히 쌓아 올렸던 신앙생활이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책망으로 들렸기에 나는 마음속에서 이는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표출하기도 했다.<br/><br/>급기야 교회에 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었지만, 큰딸이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다행히 딸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고 일반 학교에 다닐 때와 다른 모습들을 보였다. 딸의 신앙심은 깊어져 갔고, 입술에서는 세상 노래 대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흘러나왔으며, 그 마음에 안정과 여유도 생긴 것이 느껴졌다. 첫째 아이가 변화되는 모습에 둘째와 셋째도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에 보내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우리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보살피심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br/><br/>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리에 대한 갈급함도 없이 불편한 마음을 품고 예배에 참석하던 나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심신이 쇠약해져 있던 나는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급기야 일하는 도중에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br/><br/>이 사건은 나를 구원으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었다. 심한 어지럼증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고,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나는 내 혼의 구원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모든 상황을 묵묵하게 지켜보던 아내는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복음을 듣고 난 후 나의 삶을 잠잠히 돌아보았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비로소 주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였다. 그리고 침례에도 순종했다. <br/><br/>침례 이후 나의 삶은 180도로 바뀌었다. 마치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울이 예수님을 위해 헌신한 바울로 변한 것처럼 나의 삶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일었다. 구원받기 전에는 성경에 별 관심도 없었고, 성경이 변개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한국 교회 대부분이 변개된 개역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으며,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lt;킹제임스성경&gt;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모든 교회들이 그렇듯이, 성경이 최종권위가 아니라 목사의 말이 최종권위가 되어 있기에 교인들은 바른 성경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br/><br/>풀 한 포기 나지 않을 것 같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졌고, 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도 쏟아져 나왔다. 구원을 받고 나니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을 교회에 데려오는 것이 목적이었던 지난날의 전도 행위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님께서 조금씩 몸을 회복시켜 주시면서 구령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죄인으로 태어나 죄만 짓고 살다가 지옥에 던져질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여 즉시 구원받는 역사를 경험하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br/><br/>한번은 아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변하지 않을 것 같더니 당신도 변하네요.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내가 변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닌가. 너무 기뻤고 너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티끌에 불과한 아무런 쓸모없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br/><br/>그 후 지체들과 함께 구령 모임도 시작할 수 있었고, 더불어서 거리설교도 하게 되었다. 급기야 신학교에 입학하여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상황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다. 나이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였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진리에 눈을 뜨기 전 이상한 교단 교리들과 진리에 무지한 목사들의 말을 따르던 나는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최종권위로 믿고 공부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게 되었다.<br/><br/>첫째,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은 성경적 진리였다. 개역성경은 행위 구원을 가르칠 수밖에 없도록 많은 구절이 변개되어 있었고,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가르치지 않기에 구원의 확신을 절대로 가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br/><br/>둘째, “혼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리스도께로 이겨온다”는 뜻의 “구령”은 40년 동안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처음 듣는 생소한 용어였다. <br/>셋째, 우리의 몸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고 혼이 구원받고 영은 거듭난다는 소중한 진리 또한 내 생애에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진리이다. <br/>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으로만 그러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고,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으로는 절대로 알 수가 없었다.<br/><br/>성도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마귀의 공격은 끊임이 없다. 지금도 어지럼 증상이 심해지기도 하고 지병들로 인해 공부도, 일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나를 시험하는 마귀의 시험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임을 알고 있으나 심신이 약해져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매주 경배를 통해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성도들의 중보기도에 힘입어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는 것 같다. <br/><br/>하지만 진리의 지식을 배우는 목적이 나의 믿음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진리의 지식을 더 많이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선물인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파해서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한 명의 혼이라도 더 주님께로 이겨오기 위해서이다. 나는 주님을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충성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그야말로 많이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r/><br/>하나님께서 나를 광주성경침례교회로 이끌어 주신 것이 우연이 아닌 그분의 계획이었음을 나는 믿고 있다. 그 거룩한 계획 속에서 무한한 기쁨을 누리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Mar 2025 11:34: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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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주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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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나의 어머니는 “구원파”로 유명한 기독교복음침례회에 오래 몸담고 있다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만난 후 빠져나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서셨다. 어릴 적부터 구원파에 속해 있던 나는 “다른 데에 가면 구원이 거의 없다.”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듣고 자라서, 어머니가 구원파에서 나갔을 때 어머니가 뭔가 잘못된 이단에 빠졌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구원파에서 나간 후, 어머니는 간간이 우리집으로 말씀보존학회 책들을 택배로 보내 주셨는데, 그 책들은 &lt;몸, 혼, 영&gt;, &lt;열린 성경 닫힌 마음&gt;, &lt;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성경만을 쓰셨다&gt;, &lt;현저한 차이&gt;, &lt;술취한 교회들&gt;, &lt;완벽한 교회는 없는가?&gt; 등이었다. 한동안은 책 제목이 무척 낯설고 강하다는 생각에 책들을 바로 읽지 않고 택배 상자에 그대로 담아 두기만 했다. 잘못된 의식을 일깨울 법한 도발적인 제목들, 그래서인지 나는 “제목부터가 이상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내가 소위 긍정론에 입각한 기독교 베스트셀러들이나 세상에서 좀 유명하다는 자기 계발 서적들에 한창 심취해 있었고, 당장 가려운 귀를 긁어 주는 듣기 좋은 말들에 미혹당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구원파가 전부인 양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br/><br/>그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끔씩 통화로만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어머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 대화 중의 말씀들이 빈틈없이 정연해지셨다. 그뿐 아니라, 나의 인생의 고민들에 대해서도 성경적이고 지혜 있는 답변을 척척 해 주시는 어머니에게 이전과는 다른 권위가 느껴졌다. 서서히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택배로 받았던 책들 중에서 나의 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lt;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성경만을 쓰셨다&gt;였다. 그 제목이 너무도 선명해서 표지만 한 번 봤을 뿐인데 잊을 수 없게 각인이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책 제목 정말 이상하다. 무슨 이런 제목이 다 있나?” 하고 수상하다는 의미의 “물음표”로 응수했다. 그리고 육아와 직장일로 바쁜 일상을 지속하는 중에,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때때로 떠올랐다.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나는 “이상해. 역시 이상한 것 같아.” 하면서 그 노크를 의심과 불신으로 꾹꾹 눌러 버렸다. <br/><br/>내 안에서 다소간 치열한 씨름을 한바탕 치른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내 생각에도 “아, 맞지.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성경만 쓰셨겠지. 두 권, 세 권 다르게 쓰셨을 까닭이 없지.” 하고 제목 그대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동의와 인정이 되고 나자, 비로소 그 책을 펴 읽게 되었다. 어머니도 “네가 구원파 찾아가 봐야 영적으로 하나 얻어먹을 것도 없으니 그만 거기서 나와 차라리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차분히 읽거나 진리의 서적들을 보아라.”라고 하셨고, 기도의 중요성도 강조하셨다. 어머니의 권면에 따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적 분별력을 주시기를 기도하고서 책을 폈다. 책의 서문과 &lt;제1장 오직 한 가지의 성경&gt;을 꼼꼼히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아, 내가 지금껏 보던 개역성경은 변개된 성경이구나!’ 어릴 적부터 때때로 “(없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고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는데, 그 의문이 드디어 풀리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 바른 성경을 만나게 되었다. 성경이 담긴 상자 안에 있던 구절 대조표를 보고 있자니 무엇이 바른 성경인지가 더욱 확실해졌다. 어린 시절 “하나님 말씀인데 ‘(없음)’이 있다니, 하나님, 이게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했던 나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극명하게 다른, 보존된 말씀으로 진리의 빛을 비춰 주신 것이다. 그 뒤로는 &lt;럭크만 주석 한글킹제임스성경&gt;과 &lt;몸, 혼, 영&gt;, &lt;영적 삶의 새로운 시작&gt;, &lt;완벽한 교회는 없는가?&gt; 등의 책들을 읽으면서 매일 새로운 진리를 새록새록 알아가는 일이 재미있었다. 처음엔 차분히 통독하기보다는 참조 구절과 주석, 부록 등이 흥미로워서 여기저기 다소 산만하게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재미있었고 새로운 관점으로 성경을 알아 가는 과정이 참으로 좋았다. 잠도 안 자고 뭐 하느냐는 불신자 남편에게 잔소리를 듣고도 나는 좋기만 했다. <br/><br/>한동안 그렇게 혼자 집에서 틈틈이 책을 읽기만 했을 뿐 성경적 실행을 마냥 미루고 있다가 점진적으로 조금씩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둔하고 게으른 나를 서서히 일깨워 주시고 다양한 경로와 계기를 통해 주님께로 더 가까이 불러 주신 것 같다. 주일이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가고 틈틈이 &lt;럭크만 주석 한글킹제임스성경&gt;과 &lt;그림으로 보는 요한계시록&gt; 외에 다수의 말씀보존학회 서적을 읽었다. 기초성경공부 수료, 재침례 순종, 복음 전파 등이 상당한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져 갔다. 그럼에도 자주 타락하고 육신적이 되곤 했던 내게 성경 말씀을 통해 다시금 헌신하도록 일깨워 주시고 순종하도록 일깨워 주심에 따라 나를 여전히 부르고 부르셨으니, 포기하지 않고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br/><br/>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기 전에도 구원은 받았지만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구원이야 복음의 내용(고전 15:1-5)을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차이가 있다.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대속까지만 간증으로 말하고 끝났다. 그렇기에 나는 번번이 죄짓고 자백하기를 반복했다. 죄를 단절하고 이기는 방법을 몰라 늘 패배하고 후회하며 괴로워했음에도 다시 말려드는 삶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내가 받은 구원의 간증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에 근거 구절들이 명확하게 뒷받침되어 있을뿐더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을 때 내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내주하신다는 그 진리도 성경으로 구체적이고도 명확히 가리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죄인인 날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구주께서 내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아직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에게 구원받을 수 있도록 정확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이것을 마귀가 가장 싫어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무척 기쁘기까지 하다. <br/><br/>그러면 죄에 대하여 온전히 다 승리했는가? 멸망할 죄인이었던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위해 얼마든지 기쁘고도 넘치게 의의 병기가 되어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물론 아직 육신의 장막 안에 거하는 나는 여전히 온전치 못하다. 하지만 육신의 연약함을 핑계 대며 뒤로 물러나 있지 말자고 다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라고 말씀하시는 성경이 있고 그 성경이 나를 차츰 온전하게 해 주시리라 믿는다. 『화평의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가 또한 이것을 행하시리라』(살전 5:23,24).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은 “(없음)”이 하나도 없는 성경이다. 홀로 뛰어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셨고 보존해 오셨다. 그리고 성경의 예언들을 기록된 그대로 이루어 가심에 따라, 앞으로도 기록해 두신 약속들을 철저히 이행하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하여도 흔들림 없이 믿게 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 무오하심과 신실하심 등 하나님의 성품을 환히 조명해 주심은 물론 말씀 서로 간에 상치되거나 모순된 부분들이 없다. 그래서 개역성경과 달리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읽으면서부터는 이 구절이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는지를 더욱 또렷하고 밝히 알려 주시는 듯하다. 그리고 구약에서부터 모형이나 예표를 통해 예수님을 계속적으로 알려 주시고, 특히나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서부터 어린양,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과 이삭 등 여러모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그려 주신다. 나는 성경의 구절들이 제각각 따로 놀지 않고, 각자 그 위치에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짝을 이뤄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그려 주는 것, 조화롭게 연결되고 권위가 살아 있으면서도 언어적으로도 뛰어나게 창의적이고 재치 있으신 하나님께 대하여 감탄하곤 한다.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최종권위로 믿기 전의 나는 내 자신이 마치 구원만 받았을 뿐 하나님으로부터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세상에 버려진 고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봄이 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우울해지기도 했다. 개역성경을 읽고 암송도 곧잘 했지만, 생명의 양식, 영적 양식을 충분히 먹지도 못하고 설령 먹었다고 해도 변질되어 있었기 때문에 혼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는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하고 이렇게 사느니 “십자가 위에서 죽기 직전에 구원받은 행악자가 낫겠다.” 싶은 생각도 했었고, 심지어 산후 우울증이 왔을 때는 극단적인 충동이 일기도 했다. 허기지고 갈급한 나의 혼은 메마름과 인생의 허무함, 공허감을 자주 맛보곤 했다. 그래서 긍정적인 말들로 혼을 위로하는 인본주의 책들에 빠지기도 했고 내 삶에 적용해 보려 했으나, 며칠만 지나면 다시 우울해지기 일쑤였다.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최종권위로 믿은 후로 내 인생은 주님 안에서 좋은 일로 바쁘다. 배울 것, 공부할 것이 많고 실행에 옮겨야 할 과제도 많다. 그렇다고 의무감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고 자유함 가운데 하나씩 실행하는 것이다. 그날그날의 생명의 양식이 언제든 마음먹고 손만 뻗으면 항상 충분하게 차고 넘치니, 이 글을 쓰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말씀을 많이 먹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예전에 긍정적인 구절들만 선별적으로 암송하고 좋아했던 옛 습관을 버리고, 무섭고 단호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모두 최종권위로 믿고 따라야겠다고 생각한다. <br/><br/>주일이면 하나님께 경배드리면서 기초성경공부 16주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사람은 영, 혼, 몸으로 이루어졌다는 인간의 삼중성,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12)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놀라웠다. 전에는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다는 정도로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었는데, 이제 믿음으로 구원받았을 때 성령님께서 그 순간 내 안에 들어오셔서 죄의 몸을 벗어 버리도록, 영적 수술을 통해 몸과 혼을 분리시켜 주셨다는 진리를 배운 것이다. 내 안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수술로 인해 내가 죄의 몸을 확실히 벗어 버렸고 이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것과 번번이 죄들에 대해 무릎 꿇고 실패했던 나의 삶 속에서 실제로 승리할 수 있다는 온전한 가능성을 거머쥔 것 같았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 몸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진리 안에서 든든한 마음과 평안을 얻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돌려 드린다. <br/><br/>전에 잘못된 교회에 속했고 또 변개된 한글개역성경을 읽고 있을 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란 걸 몰랐다. 또 주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막막했고 “어쨌든 나는 구원은 받았으니 언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도 하늘나라에는 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살았다. 