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의 빈곤
작성자 정보
- 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2,047 조회
- 목록
본문
오랜만에 여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오랫동안 혈육을 만나지 못하여 무척 쓸쓸한 삶을 살았다고 해야 맞을 터였다. 한솥밥을 먹고 자랐어도 성인이 되면 각자의 삶에 몰입하기 마련인지라, 오랜만이어도 그다지 서운하지 않았다. 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분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어 사실상 외로움이란 걸 모르고 살았다. 요한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뒤로 단 한 번도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주님께서 친구가 되어 주셨기에 그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정녕, 내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요, 주의 막대기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심이라 』(시 23: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을 “친족 구속”이라 하는데, 이는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셔서(즉 우리의 친족이 되셔서) 죄에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보아스가 룻을 받아들인 것이 친족 구속의 한 예이다. 룻이 밭에서 보아스에게 다가간 것은 보아스가 율법대로(신 25:5-10) 룻 자신을 구속할 수 있는 가까운 친족이었기 때문이다(룻 3:8,9). 이 점에서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죄에서 구속해 주셨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친족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외롭지 않다. 악한 현 세상에서 성별하여 주님과의 친밀한 동행 속에 영적 고독을 맛보며, 또한 성도들과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함께 지내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