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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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름다움 속에 있는 왕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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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8월호>

『너의 눈은 그의 아름다움 속에 있는 왕을 볼 것이요, 그들은 매우 멀리 떨어진 땅을 볼 것이라』(사 33:17). 욥기 19:25-27에서도 우리가 구주를 볼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사야서 본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당신이 왕을 볼 것이며, 둘째, 당신이 그 땅을 볼 것이라고 말씀한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니라 당신의 눈이 그분을 볼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겠지만, 머지않아 어떤 죽음을 맞이하든지, 혹은 휴거로 주님 앞에 서게 되든지 바로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보게 될 분은 “한 사람”이시다(딤전 2:5).

당신은 주님을 볼 것이다. 시므온은 생전에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받았고(눅 2:26), 실제로 그분을 보았다! 모세는 그분을 보지 못했지만, 또한 그분을 보았다고 말씀한다!(히 11:27) 그것이 바로 그가 믿음으로 살았던 방식이다.
이제 그분을 보게 될 두 종류의 눈이 있다. 첫째는 “구원받은 자들의 눈”이다.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보게 될 것이다(고전 13:12). 그 얼굴을 보려면 눈이 열려야 한다. 구원받지 않았다면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갈은 눈이 열린 뒤에야 샘을 볼 수 있었다. 엘리사의 종도 눈이 열린 뒤에야 산 가득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병거와 불말을 보았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식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었지만, 그들의 눈이 열린 후에야 주님인 줄 알았다. 당신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을 열어 주셔야 볼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영적인 눈”이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을 때 엎드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요 20:25,28). 이것은 바로 내가 주님을 뵐 때 일어날 일이다! 나는 나의 왕으로서 그분께 절할 뿐만 아니라, 나의 형제로서 절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의 맏형이시며, 나는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다! 하나님께는 독생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과 많은 아들들이 있으며, 나는 그들 중 하나다(요 1:12, 요일 3:2). 주님께서는 나의 형제요 친구시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지 재판관이 아니라 친구라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한다(요 15:15).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다. 길이 없으면 갈 수 없고, 진리가 없으면 알 수 없으며, 생명이 없으면 자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책임지시며, 언젠가 나는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구원받은 자들의 눈이 그분을 볼 것이며, 잃어버린 자들도 그분을 볼 것이다(롬 14:11). 언젠가 잃어버린 자들의 눈도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보게 될 것이다.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옷을 벗으실 것이다. 그분의 옷은 우주이며, 그것은 마치 의복과도 같은 그분의 손의 작품이다(히 1:10-12). 하늘에 그림처럼 펼쳐진 오로라(북극광)는 늘어진 커튼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있는 그대로”(naked) 보여 주실 것이다(계 20:11).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벌거벗은”(naked) 채 매달리셨다. 사람들이 주님의 옷을 훔쳤고, 그렇기에 현재 인간은 우주를 지배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약 마귀를 본다면 너는 기절할 것이다. 마귀 앞에도 서지 못하면서 어떻게 내 앞에 서겠느냐? 내가 마귀를 만들었느니라!”라고 하셨다(욥 41:9,10). 그렇다. 죄인들은 서지 못할 것이다!(시 1:5) 그들은 쓰러질 것이다! 유다가 동산에 계신 주님께 왔을 때, 주님께서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시고 “내가 그니라.”라고 하시자 그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 엎드러진 것을 기억하는가?(요 18:6) 그들은 설 수 없다! 그들의 눈이 주님을 보게 될 것이다. “엎드려서 너 자신에 대해 설명하라!” 요트를 구입해 정박해 두며 자신을 위해 산 그리스도인 백만장자가 자신의 돈에 대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구원받지 못한 TV 코미디언이 그분 앞에 서 있는 것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께 농담을 하겠는가? 마호메트는 어떻게 되겠는가? 더럽고, 하나님도 없고, 추잡하고, 성도착에 편집증적인 그 미치광이가 그곳에 서서 14명의 아내와 11명의 노예 소녀들, 그리고 9살짜리 소녀와 동침한 것에 대해 과연 하나님께 어떻게 해명할 수 있단 말인가? 죄인들은 죄 없으신 한 사람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는 분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자들의 눈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존 F. 케네디나 빌 클린턴은 어떻게 되겠는가?(눅 12:2, 롬 2:16, 전 12:14)
죄인들이 더러운 농담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가? 하나님을 뵙는 가운데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것이다!(딤전 6:16)