성경 속의 인물들, 특히 신약 교회 시대의 사도 바울과 그를 따르던 성도들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이 달랐고, “나는 그들처럼 주님을 위해서 받는 실제적인 고난이나 박해가 없는데... 그리고 나는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할 용기가 없는데...” 하며 영적 수준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에 대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당시로서는 내가 보고 있는 성경이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이 보았던 성경과 다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일을 회피하면서, 하늘에 시민권을 둔 사람이 셋째 하늘에 마음을 두지 않고 세상일들에 이리저리 곁눈질하며 죄만 짓고 살았지만, 이제 나의 마음은 저 셋째 하늘에 드리운 혼의 닻과 같은 소망을 굳게 붙든다. 곧 다시 오실 주님, 자랑스러운 주님을 시인하고 자랑하리라. 주님께서 죄인들인 우리들을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써 이룩해 놓으신 거룩한 일들을 자랑하면서 때때로 구령의 기쁨도 맛보리라.<br/><br/>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되어 나의 손에까지 이렇게 전수되었다. 우리가 그저 읽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역사하신다 하셨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믿음의 선배들의 피 흘린 발자취와 이송오 목사님의 번역의 노고를 생각해 볼 때에 얼마나 큰 은혜를 거저 입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진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았건만 주님께서 마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듯이 모든 일이 합력하도록 역사하셔서, 헛된 짓만 일삼던 허무한 삶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의미 있는 일들로 인도해 주셨기에 참으로 감사하다. 그 일을 만군의 주께서 열성으로, 주님의 신실하심으로 이루어 주셨으리라.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딤전 2:4)셔서 영과 진리로 아버지 하나님께 경배드릴 참된 경배자들을 찾고 계시며 또 부르신다. <br/><br/>개역성경은 진리의 성경이 아니다. 그런 변개된 성경으로는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에 주신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인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은 올해로 벌써 출간 31주년을 맞았고 좋은 열매들을 여전히 왕성하게 맺고 있다. 따라서 이 땅의 더 많은 사람들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신앙의 최종권위로 믿으며 아버지 하나님께 참된 경배자들로 발견되기를 바란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Feb 2025 17:20:0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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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찬송으로 믿음을 고백한 로버트 로우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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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필라델피아 교회 시대, 그 찬란했던 복음과 진리의 빛이 점점 어두워지며 황혼이 짙게 드리우던 19세기 말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의 이름은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로, 1826년 3월 1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그는 장차 자라서 설교자와 찬송가 작사자, 작곡가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보였던 그는, 17세가 되던 1843년에 필라델피아의 제일침례교회에서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했다. 1848년에는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펜실베이니아 루이스버그 대학교(현재 버크넬 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했으며, 28세가 되던 1854년에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목사 안수를 받아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에서 1858년까지 목회 사역을 수행했다. 이후 다양한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서 목회를 하며 찬송가 작사와 작곡을 병행하다가 1899년 11월 25일 74세의 나이로 뉴저지주 플레인필드에서 주님 곁으로 떠났다. <br/><br/>사실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찬송은 그것을 부르는 사람들의 신앙 고백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시 말해 찬송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의 믿음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찬송가 가사의 내용을 믿지도 않고 그저 따라만 부르며 입술의 고백으로 자신의 믿음을 포장하는, 그마저도 세상 리듬에 맞춰서 세상 노래 부르듯이 부르는 현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교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록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로버트 로우리도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찬송가 작사자요 작곡가로서 구원과 구원의 확신, 재림의 소망 등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자신이 믿는 바를 가사와 곡조로 만들었다. 이런 그의 찬송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있으며, 동일한 믿음을 지닌 수많은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찬송가집 &lt;영광을 주께&gt;에는 그와 같은 로우리의 찬송가가 11곡이나 실려 있다.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들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531장 「훗날 우리 다시 만나」와 관련된 일화가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준다. <br/><br/>로우리는 브루클린에서 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1864년 7월 어느 무더운 날 그 531장의 찬송가 가사를 썼다. 당시 브루클린에서는 매우 심각한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고, 하루에도 수백 명씩 운명을 달리했다. 로우리는 주변의 참담한 광경을 목도하던 중 “비록 죽음의 강을 건넌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생명의 강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이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이 흘러나오는 요한계시록 22장의 말씀을 붙잡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붙잡고서 거실에 있는 오르간 앞에 앉아 가사와 곡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곡이 바로 「훗날 우리 다시 만나」이다. 로우리의 이 찬송은 많은 성도들에게 비록 우리가 죽어 이별하더라도 훗날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을 준다. 이러한 소망에 관한 이야기는 1882년에 발발한 영국과 이집트 간의 전쟁에서 한 미국인 간호사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편지로 쓴 것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녀가 썼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br/><br/>그날도 많은 부상자들이 병동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영국의 전통적인 보병 부대인 하이랜드 연대의 한 병사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심한 부상을 입고 고열 가운데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 병사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여 살펴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병사가 갑자기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마음이 애틋해지는 가운데 물에 적신 수건을 그의 머리에 얹어 주었고, 또한 그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병사는 눈을 뜨면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어머니가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를 위해 대신 편지를 써 줄 수 있다고 했더니, 편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노라고 말하면서 그 대신 노래를 불러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나는 잠시 주저했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마침 서쪽의 햇살이 기울면서 나일강 위를 반짝이는 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잔물결이 반짝이는 강을 바라보자 「훗날 우리 다시 만나」(Shall We Gather at the River?)라는 찬송가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부드럽게 그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부상자들도 내가 부르는 찬송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이 보였습니다. 찬송을 모두 부른 후, 나는 채 스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그 병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명수가 흐르는 그 강변에 설 확신이 있느냐고, 거기에 있을 거냐고 물었고, 그 부상병은 “네, 저는 거기에 있을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하신 일을 통해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br/><br/>순간 그의 얼굴에서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빛이 비치는 듯했습니다.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 땅에서 이제 곧 죽음을 앞둔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병사는 내일도 다시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알겠노라고 대답하고 다음 날 찾아갔지만, 그 병사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먼저 그 강변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br/><br/>거기에 있을 거냐는 물음에,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답하는 찬송가 531장에 담긴 위의 예화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믿음과 소망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찬송가가 가진 위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의 고백이 되지 못한 채 부르는 찬송은, 개인의 믿음의 상태와 상관없이 그의 감정만을 고양시키는 일종의 “마취제”가 될 뿐이다. 그래서 이 땅의 많은 교인들이 소위 찬양 집회에 참석해서 스스로 마취된 감정 속에 구원받은 것 같은, 구원의 보장에 관한 확신이 생긴 것 같은, 믿음과 소망이 더욱 굳건해진 것 같은 “느낌”과 “착각” 속에서 허우적대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공허하고 불안한 마음을 움켜잡고 방황하는 것이다. 결국 그와 같은 영적 피폐함을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찬양 집회를 찾아 “마취제”를 맞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찬양 집회 자체에 중독되고 만다. 그들은 찬양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먼저라는 점을 모르는 것이다. 『오 너희 의인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찬양은 정직한 사람에게 합당한 것이니라』(시 33:1).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로 너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되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또 말에 있어서나 행실에 있어서나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 3:16,17). 찬양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합당한 것으로, 시(시편에서 발견되는 실제적인 시들)와 찬송(찬송가집 &lt;영광을 주께&gt;에 있는 회중 찬송용으로 사용되는 노래들)과 영적인 노래(합창곡 등을 위한 특별한 음악들)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로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인간이 자기만족을 위해 부르는 노래일 뿐이다.<br/><br/>특히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로우리 목사는 주의 보혈과 재림의 소망에 관한 찬송을 많이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찬송을 부르며 변화를 받았고, 변화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감사의 희생제(시 107:21,22)로서 찬양의 희생제물(렘 33:11)을 드렸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히 13:15,16)로서의 온전한 찬양을 올려 드렸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적어도 로우리의 찬송을 부르는 교인들은 자신이 그 찬송가의 가사를 믿는 마음으로 부르고 있는지를 반드시 돌이켜봐야 한다.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 칼빈주의자들과, 자신이 받은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모두 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 또 재림하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노래를 부를 자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즉 찬송가의 내용이 그들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것이다. 자신이 믿지도 않는 가사를 하나님께 불러 드린다면 과연 그 찬양이 받아들여지겠는가? 당신은 정말로 그 강변에 서 있을 확신이 있는가? 더 늦기 전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도록 하라.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Feb 2025 17:18: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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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자신의 재능을 은사로, 제임스 맥그라나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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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제임스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은 1840년 7월 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웨스트 팔로필드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 최고의 복음 전도자 중 한 명인 D.L. 무디와, 또 위대한 찬송가 작사자인 다니엘 웹스터 휘틀과 함께 무디 전도단에서 복음 전파의 사역을 담당했던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다. 그의 아버지 조지 맥그라나한은 웨스트 팔로필드에 농장을 둔 농부였는데, 제인 블레어와 결혼해 12명의 자녀들을 두었다. 제임스 맥그라나한은 그중 아홉 번째로 태어난 아들이었다. 실용주의적이었던 아버지는 제임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고, 그가 농장 일을 도맡아서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반해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던 제임스는 18,19세기의 교회 성도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노래 학교”(Singing School)에서 음악을 배우고 싶어 했다. 서로의 의견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제임스는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무작정 나서지는 않았다. 제임스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며, 농장 일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현실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음악을 배우고 싶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버지께 공부에 필요한 비용 일체를 스스로 벌어 충당하겠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음악 공부를 하는 동안 자신을 대신해 농장 일을 할 사람을 고용함으로써 아버지로부터 노래 학교 입학 허락을 받아 내었다. <br/><br/>제임스 맥그라나한의 이와 같은 노래 학교 입학과 관련된 일화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부모를 공경하고 또 부모에게 순종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부모를 거역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몰지각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이 마지막 날들의 아주 어려운 때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롬 1:30,31, 딤후 3:1,2). 사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구약에서 십계명으로 주어진 명령일 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주어진 명령이다(출 20:12, 엡 6:2). 여기서 “공경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아버지의 말에 경청하고 어머니를 경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잠 23:22).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기중심적인 면이 생기고 또한 신체 능력의 저하가 일어나기 때문에 젊은 자녀들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종종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기에 많은 자녀들이 아버지의 말은 무시하고 또 어머니는 경히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의미가 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대략 116세, 이삭은 16세 정도였다. 그렇기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힘으로 제압하고 제물로 바쳐질 자신의 비극적인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순종했던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께 순종하되 목숨까지 내어 맡겼던 것이다. 경청하고 경히 여기지 말며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부모를 공경했던 제임스 맥그라나한은 노래 학교 입학 후 인정을 받아 교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br/><br/>이후 제임스는 훌륭한 목소리를 가진 뛰어난 테너이자 작사와 작곡을 할 수 있었던 재능 있는 음악가로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한 그는 1862년에 J.G. 타우너와 함께 일하면서 2년 동안 펜실베이니아와 뉴욕 등지를 오가며 오페라 콘서트를 열어 큰 성공을 거두었는가 하면, 1875년에는 교사로 임명되어 사범음악학교에서 3년 동안 일하기도 했다. 이 무렵 제임스는 자신이 음악 교사이자 작곡가로서, 또 오페라 무대의 테너로서 성공하여 더 많은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임스를 향해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세상을 위해서 쓸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 쓸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br/><br/>무디의 복음전도단에서 아이라 생키, 다니엘 웹스터 휘틀과 함께 찬양 선교단 사역을 하던 필립 블리스는 제임스 맥그라나한의 친구였다. 오래전부터 친구의 음악적 재능을 보아 왔던 블리스는 1876년 12월에 제임스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제임스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고 강력하게 조언한다. 그러면서 제임스가 오랫동안 받아 왔던 음악적인 훈련들을 “낫을 갈고 있는 것”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낫 갈기를 멈추고 세상이 아닌 주님을 위해 그 낫을 들어 추수할 곡식을 거두게.” 블리스의 이 말은 제임스의 마음에 강한 도전을 주었고, 제임스는 그 말을 밤낮으로 되새기며 고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 교사와 오페라 가수로서의 성공과 부와 명성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했는데, 그러한 갈등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br/><br/>제임스가 필립 블리스의 편지를 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2월 29일, 블리스 부부는 무디의 복음전도단에 합류하기 위해 시카고행 급행열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기차가 오하이오주 아쉬타불라에 있는 계곡 근처의 철교를 지날 때 그만 철교가 끊어지는 바람에 열차가 전복되고 말았다. 블리스는 그 사고에서 변을 당하지 않고 간신히 빠져 나왔으나, 그의 아내가 기차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시 기차로 뛰어들었다가 안타깝게도 둘 다 숨지고 말았다. 제임스는 이 비극적인 사고 현장에서 블리스의 유해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블리스와 함께 일하던 메이저 휘틀을 만났는데, 휘틀은 제임스에게 블리스의 뒤를 이어 자신과 함께 사역할 것을 제안했다. 