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분류

휴거의 진리를 삭제한 이단 성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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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6월호>

변개된 “개역개정판”과 “개역한글판성경”은 “휴거의 진리”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누가복음 17:36”을 통째로 삭제해 버렸다.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하시니라[KJV - Two men shall be in the field;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이런 사실과 관련하여 “이송오 목사”는 이렇게 적시했다. “개역한글판성경을 옹호하고 나선 자들은 머리가 돌아 버린 자들이다. 자기들의 입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에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의 눈으로 누가복음 17:36의 ‘(없음)’이란 것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실성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거짓말을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으로 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자의 머리를 혼잡케 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실성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진리와 오류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성경에 “(없음)”이란 구절이 있을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없었으면, 없는 것이지, 왜 굳이 “(없음)”이라고 그 자리에 표기해 둔 것인가? 본래 있었는데 없어진 구절이 아니고서야 그런 표기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가 무지한 자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인데,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들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5:18).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31).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 이처럼 『생명의 말씀』(요일 1:1)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번”이나 반복해서 하신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특히 예수님은 지금 “어떤 믿음의 근본 사항이나 신조들, 메시지,” 혹은 “어떤 헬라어 본문이나 영어 본문” 등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내 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들은 “순수한 말씀들”이자, “간수되고 보존된 말씀들”이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모국어로 갖고 있기를 원하시는 말씀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한글로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성경은 바로 <한글킹제임스성경>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전수된 이 보존된 성경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내야 한다. 누군가가 이런 저런 이유들을 내세우면서 은밀히 다가와 하나님의 말씀들을 빼앗아 가려고 할 때, 우리는 집을 지키는 “충직한 개”처럼 “주인의 물건, 곧 말씀들을 훔쳐 가려고 하는 도둑”을 물어뜯고 큰 소리로 짖어야 한다. 영어로 올바르게 보존된 <킹제임스성경>을 수호하는 데 있어서 단연 최고였던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역은 오직 <킹제임스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이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독’을 뿌리거나 거룩한 성경을 훼손하려 한다면, 그가 누구든 관계없이 나는 그에게 덤벼들어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이다. 나는 <킹제임스성경>을 지키고 있는 내 영역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고 더럽히며 엉망으로 헝클어 놓으려 하는 자들을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있다. 주인이 맡겨 놓은 귀중한 물건을 누가 훔쳐 가는 것을 보고도 짖지 않고 눈만 껌뻑거리는 개가 과연 ‘충직한 개’이겠는가?”

휴거는 영어로 “Rapture,” 곧 “엄청난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며, 저 공중에 있는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살전 4:17)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가장 감동적이고 영광스러운 만남”이다. 진정한 “환희의 송가”는 이곳 지상에서가 아닌, 저 하늘에서 연주되어야 마땅하다. 휴거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위로”이고, “위로의 절정”이자, “위로의 극치”이다. 휴거를 알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고전 15:52)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중 그 어느 때라도 울릴 수 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거나, “집 안” 또는 “들,” 논, 밭, 직장 등지에서 부지런히 땀 흘려 일하고 있을 때 울릴 수 있다. 『[35절] 두 여인이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36절]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눅 17:35,36). 여기에서 변개된 성서들은 36절을 삭제함으로 “휴거의 진의”를 가려 버렸다.

또한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침상”에 누워 잠들려 할 때 울릴 수 있으며, 한창 깊은 잠에 빠져 꿈나라로 가 있을 때 나팔 소리가 우리의 귓전을 울릴 수도 있다. 『그 밤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눅 17:34). 아침 일찍 이부자리에서 한껏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때 그 소리가 들릴 수도 있고,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 우리를 저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수도 있다. 1900년대에 사역했던 “미국”의 설교자 “샘 모리스”는 어떤 “재림에 관한 설교”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휴거는 내가 이 설교를 끝마치기 전에 일어날지 모른다. 그 일은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기 전이나 내일 밤이 오기 전에 일어날지 모른다. 아니면 몇 년 동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이 더딜지라도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오실 때 수색대를 파견할 필요가 없다. 진정으로 믿은 모든 성도들은 ‘엘리야’와 ‘에녹’처럼 저 공중으로 갑자기 끌려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 밤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될 것이다.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될 것이다. 여러분에게 질문하겠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 밤에 오신다면 여러분을 데려가시겠는가?’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아. 나는 얼마 전에 신체검사에 합격했고, 의사는 내가 100% 건강하다고 말했어.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 죽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 그렇다면 ‘재림’(공중 재림인 ‘휴거’)에 대해서는 어떤가?”

