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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능력을 믿은 E.M. 바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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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10월호>
에드워드 맥킨드리 바운즈(Edward McKendree Bounds)는 1835년 8월 15일, 미주리 주 셀비빌에서 3남 3녀 중 5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의 저서인E.M. 바운즈가 살았던 시대는 미국 역사에 있어서 "비극의 시대"였다. 국가가 "남북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바운즈는 연방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출옥 후에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군종목사로 사역했다. 바운즈의 출신 지역인 남부군은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피터 럭크만 박사가 종종 말했듯이, 북부군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잃어버렸고, 남부군은 졌어도 성경대로 믿는 믿음만큼은 지킬 수 있었다. 어쩌면 바운즈가 남부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를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인 계획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운즈는 전쟁이 끝난 후에 테네시 주와 미주리 주에서 목사로 사역했다. 그가 쓴 11권의 책은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그중 9권의 책은 기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운즈의 책 중 2권만이 그의 생전에 출판되었고, 나머지는 후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가 쓴 원고들을 모아 출판했다.
바운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설교자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탁하신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사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역은 믿지 않는 죄인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고 기도하는 성도들로 변화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역으로의 부르심은 거룩한 권위에 의해서 시작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조건으로 '믿음'을 제시하셨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하나님께서 믿음에 부여하신 그 가치가 얼마나 큰지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엡 2:5)."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초기 감리교 설교자들은 현대 감리교 설교자들과는 전혀 딴판으로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요한 웨슬리, 피터 카트라이트, 샘 존스, 밥 존스 시니어 등). 특히 바운즈는 하나님과의 진지한 교제 속에서 잃어버린 혼들을 위해 부르짖지 않으면서도 복음을 전파한다는 미명하에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설교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했다.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더 훌륭한 일이다. 누군가가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지를 잘 배우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적합한 말을 하거나 진정한 영적 성공을 거두는 일은 불가능하다."
바운즈는 초기 감리교 설교자답게 교회 내의 문제에 있어서도 핵심을 간파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특히 그가 남긴 다음의 말들은 지금까지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회들은 더 나은 방법들을 찾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나은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구조가 잘 갖추어진 어떤 시스템이나 새로운 조직 또는 다양하고 새로운 방법들이 아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 즉 기도의 사람으로서 기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어떤 인위적인 방법들을 통해 역사하시지 않고 그분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단순히 기계적인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고 그분의 성도들을 통해 일하신다. 인간적으로 세운 계획들 자체에 기름을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즉 기도의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다시 말해 바운즈는 제자 훈련이나 선교 단체, 기독교 동아리 등이 갖추고 있는 인위적인 시스템으로 부흥과 개혁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 현대의 배교한 기독교계가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진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원받지도 않은 교인들을 모아 놓고 마치 동호회처럼 운영하는 소위 기독교 단체나 교회들은 더 좋은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부흥과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헛된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나라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 제도화된 침례교 등이 모두 영적으로 망해 버린 이유는 무슨 좋은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한 사람," 곧 성경대로 믿고 실행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여기저기 달려서 이제 보고 알며, 거기 넓은 곳에서 찾으라. 만일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그렇다면 바운즈는 이런 진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최종권위로 믿었던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알았다. 부패한 영어 성서들인 RV와 ASV가 각각 1884년과 1901년에 출간되었지만, 바운즈는 그런 변개된 성서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기도로 싸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설교자가 해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그가 이렇게 말했다. "성도들이여, 온종일 우리가 어리석은 일에 빠져 있었을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하늘의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한때 우리는 세상의 환락을 추구하면서 살았다. 당시에는 빨리 떠오르는 해를 원망했고, 미친 듯이 환락을 즐기고 더 많이 죄를 탐닉하고 싶어서 우리의 시간이 잠시나마 천천히 흐르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 우리는 하늘의 일들에 대해서 왜 그토록 싫증을 내는 것인가? 우리는 왜 예수님과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기도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쉽게 피곤해지는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향해 게으른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고 책망하신다!"
또한 바운즈는 형식적으로 기도하거나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책망했다.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우리의 불신을 유발하는 가장 심각한 원인이 된다. 또한 상대방의 기도를 헐뜯고 방해하며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가려 버린다. 전혀 응답받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아무런 영광도 돌리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어떤 유익도 끼치지 못하는 죽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아예 기도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이처럼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만큼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고,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없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 15:7).
어떤 자료에서는 바운즈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와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바운즈는 기도하고 설교하면서 보냈던 지난 8년 동안 어리석은 말은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날 때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고 저녁 식사 시간에도 결코 늦는 법이 없었다. 그는 자주 브루클린에서 열린 거리의 모임들에서 설교를 들었고, 웨슬리와 왓츠가 지은 아름다운 찬송을 부르곤 했다. 그는 혹자가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찬송을 부르도록 요청하면 종종 이렇게 질책했다. '그들은 마음으로 찬송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십니다.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에게 시온과 어린양에 관한 노래를 부르라고 하지 마십시오.'" 말하자면 바운즈는 오늘날의 목사들, 즉 "경배와 찬양"이랍시고 CCM과 록 음악 등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모으려고 하는 자들과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고후 6:14-18). 이 둘 사이의 대비는 잘 익은 "포도송이"와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음식물 쓰레기 위에 쌓인 "포도 껍질" 간의 대비만큼이나 선명하다.
E.M. 바운즈는 1876년에 엠마 엘리자베스 바넷(Emma Elizabeth Barnett)과 결혼하여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아들은 겨우 6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엠마도 1886년에 사망했다. 그로부터 약 2년 뒤에 그는 엠마의 사촌 해리엇 엘리자베스 바넷(Harriet Elizabeth Barnett)과 결혼하여 세 아들과(둘째 아들은 "돌"이 된 지 8일 만에 사망함) 세 딸을 낳았다. 바운즈는 그의 말년을 집필과 순회 부흥 집회 사역에 바치다가 1913년 8월 24일, 만 78세를 일기로 주님 곁으로 갔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