시카고로 돌아가던 기차 안에서 번민하던 제임스는,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자신의 삶과 재능을 모두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후 사고 현장에서 발견한 블리스의 여행용 가방 속에서 찬송시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제임스가 곡을 붙여 완성한 것이 바로 &lt;영광을 주께&gt; 찬송가 54장에 있는 “저주 받을 나의 혼”이다. 이처럼 저주 받을 자신의 혼을 구원해 주신 주님께 헌신한 이후, 제임스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 등에서 복음 전파 사역을 펼치며 많은 혼들을 지옥의 영원한 저주로부터 구원받게 함으로써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1907년 7월 9일 오하이오주 킨스만에 있는 자택에서 67세를 일기로 주님의 영원한 품에 안기게 된다. <br/><br/>구원은 인간의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gift, 엡 2:8)이기에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받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은사(gift) 또한 하나님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gift)이다. 그렇기에 감사함으로 받아 주님을 위해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br/><br/>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선물을 받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주권적으로 주신다. 그리고 그 주신 은사를 통해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고전 12:4,7,11, 엡 4:7). 이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분의 뜻대로 주시는 은사를 야고보서 1:17에서는 “모든 온전한 선물” (every perfect gift)이라고 말씀한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그런데 야고보서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선물[every good gift]』도 주심을 가르쳐 준다. 이 선물은 『위로부터』 받은 재능이다. 제임스 맥그라나한의 경우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위로부터 받았다. 그런데 헌신하여 자신의 재능을 주님께서 쓰시도록 내어 드리자, 주님께서는 그 재능을 은사로 바꾸시고 그를 놀랍도록 들어 쓰셔서 많은 구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 것이다.<br/><br/>그리스도인은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은사를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딤전 4:14). 만일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재능이 뚜렷하다면, 그 재능을 주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그 재능을 은사로 바꾸어 주실 것이며, 당신의 섬김을 온전히 받아 주실 것이다. <br/><br/>그런데 구원받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위로부터 재능을 받고서도, 이를 제멋대로 오용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똑똑하여 주님을 잘 섬기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왜 그런가? “헌신”(롬 12:1,2)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가 자신의 몸을 주님께 드려서 주님을 위해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시는데도 헌신하지 않는 것이다.<br/><br/>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받은 재능이나 은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서 그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심판석』(고후 5:10)에서는 온전한 동기에서 주님을 위해 행한 일들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행하는 성도만이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다가(고전 1:7) 기쁨 가운데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03 Jan 2025 08:26:0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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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하느냐?</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0/%EC%97%98%EB%A6%AC%EC%95%BC%EC%95%BC-%EB%84%A4%EA%B0%80-%EC%97%AC%EA%B8%B0%EC%84%9C-%EB%AC%B4%EC%97%87%ED%95%98%EB%8A%90%EB%83%90/</link>
<description><![CDATA[나는 2002년 9월 20일 밤 10시경,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갚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보혈을 흘리고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장장 55년을 살인, 강도질 외에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를 거의 다 짓고 살았다. 세상 법에 어긋나 감옥에서 정죄받아 마땅한 죄들을 수없이 지었다. 지옥에 대한 영상 매체나 기록물이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과연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곤 했지만 의도적으로 기피하면서 형식적인 교인으로 10년 이상을 주일 오전예배(바쁠 땐 새벽예배)에만 참석하며 허송세월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죄가 용서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교회에만 출석했다. 10년간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성경(개역성경)의 창세기 1:1도 펼쳐 본 적이 없었다. 수백 번 설교를 들었어도 어떻게 하면 죄가 용서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고, 그저 ‘교회에만 소속되면 어떻게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br/><br/>그렇게 형식적으로라도 교회라는 곳에 다니게 된 것은 막내아이가 3살 때(내 나이 38세 경) 건강하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생긴 것이 계기가 되었다. 병원에 입원하여 진단한 결과 뇌에 이상이 있는 듯하여 정상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셋이나 되는 어린 자식들 양육에 대한 걱정에, 또 앞으로 살아갈 일이 깜깜하여 삶에 대한 절망감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병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구석에서 무릎 꿇고 그동안 살아온 인생과는 아무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분이신지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께 간구를 드렸다. “제 아내만 고쳐 주시면 평생 동안 하나님을 믿고 살겠습니다. 제발 고쳐 주십시오!”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는 그때가 평생 처음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정말 혼신을 다해 기도했다. 하나님의 응답이었는지 아내는 별 탈 없이 즉시 퇴원하여 정상인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아내의 권고도 있었지만 아내의 병을 고쳐 주시면 평생 하나님을 믿겠다고 한 서원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교회에서 적당히 종교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집 가까운 자그마한 개척 교회는 사생활을 침범할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너무 귀찮게 해서 적당히 큰 중형 교회에 다니며 간섭받지 않고 이름만 걸어놓고 “주일용 교인”으로 살았다.<br/><br/>그러던 어느 해, 그러니까 내 나이 50세 되던 해인 1997년 IMF가 터졌다. 그때 그 경제 위기로 10여 년 다니던 직장을 잃고 설상가상으로 왼발 뒤꿈치가 부러져 1년 이상 무위도식하게 되었고, 생활비 걱정을 하던 아내가 경험과 식견도 없이 남의 돈으로 사채놀이 비슷한 것을 하다가 큰 사고를 치게 되어 집안이 완전히 파탄 나 길거리에 나앉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약 5년 동안 악몽 같은 세월을 견뎌 냈지만 그사이 나는 중풍으로 쓰러지고 합병증으로 고혈압, 당뇨까지 걸려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하지도 않았다. 10년여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으며, ‘내가 그동안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값으로 이 고초를 당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br/><br/>5년간의 그 거친 광풍이 지나간 뒤 아내와 어느 기도 집회에 참석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구속사역을 이루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주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것이 마음속 깊이 꽂히는 것이었다. 그 즉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니, 어릴 때부터 지었던 모든 죄가 주마등같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진심으로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쏟아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감사함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 뒤 약 2년 이상을 여의도순복음 소속 교회에서 열심히 종교 생활을 했으나 목사나 교인들의 행동이 비록 개역성경이지만 성경과는 거리가 먼 것이 자꾸 눈에 띄었다. 그러나 별 대안 없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다.<br/><br/>그러던 어느 날 오전 10시쯤 업무를 쉬고 사무실에 한가하게 앉아 있는데 응접실 유리테이블 위에 신문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날짜의 새 신문도 아니고 지난 날짜의 광고용 지면 한쪽이었다. 제목이 언뜻 “하나님께서는...”이라고 되어 있어 유난히 눈에 띄는 그 신문을 들었더니 2005년 4월 11일자 동아일보 전면광고지였다. 2002년 회심한 이후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셔서 모든 세상 것을 끊고 신문, TV 등도 거의 보지 않던 내가 느닷없이 신문을 손에 들었다. 그 광고 문구는 내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성경만을 쓰셨습니다.”<br/><br/>나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lt;킹제임스성경&gt; 외에는 모두 “가짜”라는 말에 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성경은 하나인데 번역상의 차이로 여러 성경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때까지 열심히 읽고 쓰며 아껴 온 “한글개역성경”이 “가짜”라는 사실에 자존심의 추락과 패배감과 실망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즉시 인터넷 사이트로 들어가 바이블마스터와 성경침례교회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송오 목사님의 설교를 가능한 한 많이 듣고 많은 책을 주문하여 밤새도록 읽고 깨닫게 되었다. 가짜 성경이 왜 생겼으며,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왜 생겼으며, 순복음이 무엇이고 은사주의가 무엇인지, 그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과 결과를 알게 되어 그동안 의구심을 가졌던 모든 문제가 시원하게 다 풀렸다. 한 줄기의 진리의 빛이 내 안에 강렬하게 비쳐 들어온 듯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 즉시로 수소문하여 천안성경침례교회를 찾아냈고, 그 다음 다음 주 수요일에 교회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가정에서 집사람과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br/><br/>나는 진리를 알아 너무 기쁘고 흥분된 나머지 아내에게 순복음은 가짜이고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곳에서 당장 나오라고 일성을 내던졌다. 아내는 며칠은 아무 반응이 없더니 일주일쯤 지난 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구입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과 진리의 책들을 찢는 것이었다. 자기네 교회 목사에게서 남편이 이단에 빠졌으니 빨리 건져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각방을 쓰고 영적 전쟁에 돌입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설득력 부재이고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나의 무지함이 아내와의 극단적인 결별로 이르게까지 한 원인이 되었음에 후회할 뿐이다. ‘좀 더 참고 인내하며 설득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을 지금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으로 부르셨느니라. 오 아내여, 네가 네 남편을 구원할지 어찌 알겠으며, 오 남편이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지 어찌 알겠느냐?』(고전 7:15,16)<br/><br/>처음에는 완전히 성별하지 못하고 순복음교회에 몇 개월을 아내를 따라 억지로 나갔으나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중에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열왕기상 19:9” 말씀을 읽고 결심하게 되었다.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하느냐?』 이 말씀에 마음이 뜨끔하였다. 네 구절 뒤인 13절에서 또 한 번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하느냐?』 하시자 그 말씀이 천둥같이 큰소리로 가슴을 울렸다. 그때 나는 “아이쿠, 하나님! 제가 당장 가겠습니다.” 하고 그 다음 주부터 성경침례교회로 출석하게 되었고, 한 2년간 아내와 한 집안에서 이상한 동거생활을 하며 서로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대화 한마디 없이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식지 않았는지 이단(?)에 빠진 남편을 구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드디어 실력행사를 했다. 어느 주일날 교회에서 경건하고 조용하게 경배드리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교회 문을 활짝 열고 뛰어 들어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끌어내는 난동을 피운 것이다. 엄숙한 예배가 난장판이 되었다. 분명 마귀의 역사였다. 그래서 도저히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그 길로 아내로부터의 완전한 성별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로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길에서 지켜 주셨으며 어려움 없이 공부하며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채워 주셨다.<br/><br/>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 뒤로 내 안에 일어난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치고픈 열망이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나는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 등록하여 늦은 나이(59세)지만 믿음의 열정으로 2006년 가을 학기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늘면서 믿음이 자라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점점 커졌으며 잃어버린 혼들에 대한 연민이 점점 더 커져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이겨 와야 한다는 부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구령의 열매도 없이 늘 전도지만 건네던 중 하나님께서 구령의 첫 열매를 주셔서 힘을 얻게 되었다. 충남 아산 경찰서 앞 버스정류장에서 복음을 전할 때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 80대 노신사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켄터키 치킨 할아버지 같이 중후하고 점잖아 보이시는 분에게 다가가서 몸을 굽히고 정중하게 복음을 전했다. “저는 천안의 성경침례교회에서 나왔는데 복음을 전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 알아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묵묵부답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의 혼은 한 번 태어나면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죄 있는 혼은 지옥에 가고 죄 없는 혼은 하늘나라에 갑니다.” “...”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받아야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죄지으신 적이 있으시죠?” “...”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을 위해서, 또한 어르신의 죄 문제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게 하셔서 죄값을 모두 치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기 원하십니까?” 노신사는 내 말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눈길도 돌리지 않고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귀가 어두워서 전혀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하면서 막 끝내려고 하는데 노신사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떡이는 게 아닌가! 즉시 영접기도로 인도했더니 꼬박꼬박 끝까지 따라하셨다. 이제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시냐고 여쭸더니 천당에 간다고 미소를 지으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첫 구령의 열매였다. 그 뒤부터는 구령에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전했더니 어떤 장소에 가든 늘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br/><br/>아내와의 성별로 서울에 있는 성경침례교회로 와서는 서울역 거리설교팀에 합류했다. 설교하는 형제들 가운데에는 원고를 보고 하는 형제가 없었는데 나는 여전히 설교문을 보고 설교를 해야 했다. 처음 설교를 시작할 때는 설교문을 작성하여 현장에서 막히지 않도록 완벽하게 외워서 각각 다른 설교 내용으로 실연을 세 번 정도 하면 복음의 내용을 적당히 활용하면서 언제 어떤 장소에서도 자유자재로 설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목소리도 안 좋고 모든 이를 설득할 수 있는 설교로는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하루에 수만 명이 왕래하는 대한민국의 관문인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모든 시민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여러분은 모두 죄인이니 구원받고 지옥의 형벌을 면하라!”고 담대하게 외치고 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일은 진정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벗어나 성경대로 믿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br/><br/>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 뒤로, 주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은혜로 베풀어 주셨음을 나 자신이 절절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고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초심을 유지하지도 못한 채 세상에서의 생활유지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 이미 하나님을 향한 장성한 분량의 지식에 이르러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미하게 쌓아 놓은 진리의 기초 지식마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괴로워진다. 잃어버린 혼들에 대한 연민, 마귀의 공격을 대적할 분노와 열정, 말씀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이 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첫날보다 더 강렬해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형식적인 교회생활에 안주해 가고 있는 것이다. 거짓 은사주의자에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 이상 성장 없고 변화 없는 편안하고 형식적인 교회 생활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내가 받을 상급과 유업을 바라며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일만이 이제 내 앞에 남아 있을 뿐이다.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고자 한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붙잡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만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에 손을 뻗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쫓아갈 뿐이라』(빌 3:13,14).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4 Jun 2024 15:02: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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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굽이쳐 흐르는 생명수의 강</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0/%EA%B5%BD%EC%9D%B4%EC%B3%90-%ED%9D%90%EB%A5%B4%EB%8A%94-%EC%83%9D%EB%AA%85%EC%88%98%EC%9D%98-%EA%B0%95/</link>
