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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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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5월호>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도다』(마 28:18). 마태복음 28장에서 주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설교하고 계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셨다면, 그리스도인은 능력을 소유해야 마땅하다. 그 능력은 물질적 권력이나 대중을 지배하는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영적인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처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인가?첫째, 능력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낚시 여행 중에 태풍이 몰아친다고 상상해 보라. 3미터 높이의 파도가 일고 번개가 치며 폭풍이 몰아치는 중에 선장이 뱃머리로 올라가서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라고 외치자 모든 것이 완전히 잠잠해진다. 인상적이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능력의 나타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도 능력의 예시이다. 나사로가 살아나온 장면은 어떤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가셔서, 무덤 옆에 서신 뒤 시체의 이름을 부르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사로야, 나오너라.』(요 11:43)라고 하시자 시체가 나왔다! 그는 손과 발이 묶여 걸어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회전하며 나왔을 것이다(요 11:44).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조지아주 출신의 그리스도인이었던 폴 앤더슨은 어느 곳에서든 복음을 전했다. 그는 죽기 전에 자기 돈 대부분을 소년 갱생 시설 설립에 사용했다. 그는 하루에 우유 2리터를 마셨고, 몸무게는 165kg이었으며, 무려 2,844kg을 들어 올렸다. 그가 무대 위에 섰을 때 2.5 × 2.5 미터 크기의 정사각형 판을 그의 등에 올려놓았고, 그가 무대 위의 시멘트 블록을 손으로 짚으며 자세를 잡자, 사람들이 그의 등 위의 판에 코끼리를 올려놓았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능력은 인상적이며, 그리스도인이 능력을 발현하는 것도 인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무능력”한 것도 인상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둘째, 능력은 “위험”할 수 있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한다. 미국 정부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 대통령이 지금처럼 많은 권한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을 국민에게서 빼앗은 이들은 링컨, 존 F. 케네디, 그리고 프랭클린 루즈벨트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고, 그것을 “행정 명령”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우리는 의회를 무시하겠다”는 뜻이다. 의회가 이스라엘의 수도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결정을 해도 대통령이 “난 그것을 원치 않아.”라고 하면, 이스라엘의 수도는 옮겨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의회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권력이다. “불법적인 권력”이지만, 여전히 권력이며 “위험한” 권력이다.
사람들은 종종 “권력에 취한다”고 말한다. 중세 시대에 교황들은 정말로 권력에 취해 있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의 목이든 잘라 버리고 누구든 화형에 처할 수 있었다. 오늘날 무슬림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원하면 누구든 목을 베고 화형시킨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며 말한다. “우리 편에 서지 않으면 죽인다.” 이것이 바로 무슬림의 가르침이다.
우리 교회 사무실에 무슬림이었다가 구원받은 이들이 찾아온 적이 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면 우리는 배에 다시 타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 사실을 들키면, 그들은 우릴 죽일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자, 당신은 이들에게 어떤 목회 상담을 해 주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능력”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반대로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능력의 부재이다. 누군가가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다가 완전히 실패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실망스러운 일도 없다.
나는 한때 유도를 배웠다. 해변으로 가서 유도 실습을 하곤 했는데, 물속에서 싸우는 훈련이었다. 유도 연습을 할 때 보았던 가장 우스꽝스러운 장면 중 하나는 어떤 남자가 다른 사람을 던지려고 했을 때다. 그는 엉덩이를 상대방 복부 쪽으로 잘 넣어서 상대를 어깨 너머로 넘기려고 했지만, 상대가 그의 위에 올라타면서 그냥 깔려 버렸다! 빨리 던졌어야 했는데, 동작을 너무 느리게 한 것이다. 그는 거대한 고래 같은 남자를 업은 채 물속에서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상대가 그를 익사시킬 수도 있었을 정도였다. 능력의 부재는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셋째, 능력의 부재는 잘못된 방식으로 인상적일 수 있다. 그것은 스위치를 켰는데 불이 안 들어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디선가 능력을 봐야 한다. 성경은 디모데후서 3:5에서 마지막 날들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라고 말씀한다.
