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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존스의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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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9월호>

전략(戰略)은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체적인 방향과 방법을 세우는 종합적인 계획”을 말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장군의 기술”인 그리스어 “스트라테고스”에서 유래했다. 전략에는 반드시 “전술들”이 존재하는데, 전략이 큰 그림의 계획이라면, 전술은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행동을 뜻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거대한 영적 전쟁터의 한복판에 서 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울부짖는 사자”처럼 언제라도 집어삼킬 듯 노려보고 있는 “적진의 대장”인 마귀와 그의 세력들이다(엡 6:12, 벧전 5:8). 우리가 상대하는 적은 단순히 굶주린 짐승이 아닌 뛰어난 “지략가”이다. 적들은 무턱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렇다면 마귀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가? 릭 존스는 그의 책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들>에서 마귀의 네 가지 전략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전략은 “다른 권위 세우기”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 대신 다른 권위를 세움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이 전략을 이루기 위한 첫째 전술로 “권위 있는 여러 인물들”을 세웠다. 이를테면 모든 죄들을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고해성사”는 사제들에게 권위를 부여한 것으로, 그들에게 죄들을 용서할 권세가 주어졌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도들은 “사람인 사제”에게 의지하게 된다. 또한 교황이라는 더 높은 권위자를 세워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해석자”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성경보다 “교황의 해석”에 더 높은 권위를 부여했다. 그들은 “마리아”에게도 권위를 부여했는데, 마리아를 “중보자”이자 “구원자”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려, 반드시 그녀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로마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을 때 그녀에게 “만물 위에 있는 여왕”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고 주장한다(p.96). “권위를 부여 받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해 신도들의 기도를 들어주며 중보한다.

둘째 전술은 “성경 변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변개된 성서를 사용하는 카톨릭은 “침례”를 오역한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가르친다. 사실상 구원의 능력이 없는(구원의 모형, 벧전 3:21) “물 뿌리기”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성경이 제시하지 않는 다른 구원 방법에 의지하게 만든 것이다.

셋째 전술은 오직 카톨릭만을 진정한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이 “교회”라는 단어를 쓸 때면 그것이 지칭하는 것은 카톨릭뿐이다(p.11). 카톨릭 교리문답이 말하는 결론은 최종권위가 카톨릭의 “현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을 해석할 “자격 있는” 카톨릭 교회에 속한 교황이나 사제들이 성경보다 권위 있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성경을 못 읽게 만들기”이다. 이에 관한 하위 전술들로는 첫째로 “유일한 해석자”를 세운 것이다. “카톨릭 지도층만” 하나님의 말씀을 적절히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반 신도가 성경을 읽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p.135). 카톨릭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둘째로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말라”를 전술로 구사한다. 이를 위해 성경을 공부하는 소그룹 모임에는 언제나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서 대화가 벗어나지 않도록 중재하고 방향을 잡는 “길잡이”가 존재한다. 또한 “교리문답”이나 “교재들”은 반드시 교황청 성서위원회나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공인한 것만” 사용할 수 있다. 이렇듯 의도적으로 제한시킨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도는 자기 스스로는 성경을 결코 깨달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고, 당연히 성경을 “못” 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십 년 “교회”에 다녔어도 성경의 진리 하나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마귀는 이 둘째 전략이 성공함으로써 신도들을 “자유자재로” 속이는 일이 가능해졌다. 문자적 해석과 비유적 해석을 뒤섞고,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한두 구절을 뽑아 자의적인 해석으로 가르친다. 또한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받는 쉬운 방법”(롬 10:9,10)이 있음에도, 구원받고 싶으면 계속해서 카톨릭의 많은 부가적인 행위들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카톨릭 교리문답 257항).

저자 릭 존스는 “카톨릭은 여러분이 스스로 성경을 읽게 되면 카톨릭의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했다(p.138). 성경을 읽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상 사탄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이득”이다(고후 2:17). “성경만” 못 읽게 할 수 있다면 진짜 무엇을 들이민다 해도 그대로 믿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전략은 “거짓 확신 심기”이다. 그들은 거짓 교리를 통해 잘못된 것에 확신을 갖게 하는데, 이에 관한 첫째 전술로 “단어 왜곡시키기”를 사용한다. “교회”라는 단어를 유일하게 “카톨릭”에만 한정시키는가 하면, “성자”(saints)라는 단어를 왜곡시키기도 했다. 카톨릭은 “성자”란 그들이 살아 있을 때 행한 선행으로 사후에 성자로 선언된 소수의 선택된 자들이라고 가르친다(p.105). 카톨릭은 성경이 말씀하는 특정 단어의 의미를 왜곡시킴으로써 비성경적인 실행을 야기한다. 그들은 소위 “성자들”에게 기도함으로써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둘째 전술로 카톨릭은 “단어 추가하기”를 사용한다. 카톨릭의 교리는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 영원한 하늘나라로 들어가기 전에 연옥에 가서 정화된다고 가르친다(p.100). 성경 어디에도 연옥 혹은 연옥을 암시할 만한 말씀이 없지만, 카톨릭은 연옥을 거듭 언급하며 연옥에 있는 자들을 하루 빨리 “천당”으로 올라가게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오늘날에도 수억 명의 카톨릭교도들이 자신들의 사랑하는 죽은 사람들이 연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고 있는데, 그 돈은 고스란히 카톨릭 지도층에게 돌아간다(딤전 6:5). 불 속에서 고통받는 가족을 내 돈으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을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셋째 전술로는 “대체시키기”가 있다. 카톨릭교도들은 임종 직전에 최후의 의식(임종의 성찬)을 행한다. 이 의식에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것(부유)이 포함된다. 그들은 이 기름부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일치되는 것을 완성시켜 준다고 가르친다(p.76).