<description><![CDATA[에라스무스와 다른 편집자들의 신약 표준 원문으로 수많은 자국어 성경들이 출간되었다. 독일어 &lt;루터 성경&gt;(신약, 1522년)에 이어 스위스의 &lt;취리히 성경&gt;(1531년), 프랑스어 &lt;올리베탄 성경&gt;(1535년), 스페인어 &lt;레이나 발레라 성경&gt;(1569년), &lt;체코어 성경&gt;(1602년), 이탈리아어 &lt;디오다티 성경&gt;(1607년) 등이다. 이처럼 바른 원문에서 자국어 성경이 번역되어 로마카톨릭의 거짓 복음으로 죽었던 유럽 대륙에 생명수의 강들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줄기는 유럽 대륙에서 그치지 않고 영국에서도 발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을 찾아가 성경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 대해 교제를 나눠 보도록 하자.<br/><br/>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<br/><br/>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완역한 사람은 종교개혁의 샛별이라 불리는 존 위클리프이다. 위클리프는 당시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와 진리의 지식을 전달했으며, 훗날 이런 &#034;죄목&#034;으로 로마카톨릭 사제들은 위클리프의 유해를 다시 파내어 불태웠다.<br/><br/>&#034;안녕하세요? 위클리프 선생님은 성경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034;<br/><br/>『모든 진리는 성경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결론 내릴 수 없는 것은 어떤 것도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카톨릭 사제들이 그들의 입으로 전해 주는 말로 지식을 얻으면 충분하다며 소위 &#034;평신도&#034;는 하나님의 법을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단자들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성경이 곧 교회가 믿는 바이므로 성경의 올바른 의미를 더 널리 알릴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진리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의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언어로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br/><br/>&#034;로마카톨릭이 선생님을 이단이라고 하잖아요?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034;<br/><br/>『로마카톨릭 사제들은 영어로 된 성경을 논하는 것이 이단이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에게 천하의 모든 언어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 로마카톨릭은 &lt;위클리프 성경&gt;(1384년)을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거짓 교리들에 따라 &lt;위클리프 성경&gt;과 그의 저작들을 변질시켰다.<br/><br/>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<br/><br/>&lt;위클리프 성경&gt;이 금지되고 난 후 다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이 윌리엄 틴데일이다. &#034;틴데일&#034; 하면 유명한 일화가 있다. 틴데일이 우연히 어떤 주교와 논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주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034;교황의 법 없이 사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법 없이 사는 게 훨씬 더 낫소.&#034; 이에 의분에 찬 틴데일은 식탁에서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034;나는 교황과 그의 모든 법에 도전하는 바이오. 만일 하나님께서 목숨을 살려 주신다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쟁기를 끄는 소년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할 것이오!&#034;<br/><br/>위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 틴데일은 에라스무스 문하에서 배웠으며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034;당신이 독일인들을 위해서 성경을 번역한 것처럼 나도 영국 사람들을 위해서 동일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034;라고 도움을 구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틴데일은 그가 외친 대로 헬라어와 히브리어에서 신약과 모세오경을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lt;틴데일 신약&gt;(1526년)은 영국에 들어오자마자 삽시간에 퍼져 나가 영국 사람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시켰다.<br/><br/>&#034;틴데일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혹시 구원에 대해서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034;<br/><br/>『물론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만이 의로 여겨질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br/><br/>&#034;명쾌하군요. 선생님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믿고 계십니까?&#034;<br/><br/>『성경 지식을 얻도록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없다면 우리의 생각, 의도, 애정과 열정, 이 모든 것은 눈먼 것입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과 우리 사이에 언약을 세우셨고, 그 언약 곧 성경으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우리에게 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br/><br/>&#034;로마카톨릭 교황이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하십니까?&#034;<br/><br/>『일말의 의심할 여지도 없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확실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마카톨릭이 행하는 광적인 박해가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사도 바울 또한 갈라디아서에서 확증했습니다. 곧 육신을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했으며, 오늘날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br/><br/>&#034;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국어인 영어로 번역하셨습니까?&#034;<br/><br/>『우리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우리의 모든 행위들을 심판받을 그 날을 두고 하나님을 증인 삼아 고백하건대, 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단 한 음절도 양심에 반하여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곧 명예와 쾌락과 부와 그 외의 모든 것을 준다 하여도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2)<br/><br/>틴데일은 1535년에 붙잡혀 1536년에 이단으로 정죄받고 화형대에 섰으며 &#034;주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하여 주옵소서!&#034;라는 위대한 기도를 남기고 숨을 거뒀다.<br/><br/>마일즈 커버데일(Myles Coverdale, 1488-1569)<br/><br/>성경을 금지시키는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났으며, 성경 번역은 더욱 정교해지고 완성도가 높아 갔다. 마일즈 커버데일은 틴데일의 동료였으며, 틴데일이 마무리하지 못한 구약성경을 번역하여 신구약 전체를 &lt;커버데일 성경&gt;(1535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br/><br/>&#034;라틴어나 히브리어, 헬라어로 된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요?&#034;<br/><br/>『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라틴어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헬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영어로 된 성경의 저자이시기도 합니다.』<br/><br/>&#034;그렇다면 성경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034;<br/><br/>『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심으로 그분의 영의 역사를 통해 성경의 거룩한 기록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심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믿음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br/><br/>&#034;끝으로 &lt;커버데일 성경&gt;의 독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034;<br/><br/>『누가 되었든지 이 성경의 말씀들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당신의 눈으로 항상 성경의 말씀들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성경이 자유롭게 역사하게 하며 그 말씀이 드높아져서,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만 경배하도록 하십시오. 가장 복된 그분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통치가 지금부터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3)<br/><br/>진리의 하나님께서는 틴데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lt;커버데일 성경&gt;뿐 아니라 &lt;매튜 성경&gt;(1537년), &lt;그레이트 성경&gt;(1539년)이 공인되게 하셨고, &lt;제네바 성경&gt;(1560년), &lt;비숍 성경&gt;(1568년)도 출간하게 하셨다. 영어 성경들의 번역자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성경을 번역했으며, 영어 성경은 정교함을 더해 가며 완성으로 나아갔다.<br/><br/>&lt;킹제임스성경&gt;의 번역자들<br/><br/>1604년에 번역을 시작한 54명의 &lt;킹제임스성경&gt;의 번역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순결하고 살아 역사하는 믿음의 소유자였고, 기도하는 성도들이었으며, 히브리어, 칼데아어, 헬라어, 라틴어뿐 아니라 유럽의 언어들과 고대의 언어들을 두루 통달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었다. 변개된 영어 성서들과 한글 성서들을 만들어내는 학자들과는 급이 달랐다.<br/><br/>&#034;로마카톨릭 교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034;<br/><br/>『한마디로 교황은 죄의 사람입니다.』<br/><br/>&#034;그러면 성경에 대해서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034;<br/><br/>『성경은 모든 헛된 전설을 폐하는 건전한 식량 창고요, 이단들의 독소를 해독하는 병원이며, 반역의 영들을 단죄하는 유익한 법률전서요, 거지 근성을 몰아내는 값비싼 보석함이고, 순수한 물이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 샘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과의 교제와 거룩한 본성에의 참여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의 기쁨이 성경을 공부한 결과로 얻는 보상인 것입니다. 그런즉 성경 말씀을 기뻐하는 자는 복이 있으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것을 묵상하는 자는 실로 복되다 할 것입니다.』<br/><br/>&#034;감사합니다. 성경 독자들과 후손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034;<br/><br/>『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들으시며, 자신의 말씀을 우리 앞에 놓으시고 그것을 읽게 하신다면, 이것이야말로 은총이요 영원무궁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뻗어 부르시면 &#034;내가 여기 있나이다.&#034; 할 것이요, &#034;오 하나님, 당신의 뜻을 행하려고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034; 할 것입니다!』 4)<br/><br/>마침내 1611년에 권위를 인정받은 &lt;킹제임스성경&gt;의 번역이 완료되어 영어 성경의 보존이 완성되었다. &lt;킹제임스성경&gt;은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을 일으켜 흑암의 권세를 대파하는 승리를 가져왔고,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굽이쳐 흘러 복음 전파와 혼들의 구원, 성경 지식의 확산, 세계 선교, 수많은 자국어 성경의 편찬, 대각성 운동들이라는 위대한 열매를 맺었다. 『아, 너희 목마른 자들은 누구든지 물들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으라. 정녕, 와서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br/><br/>우리는 &lt;킹제임스성경&gt; 번역자들의 말을 늘 명심해야 한다. 『성경이 이처럼 충만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그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 태만함을 어찌 변명할 수 있으리요? 성경은 갑옷일 뿐만 아니라 모든 무기들을 보유한 무기고인즉, 그것으로 우리 자신을 구하고 적들을 격퇴시켜야 할 것이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BB<br/><br/>(각주)-------------------------------------------------------------------------------------------------------------<br/><br/>1) Bill Bradley, Purified Seven Times(Landmark Baptist Press), pp.7,11.<br/><br/>2) Gail A. Riplinger, In Awe of Thy Word(AV Publications Corp.), pp.821,822,827,829.<br/><br/>3) Ibid., pp.846-848.<br/><br/>4) 1611년판 &lt;킹제임스성경&gt; 서문과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발췌.]]></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0:43:1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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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사람이 존귀할지라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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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세월호 수색 종료를 발표한 시점의 사망자는 297명이었고, 실종자가 9명이었다.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침통해 할 시점에, 필자는 민간잠수사로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다. 대한민국에서 2번째로 조류가 세다는 맹골수도의 수심 47m 지점에 옆으로 길게 누워 있는 길이 147m의 선체 안으로 들어가 실종자를 찾는 일은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다. 배 안의 도면을 미리 보고 찾아가도 옆으로 누워 버린 배 안에 얽히고설킨 전선들과 각종 자재들, 또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들과 라이트를 비춰도 탁한 시야가 수색을 방해했고, 다이버가 내쉬는 버블로도 무너져 내리는 선체들과 이미 무너져 버린 자재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그야말로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을 교육하는 강사로서의 경험과, 강한 조류와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중 용접을 하고 절단하는 등 험한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사고지점에서 약 6개월간 선체에 들어가 사체를 수색하고 인양하기 위한 잠수는 마치 『땅의 심장』(마 12:40)인 지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결코 즐겁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 그것을 죄인이 영원히 불타야 하는 지옥의 고통과 비교할 수 있으랴!(막 9:44) 깊은 수심과 그 안에서의 공포, 앞도 잘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선체에서 손으로 더듬더듬하며 수색해야 하는 그 적막감, 산소중독으로 인한 기절 가능성, 질소 기체 누적으로 인한 잠수병에 대한 두려움, 선체 벽과 물건이 언제 내려앉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그리고 불시에 대면해야 하는 죽은 사람의 사체마저도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살다가 죽어 지옥에 갔을 수도 있었던 지난 생을 돌이켜보면 실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br/><br/>선체 안에 들어갈 때에는 KMB28이라는 통신용 헬멧을 쓴다. 그리고 &#034;넘버 원 다이버&#034;가 선체에 들어가 수색을 하는 동안 &#034;넘버 투 다이버&#034;는 우현의 깨진 창문 입구에서 &#034;넘버 원&#034;의 몸에 연결된 호스의 텐션 강도를 조절한다. 그때 그 다이버가 마시는 공기호스 라인이 꼬이거나 걸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034;넘버 원&#034;이 고립되어 나오지 못할 때 돕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이 임무는 다이빙할 때마다 서로 바꿔진다. 필자는 실제로 공기호스 라인이 엉키고 무너진 합판에 깔려 스스로 나올 수 없어 &#034;넘버 투&#034;가 와서 꺼내 준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수중에서 &#039;아아, 내가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039;라는 두려움이 몇 번 일었었다. 참으로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삶에 대한 간절함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 간절함 그 자체였다. 그때 느낀 두려움과 공포는 그 일에 참여한 다른 민간잠수사들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필자의 차이점은, 그들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기에 잠수하다가 죽으면 곧바로 지옥에 가야만 하는, 영생이 보장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고, 필자는 구원을 받고 나서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갈 2:20).<br/><br/>잠수사들의 이와 같은 사정을 아는 이상 그리스도인 잠수사로서 그들의 생명에 대해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할 수가 없었다. 그 죄인들을 지옥에 가지 않게 하려고 바지선(사각형 배) 위에서 여건이 되는 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그날의 영적 양식을 취하는 가운데 몇 명의 혼을 주님께 이겨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잠수 출장을 가면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거나 아예 경험이 적은 다이버들은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경험이 많은 노련한 다이버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많이 봤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죽을 고비를 어찌어찌 잘 넘기다 보니 삶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지고 자기는 죽지 않고 오래 살 것이라는 매우 안일한 생각이 자리잡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br/><br/>바지선 안 컨테이너 속에서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각기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6명씩 짝을 이뤄 잠을 자고 생활해야 하는 일은 곤혹스러웠다. 강한 조류를 피해 잠수작업이 용이한 만조 물때를 보기 위해 밤낮이 바뀌는 반복적인 취침을 취할 때, 필자는 &lt;그날의 양식&gt;과 또 그날그날 읽어야 하는 일일 성경 분량을 읽고 있었다. 그때 한 다이버 후배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졌다. &#034;형님은 왜 그리 성경을 읽으십니까?&#034; 그래서 필자는 &#034;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지.&#034;라고 대답했다(딤전 2:4). &#034;하지만 나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진리의 지식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야.&#034;라고 설명을 해줬고, 잠시 밖에 나가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하면서 그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잡았다. 그 후배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고 교회에 다닌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과거에 좀 다녔다고 대답했다. &#034;그럼 너 자신이 죄인인 걸 아느냐?&#034;라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필자는 말했다. &#034;죄인이 죽으면 지금 이 지옥 같은 현장은 비교도 안 되는 진짜 지옥에 가게 돼. 너도 느끼는 것처럼 지옥에 가면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된다.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애걸복걸해도 나올 수 없는 곳이야. 넌 지금 구원받아야 돼. 예수님께서 너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림으로 모든 죄값을 대신 지불해 주셨어. 예수님 덕분에 너와 나의 죄가 용서된 것이지. 이걸 믿으면 되는 거야.&#034; 후배는 이 간단한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따라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후배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담대하게 주님을 영접했다.<br/><br/>수중수색을 마치면 챔버(고기압의 큰 통으로 연탄가스를 마시면 들어가서 가스를 체외로 뺄 수 있는 기구) 안에 들어가 50분 정도 체내에 축적된 질소를 빼내야 했다. 몇 분 동안 산소호흡기를 대고 있어야 했고, 잠시 산소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벗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필자는 때는 이때다 싶어 나이 많은 선배에게 복음을 전했다. 왜냐하면 수중수색을 하는 일이 지옥과 상황이 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034;형님, 사람이 왜 죽는지 아십니까? 