성경은 『너의 눈은 그의 아름다움 속에 있는 왕을 볼 것이요』라고 말씀한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분께서 처음 오셨을 때는 아름답지 않으셨고 “연한 싹” 같았다고 말씀한다(사 53:2). 언젠가 비가 오지 않아 내 뜰이 말라 흙먼지가 날릴 때, 그 메마른 땅속에서 자라나려고 애쓰는 잔가지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초림 때 주님의 모습이었다. 초림 때 채찍질당하고 피투성이가 되신 그분에게서 무슨 아름다운 것이 있었겠는가? 주님의 신부는 『참으로 그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도다.』(솔 5:16)라고 말한다. 즉 주님은 오직 우리에게만 아름다운 분이시다.
바울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후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부활 후 주님을 본 제자들은 500명이나 되었다. 사도 요한도 그분을 보았다. 스테판도 그가 죽을 때 주님을 보았다(행 7:56).

언젠가 모든 만물이 그분을 가리킬 것이다. 순교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저분을 위해 내가 목숨을 내놓았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린 아기는 “저분이 춥고 잔인한 세상에서 나를 집으로 데려오신 분이셔!”라고 말할 것이다. 과부들과 고아들은 “저분이 우리 마음이 무너질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신 분이시다!”라고 말할 것이다. 노인들도 “저분이 우리를 도우시고 지탱해 주시며 붙들어 주신 분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사도들과 설교자들은 그곳에 서서 “저분이 바로 우리가 평생토록 전파했던 분이시다!”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때를 기다릴 수가 없다! 나는 “저기 주님이 계신다! 주님이 바로 저기에 계신다! 이것 보라고, 내가 성도들에게 말한 그대로야!”라고 외칠 것이다. 나처럼 55년 동안이나 성경을 설교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면, 그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얼마나 기쁘겠는가! 주님을 보는 것이 내가 설교하고 가르친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확증해 줄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주님을 보지 못한다. 나는 정말 그분을 보고 싶다. 내가 그분을 뵐 때, 나는 그분을 자랑할 것이다. 나는 그곳에 서서 그분을 가리키며 “저분이 바로 악한 나를 구원하신 분이다!”라고 외치고 싶다.

한번은 어떤 어린 소녀가 자기 어머니에게 “엄마, 엄마 손은 왜 그렇게 검고 울퉁불퉁하고 징그러워? 캔디 엄마는 손이 예쁘던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네가 여덟 살쯤 되었을 때 이곳에 큰 화재가 났단다. 그때 내가 불길 속으로 들어가 너를 데리고 나왔지. 네 옷과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서, 내가 그 불을 끄고 손으로 네 얼굴을 감싼 채 너를 데리고 빠져나왔단다. 그래서 내 손이 이렇게 된 거야.” 어린 소녀가 말했다. “아, 그랬구나. 엄마 손은 예뻐. 정말 예뻐 보여!” 이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 느끼는 마음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게 될 분이 “왕”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그분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다(눅 19:27). 죄인들은 주님께서 다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눅 19:14).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왕이 아니심을 알고 있다. 세상은 결코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한 적이 없다! 미국도, 미국의 헌법도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의 개인적인 삶에서 왕이시라는 의미가 있다. 즉 지금 주님께서 당신의 인생의 보좌에 앉아 계시거나, 아니면 당신이 보좌에 앉아 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주님께서 당신을 이끄시거나, 당신이 스스로를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실제로 왕을 볼 날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 정부가 불가피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세계 지도자들도 “문명의 완전한 파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세계 정부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세계세금청”(International Revenue Service)이 세워지게 될 것이다. 성경에도 카이사가 온 세상으로 하여금 세금을 내게 했다고 되어 있지 않은가! 왕이 오고 계신다! 당신의 왕은 누구인가?

낮에 우리는 첫째 하늘을 본다. 밤에는 둘째 하늘을 본다. 믿음으로 우리는 셋째 하늘을 본다! 바울은 자신이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 지구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내가 가려는 곳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코레히도르와 바탄의 언덕들, 겨울에 산 정상에 눈이 덮인 후지산, 하와이와 보랏빛 산호가 있는 남태평양 섬들도 보았고, 매년 가을마다 붉게 타오르는 스모키 산맥도 보았다. 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하늘나라와 빗댈 것이 못 된다!
<포춘지>(Fortune Magazine)에 이런 광고가 났다고 생각해 보라. “공해 없는 도시에 있는 아름다운 집들을 거저 드립니다. 전기 요금, 가스 요금, 수도 요금 고지서가 없습니다. 세금도 없습니다. 범죄가 없고, 쓰레기도 없습니다. 배고픔도, 가난도, 의사도 없습니다. 변호사, 병원, 혹은 장례식장도 없습니다. 교통수단은 무료입니다. 눈이나 서리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있고, 영구적인 거리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곳에 갈 마음이 있는가? 아주 멀리 있는 땅, 곧 새 예루살렘이 그런 곳이다. 과학자들은 그곳에 어떻게 가는지도, 그 방향도 알지 못한다!(요 8:21)

