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예수님을 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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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이나 생물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아는 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학생이면 특정 회사의 볼펜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가 그 볼펜 제조에 들어간 재료의 종류와 잉크의 점도, 촉에 박혀 돌아가는 볼 베어링의 강도와 스프링의 탄력성, 누름단추와 추력장치의 작동 원리 등을 알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아마도 아무도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떤 꽃을 좋아하는 것과 그 꽃의 암술이 긴지 수술이 긴지, 꽃잎은 몇 장이며 정확한 개화 시기는 언제이고, 꽃받침은 위로 향했는지 아래로 향했는지, 다년생인지 단년생인지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사실 좋아하는 꽃을 또한 알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열에 하나에도 턱없이 못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 구주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향해 가지고 있던 열정은 단순히 그분을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아는” 것이었다. 그 앎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고난을 바울 자신도 겪어 봄으로써 그분과 고난의 교제를 해 보는 것이었고, 주님의 죽음의 본을 따라 실제로 죽어 봄으로써 그 부활의 능력을 예수님처럼 맛보기를 원하는 차원이었다. 주일이면 습관적으로 예배당에 들락거리는 형식적인 교인들과 사도 바울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또한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아는 데만 그쳐 버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믿음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해야 마땅할진대, 당신은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예수님을 좋아하는 것과 그분을 아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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