바로 죄 때문에 죽는 것인데(롬 6:23), 죄인이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아 하늘나라 갑시다. 우리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034; 그러나 그 선배는 &#034;야 이 사람아, 지옥이 어딨노? 이 세상에서 잘살고 그냥 제멋대로 사는 것이지. 야 니도 유병언이 파냐?&#034;고 하면서 복음을 거칠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런 선배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도 언젠가 정신을 차리고 죽음을 깊이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에 다닌다는 선배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접기도를 같이 했을 때, 그 선배가 필자의 손을 잡더니 &#034;현수야, 고맙다!&#034;라고 했는데, 그땐 정말 너무나도 기뻤다.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 12:3)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나중에 주실 상을 생각하니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다.<br/><br/>야간작업을 하고 모든 사람이 낮에 취침을 하고 있을 때 필자는 바지선 위로 바람을 쐬러 나가면서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만화 전도지 여러 권과 &lt;알베르토&gt; 시리즈를 챙겨 갔다. 챔버가 2대여서 그 안에 놔두기 위해서였다. 챔버에 들어가면 보통 50분씩 앉아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몇 권의 책들이 지루한 시간을 달래 주기에 차라리 그들이 복음 책자를 읽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034;재미있게 봤다.&#034;는 사람, &#034;뭐 그런 걸 놔두냐.&#034;며 시큰둥해 하는 사람, &#034;나도 교회에 다니는데 종교는 강요하는 게 아니고 전도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034;라고 하는 사람, 그러면서 복음전도지를 챔버에서 자기 방으로 가져가 버리고 자기 방에 놔두고 보는 장로교인 다이버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챔버에서 나온 후배 다이버가 다가오더니 &#034;형님, 만화에서 한 것처럼 기도하면 구원받아요?&#034;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034;그래, 진심으로 하면 구원받게 된다.&#034;고 했다. 그 뒤 그 후배는 만화 전도지에 안내되어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혼자 했다고 한다. 그는 구원받은 것이다.<br/><br/>사체를 인양하고 나서 수습을 돕는 데에서 나는 냄새는 지방이 썩는 냄새인데 그 냄새가 손에서 좀처럼 가시질 않아 비위 좋은 필자도 밥이 잘 넘어가질 않았다. 사체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는 말씀을 되새기면서 &#034;주님! 분명히 약속하셨죠?&#034;라고 슬며시 혼자 기도한 적도 있었다.<br/><br/>『사람이 존귀할지라도 오래 살지 못하니 그가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12). 죽은 사람들을 자신이 직접 수색하고 썩은 사체를 인양하는 지옥 같은 현장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죽음과 멀다고 여기며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039;참으로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면서도 존귀할까? 정말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039; 하는 안타까운 생각만 일었다. 그들은 한갓 이야기처럼 지나가는 인생(시 90:9)을, 그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을 살면서(시 90:10), 분명 손 너비만큼 주신 인생을 살면서(시 39:5),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거절하고 있었다.<br/><br/>세월호 수색 종료를 발표하고 민간잠수사 해단식 전날 그동안 수고했다고 하며 많은 사람이 만남과 헤어짐과 수고를 술로 위로하며 격려할 때 필자는 밖으로 나가 있었다. 이곳에서 나를 보호해 주신 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눈물이 났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무사히 돌아가는 그 심정을 그들은 모른다. 필자가 합류한 시점부터 필자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도 지켜주셨다는 것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br/><br/>집으로 복귀하면서,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필자가 속한 지역 교회인 순천성경침례교회에 대해서, 또 그 교회의 회원이며 성도라는 점에 대해서 주님께 감사드렸다. 교회 목회자님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이 필자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였기에,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 주님의 보호하심 속에 살아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남은 생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성도로서 보다 깊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이 보석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님을 위해 더 헌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장하겠다고. 그리고 진리의 지식을 공부함으로써 지역 교회에서 주님 앞에 꼭 쓰임받는 신실한 성도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이 험한 여정을 인도해 주신 주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돌려 드린다.<br/><br/>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직 구원을 받지 않았는가? 반드시 알라. 사람이 존귀할지라도 오래 살지 못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지옥의 심판이 있다.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되며, 죽은 후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어서 구원받으라!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0:42:5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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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구원파의 족쇄를 풀다</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0/%EA%B5%AC%EC%9B%90%ED%8C%8C%EC%9D%98-%EC%A1%B1%EC%87%84%EB%A5%BC-%ED%92%80%EB%8B%A4/</link>
<description><![CDATA[충청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어머니께서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 모아 비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때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장독대와 작은 나무들뿐인데 어머니는 대체 누구에게 정성들여 비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 했다. 조금 더 컸을 때에는 무당이 북과 징을 두드리며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자랐고, 또 어느 한 날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 깊은 산중에 찾아와 그들의 교리를 열심히 설명하며 건네준 빨간 성경책 한 권과 파수대를 뒤적이다가 아궁이에 던져 넣기도 했다. 마침 아랫동네에 사는 아주머니가 절에 다니다가 교회에 나가더니 미쳐 버렸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br/><br/>사춘기가 되어 산업체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사내에 장로교회가 있었다. 일하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야간작업 시간에 사고가 많이 발생해 회사는 사고예방차원에서 모든 학생을 강제로 그 교회에 출석하게 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 교회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 교회에서 처음으로 방언이라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슨 계시를 보여 주시더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부로 말해 줄 수 없다며 입을 꾹 다물었다.<br/><br/>당시에는 그들이 너무도 순수하고 깨끗해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자유롭게 교통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내 손으로 성경(당시에는 개역성경) 한 권을 사들고서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했고, 새벽기도도 열심히 찾아다니며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죄를 해결해 달라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기도를 갔다 오면 속이 시원해지고 뭔가 해결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죄들은 내 안에 남아 나를 계속 괴롭혔다.<br/><br/>당시 성경이라고 알고 있던 개역성경은 아무리 읽어도 깨달을 수가 없었고, 어떨 땐 나와 성경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하기도 했다. 한 번은 외부 교회에서 성경을 한 구절 한 구절 해석해 주며 자세히 가르쳐 준다기에 취침점호가 끝나면 몰래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 배우고 오곤 했는데, 2주 만에 사내 교회에서 그곳의 정체를 알려 주어 발을 끊을 수가 있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성경 공부를 핑계로 여자애들을 모아 훈련을 시킨 뒤 서울로 보내 어떤 목사의 시중을 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끔찍했다. 나는 그곳에서 배운 것들을 기록했던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br/><br/>얼마 후 허리 디스크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어 회사도 학교도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그 뒤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고, 인생의 숱한 비바람에 휩쓸렸다. 그 와중에도 나날이 늘어가는 것은 죄뿐이었다. 아이들의 아빠를 만나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헛된 꿈이요, 망상에 불과했다.<br/><br/>그러던 2003년 11월 둘째 딸을 낳기 한 달 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앞집 문방구에 갔다가 죄에서 구원을 받으면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젊은 전도사 부부가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을 앉혀 놓고 아담의 죄부터 시작하여 성경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세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만 혼자 남아 듣고 있었다. 수많은 교회들을 다녀봤지만 “구원”이란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던 내게 그들의 말은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고, 어서 빨리 구원받고 싶었다.<br/><br/>하지만 그날 구원받지 못했다. 구원을 받고 싶으면 자기들 집회에 참석해서 구원을 받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5일씩이나 참석해야 했다. 그때 작은 가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구원을 받는다는데 5일이 문제인가? 장사야 또 하면 되지.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안 올지도 몰라.’ 하는 생각에 남편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집회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br/><br/>소위 “구원파”라는 이들의 집회 첫 날과 둘째 날, 그들은 먼저 마음밭을 갈아엎어야 한다면서 예화를 이것저것 들어가며 설교를 했다. 드디어 셋째 날에 가서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2천 년 전에 이미 우리의 죄 문제를 다 해결해 놓으셨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죄값을 다 치러 놓으셨으니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는 것이었고, 더 이상 죄 때문에 지옥에 갈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br/><br/>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지난 죄들이 영상처럼 펼쳐지며 지나갔고, 내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개인 교제 시간에 어떤 전도사라는 이와 상담을 하면서 속마음을 이야기했더니 그는 내가 구원받은 것이라고 했다. 뭔가 석연치 않고 부족한 것을 느꼈지만 일단은 예수님이 내 죄를 다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에 기쁘고 감사했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겠노라고 다짐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정말로 뭔가가 확 달라진 느낌이었다. ‘나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다. 나는 구원을 받았다.’를 계속 되뇌니 마치 모든 것이 새로워진 듯했다. 그토록 미웠던 남편도 더 이상 밉지 않았고, 그도 하루빨리 구원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솟구쳤다.<br/><br/>그 뒤 교회의 사모라는 이의 권고를 받아들여 빚만 늘어가는 가게를 정리하고 그 교회 옆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 나서 남편이 직장을 잡지 못해 오랜 세월을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겨울에 보일러 기름도 없어 냉방에서 자기 일쑤였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저 내 죄 때문에 죽어 주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그 모든 것을 견뎌 냈다.<br/><br/>2년 가까이를 그 교회에 온 마음을 쏟으며 집회며 행사들에 참석했고, 교회 가까이 사는 자매들은 의무적으로 매일 교회에 나와 둘씩 짝을 지어 전도를 나가야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난 교회 옆으로 이사 오라는 사모의 꼼수에 걸려들어 그들의 족쇄에 채워진 것이었다). 그런데 형편이 어려운 것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는데,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나를 뒷걸음질 치게 하고 교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게 하는 일들이 허다하게 발생했다. 한 달이 멀다하고 교회들을 건축한다며 각 지역 교회들에 헌금이 몇 천만 원씩 배당되어 일명 “작정헌금”이란 것을 해야 했고, 그 외에도 크리스마스 칸타타니 여름 수양회, 겨울 수양회, 합창단 공연회, 중고등학생 댄스공연, 국제청소년연합이니 하며 모든 것이 “돈, 돈, 돈”이었다. 사람이 몇 안 되는 시골 교회들은 배당된 헌금을 맞추기 위해 집을 파는 사람, 대출을 받는 사람, 돈을 빌리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생겨났고, 심지어 교회를 담보로 대출받아 배당된 헌금 액수를 맞추어 위로 올려 보냈다. 때로는 농사를 많이 짓는 집을 방문해 일을 도와주며 헌금을 좀 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자매들은 그런 집들에 가서 일을 거들어 주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 좋기는 했는데, 점점 더 무거운 짐들이 더해져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구원파가 말한 “구원”은 “족쇄”나 다름없었다.<br/><br/>사모들은 교회 자매들을 완전히 통제하고 가정생활까지 간섭했다. 간혹 걸음마를 갓 떼기 시작한 어린애들이 떼를 쓰며 울 때에는 어릴 때부터 고집을 꺾어 주어야 한다며 화장실로 데리고 가 자기 아이도 아닌 애들을 심하게 때리곤 했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구원”이란 것을 내게 알려 준 교회였기에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계기로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외에 모든 행사들에 참여하는 것을 자제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자주 일자리가 없어 몇 개월씩 노는 남편을 핑계로 직장을 잡아 일을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구원파 사람들은 늘 내 주위를 맴돌았고, 어쩌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집에 찾아와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캐묻기 일쑤였다.<br/><br/>그런 일들이 너무 부담스럽고 무거운 짐이 되었지만 벗어날 길이 없었다. 남편이 1년 7개월을 집에만 있을 때 난 엄청난 스트레스로 위암으로 전이되기 직전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2008년 9월 아이들만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다행히 언니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몸이 점점 회복되었고, 작은 월세 방을 얻어 조용한 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자꾸만 교회에 가고 싶은데 아는 곳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 일단 전에 다니던 교회의 본교회가 서울에 있어 잠시 나가 보았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시골 교회와 별 차이가 없어 그 교회에 나가는 것을 멈추고 집에서 혼자 기도하며 깊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6년을 그 교회에 다녔는데 남은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성경에 대한 지식도 없고,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고, 이제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조차 알 수가 없다.’ 난 그야말로 “빈 깡통”이었다.<br/><br/>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도 정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다. 수백 개의 교회를 이끌고, 세계 문화며 춤들을 끌어들여 예배시간 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붕 띄워 놓고 끝에 가서는 결국 돈을 요구하는 목사가 과연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이 맞습니까?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br/><br/>며칠 뒤 “인터넷에 목사님에 대해 비방하는 글들이 올라온 것을 보지 말아라. 그런 것들을 보다 보면 마음이 끌려간다.”고 했던 어느 구역장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목사의 정체에 대해 알아야 했기에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딕욕이라는 선교사를 통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했지만 그 선교사는 그에게 목사 안수를 해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제쳐 두고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그 딕욕이라는 선교사가 &lt;킹제임스성경&gt;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성경은 개역성경인데 &lt;킹제임스성경&gt;이 뭐지?” 하며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에 대한 정보가 줄줄이 떴고, 결국 “성경침례교회”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중하게 차근차근 구원의 복음, 구원의 확신, 구원의 영원한 보장, 기초성경공부 등에 들어가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했고, 그때서야 내가 성경적인 복음으로 구원받지 못했음을 깨닫고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했다. 아이들에게도 다시 복음을 전해 함께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여 구원을 받게 했다. 그때가 2010년 2월 7일이었다.<br/><br/>하나님께서는 나의 지각을 열어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셨고, 내가 거짓 구원으로 속임당한 것이 모두가 삭제되고 변개된 개역성경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성경침례교회로 달려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구입하고 수많은 진리의 서적들 중 몇 권을 더 구입하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br/><br/>드디어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참되고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진리의 성경이 내 손에 주어진 것이다. 변개된 구절들을 체크하다가 이사야 14:12에서 사탄인 루시퍼를 예수 그리스도인 계명성으로 변개시킨 구절을 확인했을 때에는 속에서 불이 올라와 내 자신이 다 타버리는 듯했다. 『이 세상의 신』(고후 4:4)인 사탄이 변개된 개역성경으로 가리어 온 하나님의 참된 진리들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통해서 그 베일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구입했던 수많은 책들과 테이프들은 혹여 누가 보고 잘못 인도될까봐 두려워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변개된 성경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보석 같은 진리들이 “빈 깡통”을 조금씩 조금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br/><br/>지금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주신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인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되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종 밑에서 양육을 받고 있다. 나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참여해 신실한 형제자매님들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직은 부족한 점들이 많지만,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네게 지시하고 가르치리니 내가 너를 내 눈으로 인도하리라.』(시 32:8)고 하신 하나님께서 징계와 훈계를 통해 지시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가르치시며 나를 다듬어 가고 계신다. 주님의 섭리적인 다루심 속에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며 깨우치고 계신다(요 16:13). 이러한 삶은 세상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바른 말씀으로 세우신 참된 신약 교회에서만 맛볼 수 있다. 인생의 모진 풍파와 거짓 종교들로 인해 안정을 찾을 수 없던 나를 바른 성경과 바른 교회로 인도해 주시어 하늘의 본향을 향해 가게 하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참으로 놀랍고도 위대하신 나의 창조주이시며 나의 구속주이시고 나의 심판주이신 주 나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린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0:30:0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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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큰 교회에서 바른 교회로</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0/%ED%81%B0-%EA%B5%90%ED%9A%8C%EC%97%90%EC%84%9C-%EB%B0%94%EB%A5%B8-%EA%B5%90%ED%9A%8C%EB%A1%9C/</link>