내 집은 그곳에 있고, 나는 지상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내 생명은 그곳에 있다. 이곳에서 나는 죽을 것이지만, 저 위에서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도 거기에 있다. 나의 아버지도 거기에 계신다. 나의 육신의 아버지는 수년 전에 이곳에 묻혔지만, 나의 진짜 아버지는 저 위에 계신다. 나의 진짜 아버지와 나의 마음, 내 집, 그리고 내 생명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내 이름이 그곳에 있다. 찬송가에 “영광 중에 기록된 새 이름이 있네, 그건 내 이름일세!”라고 한 것과 같다. 나의 유업도 그곳에 있다. 나의 구주께서 그곳에 계신다. 나는 그곳에 관심이 있다!

나는 새 예루살렘과 관련하여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나는 주님의 귀가 궁금하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또 주님의 입이 궁금하다. 내게 주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눈이 보고 싶다. 주님께서 그 눈으로 내가 태어난 날부터 나를 지켜보셨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의 손도 보고 싶다. 주님께서 지난 83년 동안 내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발도 궁금하다. 주님께서 땅에 오셔서 나를 찾아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여권은 “피”이다. 만일 그곳에 가려고 한다면, 오직 주님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마호메트는 결코 그곳에 가지 못한다. 그의 신은 이 땅에 내려와 인간처럼 고통받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떤 희생제물도 없다.
당신을 새 예루살렘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은 “부활의 능력”밖에 없다(롬 8:11). 당신을 땅에서 끌어올릴 능력이 당신 안에 있지 않다면, 당신은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한다. 당신은 손에서 떨어뜨린 연필이나 펜처럼 내려가는 것이다. 나를 무덤에서 이끌어 낼 그 영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던 바로 그 영이시다(고전 6:17, 엡 4:30).

당신은 향상되고 있지도 진화하고 있지도 않다. 무덤을 향해 가고 있으며, 죽을 때 당신의 혼은 몸을 떠나 아래에 있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당신을 끌어올릴 능력이 당신 안에 있지 않는 한 말이다.

한번은 불치병에 걸린 14살 된 소녀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죽는 건 어떤 거예요? 아픈가요?” 엄마는 즉시 대답할 수 없었다. 울면서 방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대답했다. “네가 어렸을 때 너무 열심히 놀아서 피곤한 나머지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못하고 잠든 때가 있었잖아? 너는 엄마 침대로 쓰러져서 잠들곤 했지. 그건 네 침대가 아니고 엄마 침대였어. 그런데 다음 날 깨어났을 때, 항상 너의 침대에 있었잖니, 그렇지?” 아이가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잠든 사이에 아빠가 와서 튼튼한 두 팔로 너를 안아 올려서는, 네가 있어야 할 곳에 눕혀 준 거란다. 죽음은 그런 거야. 깨어나면 우리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방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지.” 그렇다. “아빠”가 당신이 누운 침대에서 당신을 들어 올려 당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본향으로 당신을 데려가시는 것이다(요 14:2,3).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나는 수년 동안 집회 때문에 여행을 다녔다. 50세 이후로 매년 40,000마일을 여행했다. 하도 많은 곳을 다녀서 종종 내가 어디에 갔는지,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다. 그러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라고 묻곤 했다. 어쩌면 어느 날 아침에 내가 깨어났는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라디오나 TV가 켜져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분은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는 헨델의 메시아 곡처럼 우렁찬 찬양대의 노랫소리를 들을 것이다. 나는 “여기가 어디지?”라고 생각하며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볼 것이고, 그때 나는 순금 거리와, 밖에서 손을 흔들며 노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여기가 어딘지 알겠다. 내 집이구나!!!”라고 외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당신을 위해 당신이 완전해지고 죄가 없게 되고 결코 다시 슬퍼하거나 울지 않을 본향을 예비하셨다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복음을 믿지 않은 것이다. 성경은 당신을 지옥에서 꺼내 주기 위해서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모습 그대로 당신을 저 위 하나님께로 데려가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죄 많은 아담의 아들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같이 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당신의 구주로 받아들여야 위로 올라갈 수 있고, 또 그분의 모습과 같이 변화될 수 있다. 주님과 함께라면 당신은 올라가는 것이고, 주님이 없다면 내려가는 것이다!(요일 5:11-13)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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