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주님의 부르심은 기회이자 은혜이다

"강한 손이 함께하므로 파라오가 그들을 가게 할 것이며" (출 6:1)

출애굽기 3,4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주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내용이 나온다(출 3:10). 그러나 모세는 즉각적으로 “네! 제가 가겠습니다.”라는 순종보다는 다섯 가지 이의를 제기하며 주님의 부르심을 회피했다(출 3:11,13; 4:1,10,13). 기드온도 부르심에 주저하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주님께 표적을 요구했다(판 6:15,17). 주님께서는 기드온의 그와 같은 요구에 정말 자상하고 오래 참으시며 일일이 표적을 보여 주시면서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또 어떤가? 그를 민족들의 선지자로 정하고 부르실 때 『나는 아이라서 말할 수 없나이다.』(렘 1:6)라고 부르짖었다. 주님께서는 모세, 기드온, 예레미야에게 동일한 답변을 주셨다. 『강한 손이 함께하므로』(출 6:1). 『반드시 내가 너와 함께하리니』(판 6:16).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내리라』(렘 1:8).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그것이 능력이고 힘인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히 13:8)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지금 우리도 모든 능력과 힘으로 능히 해낼 수 있다. 문제는 시선을 어디에 고정하느냐에 있을 뿐이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그것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선지자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반응해야 한다. 이 땅에서의 참되고 유일한 만족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온전하신 뜻에 맞게 일할 때만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