<description><![CDATA[나는 경기도 이남에서 제일 크다는 어느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동안 교회들에 무척 실망하여 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미 두어 번이나 옮겼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제일 큰 교회에 찾아가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교회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큰 교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br/><br/>큰 교회에 가니 주일예배는 물론이요, 새벽예배, 수요예배, 철야예배, 구역예배뿐 아니라, 각종 성경공부도 취향에 따라 골라 배울 수 있었다. 그 교회는 &#034;우리는 뷔페 같은 교회다. 각종 메뉴가 많으니 골라 먹기만 하면 된다.&#034;고 스스로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그동안 다녔던 교회들에서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많았는데, 이 큰 교회에서 이런 호사스러움(?)을 누리다니 기분이 정말 날아갈 것만 같았다.<br/><br/>한편 남편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1997년부터 알게 되었고, 말씀보존학회에서 나오는 서적들을 읽고 있었다. 나는 교회와 목사들에게 상처를 입고 실망이 몹시도 컸던 터라 &#034;이제 새로운 것은 알기도 싫고, 다시는 교회를 옮기는 일도 없을 겁니다!&#034;라고 못을 단단히 박아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집에 있어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남편은 그 성경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 통신과정을 신청해서 강의테이프를 들으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우리나라 교회들 전체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 잘못된 부분이 많아서 버려야 한다는 가슴 떨리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도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읽어 보라며 권했고, &lt;한글킹제임스성경&gt;과 변개된 개역성경을 비교한 성경 비교 책자를 건네주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도록 했다. 한 눈에 봐도 다른 것이 뻔했지만, 더 이상 새롭다는 것도 싫고 다른 누군가에게서 상처받는 것도 싫어서 &#034;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마세요.&#034;라며 남편의 권유를 완강하게 뿌리쳤다.<br/><br/>그 즈음 남편의 추천으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 번역자이신 이송오 목사님께서 부산대학교 교수 신우회에 초대되어 설교를 하셨는데, 그날 그 설교는 그때까지 알고 있던 제도 교회의 성경 지식과 전통을 완전히 깨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참석한 교수들은 대부분이 교회 장로들이었는데 그들은 심기가 대단히 불편한 듯 안색이 변해 갔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마치신 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니까 학생들이 우르르 나가 영접 기도를 했다. 그 학생들은 기독교 동아리 학생들이었다. 그동안 그들은 구원도 받지 못한 채 &#034;교회&#034;를 다녔고 &#034;기독교&#034;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 나라 교회들의 현실이었다. 식사하러 식당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영접기도를 하겠다고 따라온 학생들을 목사님께서 끌어안고 같이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목사들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br/><br/>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주일날, 남편이 부산성경침례교회에 나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034;당신이 가는 것은 자유지만 나는 가만히 놔 두세요.&#034;라고 일찌감치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정은 한 지붕 아래의 이산가족이 되어 주일날이면 두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남편과 아들, 나와 딸, 이렇게 둘로 나뉘어 각기 다른 교회에 출석했다.<br/><br/>그러던 중 집에서 구역성경공부를 인도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마침 거실 탁자 위에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놓여 있었는데, 불현듯 &#039;저 성경에는 이 구절이 어떻게 기록되었나?&#039; 하고 궁금해졌다. 그래서 드디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펼쳐서 읽어 보게 되었다. 그때 처음 읽어 본 그 &#034;성경&#034;은 개역성경과 달리 의미가 분명하고 쉬웠다. 그 뒤로 나는 재미가 나서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만 되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읽고 그 성경으로 준비해서 가르쳤다. 우리 집에 모인 구역 식구들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며 교회에서 가르친 것보다 내 말이 더 이해가 된다면서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개역성경을 뒤로하고 &lt;한글킹제임스성경&gt;만을 읽게 되었다.<br/><br/>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명씩 집을 떠나게 되자 우리 부부만 집에 남게 된 시기가 오게 되었다. 남편은 부산성경침례교회의 조도희 목사님께 성경공부를 제안했다. 그래서 남편의 연구실에서 목사님을 만나 매주 성경을 배웠는데, 첫날 나는 질문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도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는 말씀이 제일 신기했다. 그때까지 성경을 세대별로 나누지 않아서 밑도 끝도 없는 성경공부를 하고도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가 많았었다. 도대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았고, 성도들도 대환란을 겪어야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요한복음 3:16을 믿는데 가끔 마태복음 7:21을 읽을 때면 의문이 생겼다. 『나에게 &#039;주여, 주여.&#039;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 바로 이런 구절들 때문에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에 더욱 열심이었던 것 같다. 목사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겁을 주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었다. 나를 제일 두렵게 했던 것은 『그 날들에는 아이를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마 24:19)는 말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도권 목사들도 그 문제를 고민해 보았을 텐데 왜 그들은 다 같이 모르는 것일까? 그들 모두가 변개된 성경을 사용하니 성령님의 조명을 받지 못하므로 성경을 모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br/><br/>큰 교회에 다니면서 전도라는 것을 매주 했었는데 전도지와 화장지를 건네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034;예수 믿으면 좋아요.&#034;라고 했다. 그러던 중 조도희 목사님께서 거리에서 전도(구령)하면 그 자리에서 영접기도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다. 난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뛰었다. &#034;정말이에요? 거리에서 영접기도를 해요?&#034; 이렇게 묻고서 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부터 하면 되는지 적어 달라고 했다. 간단하게 적은 종이를 들고 오면서 속으로 구령 연습을 했다. 마침 그날은 버스 정류소에서 구역 식구들과 전도하는 날이었다. 무척 떨렸지만 알려 주신 대로 한 아주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영접기도까지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그 감동이란 참으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전도를 잘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주위 사람들이 전도할 사람이 있으면 나에게 데려오곤 했다. 난 속으로 너무도 기뻤다. 새 교인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매주 새 교인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영접하도록 인도하는 일을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매주 새 교인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너무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039;공부는 저쪽에서 하고 여기서 사역하면 되겠지.&#039; 하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은혜롭게(?) 들었던 설교를 더 이상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틀린 교리를 들어야 하고, 또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데도 교인들은 아멘을 외치고 있는 그 자리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단을 내려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동안 정들었던 교우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뒤로한 채, 나는 나에게 바른 성경을 가르쳐 준 부산성경침례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br/><br/>대학생이 된, 머리가 다 커버린 자녀들을 바른 교회로 오게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리를 더 믿는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설득하느라 수년이 걸렸다. 부산 지역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담임목사님께서 주도하신 성경공부의 도움으로 자녀들도 성경대로 믿는 신앙으로 정착되었고, 두 자녀 모두 존경하는 이송오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데, 또 올해 6월이면 우리 부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예정이다. &#034;하나님! 태어나는 손주마다 성경대로 믿는 아이로 자라게 해주십시오.&#034; 이것이 내 새 기도제목이 되었다. 지금도 토요일이면 남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리설교하고 나는 개인구령을 하러 사람 많은 거리로 나선다. 이 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저 셋째 하늘로 들어올리실 그 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돌려드린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0:16:5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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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독일에서 만난 로버트 트럼프 선교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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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필자는 독일어를 전공하면서 독일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시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난제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하신 손길로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주님께서 인도하신 곳은 구텐베르크의 도시인 마인츠였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하기에 앞서 이곳 독일에서 만나야 할 믿음의 전우가 있었다.<br/>&nbsp; 2015년 9월 19일 오전 8시. 슈투트가르트(Stuttgart)로 향하는 기차 EC113편을 타고서 오전 10시에 도착한 중앙역에서 만난 사람은 로버트 트럼프(Robert Trump) 선교사였다. 우리는 곧바로 에슬링겐(Esslingen)이라는 슈투트가르트 근교 소도시로 이동하였는데 토요일 오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때마침 지역 행사가 있었는지 온 동네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듯 했다. 우리는 이동하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칙(Chick) 만화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다. 거리설교 장소는 작은 분수대 광장이었다. 주말에는 거리가 보행자 구역이고, 건물이 길을 따라 조밀하게 펼쳐져 있는 유럽의 특성 덕에 설교는 육성으로 했다.<br/>&nbsp; 트럼프 형제의 첫 설교가 끝나자, 나 역시 트럼프 형제에게 미리 보내어 수정을 받은 &#034;독일어 거리설교문&#034;을 토대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동양인은 필자 혼자였는데, 이런 낯선 이방인이 독일어로 외쳤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은 그렇게 약 40분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야 했다.<br/>&nbsp;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대조적이었다. 독일어로 설교하는 동양인을 보고서 놀란 표정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무리지어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뒤에서 조롱하며 흉내내던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관심을 표명한 것만큼은 분명했다.<br/>&nbsp; 그날 오후 트럼프 형제의 집으로 돌아와 거리설교 때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얘기하자 형제는 &#034;본래 독일 사람들은 눈길도 안 주고 사람 취급도 안 하는데 이번처럼 많은 사람이 복음을 경청했던 경우는 흔치 않다.&#034;고 했다.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든, 아예 반응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했다. 본래 독일 사람들은 거리설교 하는 것을 보면 인상을 쓰면서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고 한다. 이것이 독일의 현 주소이다. 필자는 그때 그 거리설교를 계기로 복음을 전할 때 쓰면 좋은 독일어 표현을 여러 가지 공부할 수 있었다.<br/>&nbsp; 우리는 서로의 구원 간증과 가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인인 트럼프 형제는 18살 무렵 성경을 구하여 방에서 혼자 읽다가 아버지께 들켜 집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 일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더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말씀을 읽으며 성경이 진리임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겠노라고 결심한 후 럭크만 목사님께서 가르치시는 펜사콜라성경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 이하 PBI)으로 직행했다. 형제는 PBI에서 성경적 지식들을 확립했으며, 또 본래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터에 독일어를 독학하다가 본격적으로 전문기관에서 공부하여 독일어능력공인시험(Zertifikat Deutsch)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A2를 획득했다. 이후 형제의 발걸음은 독일어권 국가로 향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단기로 선교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독일에 선교사로 파송된 상태이다. 트럼프 선교사는 독일어를 지금도 공부하고 있으며, 독일어를 매우 유창히 구사할 줄 안다.<br/>&nbsp; 내가 보기에 트럼프 형제는 진리의 말씀을 갈구하는 사람 찾기가 마치 모래알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든 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하나님의 종이자 복음 전파자요 믿음의 전사였다.<br/>&nbsp; 나는 트럼프 형제에게 우리 성경침례교회의 사역에 대해 간증했다. 형제는 성경침례교회와 한국에 있는 각 지역 교회들, 우리를 지원하는 손길들과 우리가 지원하는 선교사들, 30여 개에 이르는 거리설교팀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송오 목사님께서 우리가 럭크만 목사님의 책들로 인해 많은 시간을 절약했고 그분의 향상된 계시를 통해 사역의 지경을 넓히게 되었기에 이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의 일환으로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것임을 말해 주니, 형제 역시 그 마음을 이해하겠노라고 했다. 특히 이렇게 많은 거리설교팀들이 매주 거리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매월 평균 2,000여 명의 혼들을 하나님께로 이겨온다는 사실에 형제는 큰 소리로 아멘 하며 기뻐했다.<br/>&nbsp; 말씀보존학회가 지금까지 출간한 240여 가지의 진리의 서적들과 다양한 성경들을 이야기하며 &lt;럭크만 주석성경&gt;을 보여 주었더니, 형제는 물론 그의 자매까지도 달려와 유심히 살펴보는 관심을 보였다. 이송오 목사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이래 매일같이 성경이 보급되고 있다는 간증도 함께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와 킹제임스성경신학교 사역과, 또 다음 날 새벽 성경침례교회의 오후 예배 인터넷 생방송도 잠시 소개해 줬는데, 지난 20여 년간 성경침례교회에 위탁하여 주신 사역들과 성도들이 이 사역을 함께 감당하고 있음에 형제는 크게 도전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<br/>&nbsp; 우리는 독일어 성경과 성경공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545년 마틴 루터는 변개되지 않은 필사본에 기초하여 &lt;루터성경&gt;(Die Lutherbibel)을 펴냈다. 루터성경은 곧 독일어의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현대 독일어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루터가 성경 번역시 사용했던 헬라어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의 조각들은 아직 &lt;킹제임스성경&gt; 번역 당시만큼 모두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형제는 독일어 성경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처럼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에서 번역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형제는 나름대로 영독 대역성경을 스스로 제작했는데, 우리의 한영대역 성경을 살펴보면서 디자인과 종이의 질에 큰 부러움을 나타냈다.<br/>&nbsp; 독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 있는 사람을 모아서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곳 독일에서도 복음을 전하면 교회를 다니라고 생각하거나 종교를 가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적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마저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한 혼을 이겨오는 것은 실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구원받은 혼들과 말씀에 갈급한 혼들을 모아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현재 트럼프 형제의 영어 수업에 참석하는 7명 남짓의 독일인들을 구령하여 그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형제의 기도제목이다.<br/>&nbsp; 이곳 독일은 바른 교리에 기초한 서적도 현저히 부족하다. 필요한 자료가 독일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미 번역이 된 자료들도 번역의 질이 낮은 경우가 태반이어서 형제가 직접 번역할 때가 많다고 한다.<br/>&nbsp;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학문적인 틀을 갖춘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형제는 내년에 세미나 형식으로 강연회를 가질 구상을 하고 있었다. 