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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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과 모세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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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8월호>

세상은 권력, 지혜, 덕, 부를 가진 자를 지도자로 세우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보기에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를 택하시며, 고난의 연단을 견뎌낸 신실한 사람을 찾으신다. 모세가 그러했다. 과거 이집트 왕자 시절의 모세는 권력과 지식, 민족을 구하려는 열망까지 갖춘 완벽한 지도자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조건을 쓰시지 않고, 그를 40년간 광야에 머물면서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게 하셨다. 모세는 철저히 낮아지는 자숙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초라한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르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다.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헌신을 말하면서도 마음의 부담과 두려움으로 인해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그 이상은 안 된다고 자신의 잣대를 내밀면서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의 모습을 통해 바라본, 하나님의 부르심에 저항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변명들은 무엇인가?

첫째, “나는 무능하다”는 변명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내가 누구기에 파라오에게 가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으리이까?』(출 3:11)라며,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변명으로 시작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명령은 당대 세계 패권을 쥐고 있던 이집트에서 이백만 명 이상 되는 백성들을 어떤 무기도 없이 탈출시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해도, 모세 자신은 하나님의 위대한 부르심 앞에 응답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스스로 무능할 뿐만 아니라 그럴 자격이 없다며 “내가 누구기에,” 나 같은 존재가 뭐라고, 어떻게 가겠느냐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과장하는 자의적 겸손이었다. 결국 겸손을 가장해 하나님의 뜻을 거절한 것이다. 겸손은 자기를 무한정 깎아내리거나 자기비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는 아무리 부족해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짜 겸손인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그림자 같은 헛된 존재일 뿐이다. 벌레이자 티끌 같은 존재가 인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무능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 모르고 부르시는 것인가? 대단히 착각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다. 우리의 상태, 감정, 어리석음, 결핍,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이 진토임을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다.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주께서도 자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라』(시 103:13,14).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부르실 때는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반대로 연약하고 부족하고 어리석은 자들이기 때문에 부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의지해 세상과 싸울 수 있고 또 이길 수 있다.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선택하심은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선택하신 것은 없는 것들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만들려 하심이라』(고전 1:26-28).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 전파자로, 성경 교사로, 설교자로, 선교사로, 또 어떤 사역으로 부르실 때는, 하나님의 때가 되었기에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 있는 부르심 앞에 자신의 적성이나 환경, 상황들을 내세워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시다(롬 11:29). 사도 바울은 사역을 위해 심각한 질병을 고쳐 주시기를 세 번씩이나 간구했지만, 간구를 거부하신 하나님의 뜻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내가 오히려 매우 기쁘게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거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일은 성도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온전히 순종할 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해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네가 얼마나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출 3:12).”라고 말씀하셨지만, 모세는 또 다른 변명을 준비한다.

둘째, “나는 무지하다”는 변명이다.

당시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오시리스, 호루스, 하토르, 토트, 겝, 이시스 등 많은 신들을 접하고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알리려면 하나님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어떻게든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해 보려는 질문을 한다.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라고 그들에게 말할진대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모세가 과연 하나님의 이름을 몰랐겠는가? 모세는 믿음의 사람인 친모(요케벳)에게 양육을 받고 자라면서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또 광야에서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했다면,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 중 어떤 이름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직접 계시해 주셨다. 『나는 곧 나니라...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실로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 『나는 곧 나니라[I AM THAT I AM]』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구하면 되는 것이다. 능력이 필요하면 “I AM 능력”이신 분께 구하라! 지혜가 필요하면 “I AM 지혜”이신 분께 구하라! 위로가 필요하면 “I AM 위로”이신 분께 구하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모세에게 “I AM인 내가 말하라는 대로만 하라.”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넣어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세가 모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모세, 바로 네가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많은 지식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행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노아가 배를 만드는 기술자라서 택하신 것인가? 물론 아니다. 노아 자신도 세상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확신하며 따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오히려 하나님께 “왜 이렇게 자격 없는 나를 부르셔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까?” 하며 부르짖었을 것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 교육도 별로 받지 못했고, 다른 사람에 비해 지식도 없고, 자격도 없는 열악한 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에 성도가 『이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풍성하게 행하실 수 있는 그분께』(엡 3:20) 자신을 온전히 맡길 때, 성도 자신이 무지하다는 변명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나는 열등하다”는 변명이다.

인간의 구차한 변명의 특징은 해 보지도 않은 일,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설령 자신이 그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을 것이고 귀 기울이지도 않을 것이라며 또다시 걱정과 변명을 늘어놓았다. 물론 모세가 이집트에서 실패했던 쓰라린 경험과 기억이 두려움과 의심으로 표출된 것을 하나님께서는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막대기의 표적과 문둥병에 걸린 손의 표적을 통해 모세의 믿음을 회복시키려 하셨는데, 그럼에도 모세는 하나님께 세 번째 변명을 한다. 『오 나의 주여,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하며 주께서 주의 종에게 말씀하신 지금까지도 그러하니이다. 나는 말하는 것도 느리고 혀도 둔하니이다』(출 4:10). 모세의 깊은 내면의 변명, 그것은 바로 “열등감”이었다. 모세의 앞선 모든 변명들도 바로 이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모세는 자신이 말도 느리고 둔하다는 것인데 정말 그러한가? 사도행전 7:22에서는 오히려 모세가 이집트인들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행위에 능하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말이다. 사실 모세는 하나님과의 대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고 있었다. 능력을 주실 하나님의 이름도 계시받았고,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표적도 받았다. 하지만 모세의 진짜 부담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파라오 앞에 나설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지혜를 말하는 데 자신은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열등감은 자신을 아주 초라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감정이다. 사람을 자멸시키는 마귀의 술책인 것이다.

누구나 실제로 말을 더듬을 수 있고 말이 느릴 수 있다. 어떤 지적 영역에서 논리적이지 못하다거나 성경 구절을 많이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변명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느냐? 누가 벙어리와 귀머거리와 보는 자와 눈먼 자를 만들었느냐? 나 주가 한 것이 아니냐?』(출 4:11)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와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탁월함으로 하지 아니하였노라.』(고전 2:1)라고 했다.

D.L. 무디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문법이나 철자, 발음이나 표현 등에서 서툴렀고 실수도 많았다. 신경도 예민했고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디는 성경을 무척이나 애독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설교자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서였다. 한번은 어떤 청년이 무디의 성경 페이지마다 구절 옆에 알파벳 “T”와 “P”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무디는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내 삶에 시도해 봤더니(Tried) 입증이 됐다는(Proved) 표시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성경에 계시하신 진리의 말씀 가운데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그 어떤 사람과 비교해도 열등하지가 않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아들인데, 너무나 자랑스러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 유용한 도구로 쓰임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가길 원한다”는 그분의 뜻을 보이셨다. 모세가 불순종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세워 뜻을 이루셨겠지만, 원하셨던 것은 바로 “모세”가 쓰임받는 것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모든 변명을 던져 버리고 움직여야 한다. 이로써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실한 일꾼이 되어, 주님께서 오실 때 칭찬과 상급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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