필자는 2024년 3월 10일, 주일 이른 아침, “휴거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새벽 5시 쯤 “주일 예배 설교문”을 살펴본 후 잠시 눈을 붙였는데, 꿈속에서 “필자의 몸”이 갑자기 솟구치듯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늘의 문이 열렸고, 셋째 하늘로 올라가는 커다란 통로가 보였다. 필자는 하늘로 끌려 올라가면서 “통로다! 통로가 보인다!”라고 외쳤다. 비록 꿈이었지만, 하늘로 솟구치듯 끌려 올라가는 그 짜릿한 기분과 전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 꿈에서 깨어난 후로도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고, 그날 오전 예배 설교하기 직전까지도 필자의 심장은 계속 뛰고 있었다. ‘휴거되는 순간에 느낄 환희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날을 고대하고 열망해야 한다. 밤이 깊도록 파수를 보는 파수꾼이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열망해야 한다. 이러한 열망은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열망”이다. 독자들에게 아주 진지하고 엄숙하게 묻겠다! 지금 이 순간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면, “저 하늘로 끌려 올라갈 수 있는 확신”이 있는가? “지상에 남아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는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휴거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다!

이단이란, “성경 말씀을 변개하고, 사사롭게 해석하며, 문맥을 무시한 채 특정 성경 구절만 뽑아서 만든 ‘비성경적인 가르침’(Heresy)이나,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는 ‘집단 또는 종파’(Sect)”를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개역개정판”과 “개역한글판성경” 같은 변개된 성서들을 쓰는 교회들은 모두 “이단”(Sect)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권위를 인정받은”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파괴적으로 비평하는 자들이 나타난 이래로 지금까지, 신약성경의 각 장마다 말씀을 왜곡하여 “이단 교리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상당수 있어 왔다. 특히 현대의 변개된 성서들에서 “이단 교리들”을 가르치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 “삼위일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시키고 부인하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변개시킨 구절들 ➠ 마태복음 1:23, 누가복음 23:42, 요한복음 1:18; 3:13; 6:69; 9:35, 사도행전 4:27; 8:37, 로마서 14:10-12, 골로새서 1:15, 디모데전서 3:16, 요한일서 5:7, 요한계시록 1:11.
-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그분을 향한 경배”를 부인하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변개시킨 구절들 ➠ 마태복음 1:25; 8:2; 9:18; 20:20, 마가복음 5:6, 누가복음 2:33,43, 요한복음 9:38.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원과 구속 사역”을 부인하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변개시킨 구절들 ➠ 마태복음 18:11; 9:13, 요한복음 1:29; 3:36; 6:47, 골로새서 1:14, 히브리서 4:6, 베드로전서 2:2, 요한계시록 21:24.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부인하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변개시킨 구절들 ➠ 누가복음 24:51, 사도행전 1:3, 베드로전서 3:18.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변개시킨 구절들 ➠ 요한복음 18:36, 디도서 2:13, 요한계시록 11:17.
- “지옥의 실체”를 부인하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변개시킨 구절들 ➠ 마태복음 16:18, 마가복음 9:46,48.
- “과학의 실상”을 가리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변개시킨 구절 ➠ 디모데전서 6:20.
-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육신을 따라 살면 일시적인 정죄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가리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변개시킨 구절 ➠ 로마서 8:1.

본 글에서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 17:36”은 “휴거의 진리”를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구절이다. 그러나 “휴거를 가리는 이단들”은 겁도 없이 이 구절 전체를 삭제해 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삭제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엄중한 경고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 실로 “양심이 화인 맞은 자들”이로다!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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