학문적인 형식을 빌려 대중에게 다가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br/>&nbsp; 트럼프 형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필자에게 친절과 정성을 다해 주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교제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형제와 함께 있는 동안, 종교개혁의 불꽃이 피어올랐던 독일 땅이 진리의 꽃 한 송이 필 수 없는 영적 황무지가 되었기에 이제는 오히려 타국에서 오는 선교사들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한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처럼 올바른 믿음을 후대에 온전히 전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br/>&nbsp; 이 척박한 땅에서 외로이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는 선교사들의 노고와 고민을 형제와 나누며 기도로 도울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린다. 만일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와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영적 지식 함양과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면, 나는 이곳에 와서도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을 위해서만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내가 바른 교회에서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며 자랄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셔서 로버트 트럼프 선교사와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며, 특히 개인적으로 이송오 목사님께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nbsp;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Jun 2024 15:19:5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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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가족이 성별한 후 다녀온 순회설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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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나는 불과 3년여 전만 해도, 불순종의 자녀요, 진노의 자녀로서(엡 2:2,3), 아무런 소망도 없이 지옥으로,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지옥으로 달려가는 그 멸망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오히려 그 멸망의 길로 걸어가는 이들을 구해 내는 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어, 그 기적적인 사실에 놀랍고 감사하기만 하다. 나의 성별과 복음 전파자로서의 여정에 역사하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는, 아들과 자매의 성별, 그리고 지난 9월 초의 순회설교에도 넘쳐났다.<br/>&nbsp; 먼저 결국 배교한 무리들에게서 성별해 나온 가족 이야기를 하자면, 아들이 진리의 대열에 서게 된 것에 고무된 나는 자매의 성별도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자매는 인터넷에 도배된 &#034;이단&#034;이라는 글자에 사로잡혀 나를 무섭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길게만 느껴지던 성별의 여정을 마친 지금이야,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시는 징계요 연단의 시간들이었다고(히 12:5-11) 여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는 정말로 지옥 같은 3년이요, 비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6천 년간 사람을 다루는 귀재요 전문가인 마귀는 쾌재를 부르며 나의 가정을 무참히 황폐화시켰다. 원수는 가족 중에 있었고(마 10:36), 때로는 자살로, 때로는 이혼으로 협박했다. 마귀는 그래도 가정 파괴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번에는 호소의 눈물로 다가왔다. 그러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기가 겁이 난다던 자매, 다투는 모습이 보기 싫어 친구들과 밖으로 배회하던 아들, 기도를 한다면서도 믿음 없이 육신적이 되어 마귀에게 속고 또 속아, 패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 우리 가족은 모두들 영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러기를 한 해, 두 해가 지나자, 나와 자매는 서로 체념한 채 싸움을 피하는 쪽으로 타협을 하며 지내기 시작했다. 비록 금요철야예배 때마다 밤에 나가는 일로, 또 자매가 헌금을 내는 일로 가끔씩 다투긴 했지만, 함께 산책도 하기 시작했다.<br/>&nbsp; 그러다 결국 진리에 눈을 뜬 아내가 배교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 뒤 어느 산책길에서 나에게 해주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034;당신 몰래 전도지를 읽어 보았어요. 대학 다닐 때 네비게이토에서 영접 기도 하고 구원받은 기억이 또렷해서, 전도지의 내용이 정확하다는 생각에 기본적으로는 이단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몇 장 나눠 주기도 했어요.&#034; &#034;현대종교에도 전화해서 이단이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단이라 규정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그랬어요.&#034; &#034;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토요일마다 거리에 나가 부침개를 부쳐 주며 전도할 때마다 &#039;이게 아닌데.&#039; 하며 회의가 들곤 했어요. 그곳에서 나와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았어요.&#034;<br/>&nbsp; 아내는 주님을 위해서 해 놓은 게 없는데 어떻게 주님 앞에 갈까 두렵다고 했다. 전에는 성경이 어렵고 믿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성경이 쉽고 다 믿어지며, 성경 읽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마귀에게 미혹된 모든 교인들이 이런 고백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br/>&nbsp; 나는 이렇게 성별한 아내와 함께 지난 9월 초, 2박 3일 일정으로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지역을 순회하며 거리설교를 했다. 원래는 자매를 구출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매가 성별한 지 1달쯤 지나, 아들과 셋이서 2박 3일 일정으로 전주 인근 지역을 순회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를 철썩 같이 믿고서 그만 첫날만 복음을 전하고서 비를 핑계 삼아 하루 앞당겨서 돌아오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주일 오전 예배 때 목사님을 통해 &#034;순회설교 한다고 해놓고 하지 않는 거짓말쟁이를 주님께서 쓰시겠는가?&#034;라는 강한 찔림을 주셨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하여 설교 후 초청시간에 단상 앞으로 나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 나의 믿음 없음을 자백하고 회개했다. 그리고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순회설교를 다녀오겠다고 주님께 말씀드렸다. 이번 기회에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최전방 지역을 순회설교 하고 싶다고 아뢴 것이다.<br/>&nbsp; 그래서 이번에는 일기예보 검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설교지에서는 비를 기적적으로 그치게 하셨다는 목사님의 순회설교 간증을 문자 그대로 &#034;믿고&#034; 집을 나선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히 11:6). 역시나 주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셨다. 자신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이들에게 은혜와 자비를 풍성히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서 시작한 2박 3일의 순회설교 여정에 주님께서는 쾌적한 날씨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br/>&nbsp; 순회설교 첫째 날, 나는 작년 가을 동두천 공원에서의 풍성했던 구령을 떠올리며, 그 위쪽에 위치한 인적 드문 연천에서부터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연천역 앞 삼거리에서 각 방향별로 설교를 하는데, 지나가던 차 안에서 운전자들이 들었고, 상가 점포에서는 점원들이 나와서 듣고 있었다. 젊은 주부 한 명은 길모퉁이에서 복음 설교를 끝까지 경청하고 있었다. 그 사이 자매는 상가를 돌며 전도지를 나눠 주었는데, 그림판을 걷고 이동하는 길에 초등학교 교정에 들러 구령을 다 하고 났더니, 그때서야 경비원이 다가와 방해하려 했고 수업 시작 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자매는 성별 후 처음으로 구령의 기쁨을 누렸는데 그것도 쌍둥이 혼을 구령했다.<br/>&nbsp; 경기도 연천군의 전곡시장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하교하는 학생들을 구령한 다음 동두천으로 내려왔는데, 때마침 설교하는 지행사거리를 지나던 중고등 학생들을 구령할 수 있어 감사했다. 영종도에서 혼자 거리설교 하는 게 익숙해서, 가는 곳마다 스스럼없이 시내 중심 번화가를 물어보고 설교 장소를 정했는데,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주차 시간까지도 절약할 수 있도록 알맞은 주차 장소까지 쉽게 찾게 하셨다. 첫날은 포천에서 짐을 풀고 숙박했다.<br/>&nbsp; 둘째 날, 포천 신읍 사거리에서는 설교만 4번 하고 철원으로 넘어갔다. 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설교를 한 후 인근 초등학교 앞으로 갔는데 때마침 하교시간인지라 &#034;바쁘게&#034; 고기를 잡을 수 있어 감사했다. 그러고 나서 김화로 넘어갔는데, 평소에 가보고 싶던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김화로 가는 텅 빈 전용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다 보니 힘이 더욱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5일장이 열린 김화 와수리 로터리에서 설교를 마치고 대학생 2명을 비롯한 학생들을 구령하고 그림판을 접고 있는데, 마침 로터리에서 수신호로 차를 통제하고 있던 순박한 아저씨가 보였다. 그를 손짓으로 불러 복음을 전했더니, 자신은 글을 모른다며 연신 부끄러워하면서도 웃는 모습으로 영접기도를 따라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우리는 그렇게 구령한 후 화천에서 숙박 장소를 정하고 짐을 풀었다.<br/>&nbsp; 셋째 날 아침, 화천 인근 칠성전망대에 올라가기 전에 위치한 노인정 앞 평상에 노인정 회원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기에 다가가서 설교하고 구령했다. 그리고 전망대로 올라가 분단의 아픈 현실을 목도한 다음, 다시 돌아와 화천 중앙로에 성령님께서 특별히 마련하신 텅 빈 야외무대에 올라가 세 방향으로 복음을 선포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자매는 상가를 돌면서 전도지를 나눠 주며 구령하고 있었다.<br/>&nbsp; 순회설교 막바지 코스인 원통에서는 장터에서 설교하고 구령했으며, 인제로 가서는 군청 사거리에서 설교와 구령과 전도지 배포를 끝낸 후 사흘간 내걸었던 그림판을 걷었다. 설교 31회, 구령 152명의 전투 결과를 문자로 교회에 보고하고 있는데, 저 너머 산 위에서 천둥과 벼락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복음을 전할 동안에는 쾌적한 날씨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과 구령의 기쁨이 넘쳐 피곤함을 몰랐는데(사 40:31),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빗방울도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장거리 귀갓길이 막막해져 운전대를 잡고 기도로 아뢰었는데, 경춘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장대비가 퍼붓더니 앞 차가 바퀴로 물 폭탄까지 퍼붓는 바람에 순간 아찔할 정도로 위험해졌다. 자매가 다급했던지 기도 요청을 하자고 했다(시 56:3). 그래서 나는 내가 말로 불러 줄 테니 당신은 문자로 교회에 전송하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드리는 교회의 기도를 듣고 계셨다. 기도 요청이 끝난 뒤 1분이나 되었을까? 퍼붓던 장대비가 차츰 수그러들었다. 생생한 기도응답의 현장을 목도한 자매는 연신 놀라워하며 감사해 했다. 소강상태의 비는 이어졌지만 운전에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주님께서는 영종도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를 자상하게 보살펴 주셨다.<br/>&nbsp; 이 글의 초안을 작성해 놓은 다음 날, 자매와 함께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인천공항 구내식당에 들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다양한 직종의 상주 직원들에게, 양복차림으로 한 손에 성경을 든 채 입구에 서서 1시간 동안 전도지를 나눠 주었다. 외부인의 영업 행위를 경고하는 표지판이 부착된 구역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고, 거의 모두가 전도지를 받아가고 또 읽고 있는 모습에 주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br/>&nbsp; 주님께서는 아들과 자매의 성별, 그리고 순회설교의 모든 여정에 함께하셨다. 이 모든 일에 주님께서 들어쓰시는 하나님의 종 이송오 목사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바른 성경과 바른 교회, 그리고 바른 목자, 이 완벽한 조화 속에 시작된 새 인생의 여정이 교회가 휴거되는 그날까지 지속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이 모든 일들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nbsp;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Jun 2024 15:18: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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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바른 성경을 통해 만난 예수 그리스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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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故 권신찬 목사의 기독교복음침례회에 소속되었을 당시, 나는 전도하는 것보다는(구원파에서 전도의 현실적 의미는 전도집회에 참석케 하는 것임) 당시 모임에서(교회를 모임이라고 함)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와 회사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하고 그 일들에 참여했다. 여름 수양회 때 작업 지원을 나간다거나, 대학생 때 송지호 해수욕장 실습, 경남 고성 조선소 에프알피선 만드는 일에 실습을 나갔다. 또 청년회 때는 조장을 맡아 스쿠알렌을 들고 나가 판매했고, 성인회 때는 안성, 청송, 제주 등 모임 땅의 유기농 밭에서 사과 전지, 오미자 밭 일구기, 버섯재배용 통나무 나르기, 녹차 씨 심기, 녹차 잎 따기 등을 비롯해 한국녹색회 활동도 열심히 참가해 제주도 풍력발전기 설치를 반대하기 위해 서울에서 데모에 동참하기도 했고 다단계 사업인 SL도 참여했다. 모임에서 생산하거나 수입해 온 제품을 사는 것은 성도들을 돕기도 하는 것이고, 데살로니가전서 5:23에 따라 내 육체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제품을 구입해서 쓰는 것도 하나님의 일로 여겼다. 모임에서 유기농 농장을 하고, 세계선교센터를 짓기 위해 헌금을 작정하게 하는 일들 또한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br/><br/>&nbsp;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임에 의심스러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정헌금을 용지에 비공개적으로 적어 내던 것을 이름과 금액을 함께 적어 내라고 하여 공개적인 일로 만들었다. 구역 일을 맡았기 때문에 작정헌금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일이 마음에 늘 많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2006년부터 유병언 회장은 설교를 하지 않았고, 그의 둘째 아들(유혁기 사장)이 비정기적으로 수양회 때나, 북미 집회 때에 설교한 내용과 유 회장의 과거 설교를 토요일은 안성에서, 일요일은 삼각지 교회에서 녹화 테이프를 틀어 주는 식으로 예배를 보았다. 토요일 8시 예배 전에 태권도, 유도 운동하기, 그리고 예배 시간에 유 회장이 작사한 아해 노래 듣기, 유 회장이 교도소에서 단숨에 일필휘지로 썼다는 &lt;꿈 같은 사랑&gt;을 쓰고 읽고 암송하기 등의 프로그램 등이 생겨났다. 이런 것들이 성경적인 합당한 예배이고 하나님의 일인지 의심스러웠고, 신앙생활은 갈수록 마음에 혼란을 일으켜 결국 교회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br/><br/>&nbsp; 그래서 교회에 안 가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교회에 나가도 항상 1부는 &#039;꿈 같은 사랑&#039; 영어공부와 암송하기, 2부는 녹화 테이프 설교 시청의 패턴이 반복되었다. 또 유 회장은 설교 중에 개역성경에 &#039;없음&#039;이란 말이 나올 때는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을 찾아 설명해 주면서 &#034;나는 &lt;킹제임스성경&gt;이 맞고 개역성경이 틀리지만 이 성경(개역성경)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바꾸지 않겠다.&#034;고 했다. 그의 말은 나중에 &lt;킹제임스성경&gt;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켰다. 이런 예배와 종교 생활은 점점 더 나의 신앙생활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한 가지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고, 주님을 위해서 제대로 일하고 싶은 열정이 솟아났다. 신학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주님께 &#034;주님, 나의 이 세상 삶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에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를 주님의 종으로 써 주십시오.&#034;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br/><br/>&nbsp; 나의 그러한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셨다. 나는 구원파 교회에서 출판한 클라렌스 라킨의 &lt;바로 믿고 바로 알자&gt;란 책을 참 좋아했다. 그분의 책은 그림과 도표를 첨가해 성경 구절을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 그래서 그분의 책을 더 읽고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lt;세대적 진리&gt;란 책이 나왔다. 그 책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의 성경 구절을 인용한 책이었고, 그렇게 해서 바른 성경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때는 2012년도 중반이었다. 그렇지만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에 대한 신뢰가 바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lt;세대적 진리&gt;를 읽으면서 클라렌스 라킨의 영적 지식의 깊이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책 끝에 다른 출간된 서적 소개란을 보면서 피터 럭크만 목사의 &lt;하나님의 나라와 천국&gt;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그 책을 사서 보고 너무 놀랐다. 유 회장이 쓴 &lt;하나님의 나라와 천국&gt;보다 내용과 영적 지식이 더 풍부하고 깊었을 뿐만 아니라 피터 럭크만 목사는 유 회장보다 30년 이상 먼저 이 책을 썼다. 나는 그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이 다르다는 사실을 유 회장이 21세기 초에 제일 먼저 발견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보다 30년 전에 하나님께 영적 계시를 받고 위로부터 오는 더 풍부한 영적 지혜를 가지신 분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유 회장의 지식은 자신의 지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피터 럭크만 목사의 책을 한 권씩, 그것도 되도록 많이 읽고 싶었다. 그래서 그분이 쓴 주석서를 읽기 시작했다. 주석서를 제대로 보려고 하니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른 성경을 구입하고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lt;요한계시록&gt;, &lt;요한복음&gt;, &lt;마태복음&gt;, &lt;로마서&gt;, &lt;창세기&gt;... 등을 읽었고, 특히 &lt;요한계시록&gt;, &lt;요한복음&gt;, &lt;마태복음&gt;은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말씀보존학회의 다른 책들도 많이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의 놀라움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 놀라움은 &#034;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딤후 3:16) 섭리로 보존하신 성경(시 12:6,7)&#034;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마치 망치로 내 머리를 친 것과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절대무오한 성경이 존재한다는 사실! &#039;그러면 그렇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1,000억 개가 넘는 별이 있는 1,000억 개 이상의 은하계를 만드신 분이 겨우 84만 단어도 안 되는 성경을 보존 못하시는 게 말이 될까!&#039; 나는 정말 이제껏 믿어 왔던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을 만난 느낌이었다.<br/><br/>&nbsp; 그래도 구원파 내에서 성경 관련 책들을 나름대로 보았기에 성경 지식이 꽤 있다고 자부했는데 모든 것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처럼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개역성경에는 영, 혼, 몸의 구분도 없고(살전 5:23), 재창조의 진리가 삭제되어 있으며(창 1:28; 9:1), 삼위일체의 증거 구절이 삭제되어 있고(요일 5:7), 사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일컬으며(사 14:12, cf. 계 2:28; 22:16), &#034;복음&#034;이란 단어를 삭제하여 복음을 가렸고(고전 15:2-4), 성경을 공부하라는 말씀이 사라졌으며(딤후 2:15), 『비히못』(욥 40:15)을 &#034;하마&#034;로, 『리비야단』(욥 41:1)을 &#034;악어&#034;로 변개해 사탄의 정체를 가렸다. 