이처럼 카톨릭은 “영적인 무언가”를 “물리적인 무언가”로 대체시키는 일을 흔히 행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경건의 능력” 대신 “경건의 모양”만이 남는다(딤후 3:5). 영적인 의미로 언급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실제적인 살과 피”로 바꾸는 일, 기름을 부어 구원받게 하는 일, 손가락으로 묵주 알을 하나씩 하나씩 돌리는 묵주 기도를 드리는 일 등은 사실상 한번 거짓 확신을 심어 놓고서 끊임없이 돌리는 맷돌 돌리기와 같다. 맷돌이 계속 같은 범주 안에서만 돌아가듯, 자신이 “속아서 확신해 버린” 종교 행위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인데, 그것을 돌리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괜찮은 사람이지? 이것 좀 봐. 내가 얼마나 영적으로 열심히 살아?” 그들은 “마귀의 맷돌” 속에 “본인의 인생”을 끊임없이 갈아 넣고 있다.

한편 “최후의 의식”은 사제나 카톨릭 교회 지도자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다. 말 그대로 “최후의 순간까지”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에 속박되게 하는 것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서 “파괴자”로서의 일을 멈춘 적이 없다. 그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실하게 볼 때까지” 말이다. 마귀가 하는 일들은 언제나 소름 돋을 정도로 악착같고 집요하다.

네 번째 전략은 “종교심 심기”다. 이것을 위한 첫째 전술로 “종교 행위들”을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성체(성경적으로는 주의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살아 있는 카톨릭 신자들은 죽은 자들을 도울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가르친다. 정기적으로 성체에 참여하는 일이 죽은 사람들이 더 빨리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돕는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가 있어서 선한 사람처럼 비치고 싶은 경향이 있다. 릭 존스는 이와 연관해 카톨릭의 교리가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교리”라고 말했다(p.66).

사실상 마귀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존재이다. 이 사람의 심리, 저 사람의 심리, 하나하나를 하나님처럼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지난 6천 년간 인간을 집요하게 지켜본 존재로서 사람의 마음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가 만드는 모든 거짓 교리는 “그 마음들을 알고” 만든 것들이다(딤후 4:3).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똑똑하다 하는 대학생들이 카톨릭 말고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JMS, 신천지 같은 사이비에 빠지는데, 이는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잠 4:23). 마음을 미혹하면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다(시 95:10). 우리는 거짓 교리의 이면에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전술은 “자녀 끌어들이기”이다. 카톨릭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유아세례”는 자녀까지 거짓 교리에 끌어들이려고 고안되었다. 사람의 종교심은 결코 자신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자식을 영적으로 키우려는 “부모의 종교심”(마 20:20,21)이 자녀를 태어나자마자 카톨릭 교회에 예속시킨다. 어려서부터 카톨릭의 가르침을 받고 살아온 사람들은 특별한 기회가 없는 한 그런 교리들을 당연하게 믿고 살게 된다(잠 22:6). 마귀가 한 사람을 파괴시키는 일은 그가 태어나는 즉시 시작된다.

앞서 언급한 마귀의 모든 전략을 가능케 하는 “제0전략”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거짓 교리 심기”이다. 마귀는 거짓 교리로 인간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 그 모든 전략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사탄 자신이 취하는 데 있다. 카톨릭의 “거짓 교리”에 속은 모든 사람이 그 일에 기여하는 중이다. 사실 이단과 관련된 책은 좀처럼 성도들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단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속지 않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먼저 알게 된 성도는 구원받은 다른 성도들에게 카톨릭의 실체에 대해 알려 줘야 한다. 그리고 “부득불” 복음을 전파해야 할 우리는 그 대상에 카톨릭교도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즉 자신이 속지 않기 위해, 또 카톨릭교도들이 “속지 않게 하기 위해”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들>을 공부해야 하고, 그 공부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정확한 성경적 교리를 실제적으로 전파할 때 의미가 있게 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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