교황들을 예로 들어 보자. 스스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하는 자치고는 정말 처참한 모습이다. 수많은 교황들이 수십 년간 평화를 위해 기도해 왔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왜 그런가? 교황의 기도는 바티칸의 천장조차 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교황이 “평화, 평화, 평화...”를 외치면, 주님께서는 “좋아. 전쟁을 하나 더 보내 주지!”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교황이 “기도의 전사”로서 전혀 힘이 없다는 증거이다. 오랄 로버츠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고, 저렇게 하셨다.”라고 말한다. 어느 날은 “8백만 달러를 보내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실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 수표들이 전부 부도나길 기도했지만, 그는 결국 그 돈을 모았고 치과 대학을 세웠다. 아니, 자기가 진짜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왜 치과 대학을 세우는 것인가? 전부 사기꾼들 아닌가! 그것이 바로 “무능력”이다.
당신은 “브라운즈빌 카니발”이라고 불렸던 집회를 기억하는가? 그 목사는 결국 자기 교회를 떠나야 했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거대한 쇼였을 뿐이다. 그 운동으로 인해 선교사가 나왔는가? 거리설교자가 한 명이라도 나왔는가? 단 한 명의 회심자라도 나왔는가? 약 3년 동안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구멍 난 풍선에서 나오는 바람이 그 집회보다 더 강력할 것이다. 우리는 능력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자주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마지막 날들이기 때문이다(딤후 3:5).
당신은 지미 스와거트가 아프리카에 가서 설교했을 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는 설교할 때 통역사가 다섯 명이나 필요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어떤 귀머거리이자 벙어리 여인이 “방언으로” 말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아니, 방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통역이 왜 필요한가? 이런 은사주의 사기꾼들에게 속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넷째, 예수님의 보혈에 능력이 있다면, 당신의 삶에서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오랄 로버츠나 제리 폴웰이 지난 1년간 인도한 혼이 몇 명인가? 그들은 광고와 명성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나는 그런 거물들 곁에 있었던 적이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5년 동안 단 한 명의 성인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했다. 능력이 없는 것이다. 돈을 관리하는 임원들이 있고, 그럴싸한 동기 부여나 매력은 있을지 몰라도 “성령의 능력”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과 다른 이들의 삶에서도 그 능력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을 보면, 다른 이들에게서는 그 능력을 보기가 어렵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당신은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충만한가? 성령으로 인쳐졌지만 “능력은 없는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정욕, 의심, 두려움, 성질, 우울함, 염려 때문에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당신의 삶 속에 변화가 있었는가? 개선이 있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이전과 똑같은 모습인가?
한번은 한 여자아이가 아버지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겐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지미와 조는 매일 밤 기도해요. 하나님께 더 착한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요. 그런데 아직 그렇게 안 됐어요!”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이다.
당신은 성령으로 인쳐졌고,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신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 너희도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이신 그의 안에서 온전하게 되느니라』(골 2:9,10). 이렇게 말씀하는데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가? 죄인들이 당신을 무서워한 적이 있는가?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이 당신 때문에 불편해한 적이 있는가? 어떤 젊은이를 위해 기도해서 그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막아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이와 같은 것은 실제적인 믿음의 문제이다.
당신은 능력이 있는가? 없다면 왜 없는 것인가?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도다』(마 28:18). 그리고 그 권세를 당신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당신 안에는 주님 안에 계셨던 동일한 성령님이 계신다. 사도들 안에 계시던 바로 그 성령님을 받았다. 물론 당신은 선지자가 아니고, 사도적 기적이나 표적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임했던 그 성령님께서 바로 당신 안에도 들어오셨다. 구원받았다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킨 능력이 당신 안에도 있다. 바울에게 있었던 능력,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있었던 그 능력이 당신 안에도 있다! 따라서 그들과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능력이 나타나야 하지 않겠는가? 『힘으로도 아니요, 능력으로도 아니며, 오직 나의 영에 의해서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슼 4:6).