나는 이러한 차이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고,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한글개역성경과 완전히 다른 성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br/><br/>&nbsp;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최종권위는 바른 성경이어야 하는데, 개역한글판과 같은 변개된 성경들로는 올바른 믿음이 형성될 수 없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도 없으며 이단 교리를 올바로 책망할 수도 없다. 그러나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 보니 나에게 비춰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다르게 나타났다. 바로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알고 믿었던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삭제, 첨가, 대체 등의 변개된 성경들로 인해 귀가 하나뿐이고, 눈이 수백 개이며, 뿔이 나 있는 &#034;괴물 예수&#034;였다. 나는 그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거짓 성경, 쓰레기 성경, 마귀 성경에 속아 살아 온 것을 알고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했다. 내가 구원받은 후 26년간의 생활을 거짓된 성경 때문에 헛되게 보냈다는 사실에 과거의 시간들을 되돌려 받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번역해 주신 분을 만나면 정말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2015년 6월 드디어 이송오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 나는 &#034;&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번역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034;라고 말씀드렸다.<br/><br/>&nbsp; 삭제, 첨가, 대체되지 않은, 훼손되지 않은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된 바른 성경을 통해 나는 진리의 지식에 눈을 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위대하신 모습을 다시 발견했다. 나는 2014년 12월 성경침례교회 선교주간에 교회에 처음 출석했고, 같은 달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도 등록했다. 나의 믿음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날이 갈수록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내 영과 혼과 몸에 흡수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이 생겼다.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완전한 말씀이었다. 그 믿음이 생기자 복음을 전하는 데 용기가 생겼고, 말씀을 담대하고 강건하게 전할 수 있었다. 구원파 종교 생활 26년간 단 한 명의 혼도 나 혼자서 제대로 구령한 적이 없었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 내 어머니조차 구원을 받고 돌아가셨는지 확신이 없다. 나는 신학교 공부를 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인 2015년 5월 8일 처음으로 직장 동료에게 내가 정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복음을 전해서 구령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도하기 힘들었던 아버지, 내 여동생은 전화로 구령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2015년 10월 현재까지 400명의 혼들을 마귀의 진영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겨왔다. 이것은 내게 기적과 같은 일이다.<br/><br/>&nbsp; 주님께서는 나를 구원받게 하셨고, 또 많은 혼들을 이겨올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을 내게 맡겨 주셨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도 감사한데 바른 성경을 알게 하여 주시고, 또 많은 혼들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써 주시니 나에게는 정말 『은혜 위에 은혜』(요 1:16)였다. 또한 나의 두 아들은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에서 성별된 삶 속에 그리스도인 선생님들에게서 성경공부와 학교 공부를 하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삶을 살면서 정부의 인가된 학교에서는 불가능한 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전에 구원파 교회에 다닐 때는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 와서는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성도들과 함께 거리설교와 구령에 동참하고 있다.<br/><br/>&nbsp; 나의 소망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D.L. 무디처럼 수많은 혼들을 주님께 이겨오는 것이고, 그러다가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참된 신약 교회에서 바른 성경으로 예배를 드리고,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주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만 하다. 지금은 주님께서 나타나시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발견될 수 있기를, 주님께 인정받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 구원파의 소속감과 미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아내가 바른 성경, 바른 교회를 통해 진리의 말씀으로 영적 성장을 하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과 똑같은 믿음, 똑같은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 일 또한 바른 성경을 통해 만나게 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뤄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nbsp;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Jun 2024 14:49: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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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없음)"으로 인해 구원받고 성별하다</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0/%EC%97%86%EC%9D%8C%EC%9C%BC%EB%A1%9C-%EC%9D%B8%ED%95%B4-%EA%B5%AC%EC%9B%90%EB%B0%9B%EA%B3%A0-%EC%84%B1%EB%B3%84%ED%95%98%EB%8B%A4/</link>
<description><![CDATA[『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으라. 이것들 중에는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고, 하나도 자기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바로 나의 입이 명령하였고, 바로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br/><br/>펜을 드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더욱 그러하다. 구원과 성별(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한 일)에 대한 간증문을 쓰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지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비유한다면, &#039;구원&#039;과 &#039;성별&#039;은 성경에 전혀 무지한 사람들도 아는 &#039;예수 그리스도의 초림&#039; 과 &#039;출애굽&#039; 정도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큰일을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부터 설명해야 하며, 또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렇기에 &#039;구원&#039;과 &#039;성별&#039;이라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 있기 전의 일들에 대해서는 사실 위주로 간단히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br/><br/>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다. &#034;하나님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신은 아니며, 그렇기에 만약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믿기 싫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나는 불복하고 지옥에 가겠다.&#034;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이자, 누군가가 소위 &#039;전도&#039;를 할 때 내놓는 나의 주장과 태도였다. 그러나 누가 처음부터 이렇게 완악했겠는가? 그러나 세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를 완악한 죄인으로 만들었다.<br/><br/>첫째로, 내게 이러한 태도를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034;교회&#034;였다. 물론 그곳은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은 제도권 교회이다. 초등학생 시절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녔던 그곳은 결코 &#039;하나님이 존재한다.&#039;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곳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구원에 대해 정확히 가르치지도 않는 곳이었다. 당시의 어린 나로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서 교회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사교 모임에 참석하듯 교회에 들락거렸다. 어머니를 포함한 어른들이 예배가 끝나고 하는 일은 아파트 시세, 자녀의 학원 문제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었고, 내가 참여했던 초중등부 활동도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예배 시간에는 주보로 비행기 접는 일이 주요 활동이었고, 예배 후의 모임에서는 과자를 먹는 일이 주요 활동이었다). 또한 그곳의 아이들 사이에서도 세상의 왕따와 같은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에게 하나님은 점차 자신의 자녀들의 고통조차 내버려두는 나쁜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 갔고, 내 인생의 일들에 있어서도 기도응답이란 것을 전혀 경험할 수 없자 &#039;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낸 기원의 대상일 뿐이지 않을까?&#039;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br/><br/>둘째로, 소위 &#034;기독교 모임&#034;이라고 하는 것들이 행하는 일들을 신문과 TV, 또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접하면서 &#039;하나님이 있다면 왜 저런 목사들을 내버려 두시는가? 그들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텐데?&#039;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목도한 &#034;기독교&#034;는 너무나 가증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연예인들을 교회로 부르는 교회도 있었고, 소위 &#034;전도&#034;를 해서 친구를 데려오면 문화상품권을 주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는 하지만 선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또한 &#039;하나님이라는 분이 있다면 왜 선악과를 애초에 에덴의 동산에 두어 죄의 여지를 마련하였으며, 광신도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목사가 여자 성도들을 추행하는데도 심판하지 않는 거지?&#039;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점에 대해 당시에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시던 어머니, 교회의 초중등부 교사 등에게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039;하나님이 존재하더라도 불복하겠다.&#039;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br/><br/>셋째로, 나는 철학과 수학을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는데, 이 두 가지를 단순히 교과목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취미와 꿈까지도 수학에 관한 것이었고, 자신의 &#034;세계관&#034;을 수학과 철학으로 무장하기까지 했다. 철학으로는 철학사를 강의할 수 있을 정도로 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었고, 수학으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기관에서 4년 이상 수학했었다. 점차 &#034;완벽하게 논리적&#034;이라고 생각되는 세계관이 잡혀 갔으며, &#034;하나님&#034;이란 머릿속에 논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경(개역성경)에만 해도 서로 모순되는 구절들이 수백 군데 등장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나 카톨릭의 모순(이집트와 바빌론 종교에서의 차용)과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과 같은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신일 뿐이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내가 아는 신실하다고 하는 그 어떤 사람도 이러한 모순들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서 그저 &#039;하나님이 존재한다.&#039;라고 말하니 마냥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말을 가르쳐 주곤 했다. &#034;불가능을 제외한 후 남은 것 - 그것이 믿기 힘든 것일지라도 - 그것이 진실이다.&#034;<br/><br/>이런 배경을 가진 채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집안, 사람, 꿈, 학교 등등의 문제들이 각자 더 이상 곪을 수 없을 정도로 곪아 버렸고,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034;이해한다.&#034;라고 입으로는 말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완벽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던 나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생각은 극단으로 몰리게 되었다. 어느 날, 그날 아주 늦은 밤에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034;극단적인 일&#034;을 실행하려고 마음먹게 되었다.<br/><br/>그런데 그런 심정을 아실 리 없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날 처음으로 찾아갔던 과외방에서 뜻밖의 일을 겪게 되었다. 그곳에 과외선생님으로 있던 어떤 형제님을 만난 것이다. 그분은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앞으로의 과정들을 나에게 말해 주었고,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불현듯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간파하고 생각을 완악하게 한 나는, 왜 하나님이 있다면 당시에 이슈가 되었던 &#034;땅 밟기 운동&#034;(기독교 신자들이 무단으로 단체로 절에 가서 절 소유의 땅을 밟고 주님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짓을 하는 광신도들을 내버려 두느냐고 역으로 질문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왜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들을 내버려 두시는지를 이해가 가게끔 나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은 &#034;원수가 뿌려 놓은 독보리들&#034;이라는 것이었다(마 13:24-30).<br/><br/>그런 대답은 &#034;처음&#034;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가다듬고 다음 질문으로 공격했는데, 성경에서 상충하는 구절들 같은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언급하면서 &#034;만약 네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바른 성경이라면, 당연히 그 성경에는 오류도 없고, 올바르게 공부한다면 상충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네가 가진 성경이 올바른 성경이 아니라면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034;라고 답변하시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쯤 과외가 끝날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034;집에 가서 네가 보던 성경에 마태복음 23:14이 있다면, 혹은 집에 있는 어떤 성경에라도 그것이 있다면 내가 다음 시간에 어떠한 상이든 줄 테니 한 번 찾아봐라.&#034;고 도전하며 나를 집에 보내 주셨다.<br/><br/>그 길로 곧바로 귀가해 집에 있는 모든 성경을 다 뒤져 보았지만 마태복음 23:14(『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에 모두 &#034;(없음)&#034;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034;(없음)&#034;이 있는 성경을 펴내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성경에 무언가 빠진 부분이 있다는 것은 상식선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br/><br/>며칠 뒤 다시 찾아간 과외방에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질문하기 전에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경에 마태복음 23:14이 &#034;(없음)&#034;이라고 되어 있다고 고백했고,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질문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섭리로 보존되었다며(마 24:35, 막 13:31, 눅 21:33) 성경을 인용하면서 운을 뗀 선생님은 그 후로 카톨릭을 필두로 한 세상 기독교의 잘못을 가르쳐 주셨고, &#034;너는 기독교의 잘못을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034;라고 질책했으며,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시하신 구원 계획에 대해서 들려 주셨다. 순간 내가 하나님께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의심이 해소되었고, 이렇게 하나님을 모독하며 살아 온 나를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내가 가진 삶의 무게를 덜어 주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034;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너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한 &#039;빽&#039;이 생기고, 만일 세상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서 네가 죽는다고 해도 너에게 주어지는 것은 하늘나라가 되는 것이다.&#034;라며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셨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034;구원&#034;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인 종교 용어로 생각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날 &#034;구원&#034;을 받게 된 것이다. 한걸음만 더 나아갔더라면 마귀에게 속아서 지옥에 갔을 나를 주님께서는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인 선생님에게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알고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본, 별들이 총총했던 하늘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만 하다. 그날 밤 하늘을 쳐다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기도인지도 몰랐지만 일단 기도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했던 그날의 기도. 그것은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성경을 올바르게 공부하고, 또 이 진리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해주시라는 기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나는 오히려 성경에 대한 질문거리들을 잔뜩 만들어 가지고 가서 선생님을 귀찮게(?) 해 드렸고, 선생님은 모든 질문에 열성을 가지고 답변하시며 나를 양육해 주셨다.<br/><br/>그 이후 긴 수험생활(재수)이 끝나고는 너무도 당연하게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의 위치를 물었고, 선생님은 1년간이나 못 보던 제자가 전화해서 성경대로 믿는 교회를 찾는다는 것에 기뻐하며 위치를 알려 주셨다. 그 이후 나는 성경침례교회의 회원이 되었고, 재주 없는 솜씨이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에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br/><br/>글의 말미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구원과 성별의 간증을 통해, 이 글을 읽는 성도들이 주님과의 첫사랑의 때를 다시금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 간증이 있다. 구원받았을 때의 기쁨과 감격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죄인들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도 영생의 소망 가운데 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육신적인 논리와 불신으로 무장되어 있던 한 죄인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키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성별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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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Tue, 04 Jun 2024 14:28: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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