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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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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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10월호>

“호기심”과 “궁금증”은 언뜻 닮아 보이지만, 그 방향과 깊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호기심”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인 반면, “궁금증”은 단순히 “무엇이 알고 싶어 몹시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렇기에 “궁금증”은 원하는 답을 얻거나 정보가 채워지면 답답함이 해소됨으로써 쉽게 사라진다. 이러한 “궁금증”에는 관찰하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특성이 있는데, “호기심”은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배우려는 욕구이기에, 탐색 대상과 거리를 두지 않고 오히려 “이끌림”이 수반된다. 즉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아기가 집 안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것은 “궁금증”이 아닌 “호기심”에 이끌려서이다. “궁금증”은 머리에 머물고, “호기심”은 행동을 낳는 것이다. “궁금증”은 지식의 문을 두드리는 반면, “호기심”은 삶을 움직이는데(솔로몬왕을 “직접 방문한” 시바 여왕을 보라, 왕상 10장), 솔로몬왕이 초목을 논하여 레바논에 있는 백향목으로부터 담에서 피어나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관해서도 논한 것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거룩한 호기심”에 이끌린 까닭이었다(왕상 4:33). 그가 삶을 바쳐 지은 무려 삼천 편의 잠언과 일천다섯 편의 노래(왕상 4:32) 역시 하늘 아래에 인생들을 살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거룩한 호기심”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이끌고, “하나님과의 만남”은 “인생의 극적인 변화”를 낳는다.

모세는 광야에서 늘 보던 가시덤불이 불에 소멸되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그 가시덤불이 타지 않는 “초자연적인 광경”을 보려는(출 3:3) “거룩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불타는 가시덤불”에 이끌린 그는, 가시덤불 가운데 계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6)을 만나, 그 조상들의 후손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탈출시키는 “위대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세리장 삭캐오는 “거룩한 호기심”에 이끌려, 그간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께서 누구신가를 보고자 하였으나, 키가 작은 탓에 무리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쳐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가서라도 주님을 보려고 했으니(눅 19:3,4), 주님은 그러한 삭캐오의 집에 묵으셨고, 삭캐오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죄에서 돌이켜 구원받게” 된다(눅 19:8-10).

니코데모는 바리새인이라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유대인들의 시선을 피해 밤에 예수님께 찾아온 인물이다. 그가 지닌 “거룩한 호기심”은 그렇게라도 해서 예수님을 만나도록 그를 이끌었는데, “거룩한 호기심”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신 줄을 “아는”(요 3:2) 차원을 넘어 주님께로 “직접 찾아오는” 행동을 낳았다. 그날 밤, 니코데모는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5,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와 같은 위대한 “구원의 말씀”을 들었다. 그는 밤의 어둠을 뚫고 주님을 찾아뵌 “거룩한 호기심”을 발단으로 훗날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제자로 변화된다(요 19:39,40). “거룩한 호기심”은 “영적 갈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열망”에 반응하여 “변화”를 선물해 주신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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