성령을 받았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나는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능력을 보아야 한다. 당신은 쉽게 상처받는가?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 보라. 사랑은 쉽게 상처받지 않는다. 당신은 자주 염려하는가? 마태복음 6:34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의심하는가? 히브리서 13:5,6을 읽어 보라. 무엇이 문제인가? 고약한 성질인가? 빌립보서 4:7을 읽어 보라. 쉽게 거짓말하는가? 에베소서 4:25과 골로새서 3:9을 보라. 당신은 어떤 점에 약한가?
195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한 청년이 어떤 그리스도인 소녀에게 접근했다.
“데이트할래?” 그녀가 대답했다. “성경에서 믿지 않는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하셨어.” “그럼 칵테일 한 잔만 마셔 봐.” “아니, 내 몸은 성령의 전이야.” “그럼 영화라도 같이 보러 갈까?” “아니, 성경은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고 하셨어.” 그 청년은 친구들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 여자애한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성경을 너무 많이 알아.” 그 소녀는 “능력”이 있었다! 자기보다 두 살 많고 경험도 더 많은 남자를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밀어냈다. 그는 완전히 제압당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능력”이다.
당신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도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이 마지막 때에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 능력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능력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살아야 한다. 우울함을 이겨낼 방법이 있어야 한다. 분노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거짓말을 이길 수 있어야 하고, 죽음조차도 이겨 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죽음에 있어서도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이 죽음에 가까웠을 때를 보라. 그는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8).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이 약속은 바로 당신을 위한 것이다!
빌리 브레이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의사가 그를 찾아와 말했다.
“빌리, 안타깝지만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아주 위중합니다.” “그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금방 죽을 수도 있다고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늘 죽을 수도 있다고요?” “예, 오늘이라도 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빌리가 외쳤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이제 곧 나는 하늘나라에 있는 내 본향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능력이다. 가짜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이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세상은 무능한 그리스도인들로 넘쳐난다. 당신은 벤치프레스 20kg도 들지 못할 수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한때는 근육을 만들려고 운동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그냥 가벼운 무게만 드는 수준이다. 나이가 들면 그것은 “근육 만들기”가 아니라 그저 “근육 유지”가 된다. 지금은 내 몸무게도 못 들 정도다. 아마 80kg은 무리일 테고, 70kg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몸은 약해진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약해질 필요가 없다(고후 4:16; 12:9,10, 행 20:32).
문제는 당신의 “자아”이다! 당신이 주님께서 흥하시고 자신을 쇠하게 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흥하게 하고 주님을 쇠하시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으면 복음 전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자신의 일을 그만 말하고 주님의 일을 구하기 시작하면, 기도가 더 많이 응답될 것이다. 자, 이제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인가, 그렇지 않은가? 당신의 삶 속에 실제로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가? 당신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사람이 있는가? 당신의 말과 기도로 인해 인생의 파멸을 피한 사람이 있는가? 당신은 불신자들을 두렵게 하는가? 당신은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을 화나게 만드는가? 당신의 기도로 마귀의 일이 멈춰진 적이 있는가?
몸무게가 57kg인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의 아들이 차를 수리하다가 차체를 들어올리고 있던 잭이 빠지는 바람에 차 밑에 깔렸는데, 차 무게가 1.6톤이 넘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그것을 순간적으로 들어올렸다! 그녀는 등뼈 몇 개를 다쳤지만, 57kg밖에 안 되는 몸으로 그 차를 들어올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와 당신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나는 성령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책상엔 이런 문구가 있다. “피터 S. 럭크만, 하나님의 종.” 이것이 전부다. 그리고 나는 섬기고 싶다. 『누구나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라오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의 종도 거기에 있으리니, 누구나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시리라』(요 12:26). 주님을 섬긴다면, 주님께서 당신에게 능력을 주실 것이다. BB